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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양육의원리 (마18-6)

by 【고동엽】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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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양육의원리 (마18-6)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구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희망찬 5월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정해진 5월에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일은 어린이 날입니다. 어린이는 다음 세대의 주인공으로서 이 땅의 기업을 이어나갈 귀중한 보배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념하여 하루만이라도 어린이의 천국을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지키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평소에도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겠지만 이번 주간만큼은 이들의 천국이 되도록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8:1-6의 말씀을 가지고 ‘자녀 양육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은 어린이와 같은 순전하고 겸손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어린이 날의 사랑을 베푸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우리 스스로가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예수님은 어린이를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15에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을 방해하는 것이 싫어서 어린이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늘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감사한 것은 지금 저희 교회 학교 중에서 어린이에 해당하는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들이 1500명 이상이나 출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라나서 어른이 되면 이 나라는 밝은 장래를 약속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벌써부터 생존 경쟁 속에서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일류 직장에 들어가고 고급 주택에나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고, 남들보다 더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어린이들이 일찍부터 수단이나 방법론만 배운다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서슴없이 죄도 저지르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우리 사회 속에서 심각하게 진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존뿐만 아니라 이 민족의 장래는 결국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양육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방법론만 가르쳐서 이 사회가 점점 병들어 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가르침으로 이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로 변화되어 가야 할 것인가는 오르지 이미 어른이 된 우리 모두의 책임일 뿐입니다.

오늘 저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자녀 양육의 원리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1. 그들로 진실한 믿음을 가지게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지키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또한 5월은 어린이 달이기도 하고,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자녀 사랑을 많이 하겠지만 이번 주간은 더욱 더 신경쓰고 노력하며 어린이를 기쁘게 해주려고 생각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 주고 관용을 베풀어 주게 됩니다. 우리가 어린이를 사랑하되 그들의 몸을 튼튼하게 하고 예쁘게 자라도록 도와주며, 많은 경쟁 속에서 승리하도록 키웁니다. 그러나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8:21을 보면 “사랑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했고 시편 51:5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좌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이 아무리 예쁘고 귀엽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이미 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므로 죄중에 있습니다. 그들이 내 자녀이기 전에 아담의 자녀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6:26 말씀에 보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가 확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 생활을 살펴야 하고 교회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지켜봐야 됩니다.

저는 교회에서 어린이 행사로 부모님을 초청해 보았습니다. 교회에 맡겨서 그런지 몰라도 자녀의 신앙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았습니다. 즉 부모님들이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는 열심을 내지만 자녀의 신앙에 대해서는 방치해 두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의 구원에 대해서 등한시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2.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도록 지시해 주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힘과 능력은 사실상 제한을 받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장난감 같은 것을 요구하지만 그들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요구하는 것이 더욱 더 많고 큰 것들입니다. 자녀들이 방황하고 엉뚱한 사고를 냈을 때는 결국 부모들은 벽에 부딪치고 맙니다. 그때에 부모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부요하신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직접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알게 되면 그들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해결받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 이름을 부르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가 교제하고 도움을 받는 하나님이라면 어린이들도 믿음을 가지고 개인적인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해야 될 줄 믿습니다.야곱이 형을 속인 것으로 해서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외삼촌이 계시는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벧엘이라는 광야에서 밤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피동적인 하나님, 이론적인 하나님을 가르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직접 교제를 나누도록 지도해야 할 줄 압니다. 로마서 8:17의 말씀같이 “자녀이면 또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드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요, 가장 큰 사랑이 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못 해 주는 것을 하나님이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징계하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할 때 많은 설움을 받고 살았습니다. 일제하 36년, 8.15 해방, 6.25 동란을 치르는 동안에 자녀들은 사랑 받을 기회도 없었고 사랑은커녕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가 안정되고 부흥하게 되자 생활에 여유가 생겨 자녀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부모님들의 자녀 교육은 세계에서도 으뜸간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치마 바람의  소동까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요즈음 자녀들은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받아서 걱정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정에서 징계의 매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잠언 13:24에 “초달을 차마 못 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 택한 백성을 얼마나 징계했는가를…. 히브리서 12:6에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12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는 것”이 징계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이 그의 택한 자녀들을 연단시키는 것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일수록 더 큰 연단을 통해서 온전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 사랑하는 길이요, 최대의 선물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네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7에 보면 바울은 성도들에게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하였고 11절에는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다”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길은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감싸주는 면과 아버지 같이 엄격한 면이 조화되어야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길은 그 길이 현재 뿐, 현재만 즐겁게 사는것이 아니라 보다 더 먼 장래를 위해 근실히 징계하는 것입니다.

4.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녀일지라도 부모님들이 알아야 할 것은 어린이도 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어린이 권리 선언문에서 어린이는 완전한 인격자로서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말과 행동 전반에 있어서도 어른과 동등한 인격상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어른의 영혼이나 어린이 영혼이나 다 평등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탁받아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우리의 혈통을 타고 났다고 해서, 내가 기르고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을 혈기로 대하고 화났을 때 손찌검도 하고 스트레스 해소나 하는 표적판으로 삼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해서 어린이까지 불행해서는 안 되며 자기가 속이 상한다고해서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님들의 희생물이 되어서 거리의 방랑자가 되었으며 죄에게 팔렸습니다. 또 한 가지 어린이들에게 범하고 있는 과오가 있다면 어린이들을 내 뜻대로 부모님의 생각대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장난감 다루듯이 부모 자신이 못 이룬 것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 자녀의 재능이 무엇이며,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가능성이 무엇인가를 전혀 계산해 보지 않은 채 부모님이 못 한 것을 분풀이하듯이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노엽게 하고 빗나가게 하므로 중간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물건이 아닙니다. 한 인격체, 한 영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자녀 사랑하는 길이며, 최대의 길인 것입니다.

5. 어린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이 어린이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어린이를 가운데 세우신 주님처럼 가정에서도 어린이를 중심으로 둘러 앉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와 이 사회에서도 어린이를 중심으로 서야 하고 교회 안에서도 어린이를 중심으로 세워질 때 어린이 천국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과거 우리 나라 가정은 어른을 중심으로 한 가정으로 어린이들에게는 억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핵가정이 되면서 어느 정도 어린이 중심으로 되어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의 생활 자체가 후계자인 자녀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요 축복이 되 어린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요즈음 국가에서도 어린이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은 태중 교육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살펴볼 때 서원 시도를 하여 얻은 아들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어린이 중심의 신앙을 지도할 수 있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곳에는 늘 기쁨이 있습니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곳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곳에는 행복이 깃들며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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