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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새롭게(잠언 3 : 1~10)
우리는 지금 신년 벽두에 서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앞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제한되어 있고, 가야할 길은 멀고 거칠고 또한 암담하기만 합니다. 흔히 좁고 험한 길이라는 말을 하지만 차라리 그 좁고 험한 길이라도 있다면 고생이 되더라도 가야할 방향은 주어지는 것이니 조금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좁고 험한 길도 보이지 않으므로 방향 감각조차 없습니다.
길이 좁다거나 넓다거나 혹은 험하다 편하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전혀 보이지 않는 망막한 길을 가야하고, 또한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강을 소원합니다.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귀중히 여겨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축복을 받기에는 우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위하여 남북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역사상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이 남북 전쟁은 인간의 평등을 위한 거룩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쟁이 7년 동안 계속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생기게 되자 참모진들이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한 참모가 링컨 대통령을 향하여 "각하 하나님이 우리편에 서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남북이 모두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느 편에 서 계시느냐에 따라서 승리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대답하기를 "나는 하나님이 내 편에 서 계시는 가에 대한 염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나님 편에 서 있나 하는 것을 염려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에 서 계시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하나님 편에 서서 금년 한 해도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해로 맞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은 "하나님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도한다는 말의 뜻을 원문대로 살펴보면 길을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도 길을 내시고 바다에도 길을 내시고 길 없는 곳에도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요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길이 있다 없다를 염려하기 전에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도자가 되십니다. 그는 우리의 앞에서 가시며 또 함께 가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의지하는 자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의 인도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편 32 : 8에서는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16:13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하였으며, 시편 48:14에서는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맡으신 분으로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길을 인도하시며 누구의 보장이 되어 주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로 하나님의 명철을 의지하는 자를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길을 버리고 자기의 명철을 버려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명철을 의지하고 내 지혜로 살았던 지난 날의 일이 실패이었음을 인정하고 내 길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으면 성공의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나의 능력 나의 지혜가 초라하고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을 인정해야 되겠습니다.
야고보 4장의 말씀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젊은 청년이 간장이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교인이 아니어서 할 말이 별로 없었기에 인사말로 병원에 며칠 입원해 계시면서 무엇을 생각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의 대답이 오늘날까지의 자기의 일생동안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교인이 아닌데도 목사님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의 고백은 살아보겠다고 많은 노력을 했고 뭔가 좀 된 줄 알았는데 인간이 이렇게 초라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과학과 문명을 지나치게 앞세우다가 지금은 우주의 질서를 파괴시켜 놓고 자연으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세계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명철을 더 이상 의지해서는 안될 때가 된 것입니다. 나를 의지하여 교만하지 말고, 또 나를 의지하여 절망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만도 절망도 불 신앙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적인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제1의 조건입니다.
둘째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기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도성이 무너져 불타버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보잘것없는 인간들이 성공과 실패를 논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계속 자기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할 때만이 무엇인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주의 뜻이면 내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리라고 고백하였고, 사도 바울은 주의 뜻이면 가고 주의 뜻이면 만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활 계획 속에서도 반드시 "주의 뜻이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될 줄 압니다. 모든 것을 주의 뜻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의 긍휼과 그의 사랑 가운데 있었던 나 자신이었고, 또 미래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다면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며, 성공을 했다면 하나님이 그만큼 많은 은혜를 나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오늘의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은혜, 은총 속에 있는 나 자신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도 그의 넓은 긍휼과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의사나 도덕적인 어떤 선행에 의하여 나의 미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크신 긍휼 속에 내가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의 용서와 긍휼이 아니고는 살아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말에서나 혹은 행위에서 하나님을 인정해야 되겠습니다.
민수기 14:28에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되겠고, 우리의 중심과 생각 속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며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며 또한 용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건강할 때도 병들 때도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하나님의 약속한 축복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이 모든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완전히 인정하는 자와 하나님께서는 같이 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를 의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뢰한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자동차는 교통 순경과 신호등의 지시를 따라서 움직입니다. 만일 운전 기사가 교통 순경이나 신호등을 믿지 않는다면 거리의 질서는 파괴되고 우리는 항상 불안에 떨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운명을 그 손에 쥐고 주관하십니다. 양이 목자를 따르는 것처럼 우리는 그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어디로 가든지 믿고 즐거워하며 따라가는 것처럼 의심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의지한다는 말은 또한 맡긴다는 말입니다. 맡긴다는 말은 곧 기도를 말합니다. 그의 능력과 그의 지혜와 그의 틀림없는 사랑을 또 한번 확인하고, 지난날에는 나 스스로 계획했지만 이제 뜻을 새롭게 하여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맺음을 하여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혹 다른 일은 쉴지라도 기도는 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 끼니 식사는 걸를지언정 기도는 걸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삼일 저녁 예배 시간에 외국인 한 사람이 들어와서 뒤에 앉더니 메모지에다 무엇을 써서 설교하고 있는 강단으로 올려 보내 주었습니다. 내용은 설교 끝난 후에 자기에게 간증 시간을 잠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끝난 후 앞으로 나오라고 했더니 나와서 하는 첫 마디가 나는 부자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부자인가 했더니 자가용 비행기가 7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고등학교 2학년을 3년 동안 다녔다는 것입니다. 4년째 학교를 갔더니 교장선생님이 3년이나 다녔는데 또 배울 것이 남아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이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소 직공으로부터 시작하여 믿음으로 성실하게 일함으로써 오늘 이렇게 부자가 되었으며, 세계 기독교 실업인회 회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마지막 말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신조로 여기는 성경 구절을 한 절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으니라"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성경 어디에 있는 말씀인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아서 그대로 직역하여 통역을 해 놓고 가만히 생각하니 사무엘상 1:18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한나가 자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축복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 기도를 받은 한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고 했는데 이 말씀이 자기의 신조라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사업을 시작할 때도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한 사흘 동안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고 아멘 하고 난 후부터는 잘 되고 못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공장에 불이 났다고 해도 기도하고 시작한 것이니까 그것이 오히려 잘 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사업을 하고 있어도 근심 걱정으로 잠 못 이루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 버렸기 때문에 자기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업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의 감상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탁받은 모든 것을 맡아서 처리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라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가장 자유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맡긴다는 것은 또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말씀을 따랐다면 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입니다. 언제나 순종한 자는 순종케 한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했을 때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고민이 많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책임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갔기 때문에 그 믿었던 바를 또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모르는 바를 믿고 있습니까? 이제 그 믿는 바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나의 뜻을 완전히 버리고 뜻을 새롭게 하여 그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나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실 때에 마지막 기도가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녁 잠자리에 들 때 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사실 잔다는 것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잘 때마다 생명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고 그리고 한해의 첫 걸음을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어느 날 미국에서 미국의 한 목사님과 함께 차를 타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차를 타자마자 안전 벨트를 매고 머리를 숙여 기도를 하셨습니다. 뭐라고 기도를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차가 사고가 나게 되면 기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1982년이라고 하는 차를 탔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겨 놓고 그리고 이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가 인도하실 것입니다. 암담하다고 염려하지 말고, 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그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의지할 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즙틀에 포도주가 넘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창고가 넘치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나의 길을 버리고 뜻을 새롭게 함으로 새해로 새해 되게 하고 또한 새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해에 저희들에게 더욱 강건한 믿음을 주셔서 지난날 나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던 것을 버리고 이제 뜻을 새롭게 하여 아버지께 모든 것을 위탁하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인정하고 확신하여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여 주셔서 주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뜻을 새롭게(잠언 3 : 1~10)
우리는 지금 신년 벽두에 서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앞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제한되어 있고, 가야할 길은 멀고 거칠고 또한 암담하기만 합니다. 흔히 좁고 험한 길이라는 말을 하지만 차라리 그 좁고 험한 길이라도 있다면 고생이 되더라도 가야할 방향은 주어지는 것이니 조금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좁고 험한 길도 보이지 않으므로 방향 감각조차 없습니다.
길이 좁다거나 넓다거나 혹은 험하다 편하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전혀 보이지 않는 망막한 길을 가야하고, 또한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강을 소원합니다.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귀중히 여겨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축복을 받기에는 우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위하여 남북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역사상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이 남북 전쟁은 인간의 평등을 위한 거룩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쟁이 7년 동안 계속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생기게 되자 참모진들이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한 참모가 링컨 대통령을 향하여 "각하 하나님이 우리편에 서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남북이 모두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느 편에 서 계시느냐에 따라서 승리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대답하기를 "나는 하나님이 내 편에 서 계시는 가에 대한 염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나님 편에 서 있나 하는 것을 염려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에 서 계시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하나님 편에 서서 금년 한 해도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해로 맞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은 "하나님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도한다는 말의 뜻을 원문대로 살펴보면 길을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도 길을 내시고 바다에도 길을 내시고 길 없는 곳에도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요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길이 있다 없다를 염려하기 전에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도자가 되십니다. 그는 우리의 앞에서 가시며 또 함께 가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의지하는 자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의 인도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편 32 : 8에서는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16:13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하였으며, 시편 48:14에서는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맡으신 분으로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길을 인도하시며 누구의 보장이 되어 주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로 하나님의 명철을 의지하는 자를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길을 버리고 자기의 명철을 버려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명철을 의지하고 내 지혜로 살았던 지난 날의 일이 실패이었음을 인정하고 내 길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으면 성공의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나의 능력 나의 지혜가 초라하고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을 인정해야 되겠습니다.
야고보 4장의 말씀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젊은 청년이 간장이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교인이 아니어서 할 말이 별로 없었기에 인사말로 병원에 며칠 입원해 계시면서 무엇을 생각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의 대답이 오늘날까지의 자기의 일생동안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교인이 아닌데도 목사님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의 고백은 살아보겠다고 많은 노력을 했고 뭔가 좀 된 줄 알았는데 인간이 이렇게 초라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과학과 문명을 지나치게 앞세우다가 지금은 우주의 질서를 파괴시켜 놓고 자연으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세계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명철을 더 이상 의지해서는 안될 때가 된 것입니다. 나를 의지하여 교만하지 말고, 또 나를 의지하여 절망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만도 절망도 불 신앙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적인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제1의 조건입니다.
둘째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기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도성이 무너져 불타버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보잘것없는 인간들이 성공과 실패를 논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계속 자기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할 때만이 무엇인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주의 뜻이면 내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리라고 고백하였고, 사도 바울은 주의 뜻이면 가고 주의 뜻이면 만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활 계획 속에서도 반드시 "주의 뜻이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될 줄 압니다. 모든 것을 주의 뜻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의 긍휼과 그의 사랑 가운데 있었던 나 자신이었고, 또 미래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다면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며, 성공을 했다면 하나님이 그만큼 많은 은혜를 나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오늘의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은혜, 은총 속에 있는 나 자신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도 그의 넓은 긍휼과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의사나 도덕적인 어떤 선행에 의하여 나의 미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크신 긍휼 속에 내가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의 용서와 긍휼이 아니고는 살아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말에서나 혹은 행위에서 하나님을 인정해야 되겠습니다.
민수기 14:28에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되겠고, 우리의 중심과 생각 속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며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며 또한 용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건강할 때도 병들 때도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하나님의 약속한 축복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이 모든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완전히 인정하는 자와 하나님께서는 같이 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를 의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뢰한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자동차는 교통 순경과 신호등의 지시를 따라서 움직입니다. 만일 운전 기사가 교통 순경이나 신호등을 믿지 않는다면 거리의 질서는 파괴되고 우리는 항상 불안에 떨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운명을 그 손에 쥐고 주관하십니다. 양이 목자를 따르는 것처럼 우리는 그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어디로 가든지 믿고 즐거워하며 따라가는 것처럼 의심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의지한다는 말은 또한 맡긴다는 말입니다. 맡긴다는 말은 곧 기도를 말합니다. 그의 능력과 그의 지혜와 그의 틀림없는 사랑을 또 한번 확인하고, 지난날에는 나 스스로 계획했지만 이제 뜻을 새롭게 하여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맺음을 하여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혹 다른 일은 쉴지라도 기도는 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 끼니 식사는 걸를지언정 기도는 걸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삼일 저녁 예배 시간에 외국인 한 사람이 들어와서 뒤에 앉더니 메모지에다 무엇을 써서 설교하고 있는 강단으로 올려 보내 주었습니다. 내용은 설교 끝난 후에 자기에게 간증 시간을 잠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끝난 후 앞으로 나오라고 했더니 나와서 하는 첫 마디가 나는 부자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부자인가 했더니 자가용 비행기가 7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고등학교 2학년을 3년 동안 다녔다는 것입니다. 4년째 학교를 갔더니 교장선생님이 3년이나 다녔는데 또 배울 것이 남아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이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소 직공으로부터 시작하여 믿음으로 성실하게 일함으로써 오늘 이렇게 부자가 되었으며, 세계 기독교 실업인회 회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마지막 말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신조로 여기는 성경 구절을 한 절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으니라"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성경 어디에 있는 말씀인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아서 그대로 직역하여 통역을 해 놓고 가만히 생각하니 사무엘상 1:18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한나가 자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축복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 기도를 받은 한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고 했는데 이 말씀이 자기의 신조라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사업을 시작할 때도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한 사흘 동안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고 아멘 하고 난 후부터는 잘 되고 못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공장에 불이 났다고 해도 기도하고 시작한 것이니까 그것이 오히려 잘 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사업을 하고 있어도 근심 걱정으로 잠 못 이루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 버렸기 때문에 자기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업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의 감상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탁받은 모든 것을 맡아서 처리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라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가장 자유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맡긴다는 것은 또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말씀을 따랐다면 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입니다. 언제나 순종한 자는 순종케 한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했을 때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고민이 많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책임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갔기 때문에 그 믿었던 바를 또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모르는 바를 믿고 있습니까? 이제 그 믿는 바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나의 뜻을 완전히 버리고 뜻을 새롭게 하여 그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나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실 때에 마지막 기도가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녁 잠자리에 들 때 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사실 잔다는 것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잘 때마다 생명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고 그리고 한해의 첫 걸음을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어느 날 미국에서 미국의 한 목사님과 함께 차를 타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차를 타자마자 안전 벨트를 매고 머리를 숙여 기도를 하셨습니다. 뭐라고 기도를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차가 사고가 나게 되면 기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1982년이라고 하는 차를 탔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겨 놓고 그리고 이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가 인도하실 것입니다. 암담하다고 염려하지 말고, 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그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의지할 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즙틀에 포도주가 넘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창고가 넘치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나의 길을 버리고 뜻을 새롭게 함으로 새해로 새해 되게 하고 또한 새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해에 저희들에게 더욱 강건한 믿음을 주셔서 지난날 나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던 것을 버리고 이제 뜻을 새롭게 하여 아버지께 모든 것을 위탁하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인정하고 확신하여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여 주셔서 주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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