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하는 그리스도인 (엡 6:1-3)
- 설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천관계로 계획에 따라 야외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교회에서 어버이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다 함께 “어버이 은혜” 노래를 같이 불러 봅시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버이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두말할 것 없지만 새나 동물이나 곤충이나 어류 등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연어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의 먹이가 되기 위해 알을 낳은 후 죽습니다.
문어도 보면 알을 낳고는 얼마 있지 않아 죽습니다.
부리가 매우 발달한 페리칸이란 새는 큰 부리 주머니를 이용하여 다른 새들이 공격해 올 때면 새끼들을 그 부리주머니에 넣어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되어 먹이 구하기가 어려울 때면, 페리칸은 최후의 수단으로 그 커다랗고 긴 부리를 이용하여 앞가슴의 털을 마구 뜯어내고, 날카로운 부리 끝으로 살점을 집어내어 새끼들에게 먹입니다. 떨어지는 살점에는 피가 낭자하고 그 고통이야말로 다 형용할 수 없지만 페리칸은 생명이 다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새끼를 위하여 사랑을 쏟아놓습니다.
물고기 중에 작은 민물고기가 있는데 이 물고기는 엄마 고기가 알을 낳은 후 어디론가 가버리면 아빠 고기는 혼자 남아서 알을 돌봅니다.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먹지도 않고 잠자지도 않고 열심히 알들을 보호합니다.
이윽고 알들이 부화합니다. 새끼들이 제 갈 길로 가고 나면 홀로 남은 아빠 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는다고 합니다.
새끼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여기에 반하여 요즘은 부모를 버리는 자식, 자식을 아예 낳으려고 하지 않는 이기적인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 부모를 자기애기 보는 사람으로 이용하는 젊은 자식들도 많습니다. 정말 부모님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자기‘새끼’ 봐주는 댓가로 돌봐드리는 계산적인 자식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허리가 아프고, 관절이 아프고, 쑤시고 해도 덩치 큰 손자 손녀들을 내리사랑으로 돌보시는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에 어버이의 사랑을 작은 카네이션 꽃에 담았습니다. 카네이션의 꽃말이 모정, 감사. . 그런 뜻이랍니다.
어버이날의 유래는 지금부터 약 100여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안나 자이비스”란 소녀가 어머니와 단란하게 살았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느날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답니다. 소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엄숙히 치르고 그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카네이션 꽃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어머니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소녀는 어느 모임에 참석하면서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나갔는데 보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소녀는 대답하기를 “어머님이 그리워 어머니 산소에 있는 카네이션과 똑같은 꽃을 달고 나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안나는 그후 어머니를 잘 모시자는 운동을 벌여 1904년에 시애틀에서 어머니날 행사가 처음 개최되었고 이 날에는 어머님이 살아계신 분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은 자기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달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어르신 어버이 여러분 감사합니다.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우리교회는 70이상 되신 어른들께서 25분이 계십니다. 우리교회에서 조그마한 선물 준비했습니다. 편안히 주무시라고 건강 숙면 베개를 준비했습니다.
이 어른들의 얼굴을 보면 자식들을 위해서 많은 사랑과 희생을 베푸신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어버이 날, 어버이 주일이지만, 이 날을 맞이하면 맞이 할 수록 가슴이 저리며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 없는 마음은 왜 그럴까요?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며 효도해야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건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은 현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효도사상, 경로사상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오래 오래 간직해야 할 유산입니다.
그러나 이 사상이 사라져 가고 있는 위기의 때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들 때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새 과일이나 별식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가 드신 후에 자식이 먹는 것이 생활습관이었습니다. 외출 후에 돌아오면 마을노인을 일일이 찾아 인사를 드렸습니다.
집안에 잔치가 있으면 마을노인을 모셔다가 항상 상석에 앉혔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노인을 이처럼 우대한 나라가 세상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효의 나라입니다.
미국 선교사·언어학자·사학자요, 고종황제의 밀사 역할까지 했던 미국인 헐버트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전통적인 경로사상이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는 조선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미국공사로 한국에 와서 근무한 적이 있던 ‘샌즈’라는 사람은 회고록에서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서 태어나고 싶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는 효의 나라가 불효의 나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요즈음에는 특별히 자식들이 서로 모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이 갈데가 없어 외롭게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APT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2004년 4월 13일 새벽 6시 반쯤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의 콘도 5층에서 서울 잠실동에 사는 71살 김 모씨가 떨어져 숨졌습니다.
제주도 효도관광을 가서 노인을 버리고 외국으로 훌쩍 이민을 떠나는 자식도 있으며, 병도 없는데 강제로 입원시켜 격리 수용하는 최신판 고려장도 나왔습니다.
효도사상이나 경로사상은 전통이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에 효가 없어서 안 믿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효’사상을 얼마나 강조하는 지 모릅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모든 일에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에베소서 6장 1절-3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 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지만 명령이라고 해서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당연한 일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의 복이 따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누가 복받을려고 부모를 섬기는 사람은 없겠습니다마는 . . .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영상 ‘며느리’(2004년 YTN 뉴스 동영상)
1. 자녀가 부모를 향하여 할 일은 순종과 공경입니다.
‘순종’에는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1)노예적 순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가 무서워서 억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2)계산적 순종이 있습니다. 이 순종은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있다는 것 때문에 하는 순종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순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3)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이 있습니다.
4)그리고 절대적 순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 절대적 순종입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은 좋은 일에만 순종하지 말고, 어처구니없는 일에도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순종은 복이 없습니다.
순종이라는 말의 뜻이 본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잔소리 같은 부모의 말을 진지한 마음으로 경청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서 부모님의 사랑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순종입니다.
성경은 또한 부모에게 ‘공경’하라고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공경’이라는 말은 ‘굉장한 가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부드럽고도 친밀한 반응’을 뜻하는 말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순종이 외적행동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공경은 내적태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신 27: 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잠 30: 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순종과 공경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니다 말 정도예요. 학문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고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히는 거예요.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고……” 이런 모욕을 주고 또,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해놓고 구두를 벗어서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것일지 모른다고 빈정거렸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넘어로 배운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직업,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의 삶, 어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존경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존경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함게 하십니다.
2. 어떻게 효를 행하여야 할까요?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나이 들면 어린이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노인이 되면 아주 작은 일에도 섭섭하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기력이 쇠하여지고 경제력이 없어져서 자식에게 의지하여 살게 되면 마음이 쓸쓸하고 서러움까지도 느낄 수 있답니다. 좋은 음식 보다 좋은 옷 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최상의 효도입니다.
잠17:1절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둘째, 살아생전에 효도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만 잘 차리면 효도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효도입니까? 살아계실 때에는 부모 속 다 썩이고 . . .
조선시대 정철 선생께서 지으신 시조 다 아시죠?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모든 세상의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지 못함에 대해 후회를 남깁니다.
어느 믿는 며느리가 믿지 않는 집에 시집와서 예수 믿는다고 시아버지로부터 몹시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산제사를 드리라는 성경말씀이 문득 생각나서 13년동안 매달 초하루에 진수성찬을 차려서 시아버지에게 산제사를 드렸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 아무리 잘 차려 드려도 못 잡수실 테니까 생전에 잘 드세요”하면서 . . . . 그랬더니 그 정성에 시아버지가 감동되어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참된 효도입니다.
셋째, 자녀들이 형제간에 서로 우애하는 것
부모는 형제간의 사랑과 화목이 있을 때에 가장 마음에 안심이 됩니다.
잠언 15장 17절에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황소를 잡아먹을지라도 다툼이 있다면 채소를 먹으며 화목 하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입
니다. 사람의 행복이 고기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옷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인간관계, 폭넓은 사귐이 그 인생과 가문과 그 사회의 축복인 것입니다.
형제우애가 중요합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밤. 가족이 잠들 무렵, 한 아들이 랍비에게 와 “아버지. 다른 형제들은 잠만 자는데 저는 자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라며 은근히 다른 형제들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랍비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얘야, 그래서는 안 된다. 다른 형제의 흉을 보는 것보다 다른 형제와 같이 자는 편이 훨씬 나은 거란다”
참으로 지혜로운 권면입니다. 남을 헤아리기 보다는 덮어주는 형제 사랑이 가정에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부모의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뜻을 잘 이해 하고 따르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1)항상 기뻐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부모님의 뜻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기뻐하면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우울하게 사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근심 중에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2)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부모님의 뜻입니다.
자식은 부모님께 모든 일에 대한 보고를 잘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부모님께 아뢰고 행하는 것이 참된 효도입니다.
3)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부모님의 뜻입니다.
자식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엄마를 닮아서 이렇게 생겼다는 둥 저렇게 생겼다는 둥” 하는 것은 안됩니다.
부모님의 모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자식이 효자입니다.
참된 효도는 부모님이 자식에게 요구하는 뜻대로 사는 데 있습니다.
진실한 부모님의 뜻은 물론 좋은 대학, 사회적인 성공, 큰 집 . . 이런 것들을 원합니다마는 부모의 깊은 마음에는 자녀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얼마전에 어떤 부모님이 아침에 잠을 자고 있던 31세 되는 아들에게 밥을 안 먹고 늦도록 자면 건강에 해로우니 일어나서 밥을먹으라고 깨우니까 이 아들이 일어나 격분하여 다락방에 있는 흉기를 가지고 어머니를 내리치고 아버지를 때려서 중상을 입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 사회에는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모는 가정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입니다.
부모님의 생각, 부모님의 뜻을 헤아리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효도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큰 축복을 얻습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성경은 복의 원리에 대해서 보약을 먹어야 잘되고 장수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효자가 되어야 잘되고 건강하고, 장수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면 자동으로 출세하고, 자동으로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비슷한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성공적 삶과 장수의 가능성이 크다는 약속입니다.
자자손손 복을 받는 여러분들의 인생이 되시고 복된 가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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