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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어버이 주일설교

어버이를 기쁘시게 하라 (잠언23장 25절)

by 【고동엽】 202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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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를 기쁘시게 하라 (잠언23장 25절)

여러분, “어떻게 하면 자식이 잘 되고 행복할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어떻게 하면 내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리고 기쁘시게 할까?” 하는 이 두 가지 마음 중에 어느 쪽이 더 무겁습니까? 아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자식들의 사랑과 효심은 점점 식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고려장 하듯이 비록 산속에는 갖다 버리지 않으나, 제주도나 해외에 여행 갔다가 부모를 버리고 오거나 양로원이나 기도원에 갖다 버리고 오는 자식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피주 공고 교장이신 이영순 목사님의 글 가운데 고인이 되신 한영선 목사님의 “늙은이는 서럽다네” 하는 글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늙으면 섧다네. 눈 어두워 그렇지. 돋보기 안경 쓰고 확대경 손에 드나 그래도 안보여 두 번, 세 번 살핀다네. 늙으면 섧다네. 귀먹어 그렇지. 남의 소리 반타작. 묻기 뭣해 지나고, 재빠른 전화 소리는 정말 듣기 힘들다네. 늙으면 섧다네. 무시당해 그렇지. 수에도 치지 않는 젊은이의 풍조로다. 무언가 저들끼리만 쑥덕쑥덕 하누나. 늙으면 섧다네. 짝 잃으니 그렇지. 백년해로 약속 어겨 어느 한 쪽 먼저 가니 남은 쪽 외로움이야 일러 무엇하리요. 늙으면 섧다네. 병들어 그렇지. 내 몸은 내 몸이나 내 맘대로 못하니 옆에서 돌보지 않으니 꼼짝못해 답답하지.”
이런 넋두리가 몇 년 전만 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구구절절 가슴에 스며드는 것이 저도 이제는 늙는 모양입니다. 여러분, 머지않아 늙음이 찾아옵니다. 늙으신 부모님의 심정 헤아려 어버이를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선량한 직장인이 되고, 선량한 시민이 되고, 좋은 교인이 됩니다. 또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부모에게 행한 대로 자기도 받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인륜 관계의 첫 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고, 에베소서 6장 3절에서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고 부모를 멸시하는 사람은 결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는데, 친족이 아니라 자기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더 악한 사람이겠습니까?
본문 잠언 23장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어버이를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1. 중심에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 그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일본 어느 대학에 외아들 대학생이 있었는데 효자로 소문이 난 청년입니다. 한 번은 방학이 되어 집에 가는데 친구 하나가 따라갔습니다. 어떻게 효도하나 살피러 따라갔는데 실망을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나서는 옷을 훌훌 벗고 목욕을 하는데 연세 많으신 홀어머니에게 자꾸 심부름을 시키더랍니다. “어머니, 비누 좀 갖다 주세요.” 또 조금 있다 “어머니, 수건 좀 주세요.”, “어머니, 냉수 좀 주세요.” 그래서 목욕을 다 한 다음에 “나는 자네가 효자라고 해서 어떻게 행동하나 살펴보러 왔는데 실망했네. 자네가 직접 할 수 있는데 홀어머니를 심부름만 시키는 게 어디 있나?” 그랬더니, 그 친구가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물론 내가 내 손으로 갖다 쓸 수 있어. 그렇지만 어머니는 내 요구를 들어주시는 것을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셔.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걸세.” 하는 설명을 듣고 과연 효자이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식을 기쁘게 하고 자식을 행복하게 하려는 마음의 3분의 1만 생각한다면 아마도 다 효자, 효녀가 될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앞서야 되겠지요.
가렵기는 왼쪽 다리가 가려운데 긁기는 오른 쪽 다리를 자꾸 긁어주듯이, 부모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면 참된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전에 저희 모친께서 살아 계실 때 큰 아들네 집에서도 모시려고 하고 둘째 며느리를 좋아하니까 저희집에 계시라고도 하는데 싫다고 하시면서 4형제 아들네 중심되는 거리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사달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저희 형제들이 집 가진 형제가 없지만 돈을 모아서 10여 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렸더니 기뻐하시면서 제일 고생하는 막내딸 이름으로 해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했는지 그 딸이 그 집을 다 날려버렸는데 또 하나 사달라고 하셔서 돈을 모아 사 드렸더니 역시 그 딸의 이름으로 등기해 주고 몇 해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동생 하는 짓은 밉지만 어머님이 기뻐하신 것을 보며 저희들은 만족했습니다.
형식으로 겉치레 효도보다 중심의 뜻을 헤아려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참 효도라고 봅니다. 부모에게 무관심했던 죄를 회개해야 될 줄 압니다.

2. 공경심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께 무시하는 태도나 멸시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불효막심한 자식입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부모를 구타하고 부모를 죽이는 자식까지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려면 어른을 공경하고(honer) 경외하는(fear)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마땅히 공경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세가 많고 경험이 많은 분이니까 공경해야 합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말씀했습니다. 부모님뿐 아니라 나이 많으신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내 육신을 낳고 키운 부모님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가르쳐준 스승도 또 다른 부모와 같은 분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선생님을 사부(師父)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더욱 중요한 우리 영혼의 지도자이신 주의 종, 영의 양식을 공급해주는 목사나 영적 지도자를공경해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神父)라고 하는데 “Father”, 즉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교황”을 “Pope”라고 하는데 “아버지”, “파파(Papa)”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천주교에선 교인이 영세만 받으면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이 반말을 합니다.
자식들한테 존경을 받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남에게 존경받는 것보다 더 흐뭇하고 기쁜 일입니다. 재작년에 제 여섯 살짜리 손녀가 주일 오후에 제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귀에다 대고 “할아버지, 참 훌륭해 보여요.” 하고 웃지도 않고 말하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지금까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또 제 막내아들 정민 전도사가 주일 밤 예배를 다 마치고 밤늦게 와서는 제 손을 꽉 잡고 머리를 숙이고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렇게 힘든 목회를 어떻게 40년이나 했습니까?” 하는데 못들은 척 하면서도 자식들한테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흐뭇한지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습니다. 또 사위 목사들이 주일 설교 끝나면 머리를 숙이면서 “정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외국 사람 설교, 한국 사람 설교 다 들어봐도 역시 아버님의 설교가 깊이 가슴에 와 닿곤 합니다.” 하고 말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요사이 젊은이들이 공부 좀 했다고 건방지게 비판할 수도 있을 텐데 진심으로 인사할 때 참으로 보람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 아내도 언제나 고개 숙여 은혜 받았다고 인사하면서 설교 대지까지 외우곤 합니다. 한집에 사는 남편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존경을 표시할 때 정말 피로가 다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으로 인정받아 그와 그의 가족들까지 방주를 타고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사람이었지만 포도주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고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렇다고 비판하고 흉보던 함은 저주를 받았지만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린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식을 낳지 못한다고 조급히 생각하여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랄 땅에 이사해 갔을 때 그의 아내 사라가 너무 미인이라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빼앗으려고 할 때 자기가 죽을까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성군 다윗은 그렇게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지만 부하 장군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였고,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흉계를 꾸며 충성된 우리아 장군을 일선에서 싸우다가 죽게 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다 허물과 실수가 있고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허물과 실수가 있어도, 공부를 많이 못했어도, 자식을 공부 많이 못시켰어도, 부모는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신분이기 때문에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3.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님은 연세가 많을수록 고독함을 잘 느끼고 가까움을 잘 탑니다. 그러므로 자주 대화하면 기뻐하십니다. 전에 보면 딸들이 시집갔다가 친정에 오면 밤을 세워가면서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을 세워가면서도 피곤해 하시지 않고 그 얘기 듣는 것이 좋아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대로 자식들이 장관이 되고, 사장이 되고, 목사가 되었어도 부모님한테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전에 제 후배, 정 목사란 분은 30, 40이 되었어도 시골 부모님한테 가면 아버지 팔을 베고 다정하게 어리광 부리며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 앞에서 어른 행세하려고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하나님도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과 대화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꼐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보잘것없는 죄인일지라도 오래 대화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속사정 다 털어놓고 하나님께 말씀 드리며 의논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요사이 너무 바빠서 부모님과 자식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4. 감사와 칭찬을 해드려야 합니다.

자식들은 부모의 은공에 감사를 표시하고 칭찬해 드려야 부모의 마음이 기쁜 법입니다. 우리는 흔히 뭐 새삼스럽게 감사하고 칭찬하랴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의 은덕을 감사하고 부모의 장점을 칭찬해 드리는 것을 부모님은 대단히 기뻐하십니다.
저는 사춘기 때 웃기는 얘기를 잘하고 가족의 폭소를 터뜨릴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가족을 웃기기 위해서 아버님의 단점을 들어 웃기는 얘기를 했더니 처음에는 같이 웃으시더니 두 번째 또 이야기를 했을 때는 안색이 달라지시면서 화를 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것도 쉬운 말로 하나님을 칭찬해 드리고 기쁘게 해드리고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송영할 때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하고 두 손들고 부르는 것도 주님을 칭찬하고 기쁘시게 하는 행위입니다.
노아가 비록 포도주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는 실수를 했어도 그것을 들추어내면서 비웃고 흉보던 함은 저주를 받았고 그 허물을 덮어드린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잠언 30장 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은덕에 감사하며 훌륭한 점을 칭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5. 물질로 봉양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신 것같이 역시 어려운 중에라도 매월 얼마씩 형편에 따라서부모께 용돈도 드리고 여유가 있으면 맛있는 음식도 사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파고다 공원에 모인 노인들이나 노인정에 계신 노인들 대부분이 용돈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자식들이 성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는 다 후회가 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제 체면을 위해서 소를 잡아 제사 드리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생선 하나, 닭 한 마리 잡아 대접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어려우면 또 이해가 되지만 제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부모 위해 쓰는 것은 어찌 그리 인색한지 모릅니다.
옛날 한풍 곽(郭)씨 가문에 이름난 효자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밖에서 일하다 들어와 보니 연세 많으신 시아버지가 자기 손자 목을 타 누르고 죽이려고 하더랍니다. 며느리가 “아버님, 뭘 하고 계십니까?” 하고 비켜서게 했더니 “내가 닭고기가 먹고싶었는데 마침 닭이 한 마리 들어왔길래 잡아먹으려고 잡고 있던 참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들춰 업고 얼른 암탉을 잡아 삶아드려 잡숫고 있는 중인데 남편이 들어와 보니 분위기가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그 사실을 설명해 드리고 어린 아들을 보니까 이미 숨이 넘어갔더랍니다. 그것은 탓하지 않고 남편이 아내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당신은 하늘이 우리 가문에 내려주신 효부”라고 하니까 그 여자가 “이것은 내가 절 받을 일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이렇게 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라고 했더랍니다.
가장 큰 효도는 예수님 믿지 않는 부모라면 어서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전도를 안 받으면 일주일, 혹은 한 달 금식하면 다 들으실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도하지 않고 있다가 이 다음 부모님이 지옥불에 들어가시면 영원히 고통 가운데서 원망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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