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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다. (신6:4-9)

by 【고동엽】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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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다. (신6:4-9)


오늘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것입니다.
한 집안이 행복하게 살려고 하면 그 집안에 3가지 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옛사람은 말했습니다. 첫째 집안에 일하는 소리, 둘째는 집안에서 책 읽는 소리, 세 번째로는 어린아이의 웃는 소리.
그런데 한국의 농촌의 어려움을 대표하는 말 중에 하나가, ‘농촌에서 어린아이 울음소리 듣기가 어렵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것은 꼭 농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출산율 저하가 심상치 않습니다. 프랑스. 영국. 스웨덴보다도 낮은 수준이 됐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0년 즈음에 인구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된다고 합니다.
우선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아이를 낳지않는 가족들이 많이생겼습니다. 소위 딩크족이라는 말이 생기면서 독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청년들이 줄고, 의학의 발달로 인해 노인들의 수명이 늘어나 노인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러다 보니 국가 노동력의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많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여러가지 혜택을 준다. 예를 들면 아기용품을 무료로 대준다거나 아이를 낳았으니, 세금도 줄여주고, 유아방, 유치원 비를 내준다거나등등 . .
오늘 우리사회의 교육의 문제
봄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5월의 주인공은 바로 어린이일 것입니다. 천진스런 얼굴을 하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현실은 더 이상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방과 후, 뛰어 노는 아이들로 차 있어야 할 운동장은 텅 비어있습니다. 두 세 개의 책가방을 더 든 아이들이 피아노, 컴퓨터, 영어학원 등으로 뛰어다닙니다. 요즘은 이런 아이들에게 우울증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커야 하는데 맘껏 뛰놀며 커야 하는데 아이들이 아이같지가 않습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을려면 어쩔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입니다.
영재교육, 조기교육이라 해서, 4-5세부터 과외를 시킨다. 과외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영어, 피아노, 미술, 웅변, 컴퓨터, 태권도 등 . . 자녀교육을 위해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 가있고, 남편은 혼자 한국에서, 라면 끓여먹으며 살면서 돈을 보내준다. 너무나 외롭게 홀로 하늘 바라보며 산다고 해서 “기러기 아빠”라는 별명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노벨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상, 문학상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집 팔고 부부가 헤어져 있으면서, 자식공부를 시키지만 아직도 우리는, 노벨상과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친 유대인들은, 노벨상 수상 단골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때부터 지금까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짧은 역사이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배를 잘 드리면서, 세계최대의 강국이 되었고, 공산주의 하던 나라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더니, 완전히 망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지상최대의 인물, 국가, 민족이 되게 하십니다.
4가지 형태의 부모가 있다고 합니다.
① 밀모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팍팍 밀어주는 부모. 학원가고 싶다고 하면 학원 보내주고, 옷 사고 싶다면 옷 사주고, 신발 사고 싶다면 신발 사주고, 휴대폰 사고 싶다면 휴대폰 사주고 이런 분은 밀모입니다.
② 뛰모 : 자녀와 함께 예습하고, 과외 공부, 학교에 따라 다니는 부모.
③ 지모 : 공부하는 자녀 옆에서 뜨개질하면서 지켜주는 부모.
④ 주모 : 자녀가 공부하든 말든 주무시는 부모.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요? 잠언1장부터 매장마다 “내 아들아 훈계를 받아라 훈계. 훈계가 없으면 안 된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1:8).
바른 신앙을 교육하라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가르치라’는 말은 teaching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치다는 말에는 teaching과 traning이 겸한 것을 말합니다. 가르치고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입니까? 마땅히 행할 길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이 무엇인가요?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성품, 잠재력, 능력, 본성, 기질을 통틀어서 아이가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어리고 연약한 자녀들에게 올바른 행동과 원칙, 행동 습관을 형성 시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규칙에 따라서 몸가짐을 훈련시키는 것이 진정한 교육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얼마나 많이 하느냐 보다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신앙으로는 부족합니다. 믿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접고 전적으로 믿는 대상입니다. 너무 영리하고 똑똑한 것이 문제입니다. 오히려 올바른 신앙은 어린아이처럼, 바보처럼 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들 가운데 자식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은 걱정하지 않고, 대학에 떨어질 것만 걱정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런 부모가 문제입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어려서부터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주님을 찾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또 부모가 날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부모의 자식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교회의 출석과 예배의 중요성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학교 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TV를 보느라고 교회에 안 가는데도 가만 두는 부모가 기독교인입니까? 때려서라도 보내야 합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신앙의 힘으로 19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여사입니다. 수산나의 자녀교육 방법가운데 하나는 “3세 이전에 아이들의 고집을 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경건의 훈련을 시켰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하라
‘틀’이라는 말은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들립니다. 틀에 박힌 말, 틀에 박힌 생활을 가장 싫어하는 시대가 오늘 이 시대입니다. 틀이란 참으로 편협하게 만들고 소극적이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한 가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참 답답한 사람입니다. 옹졸하고 고집이 셉니다. 그러나 틀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틀은 기본이 잡힐 때 까지 그 모양을 가지도록 잡아 주는 보조적인 역할입니다. 뼈가 부러지게 되면 깁스를 하게 됩니다. 뼈가 완전히 붙을 때 까지 깁스를 합니다. 틀은 그와 같습니다. 기본이 잡힌 사람에게는 그 틀이 필요없습니다.
히브리 민족의 조기교육은 유명합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2,000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도 언어, 문화, 역사전통을 계승하여 마침내는 독립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자녀교육, 곧 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짜르트는 6살 때부터 독일 황제 앞에서 연주했다고 합니다.
스펄죤 목사는 20세때 영국사회에서 대설교가로 말씀증거에 힘썼습니다.
헨델은 10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리빙스톤은 23세 때에 검은 땅 아프리카로 찾아가서 선교와 그리고 그 백성을 살리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칼빈 선생은 26세 때에 기독교 강요라는 위대한 저서를 내고 종교개혁에 나섰습니다.
세상 농사는 한 해 잘못되면 다음해에 잘 지으면 되는데, 자식농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자녀 교육입니다. 사람의 인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6세까지인데, 이때 이미 인생의 태도가 85%는 결정됩니다. 그래서 잠언 22장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지금 내가 잘 먹고 잘 입고 산다 해도 차세대에 희망이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지금 좀 불편해도, 지금 좀 어려워도, 지금 좀 고달파도, 5년 후 10년 후가 더 좋아지는 가정되어진다면 넉넉히 견디고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5년 후, 10년 후가 더 좋아지는 복된 미래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늙고 병들었을 때 제자들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메시지를 하나만 들려주십시오” 소크라테스는 지그시 눈을 감은채 말했습니다. “아테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시민들을 향해 간절히 외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네” 제자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으는 일에만 충실하지 말라. 그것을 물려받을 어린이들에게 좀 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아라. 이것이 내 일생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이다”
사람들은 간혹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잘 양육하는 것이 부모에게 맡겨진 제1의 사명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린이를 어른과 비교하여 모자란 존재로 봅니다. 어린이를 작고, 여리고,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라는 우리말도 ‘어리석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태도는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이를 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항상 높은 곳, 큰 것, 힘센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과 완전히 다른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을 완전히 뒤엎으셨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고, 가난한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질 것이고, 낮아지려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예수님의 가치관은 항상 그렇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어른은 스스로 높아지려고 애쓰고, 또 높은 자를 높입니다. 어른은 속이기를 좋아합니다. 어른은 자신을 자랑하고 의지합니다. 어른은 남을 호령하고 지배합니다. 어른은 몸과 마음이 굳어 있어서 다른 것을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는 스스로 낮출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어린이는 아무도 속이지 못할 정도로 순수합니다. 어린이는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새로운 것, 지식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어린이는 친구와 싸우다가도 금방 사이좋게 지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국에서 어른보다 어린이를 큰 자로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18:4).
먼저, 가정에서 가르치라
신앙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유대 이스라엘의 가정은, 교육을 심어주는 학교였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경우는 모든 교육을 학교, 학원에 맡깁니다. 그래서 교육환경이 좋은 지역으로 이사 가기 원하고, 그런 지역은 집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정한 교육의 장소는 학교가 아니라, 가정과 교회임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7-9) 부지런히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시간을 내어서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뜨겁게 가르치자. 유대인은 “남보다 뛰어나라, 남들을 앞질러라”가 아니라, 일류든 이류든 상관없이 “남과 다르게 키라”입니다. 유대인은 너는 어학을 잘하니까, 수학도 잘하면 일류대학에 문제없이 들어간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특성을 찾아 전력투구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 하나가 히틀러가 육백만명의 유대인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6.25전쟁때 죽은 사람이 백 오십 만입니다. 그런데 히틀러는 조용히 살아가는 유대인들 육백만을 죽인 거예요. 히틀러가 이렇게 된 것에는 어머니의 전적인 책임이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여기 저기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기에 집을 자주 비웠어요. 때로는 일주일, 때로는 한달, 그 사이에 어머니가 외도를 했는데, 돈 많은 유대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은 거예요. 그 유대인이 미워서, 죽이고 싶었는데, 어린 아이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것이 깊은 상처가 된 거예요. 결국 히틀러가 권세를 잡는 날 유대사람들 육백만을 죽인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린 시절에 받는 상처는 오래갑니다.
시112:1-2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자녀가 정말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돈’ 대신 좋은 ‘습관’과 ‘전통’을 유산으로 남겨준다 합니다. 철학이 없는 많은 유산은 자녀를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습니다.(철학이 없는 유산은 자녀를 불행하게 한다)
유대인을 멸망시키려면 그들의 학교를 폐쇄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오래전부터 조직적인 교육을 실시해 왔습니다. 한때는 예루살렘에만 480개의 학교가 있었고,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 지방에 460개의 회당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렸을 때부터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기뻐한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바르게 세우는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성경을 물려받아 말씀대로 삶을 지속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통해서 하나님은 노예제도를 해결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과 함께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어렸을 적부터 양육하며 마땅히 행할 길로 양육합시다.
부모에게는 1)양육의 책임이 있습니다. 2)교육의 책임이 있습니다. 3)신앙으로 길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4)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설 수 있도록 감화력으로 길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성장하는 과정 또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느 날 그 교회 집사님 가정에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찬송을 부르는 도중 윗방에 있던 그 집 딸이 문을 확 열더니 머리를 쑥 내밀고는 큰소리로 “내일 나 시험이란 말이예요”하고는 문을 확 닫더랍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겁이 난 얼굴로 “목사님, 찬송 좀 조용히 부를 수 없을까요? 그 애가 전교에서 일등이예요” 그러더랍니다.
기가 막혀서 그 목사님이 윗방으로 올라가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 그 학생 등에 손을 얹고, 예수님에 관해서 교회에 관해서 쭉 설명을 해 주었더니 이번에는 울면서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런 얘기를 한 번도 해 준 일이 없어요” 그러더랍니다. 집사라도 엄마가 더 한심스러운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믿음 생활하는 것을 대학 입학보다 더 중요하고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하는데, 그런 믿음을 하나도 심어주지 못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 부모들은 흔히 자녀들 ‘기를 꺽지 말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방임적으로 기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방치하면 잘못된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송아지를 어릴 때 코를 뚫고 기를 꺽지 아니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어릴 때 방임해 버리면 나중에는 다른 사람을 속 썩이고, 사회가 원치 않는, 가정이 원치 않는,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생각이 이미 굳어진 다음에는 교육이 별 효과가 없습니다. 모양만 변하지 근본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브레이크 구실을 하는 교육이 꼭 필요하기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잠22:6)고 했습니다.
록펠러 어머니가 10가지 유언을 하였는데, 1.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잘 섬겨라. 3.주일 예배를 본 교회에서 드려라. 4.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아라. 6.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성하며 기도하라. 8.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10.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아라.
바르게 교육한 어린이는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훈련하느냐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출처/임경택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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