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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노력/에베소서 5장 22~33

by 【고동엽】 202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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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장 22~33


서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노력’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가정이란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혈연으로 뭉친 모임입니다. 그 때문에 그 어떤 단체보다 친밀하고 따뜻하고 사랑이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이 오늘에 와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국 뉴욕 항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도열하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근사한 군함 한 대가 도착했고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배에서 한 구의 유해가 내려졌습니다. 그 유해는 위대했던 정치가도,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으로 단지 그가 작사한 한 곡의 노래 때문에 이처럼 엄청난 예우를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존 하워드 패인으로 '홈 스위트 홈'의 작사자였고 그 노래는 우리도 잘 아는 노래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 이리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라'라는 이 노래를 작사한 시인인 것입니다. 유해 앞에서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그는 이 땅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이 땅에서 지내는 일들 가운데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일까요? '스위트 홈', 바로 달콤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오늘에 와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슬픔이요, 비극인 것입니다.

<본론>
1. 부부는 신성한 결합
부부란 무엇입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부부란 동물적인 결합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물의 짝짓기는 종의 번식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은 후손의 번식을 위해서 만이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결혼은 하나님이 친히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2:18에 "야훼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혼자 사는 것, 고독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으니까 돕는 배필을 지어 영, 혼, 육이 하나가 되어 친밀한 동반자가 되고 친구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부부를 만들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단지 자손을 낳기 위한 남녀의 결합으로 부부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 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 역사는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가정의 역사이다.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의 가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고, 한 나라의 생존은 가정의 생존 여부에 달려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은 국가의 근본 세포를 형성한다."고 했는데, 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많아야 건강한 국가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가정이 이처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의 화합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 드릴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만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결혼해서 부부가 함께 연합해서 동거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자손을 기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여러분, 단지 인생을 살면서 살을 나누는 것이 아닌 뼈를 나누는 관계인 것입니다. 사람을 지었을 때는 그냥 흙으로 지어서 부부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남자의 옆구리 뼈를 취해서 여자를 지었다고 한 것입니다. 뼈로 지었다는 것은 여러분, 의미가 심장합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제퍼슨이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합니까? 그 자손들은 매년마다 그 조상을 기리는 모임을 가졌는데 얼토당토하게 흑인 제퍼슨들이 나와서 우리도 동참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퍼슨은 백인인데 백인 대통령을 지은 우리 조상인데 왜 흑인이 제퍼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여기에 참여하냐고 굉장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안된다. 된다. 그런데 흑인들이 법정에 고소를 해서 DNA 검사를 했습니다. 이미 그 무덤의 살은 다 썩어 버리고 뼈만 남았는데 뼈 조각을 뜯어서 DNA 검사를 해보니까 흑인 제퍼슨하고 DNA가 똑같습니다. 이게 왠일인가. 제퍼슨 대통령이 부인이 돌아가시고 혼자 생활할 때 가정부로 도와줬던 흑인 부인하고 관계가 몰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부인이 집을 떠나서 애기를 낳아서 이름을 제퍼슨이라고 지어 주었는데 그 후손들이 번창한 것입니다. 그런데 살은 썩어서 알 수가 없지만 남은 뼈 조각은 DNA를 조사해 보니까 틀림없이 조상이 제퍼슨이라는 것이 발견이 되어서 별 도리 없이 흑인 후손과 백인 후손이 함께 기념예식을 가질 수 있도록 되었다고 한 기록을 읽어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살점을 뜯어서 아내를 만들었으면 시간이 흐르면 살은 늙어지고 사라지고 썩어져 버리면 없어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담의 옆구리 뼈를 취해 가지고서 하와를 만들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뼈는 그렇게 쉽게 썩지 않습니다. 오래오래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관계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만나고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오래오래 계속하는 반영구적인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죽을 때까지 함께 살라 그 말인 것입니다. 뚱뚱해질 때도 살고, 빼빼해질 때도 살고, 왜냐, 몸은 뚱뚱해지고 빼빼해질 수 있지만 뼈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부부는 뼈를 나누는 것이지 살을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뼈 조각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함께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관계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라지지 않는 관계, 헤어지지 않는 관계가 바로 부부의 관계로써 하나님이 맺어준 것입니다.

2. 부부의 관계
그런데 여러 가지 인권문제가 생겨서 남녀동등이니 아니니 남존여비니 그런 말들이 많은데 성경적으로 우리가 보면 하나님께서 상징적으로 갈비뼈를 떼서 여자를 만들었다 하니까 갈비뼈라는 것은 머리에 붙은 것도 아니고 발끝에 붙은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 때 남자의 머리뼈를 취해서 만들었다면 여자는 남자보다 높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의 발뒤꿈치 뼈를 취해 가지고서 여자를 만들었다면 여자는 남자 발에 밟혀야 될 낮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옆구리 뼈는 동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들 때 남자의 옆구리 뼈를 취해서 만들었다는 것은 동등한 위치에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갈비뼈는 심장에 가장 가까우니까 사랑으로써 하나로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갈3:28에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있어서 위계질서는 다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다 회장이고 다 사장이고 다 간부 사원이고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인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직분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남편과 아내가 수평적인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과 아내라는 직분상의 위계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와 몸의 관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이 말은 인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위의 문제인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와 합쳐서 가정을 만들어 가는데 둘이가 다 지도자가 될 수가 없으니까 남편은 앞에서 끌어주고 아내는 뒤에서 밀어주고 남편은 리더가 되고 아내는 따라가는 사람이 되고 이러한 가정에서의 협동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보고 ‘아 여자는 남자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남자가 여자를 다스려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잘못인 것입니다. 서로의 협동의 관계 속에서 남편은 머리가 되고 아내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서로 싸우는 것 보았습니까? 머리 없는 몸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몸 없는 머리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은 똑같은 하나이지만 그 직분 상 머리는 몸을 돌보고 양육하고 이끌어가고 몸은 머리를 받들고 따라가는 그런 직분이지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서 따로따로 서로 관계 싸움을 하면 큰일 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남편은 가정에 있어서의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머리는 몸을 이끌고 가며 몸의 안전과 평안을 위한 전체적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남편의 책임은 굉장합니다. 한 가정의 머리가 되어서 온 가정에 평안과 안정을 위해서 전적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은 머리의 인도와 결정에 절대 복종하지 몸이 머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중풍 병에 걸렸거나 파킨슨병에 걸린 사람인 것입니다. 중풍에 걸린 사람은 머리가 아무리 바로 걸으라고 해도 바로 걷지 못하고 덜덜덜 떨지 않습니까? 파킨슨이 걸려도 몸이 떨고 머리가 시키는 데로 안하는 것입니다. 병들지 않는 가정은 남편이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아내는 받들고 따라가는 가정이 건전한 가정인 것입니다. 병든 가정은 남편대로 아내대로 서로 따로따로 놀고 서로 시기, 분노, 질투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자를 늙게 하는 네 가지 사건이 있는데 불안과 노여움, 자식, 악처가 남자를 늙게 하는데 그 중에 제일 늙게 하는 것이 악처다.'고 말했습니다. 탈무드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순종하는 아내를 얻은 남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몸인 아내는 머리인 남편의 인도와 결정에 절대 복종하고 나아가면 그 부부는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부부 관계인 것입니다. 성경적인 부부관계란 사랑과 복종의 관계지 폭력의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따라오게 되어 있지요. 머리가 몸을 사랑해서 몸을 잘 돌보면 몸은 머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잘 돌보아주면 아내는 남편을 따라가고 복종하고 잘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복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엡5:25에 있는 말씀대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우리가 왜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칩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사랑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절대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가정에도 남편이 아내를 절대적인 사랑으로 사랑하고 돌보면 아내는 남편을 순종하고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복종의 관계지 폭력과 복종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H.A.텐은 부부관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결혼 후 첫 1주일 동안은 서로 관찰하고, 그 다음 3개월은 사랑한다. 그 다음 3년은 서로 싸우고, 그 뒤 30년은 용서하면서 산다."고 말한 것입니다.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여섯 가지인데, 그 중 한 가지는 사랑이고, 나머지 다섯은 신뢰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을 하고 그 다음에는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폭력으로써 군주로써 남편이 군림하고 아내를 노예로써 부리는 그런 관계는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사랑과 복종, 사랑과 섬김의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미워하면 반역을 가져오지요. 남편이 아내를 미워하는데 남편을 사랑할리가 없으며 남편을 따라갈 리도 없는 것입니다. 반역을 하지요. 사랑과 복종은 서로 함수관계가 되어 있어서 사랑 많이 하면 많이 복종하고 미워하면 반역하게 되고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잠10:12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잠 17:1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해 한국 여성 상담 센터가 서울시내 기혼남녀 8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정폭력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 세 명중 한 명은 부부갈등 시에 아내에게 폭력을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폭력을 사용한 남성 중 80%는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아내를 세차게 밀치고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폭력을 사용했으며, 20%는 심각한 폭력 수준으로 발로 차거나 주먹을 때리거나 물건으로 때리고 심지어는 칼이나 흉기로 위협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5년 한국 가정법률 상담소에서는 이혼 상담을 하는 이유 중 폭력으로 인한 것이 전체의 1/3을 넘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부부관계라는 동등한 인권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실 때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신 것은 부부가 수평적 관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부부관계는 결코 폭력으로 이끌어 가서는 안 됩니다. 오직 남편과 아내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서 한 수레라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 관계지 폭력관계는 결코 아닌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한 길
우리가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서 늘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를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생판 모르는 남남끼리 모여서 한 지붕 밑에서 한 솥에 밥을 먹고 함께 사는데 서로 마음이 꼭 일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육이 다르고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더구나 외국인끼리 결혼한 사람은 문화조차 다르고 언어조차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하려고 하지 말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요. 이야기를 하다하다 나중에는 할말이 없어 뒤로 넘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하라고요. 아무리 유능한 남편이라도 자기가 유능하니까 “너는 나를 따르라.” 내 결정한 것을 그대로 한다면 유능하지 못한 아내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에 갈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유능한 남편이라도 유능하지 못한 아내하고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나중에는 이야기 거리가 사라질 때까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하고 다른 것은 일본사람은 무엇을 할 때 모이면 굉장히 서로 대화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할 이야기가 없어질 정도로 대화를 많이 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인데 우리 한국 사람은 대게 모이면 지도자가 유능한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내가 결정했으니 따라 오시오.” 그리고 결정을 하고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갈등이 많고 알력이 많은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롬12:16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고 말했었으며
잠15:4에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굉장히 우리 삶에 중요한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리고 정 이해가 안 되면 그 다음 그 일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해가 되어서 서로 손을 붙잡고 갈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전에 텔레비 에서 보니까 한 동리에서 부부간에 발 묶어서 뛰는 경기를 한다고 발표를 하고 난 다음에 그 경기에 나가려고 한 노부부가 한 달 전에 벌써 서로 발을 묶고 자요. 밤에도 발을 묶고 자고,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가면 밤중이라도 끌려가야 돼요. 화장실에. 그리고 밥 먹을 때도 발을 묶고 먹고, 부엌에도 발을 묶고 따라가고 한달을 발을 묶고 둘이가 왔다 갔다 하니까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 나가서 운동시합에 발 묶고 뛰는데 당연히 1등을 하고 만 것입니다. 한 달동안 발 묶고 살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둘이가 서로 보조를 맞추고 훈련이 되니까 유능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해와 동정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서로 계속해서 이해해서 마음이 하나로 묶어서 가면 나중에 어떤 일이라도 다툼이 없이 쉽게 일을 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심정에 동정을 하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가장 사람의 마음속에 상처를 주는 것은 무관심인 것입니다. “너가 밥을 먹든지 안 먹든지 잠을 자든지 안자든지 아프든지 건강하든지 행복하든지 안하든지 내가 알게 뭐냐. 그냥 기숙사에서 함께 사는 것이지 나는 관심 없다.” 이런 무관심을 가지면 그것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섬세한 감정에 동정을 하고 관심을 깊이 가지고 감동을 시키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감동이 있어야 사는 것입니다. 즐거운 때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고뇌하고 좋을 때는 함께 기뻐해주는 이러한 일이 있어야 인생이 서로 감동을 하고 살수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웃을 방문할 때 손에 조그마한 과자나 꽃이라도 한포기 가져갑니까? 심방을 그냥 가면 감동을 하지 않지만 과자를 갖다 준다든지 꽃을 갖다 주면 감동을 합니다. 더구나 서양 사람들은 집을 방문할 때 반드시 꼭 한포기를 사갑니다. 꽃을 사가면 그 집안 식구가 그 꽃을 받아서 냄새를 맡고 고맙다고 꽃이 이쁘다고 굉장히 칭찬을 합니다. 그 꽃 한 포기를 가지고서 방문하는 사람도 마음에 감동이 되고 방문을 받는 사람도 감동이 되고 그래서 서로 동정을 하게 되고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관심은 상처를 가져옵니다. 많은 위로의 칭찬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칭찬,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조그만 일을 해도 그것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조그만 일을 하는 것을 보고도 기뻐하고 손바닥을 쳐주고 하면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고 말을 하게 되면 자기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서 고함을 칩니다. 부모들이 이야기하고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물건을 잡아 던지고 고함을 치고 야단법석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관심을 끌어달라는 것입니다. 벌써 어린 아이 때부터 어린 아이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끌어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른들도 한가지입니다. 관심을 끌어주기를 원해요. 가정에서 아내는 남편이 아내의 수고와 헌신에 관심을 끌어 주기를 원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수고하고 애쓰며 가정을 돌보는데 아내가 이해를 하고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원하고 감사하고 칭찬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조그마한 일에 감사하고 칭찬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굉장히 우리의 삶에 활력소가 되고 기름을 쳐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 3:8에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라
서로 마음에 감격을 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잠12:18에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막 상대방을 칼로 찌르듯이 비평하고 평론해서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말로써 치료하는 약 같은 입술도 혀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막말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만나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그 자리에서 지적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그대로 말하고 옷을 벗기고 싹 할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가는 곳마다 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어서 치료하는 양약 같은 혀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심정에 동정을 해야 올바른 결혼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심정에 동정을 하고 아내에게 감동을 주십시오. 아내도 남편의 마음에 동정하고 감동을 주고 칭찬하고 감사하는 일을 하십시오. 왜 사람들은 칭찬을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아이도 칭찬하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말합니다. 하물며 사람은 칭찬하면 얼마나 격려가 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칭찬에 인색한 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넘치도록 칭찬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때 가정이 원만하고 기름진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간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하고 참는 것이 좋습니다. 조건 붙이지 마십시오. 부부간에 싸워서 이기면 손해 봅니다. 이 세상에 이겨서 손해 보는 것은 부부싸움인 것입니다. 남편하고 아내하고 싸우면 그날부터 남편은 찬밥 먹을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의 무관심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남편하고 싸우면 남편이 이제는 집에 안돌아오고 바깥으로 돌기 시작하면 굉장히 그 결과가 고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면 손해 보는 게임이 부부간의 싸움인 것입니다. 부부간에 싸워서 져도 본전입니다. 져서 손해나갈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겨도 손해나고 져도 본전인 것이므로 부부간에 무조건하고 참는 것이 좋습니다.
잠12:16에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19:11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부부간에는 더구나 더 허물을 들춰내지 마십시오. 사람이 온전한 사람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은 날도 밤이 있고 낮이 있는 것처럼 인간이 온전히 잘하는 것만 있고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남편도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고 부인도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데 절대로 자꾸 단점을 들춰내어서 상처를 입히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닭을 키워보면 닭은 몸에 조그만 하더라도 무슨 두드러기가 나든지 몸에 상처를 입으면 다른 닭들이 와서 자꾸 쪼아가지고서 나중에 창자가 나오도록 쪼아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상대의 상처를 자꾸 끄집어내어서 상처를 입히고 결점을 지적하면 안 됩니다. 모른체하고 넘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굉장히 가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자꾸 허물을 들춰내면 안돼요. 더구나 부인들은 기억력이 굉장히 좋습니다. 남편들은 기억력이 나빠서 옛날 것은 잊어 버렸는데 부인들은 기억력이 좋아서 싸움이 벌어지면 10년 전에 일어난 일도 다 이야기 합니다. “당신 10년 전에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했잖아요.” 그것이 남편의 마음속에 분노를 터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잊어 버려야 돼요.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남의 약점을 들춰내지 말고 언제나 싸움을 하더라도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건드려 놓으면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싸움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만 이야기하지 친정집 이야기까지 다 끄집어내지 말고 시가집 식구 이야기 까기 다 끄집어내고 그렇게 해서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자존심을 상하는 과거를 들춰내지 말고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가정을 영광스럽게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남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남편도 아내의 소유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살라고 보낸 하나님의 사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과도한 간섭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잔소리 많은 남편하고 살려고 하는 아내가 있습니까? 바가지 계속 긁는 아내하고 살고 싶은 남편이 있는 것입니까? 서로 과도하게 간섭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카터 대통령의 아내 로자린은 남편하고 종종 싸웠습니다. 카터 대통령하고 부인이 왜 싸웠냐면 카터 대통령은 시간을 엄하게 지켜요. 약속시간 1분전에는 반드시 가있어야 돼요. 그런데 그 아내 로자린은 느릿느릿 해가지고서 몸치장 한다 얼굴 화장한다 하고 언제나 모임에 늦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 로자린 때문에 모임에 늦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편이 모임만 있으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벌써 한 시간 전에 부인보고 “빨리 빨리 빨리.” 부인이 “예예”하면서 언제나 늦습니다. 그래서 그 때문에 모임에 갔다 와서 대판 싸우곤 했습니다. 그런데 카터 대통령이 부인을 아무리 재촉을 해보아도 태어날 때부터 느릿느릿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서 고쳐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해 부인의 생일이 되었는데 생일카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안 되니 그냥 있는 그 모습대로 수용을 하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여보, 오늘까지 당신을 많이 괴롭혔는데 지금부터 당신은 시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자유롭게 사십시오.” 이 카드를 받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당신이 나에게 준 가장 최고의 생일 선물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시간 지키는 것에 자유롭게 되므로 왜 그렇게 좋아했냐면 이제 싸움을 안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늦게늦게 일어나도 남편이 아무 말도 안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예 그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성격이 있고 생활습관이 있고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일일이 간섭해서 나처럼 되라고 하면 안 되지요. 자꾸 나처럼 되라.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말하고 나처럼 행동하라고 하면은 안 되는 것입니다. 너무 과도한 간섭을 하면 안돼요. 살림을 부인에게 맡겨 놓았으면 남편이 부인 살림을 그저 알든 모르듯 지나가야지 일일이 매일같이 부인 가계부 조사 다하고 부엌에 들어가서 일일이 찬장 다 열어보고 어떻게 사느냐 전부 간섭을 하면 신경이 써서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부인은 매일같이 남편 포켓을 뒤집니다. 포켓에 무엇이 있느냐. 다 뒤지고 남편 옷 다 냄새 맡아보고 그렇게 신경을 쓰면 못살아 가는 것입니다. 서로서로의 생활에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에 서로서로의 생활에 자유를 주고 너무 간섭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과도한 사생활을 침해하면 부부싸움이 끝이 없습니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의 존 카터 석좌교수는 부부문제 치료관련의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그가 35년 동안 3천 쌍을 분석한 결과 이혼에 이르는 지름길 4가지는 서로 비난하고 서로 변명하고 경멸하고 담쌓기가 이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부부문제의 처방은 다음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부싸움은 부드럽게 시작하라. 아내가 부드러운 말로 꺼내면 남편의 감정이 이완되고 사고 판단을 하는 두뇌 전두엽이 활성화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싸움을 할 때 고함을 치고 앙탈을 부리고 싸움을 하지 말고 부드럽게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보~ 왜 그래~” “당신은 왜 그래~” 서로 톤을 낮추고 고함을 치지 않으면 부부싸움이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해력을 가지고 살아야지 감정을 내어서 흥분해서 고함을 치면 이해력이 마비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전혀 이해하지 않고 그냥 이기려고만 고함고함을 치는 것입니다. 톤을 낮추면 이해력을 가지고서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 하면서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리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고함 고함치고 싸움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시비비를 너무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네가 옳다. 내가 옳다. 그래서 기어코 이기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이기면 손해 보는 것입니다. 자꾸 내가 옳다. 네가 나쁘다고 자꾸 증명을 하면 저쪽에서 점점 자기 방어를 하기 때문에 그냥 싸움이 났으면 그 문제에 대해서 한바탕 이야기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고 그대로 덮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표시를 자주하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3분씩 세 번 만 감사해도 행복지수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만요. 부인이 남편보고 하루 세 번 만 “여보 감사해요. 정말 고마워요.” 또 남편이 아내보고 세 번 만 감사하다고 하면 그 가정의 행복지수가 올라가고 이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것부터 말하라. 안정된 부부는 긍정적인 행동과 부정적인 행동의 비율이 5대 1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말하고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것은 어느 곳에나 있어요. 우리가 밖에 나가면 빌딩 밑에도 그늘이 있고 나무 밑에도 그늘이 있고 다리 밑에도 그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세계가 그늘 판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햇빛을 찾아보면 광장에도 햇빛이 비취고, 길거리도 햇빛이 비취고, 정원에도 햇빛이 비취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 같이 살면서 부정적인 것을 보면 얼마든지 비난하고 공격하고 흠을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을 보면 또 아름답고 행복한 것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것을 다섯 번 말하고 부정적인 것을 한번 말하면 5대 1의 비율로 말하면 가정이 원만하게 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카터 박사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서로에 대한 친밀함과 신뢰감의 기초가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돌봐 주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남편 퇴근할 때 문에 따라 나와서 옷 좀 털어주고 구두 신으려고 할 때 구두주걱 주어 주는 것 그것 별수고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냐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부인이 바삐 나갈 때 남편이 핸드백 잊어 버렸으면 핸드백 들어다 주고 종종 핸드폰 두고 나가면 핸드폰 갖다 주고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 이것은 나에게 대해서 배려를 하고 있구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주고 감사하고 감격을 가지게 되면 부부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행복을 위하여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에 내 행복만 위하고 상대의 행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상대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기쁘게 살고 성공하고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가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희생을 하고 도와주고 아내도 남편을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존 허스톤 목사님 전에 우리와 같이 30년을 선교사로 한국에서 일한 그분과 해외여행을 많이 했는데 언제나 놀라운 것은 꼭 가방을 열면 가방에 부인 편지가 있어요. 내 생각에는 늘 사는데 무슨 편지를 하느냐. 꼭 남편이 해외여행 가면 가방을 열면 제일먼저 눈에 부인이 평안히 갔다 오라는 행복한 편지를 해놓았어요. 그리고 옷을 입으면 포켓에 손을 넣으면 옷 포켓에 부인이 적은 쪽지가 반드시 들어 있어요. 당신 어떻게 하라는 쪽지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늘 웃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배려가 서로를 행복하기 위해서 도와주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트루먼 대통령 당시 요직을 맡고 있던 뉴볼트 모리스가 공권력을 남용한 혐의로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의회에 출석한 그는 자신이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는 것에 매우 화가 나서 점점 언성을 높이다가 손수건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손수건을 안나오고 종이 쪽지 하나가 딸려 나왔습니다. 그는 그 쪽지를 읽다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낄낄낄 웃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국회의원이 “무엇을 보고 웃느냐고 국회에 나와서.” 그러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면 언성을 높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옷을 벗어 던지는 습관이 있어요. 이것을 아는 아내가 오늘 국회에 나오는 나에게 포켓에 쪽지를 써놓았습니다. ‘여보, 아무데나 함부로 옷을 벗어 던지고 고함을 치지 마세요.’ 이 주머니에 쪽지를 넣어 놓았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보고 내가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온 국회의원들이 다 웃고 난 다음에 좋은 아내 덕분에 그만 청문회에서 용서를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도와주는 것 적은 결점을 보완해주고 도와주므로 말미암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결혼이라는 것은 다른 개성과 성장과정과 교육과 인생경험이 다른 남녀가 부부가 되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느 분이 책을 짓기를 화성과 수성에서 온 사람이 지구에서 함께 산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처럼 성장과정도 다르고 사고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고 취미도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모여 살자면 자기 마음대로 고집대로 살아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고 언제나 상대를 이해하려고 끝없이 노력을 하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고 그 다음에 상대를 감정에 동정하고 언제나 감격하고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 다음 어떠한 일이 있든지 사랑하기로 결심을 하고 좋은 점만 사랑하지 말고 못된 점, 결점까지도 사랑하려고 결심을 하고 그리고는 참는 것입니다. 한번도 참고, 두 번도 참고, 세 번도 참고, 네 번도 참고, 백번도 참고 계속해서 참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인생이란 로맨틱한 삶만 사는 것이 가정부부 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부부의 생활이란 로맨틱한 생활은 얼마 없고 그 다음에는 긴 삶을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참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오래 참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조용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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