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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Ⅰ. 본문의 배경
사도 바울이 가정을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기 위해서 준 계명 중 일부이다.
Ⅱ. 가정의 주신 경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영광스런 전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가정생활이 남달라야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경륜을 생각하게 된다.
Α.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경륜은 두 가지를 위함인데 하나는 알게 하시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는 제일 먼저 지식과 관련이 되는데 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참으로 인간으로써 필요한 지식을 얻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가정의 경륜을 두신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누가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도 엄마의 젖을 빨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의 젖을 통해서 나오는 양분을 공급 받으며 발육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 엄마의 젖을 떼게 되고 이유식을 거쳐 밥을 먹으며 자기에게 필요한 영양분들을 음식을 통해 공급받게 된다.
지식도 똑같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서 모든 필요한 지식들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것이 아이가 지식을 습득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 품에서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고 그리고 잠시 후 아빠와 관계를 맺으면서 지식들을 습득하게 되는데 이 지식은 크게 세 가지 대상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식이다. 그리고 이런 지식의 습득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도 갖게 되는데 일종의 반성적인 지식이다. 어쨌든 아이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엄마의 젖을 의지하며 육체의 양분을 공급받듯이 엄마를 통해 그리고 잠시 후 아빠를 통해 거의 일방적으로 이 지식들을 공급받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관한 적절한 지식을 갖고 자기가 있어야할 인간의 위치에 서서 이 세 대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하려고 하는 열망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이다. 그러나 아이는 언제나 부모의 얼굴을 보면서 이 세 대상에 대해서 배우고 도덕에 대한 관념을 터득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이가 발육하여 다리에 힘이 생기고 엄마 무릎을 딛고 어깨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때쯤 되면 이제 이 아이는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세계로부터 직접 지식들을 습득하게 된다. 이때부터 아이의 마음속에는 단선적이던 지식들이 그물망을 형성하면서 아이들에게 그 지식이 서로 지식끼리 비교가 되는 그런 판단의 기준들이 생기게 된다. 아이들이 이렇게 해서 부모로부터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는 결혼을 해 자식을 낳은 것으로만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이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해줄 수 있을 때에 그가 정말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식을 전달함에 있어서 가장 정확한 지식은 성경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렇게 인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가정을 통해 주시기 위하여 이렇게 자녀를 가정에서 양육하도록 경륜하신 것이다.
Β. 살게 하시려고
두 번째로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경륜은 사람으로서 살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모든 지식은 결국은 살기위한 지식이고 이것은 명백히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지으시고 자기를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 이것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인간을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셔서 부모와 가족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기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이롭게 하며 살아가는 덕스러운 삶이 무엇인지를 가정에서 배우게 하기 위하여 가정이라는 경륜을 허락하신 것이다.
국가의 최고의 존재목적은 백성들에게 정의를 가르치는 것이고 가정의 뛰어난 목적은 인간이 누구이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교회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자기의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자신의 정의를 가르쳐야할 의무를 교회에 떠넘길 수 없고 가정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할 의무를 교회에 떠넘길 수 없다. 국가와 가정이 이 두 가지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회는 바로 이렇게 정의롭고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되기 위한 지름길을 가르쳐주는 것인데 교회에서 그들은 참된 신자가 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배우므로 국가를 향해서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가정을 향하여는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 두 가지 목적을 국가와 가정과 교회가 삼위일체처럼 협력하여 이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엄마 아빠의 표정을 보면서 선과 악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바로 이렇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서 인간을 양육하시는 경륜을 세우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아무리 탁월하게 경영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국가의 영속적인 번영의 기초는 가정에 있는 것이다.
Ⅲ. 새롭게 발견한 소명
오늘 성경은 이렇게 가정을 주신 경륜 안에서 부모가 자녀와 맺어야 될 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라고 되어 있지만 바로 그 앞 절에 보면 자녀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데 부모에게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서 아비들이라고 나오는 것은 부모의 대표자로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은 엄마보다도 아빠가 훨씬 더 그럴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아비들아’라고 호칭을 하는 것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낙심할까 아노라“ 이 노엽게 한다는 말은 분노케 한다라는 뜻인데 이것은 단지 적대적인 분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낙심한다는 말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여움의 결과로서 낙심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은 의미는 단지 문자적으로 분노하고 낙담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찌그러진 다는 의미이다. 바로 부모와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부모로부터 억압을 당하거나 분노를 촉발시키는 대우를 받았을 때 아이의 정신과 마음이 이렇게 찌그러진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녀들은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골로새서 3장 21절의 말씀은 부모가 사랑하여야할 자녀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Α. 자녀을 양육함(엡6:4)
에베소서 6장 4절에서는 자녀를 양육하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신다. 그런데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도록 우리에게 지정하셨다. 교양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정신과 마음의 자원을 가리킨다면 훈계는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할 삶과 믿음의 분명한 표준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여 자녀들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경계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책망하고 이렇게 하면서 자녀를 양육할 때에 그 자녀가 가정에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자란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주의 교양과 훈계는 결국은 부모의 인격과 말 그리고 이 모든 가르침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 주의 교양과 훈계는 이미 부모 속에서 육화된 주의 교양과 훈계이다. 삶의 경건과 거룩한 생활의 모본을 통해서 부모가 생각하고 가르치는 진리와 그의 삶이 일치하는 것을 보면서 자녀는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B. 자녀를 사랑함
그런데 오늘날 정말 자녀들을 이런 식으로 양육하는지 물어보아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닌데 자기가 지정해 주는 규칙을 어기는 것은 마음속에서 분노가 생겨나고 아이들을 매질하기까지 징계할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질서자체가 바뀐 것을 얘기해주는 것이며 매우 잘못 된 것이다. 그러니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이런 그리스도의 교양과 훈계를 배우지 못하면서 자라는 것이다. 그런 덕성에 대한 강조가 없는 교육이 성공하면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녀를 만드는 것이고 실패하면 그 경쟁에서 패배한 자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신 경륜과는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현실이다.
나는 감히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도전하고 싶다. 여러분들 자신이 하나님께 좋은 자녀가 되려고 하는 거룩한 열망이 없으면서 자신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욕망이다. 육신으로는 자식들이 우리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 아이들은 우리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아이들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때문에 다시 태어난 아이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자녀만 있지 손자가 없다.
오늘 성경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아주 강력하게 촉구한다. 이 이야기는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정도의 뜻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자녀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노엽고 그래서 낙심한 마음은 찌그러진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그 아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영향을 주어서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혹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도록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자녀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기르도록 우리에게 위탁하셨을 뿐이라는 청지기적인 정신을 가져야지 소유주 정신을 가지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우리들이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 계명들에 대해서는 양보 없이 자녀들에게 가르쳐도 성경이 이렇게도 괜찮고 저렇게도 괜찮다고 하는 것은 자유를 주어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서 속박 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온전한 자유 속에서 마음껏 자라도록 그래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 수 있도록 그렇게 돌봐주어야 한다. 그것이 부모가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아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해야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바로 내 아이의 그 형상을 위해서 자기의 외아들조차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 모든 부수적인 것들을 넘어서서 그 형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부수적인 것들은 어떤 것일까요? 예쁘고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고 착하고 날씬하고 등등에 관한 것들이다. 그것을 넘어서서 정말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Ⅳ. 결론
자식들이 부모를 충분히 누리면서 그 안에서 정말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한없는 자유 속에서 오직 그분의 사랑의 줄에 매여서 종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책임 있는 실존으로 그렇게 살도록 부모는 모든 자원을 다 동원해서 그를 그렇게 살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향하여 살도록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말 의미 있는 인생을 살도록 도와서 그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한 줄기 빛이 되어서 자기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유익하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을 그렇게 한 없이 풍요로운 햇살을 받으며 비를 머금으며 그렇게 하늘아래서 자유롭게 자라도록 그러면서도 주님의 말씀과 그 은혜의 줄에 굳게 붙들려 치고 때리는 부모의 구타나 협박, 위협 그리고 부모의 참견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에 매여서 그분에 의해 양육 받고 그분에 의해 훈계되며 그분에 의해 교양으로 길러지면서 주님의 사람으로 자라가도록 그렇게 할 때에 그런 자녀들이 정말 커다란 정신과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품고 이 땅에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목적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바로 그 일을 돕기 위해서 주님이 세우신 공동체이니 마음을 다해서 뜨겁게 신앙생활하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전망하는 자녀들답게 남다른 그런 생활을 여러분들의 가정생활에 속에서 펼쳐나가기를 원한다.
김남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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