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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의 모델 -시편 128:1~6

by 【고동엽】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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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8:1~6  

주일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교회에서 듣고 배운 천당에 대하여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천당은 어떤 곳일까요?’ 이에 아버지의 대답은 ‘얘야, 천당은 나도 안 가봤지만 아마 우리 집의 모습이 천당과 같은 것 아니겠니?’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속받은 성도의 가정은 천당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본문 성경은 행복한 성도의 가정을 노래한 시편입니다. 이 가정의 특징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입니다. 곧 모든 가족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그 말씀과 법도를 실천하므로 각기 제몫을 다하는 가정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상적인 그리스도인 가정의 표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I.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가정

행복한 가정의 우선적인 요건은 가족 공동체가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가족 구성원이 제각기 지켜야 될 기본적인 윤리를 실천하여야 됩니다. 우리 성경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를 몸소 행하는 자입니다.

(1) 효도는 신앙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지켜야 될 계명을 반포하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출 20:12).
사도 바울은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여야 하는 명령을 두고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엡 6:1-3).
신앙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주신 법도를 따라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사람과 사람사이에 지켜야 될 첫 번째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행위로써 그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2) 효도의 방법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은 동서고금 어떤 곳에서나 지켜지는 최고의 윤리입니다. 그렇지만 갈수록 부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식어지고 오히려 귀찮은 존재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말하는 성도들 중에서도 지극히 형식적이거나 마음에도 없으면서 말로만 효도한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 중에는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바쳐버렸다는 식으로 「고르반」이라는 말을 썼습니다(막 7:11). 이는 불효자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위선적인 행위입니다. 성경적인 효도는 자녀가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며 항상 부모의 뜻을 순종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보모의 신앙적 정신을 이어받아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입니다. 요한3서 1:4에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3) 효도의 결과

성경은 효도하는 자녀에게 가장 큰 축복을 약속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2-3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사람 사이에 지켜야 될 첫계명인 만큼 거기 따르는 축복도 최상의 것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수는 무조건 오래 산다는 뜻만 아니고 자손대대로 이어가며 번영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레미야 35:18-19에 나오는 레갑 자손에서 이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레갑 자손들은 저희 조상 요나답이 포도주를 먹지 말라고 한 유언을 따라 모든 후손들에게 포도 농사를 짓지 말게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II.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가정

본문 말씀 3절에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안방에는 아내와 자식들이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사랑으로 영글어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차적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가르치지만 거기 못지않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며 바르게 교도하여야 될 책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4에는 부모가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른들이 어린이를 잘못 가르치거나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야 된다고 하였습니다(마 18:6). 이와 같은 말씀들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묻는 말입니다.


(1) 자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솔로몬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하였습니다(시 127:3).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을 부모의 전유물처럼 생각합니다. 자녀를 생산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사람이 임의대로 자녀를 낳을 수 없습니다.
경건한 성도는 자식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받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자식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그 자녀에게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소망하게 됩니다(갈 4:19).

(2)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잠언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땅히 행할 길”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적 도리를 의미합니다.
옛날 모세는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녀에게 가르쳐야 될 계율을 선포하였습니다. 신명기 6:6-7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4에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자식을 부모의 정서나 개성에 맞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여기 “양육”이라는 말은 “자양분을 준다” 또는 “영양을 공급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곧 자식을 키우되 좋은 음식을 먹이고 적당한 운동을 시켜서 신체적으로만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훈계로 영혼에 자양분을 주어 인격을 온전케 하라는 뜻입니다. 자칫 신체적으로 건장하고 물질이나 지식을 많이 가진 것으로 성공한 것처럼 양육했다가 신앙을 심어 주지 못했을 때는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3) 기도와 모범을 보여야 됩니다.

옛날부터 경건한 성도들은 자식을 태중에 품고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하며 양육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건강이나 용모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까지 하나님께서 감찰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뛰어난 지혜나 온화한 성품, 건전한 사고와 같은 정서적인 것도 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어 지는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책임 있는 부모는 그가 기도하는 대로 실천하여 생활의 모범을 보이는 자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자식을 달라고 기도하여 아들을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그 아이를 경건하게 양육했고 또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삼상 1:20-24). 옛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아이를 젖먹이면서 신앙으로 양육하여 훗날 죄악과 함께 누리는 애굽의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이스라엘 출애굽의 영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히 11:24-26).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가치관 때문에 부모의 욕심으로 자녀들이 탈선하고 있습니다.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나 목적 없는 지식을 추구하다가 멸망을 자초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잠 1:7). 잠언 3:15-17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고 하였습니다.



III. 천당의 행복을 실감하는 가정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애인 술람미를 두고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고 묘사하였습니다(아 4:12).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하지 않고 또 외부의 어떤 잡인도 침범하지 않는 잠근 동산 그 안에는 솟아나는 우물과 봉한 샘이 있어서 각종 과일나무와 여러 종류의 향기를 토하는 화초들로 최상의 행복이 무르익는 곳입니다.

(1) 사랑과 평화와 희망이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과 평화, 그리고 소망이 가득한 가정입니다. 전영택 선생이 작사한 305장 찬송에는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낙원은 에덴동산을 뜻합니다(창 2:8-9). 거기는 장차 우리가 희망하는 천당의 원형으로써 죄가 오염되지 않은 곳입니다. 이사야 11:6-9에 보면 거기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놀고 표범과 어린 염소가 어울리며 사자도 소처럼 풀을 뜯고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 이상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84:3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참새의 집과 제비의 보금자리처럼 아무런 꾸밈도 가식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과 진실한 사랑 그리고 완전한 평화가 깃들여 있는 보금자리가 행복한 가정입니다. 이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며 사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2) 온가족이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잠언 15:16-17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요체는 사랑과 평화입니다. 솔로몬은 재산이 적어서 가난하더라도 가족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보았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호화롭게 살면서 서로 다투고 반목하는 것보다 차라리 채소를 먹더라도 사랑하며 화목 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이러한 가치 판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2절에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손으로 수고하고 거기서 얻는 수입과 열매를 거두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일러줍니다. 가족 중 한 사람도 다른 사람이 고생하게 버려두고 자기 혼자 편안히 지내고 즐기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 수고를 나누면서 땀 흘려 얻은 열매로 즐기는 삶이 행복인 줄 아는 것입니다.

(3) 미래의 희망을 가꾸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말씀의 도리를 실천하는 가족들에게 찬란하고 형통케 되는 소망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옛날 족장들의 가문에는 오래도록 조상들의 신앙을 이어가는 전통이 있었지만 그 후손들의 대를 이어가면서 더욱 발전하고 번영하였습니다. 창세기 26:18에 보면 이삭이 그랄 땅에서 그 아비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파고 아브라함이 부르던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앙과 유지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주변으로 나아가며 여러 개의 우물을 파 두었습니다. 그것은 훗날 번성하게 될 그의 후손들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6:22에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127:4-5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고 하였습니다. 어른들은 자녀들이 누리게 될 축복의 미래를 열어가고 자녀들은 어른들의 신앙과 경건을 실천하면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며 발전시키는 가정이 행복의 모델이 되는 가정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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