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어버이주일설교) (창22:6-12)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아버지와 아들”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어버이 주일에는 어머니에 대한 설교를 주로 하는데 오늘은 아버지에 대한 설교를 하겠습니다. 성경은 어머니에 대해서 말씀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 대해서도 말씀을 합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1:8). 어머니의 사랑은 더할 나위 없이 지극하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도 더할 나위 없이 크고 깊습니다. 오늘 아침 두 사람이 나와서 아버지에게 드리는 사랑의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편지들이었습니다. 사랑이 묻어있고 신뢰가 담겨있고 고마움이 차있는 편지들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사랑과 존경과 신뢰와 고마움은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값지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첫째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나옵니다. 대화의 내용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까도 아니었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까도 아니었으며, 어떻게 하면 성공해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 까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제사를 바로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삭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아왔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특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리아 산으로 가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 이삭은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대로 공부보다, 돈 버는 것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바른 제사 드리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와 존경과 사랑이 진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라면 어떠한 희생이나 죽음도 기쁘게 받아드리려는 각오로 충만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믿음의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릴 수 있을 가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결국 이와 같은 대화는 두 사람의 삶을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버지 손종일 장로와 아들 손양원 목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들 손양원은 믿음의 유산을 아버지 손종일 장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매일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고, 집에서는 가정예배를 드렸고,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손양원은 11살 때 칠원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일본인 교장은 매일 일본 왕을 향하여 절하는 동방요배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방요배를 거절했습니다. 어느날 손양원은 동방요배 거부로 교장으로부터 뺨을 맞고 코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이렇게 기도하며 아들을 격려했습니다. "주님, 이 부족한 것의 미천한 아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 제 아들을 더 큰 망치로, 더 강한 힘으로 두드려 주십시오." 손양원은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 라면 그까짓 학교 안 다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하며 사랑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신뢰하며 사랑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와 존경과 사랑이 진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라면 어떠한 희생이나 죽음도 기쁘게 받아드리려는 각오로 충만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믿음의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릴 수 있을 가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결국 이와 같은 대화는 두 사람의 삶을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세 아들과 네 손자를 모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한국의 아벨이 되었고 아들 손양원 목사는 나병 환자들과 원수들을 용서하고 사랑한 한국의 프랜시스가 되었습니다.
셋째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그의 아들 김명혁 목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는 민족과 교회를 사랑한 애국자요 목회자였습니다. 일제 하에서도 감옥살이를 했고 공산치하에서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늘 설교준비와 심방에 바쁘셨고 그리고 많은 기간동안 감옥에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6,7세 때 아버지와 함께 신의주 제2교회의 뜰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기억됩니다. 그 때 저를 많이 칭찬해주셨습니다. 교회에서 제가 노래도 잘했고 연설도 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당의 유리창이 몇 개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때 제가 즉시 곱셈과 덧셈을 해서 유리창의 개수를 알아 맞추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저를 많이 칭찬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 주일성수를 철저히 했고 신사참배를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치하에서는 주일날 절대로 학교에 가지 않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물론 벌을 받기도 했고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버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것은 제가 11살 되던 해인 1948년 7월 어느날 평양 시외 사동탄광 감옥 안에서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서울로 가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서울로 가도 좋다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간단한 말 한 마디였지만 그 간단한 말 속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너를 떠나 보내는 것이 너무 아쉽지만, 너만이라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순교의 제물이 될지도 모르지만 너는 내가 다하지 못한 하나님의 일을 마음껏 하여라. 아들아 잘 가거라.” 그것이 마지막 만남과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대화였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한 제사의 대화였습니다. 그 다음 달인 8월 저는 평양을 떠나 38선을 넘어 서울로 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믿음과 신뢰와 존경과 사랑의 대화는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대화인지 모릅니다. 결국 이와 같은 대화는 두 사람의 삶을 값지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시게 되었고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순교자의 아들로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의 성격과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의 성격은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와 딸의 만남도 어머니와 아들의 만남도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신뢰의 만남, 헌신과 제사의 만남, 존경과 사랑의 만남이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과 신뢰와 헌신과 제사와 존경과 사랑의 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 여러분들의 삶이 값지고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명혁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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