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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로마서 15장1-7 / 믿음이 강한 자의 의무

by 【고동엽】 2022. 11. 15.
■2022년2월23일(수)■
 
(로마서 15장)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묵상/롬 15:1-7)


◆ 믿음이 강한 자의 의무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중에 누구를 따라야 할까?
당연히 믿음이 강한 자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가 성숙하고, 교회가 성장한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충돌하면 누가 양보를 해야 할까?
마땅히 믿음이 강한 자가 양보해야 한다. 약한 자의 약점을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가 되고, 약한 자도 쫓아올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피난 길에 한 가족이 도보로 이동한다고 하자. 누가 방향을 정하고, 누가 가족을 이끌어야 하는가? 가장 강하고 성숙한 아버지가 해야 한다. 그러나 이동할 때 속도는 누구에게 맞추어야 하는가?
그중에 걸음이 가장 느린 아이의 속도다. 그 아이의 걸음을 무시하고 달리면 가족을 잃는다. 자신은 한 시간에 6km를 걸을 수 있어도 아이가 3km밖에 못 걷는다면 할 수 없다.


교회가 이 원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믿음으로 하나 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 비방을 감수함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절의 말씀은  시편 69편 9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다윗이 쓴 이 시는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를 묘사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을 모두 받으셨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았으면 받지 않아도 될 비방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신 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추구하신 분이시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형제를 위해서 기꺼이 손해보는 삶을 감수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막상 현실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모두 좋은 형제, 아름다운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막상 자기 이익에 손해가 나는 일이 생기면 즉시 안색이 변하고, 떠날 생각부터 한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내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 교회, 형제들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자가 진정한 성도다.


◆ 그리스도께서 표준이시다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신다고 했다.
신약시대의 우리에게는 율법이 표준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표준이심을 분명히 하시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왜 싸우는가?
자기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기준이 되면 싸울 일이 없다.


사람들은 책상 길이가 몇 센티미터인가로 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가 있기 때문이다. 자로 재면 결론이 나오는데 서로 토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에게 자와 같으시다. 그분으로 모든 것을 재면 된다. 그리스도께서 표준이 아니라 자기가 표준인 교회는 간판만 교회일 뿐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


여러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는가?
이것이 성도와 교회가 가져야할 올바른 자세다.


6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고 했다.
우리를 받으시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잃어버린 자를 하나님의 것으로 되돌려 놓으심으로써(행 20:28)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심으로써(엡 1:4)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게 하심으로써(엡 1:6) 영광을 돌리셨다.


미숙하고, 허물투성이며, 의지가 박약한 나를 주님께서 받으셨다.
그렇다면 나도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연약한 형제를 받아야 한다. 


교회에서 미숙한 형제에게 눈살을 찌푸리지 말자. 주님께서 그 형제보다 눈살을 찌푸리는 나를 더 책망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받으셨듯이 그렇게 받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대상에는 다른 형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포함된다.
의외로 많은 성도가 심한 자책에 빠져있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 기준에 자신이 못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책하거나 자학에 빠지지 말자.


지나친 자책이나 자학에 빠지면, 언뜻 겸손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자들은 매일 자기 문제에만 집착하면서 남을 돌아보지 못하고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받으셨다.
이것부터 확신해야 한다. 그래야 이 확신 속에서 나도 형제를 받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이런 나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함을 넘치게 하자.
그러나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면 이 모든 위로가 무용지물이다.
세상을 사랑함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평화와 위로를 맛볼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어떻게 받으셨는지를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그 용납하심을 기억하고, 그러한 관용으로 형제들을 대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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