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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사랑 ․ 우리 하나님
사49:14-21
I. 어버이
어느 광고 카피라이터가 이 땅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스물 아홉 - 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 일곱 -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 셋 -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 -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 -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 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예순 하나 -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예순 다섯 -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며 어버이 주일입니다.
예전엔 어머니날 이라고 했는데 요즘엔 어버이 날이라고 합니다.
시인 피천득씨의 글 가운데 아름다운 글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30대에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는 얼마나 젊고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내가 새 한 마리도 죽이지 아니하고 살아온 것은 내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속에 웃는 나의 미소는 내 어머니한테서 배운 웃음입니다.
나의 간절한 희망이 있다면 내 어머니의 아들로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자녀들의 마음은 이렇게 어머니의 숨결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고마우신 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신 분입니다. 때문에 내 아버지 내 어머니는 이 땅에서 우리의 공경을 받아 마땅하신 분들입니다. 세상 최고의 스승이 있다면 아마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대를 이어준 우리 어머니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귓전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II. 하나님이 보낸 내 어머니
본문 주제 구절이 되는 이사야서 49장 15절, 16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손바닥에 기록했다고 하지 아니하고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볼펜이나 연필로 쓴 것이 아니고 조각칼로 우리를 새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는 우리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기 위해서 그분은 살이 떨어져 나가야 했고, 피 흘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내 어머니 손바닥에는 내 이름이 있고
내 얼굴이 있으며 우리 하나님 손바닥에는 내 얼굴, 내 이름이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여러 곳에서 우리 하나님을 내 어머니 같은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타락하고 범죄하여 벌거벗은 수치를 입고 있을 때에 양을 잡아 옷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손수 바느질하여 내 옷을 만드시던 어머니의 손길을 기억나게 해 줍니다.(창3:21)
선지자 예레미야는 범죄하고 타락하여 징벌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채찍에 맞아 피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몹시도 아파한다구요(렘31:20).
이사야 선지자는 어미가 자식들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한다고 기록했고
(사42:14), 시편의 기자는 어린 아기가 어미 품에 안기듯이 내 마음이 편안하옵니다. 하나님의 품을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 흘리시며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눅13:34).
한탄하는 주님의 심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표현했습니다.
III. 내 어머니 우리 하나님의 그 사랑은 도대체 어떤 사랑입니까?
1. 살려주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가장 큰 역할은 살림하시는 일입니다. 살림이란 “살린다”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어머니에게서 살려주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 주시기 위해 어머니를 먼저 보내주셨습니다. 내 어머니는 나를 얻기 위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당신의 살을 찢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천국의 자녀로 얻으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그분의 피를 흘리셨고 그분의 살을 찢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 받은 사랑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아주 어린 나이에 숨을 헐떡거리다 마침내 숨을 멈추는 큰 고통의 시간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때 일을 하나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 졸이며 그 순간 나를 지켜 보셨을까요. 숨을 몰아쉬는 나를 바라보며 얼마나 발을 동동 구르셨을까요.
숨을 뚝 멈추고 마는 나를 바라보며 얼마나 우리 하나님, 우리 어머니 안타까와 하셨을까요.
저는 어릴때 워낙 개구쟁이라 크고 작은 사고를 많이 쳤습니다.
동리 아이들과 기마전을 하다가 팔이 부러지기도 하고 친구들과 싸우다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고등학교를 3년이면 다 졸업하는데 저는 4년을 다니며 폭력써클에 가담한 일로 휴학 퇴학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어머니 얼마나 놀라고 가슴에 피멍이 들었을까?
이제야 그때 일이 후회스러워 집니다.
내가 죄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할 때에 우리 하나님은 나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갈 때에도 우리 아버지 가슴에 못질하고 달려갈 때에도 나의 등뒤에서 언제나 나의 이름 부르며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요 내 하나님의 사랑뿐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 가운데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대신 네 어미를 네게 보냈노라. 내게는 등이 없어서 너를 업어줄 네 어미를 네게 보냈노라. 내게는 손이 없어서 너를 붙들어 주고 어루만져 줄 네 어머니를 네 곁에 보냈노라. 나는 너를 품어줄 가슴이 없어서 어린 너를 품어줄 어미를 네 곁에 보냈으며, 내게는 젖이 없어서 생명의 젖줄을 너에게 보냈노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사랑의 손길로 어머니를 보내어서 우리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이름이 없었습니다. 오직 “영모 어머니”란 이름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류는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어머니 품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6.25때의 일입니다. 피난 행렬이 이북에서 구름떼처럼 남으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품에는 조그마한 봇짐 하나를 짊어지고 피난 대열에 끼어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기관총 사격을 받았습니다. 개나리 봇짐은 집어던지고 등에 업었던 어린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총은 어깨 위로 스쳐지나가며 어머니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피는 뚝뚝 떨어졌고 흐르는 피는 아이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 국군장병들이 시체를 검열하다가 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국군은 그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고 그 어머니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아이가 맞아야 될 총을 어미가 대신 맞았습니다.
내가 써야 될 가시면류관 우리 예수님이 쓰셨습니다.
내가 찢겨져야 될 살 - 예수님 찢기시고,
내가 흘려야 될 피 - 예수님 흘려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IV. 내 어머니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2. 격려하여 주시는 사랑 - 보혜사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만나 봅니다.
보혜사는 ‘곁에서 돕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 내 어머니를 우리 곁에 보내 주셔서 어린 나를 돕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 어머니는 내 어릴 때 병들세라 내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밤이면 가슴에 안고 잠드셨고, 내가 걸음마 배우면 자랑스럽게 내 손을 붙들고 마을에 내려가셨는가 하면, 내 손 붙들고 학교에 가셨고, 내가 몸져 누운 날이면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다고 하면 내가 네 대신 아파줄 수 있다고 한다면 나를 품에 안고 발 동동 구르시며 병원을 향하여 달려가곤 하셨습니다.
어느 글 중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자기 졸업증명서를 한 통 떼어 서울 올라오는 인편에 들려보내면
고속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받겠다는
서울 용산 2동사무소에 임시채용된 큰아들의 전갈을 받고
졸업증명서를 직접 들고 기차를 타고 난생 처음 서울에 올라와 밤늦도록 초행인 서울길을 헤매다 추위에 온몸이 언채
어느 청년의 안내로 동사무소에 겨우 찾아온 엄마가
아들의 숙소인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잠들면서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살을 에는 겨울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숙직실,
“나는 벽쪽에 자야 잠이 잘온다”고 우기며
몸으로 찬바람을 막아주던 엄마가 나직히 건내는 말...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 보곤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핵교 보낼 때는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어서어서 자라라 내 새끼야.
매일 노래를 불렀네. 그러다 언제 보니 이젠 니가 나보다 더 크더구나.
어서어서 자라라 했음서도 막상 니가 나보다 더 커버리니까는
니가 자식인데도 두렵데.
이 세상 모든 부모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 한 마디입니다.
V. 내 어머니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3. 구속하여 주시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끝까지 자녀를 구속해 주는 사랑입니다.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허물이 있어도 다 감추어 주는 사랑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해도, 세상 모든 이웃과 친구들이 내게 손가락질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나를 구원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저도 세상 모든 아이들처럼 어머니를 속여 먹었습니다.
영어 사전 산다고 돈 타가고.
몇일 있다가 콘사이스 산다고 돈 받아 가고
또 몇일 있다가 딕셔녀리 산다고 돈 뺏아 갔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어머니니는 속아 주셨습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이게 어머니 사랑입니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우리는 땅 속에 내 부모를 묻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속에 어머니는 자식을 묻습니다.
우리 모두 어머니 품에서 태어나 어머니 품에서 죽어 갑니다.
이번 주간은 연휴에 연휴가 끼어 제주도로 해외로 여행 가는 젊은 부부들이 많았습니다. 어버이날 정작 어버이들은 홀로 떨어져 공원길 산책이나 하는 어르신들이 넘쳐나고 있답니다.
근간 가정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가끔 늙으신 어버이를 모실 수가 없어서 이름 설고 낮설은 땅에 갖다 버립니다.
경찰들이 와서 묻습니다. “자식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어느 마을에서 사셨습니까?” “어르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끝내 아버지 어머니는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자식의 이름이라도 대고 나면 자식에게 누가 될까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사람으로 태어나 받은 최고의 은혜가 있다고 하면 내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그분들이 내게 물려준 유산이 많지 못해도, 그분이 내게 가르쳐 준 교육이 높지 못해도, 깊지 못해도, 그분을 세상에 내세워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내 부모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게 생명을 주셨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내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셨다는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공경받아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힘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 부모, 내 이름을 부르며 손모아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내 아버지, 손들어 축복할 때에 손 끝에 축복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 어미가 축복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VI. 내 어머니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4.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치마는 덮어주는 사랑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내 어머니의 가슴은 우리를 안아 주시고 상처받은 내 상처를 치료하는 사랑의 능력의 품이었습니다.
추운 밤 나를 덮어주시던 그 이부자리는 이 세상 살아가며 고독하고 외로울 때에
나를 덮어주시는 하나님 사랑의 품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인류의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보자기였습니다.
내 어머니는 밤을 세우며 길쌈하여 내 옷을 손수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이십니다.
옛날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땀과 눈물과 피로 얼룩진 사랑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아름다운 삶으로 살아가지 못할 때에 우리 예수님 피 흘려 의의 옷을 지어주셨고, 우리 예수님 피 흘려 구원의 옷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 구속의 피로, 그 의의 피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셔서 이 세상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여러분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땅에 가득해 지는 것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용서받은 경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로부터 격려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 다른 사람들을 돌봐주고 세워줄 수가 없습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외롭게 자란 사람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그 사랑 이상으로 큰 은혜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보다도 더 풍부한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특별한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섬기던 충신교회에 이화여자 대학교에 다니는 “조숙”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 시간이 되어서 새벽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숙이가 차를 타고 교회에 가고 있었습니다.
술취한 덤프 트럭 한 대가 새벽녘 비틀거리며 조숙이가 탄 이 승용차를 향하여 돌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깜짝 놀라 “숙아 비켜!” 딸 아이를 품에 안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덤프 트럭은 옆구리를 치고 달아났습니다.
경찰들이 달려와서 찌그러진 차를 펼치고 가족을 끄집어 내고 보니 어머니는 찢겨져 피투성이가 되어 이미 숨을 거두었고, 어머니의 품 밑에 감추어진 숙이는 잠깐 기절했을 뿐 찰과상 정도로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이게 우리 어머니의 사랑이요, 이게 덮어주시는 내 아버지의 사랑 우리 하나님의 사랑아니었습니까?
VII. 내 어머니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5. 내 어머님의 품은 하늘의 고향입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고향입니다.
내 어머니의 가슴은 생명의 젖줄입니다. 내 어머니의 가슴은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내 어머니의 가슴은 피난처요 내 놀이터였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평화의 동산이요 우리의 고향입니다. 우리가 고향에 가는 것은 어머니가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오직 어머니 때문에 고향이 그립고 고향은 언제나 우리에게 소중한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고향은 어머니의 가슴이요 하늘 고향은 어머니 같으신 내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우리가 왜 고향에 갑니까? 기다리시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향이 그리워 어머니를 찾아갈 때 문 밖에 서서 밤이 이슥하도록
‘내 아들 딸 언제 오나’ ‘내 아들 딸 어디서 오나’ 날 기다려 주십니다.
나를 알아주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고향에 갈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죠.
저는 결혼하던 그해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저는 내 어머니를 제 집에 모신 날부터 고향이 필요 없습니다.
제 집이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천국 문에 서서 나를 기다리실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해 봅니다. 나보다 먼저 하늘에 서서 날 기다려 주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를 상상해 봅니다.
“아들아, 어서 오너라. 내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가. 내 너를 한번도 땅 객지에 보내놓고 얼마나 오랫동안 너 돌아오기를 기다렸는가. 네가 외로워할 때에 너와 함께 살 집을 나는 지었노라. 네가 힘써 애써 눈물 흘리고 피 흘리며 날 섬길 때에 영광의 낙원을 준비하여 널 기다렸노라. 아들아 어서 오너라”
빈손 들고 주님 앞에 서는 그 시간 날 기다려 주실 내 부모님,
내 하나님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세웠네
VIII.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 내 꿈이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영광스런 내 아버지의 존전에 서는 그 순간 부족한 종의 꿈이 있다면
내 어머니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한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이 분이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주신 “내 어머니”이십니다.
제가 꿈이 있다고 한다면 내 어머니가 하나님 앞에 자랑스럽게 나를 내세우며
“하나님 아버지 내게 보내주신 나의 자랑, 나의 기업, 나의 상급 - 내 아들입니다.” 내 어머니는 나의 영광이요 나는 어머니에 영광의 면류관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100년전 미국의 어느 시골마을에 한 가난한 과부와 외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과부는 낮에는 양계를 했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아이의 등록금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의 고생하는 은혜를 잊지않기 위해 아들은 부지런히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수석으로 대통령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졸업식장에 입고 갈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었습니다. 행여나 내 꼴이 자랑스런 내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어머니는 말씀합니다. “얘야, 내가 네 졸업식장에 가기는 가야겠다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갈수가 없구나.” 어머니의 치맛자락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은 울며 매달립니다. “내 어머니 아니 계신 졸업식장, 내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바라봐 주지 않는 금메달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내 목에 걸려진 금메달 어머니 목에 걸어드릴 수 없다고 한다면 지난 3년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졸업식장에 참여했습니다.
답사를 하고 영광스런 메달을 들고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고 한쪽 모퉁이 남루한 옷차림을 한 어머니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목에서 벗어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립니다. “이 메달은 어머니의 몫입니다.”
이 아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윌슨이 되었습니다. 그가 재임하던 1914년 그는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서 5월 둘째 주일 - 어린이들 가슴속에 어머니의 사랑을 불일 듯 일게 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 어머니를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어머니 사랑으로 불타는 붉은 카네이션 달고 기념하는 어머니 날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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