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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남편

by 【고동엽】 2022. 4. 6.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8-19)

I. 본문해설
사도는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성도들을 권면한 후에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덕스러운 행동들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바로 그 앞에서 땅에 것을 바라보지 말고 위에 것을 바라라고 권면하였다. 다시 말해 바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잠시 머무는 이 세상에서 마치 우리 삶의 의미가 영원을 향하여 계속되는 것처럼 그렇게 덕스러운 삶을 살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영광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하늘나라의 백성들이기에 이 땅이 전부인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함을 사도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남편과 아내의 덕스러운 삶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 주고 있다.

II. 아내를 향한 권면
A. 남편에 대한 복종
아내에게 남편에 대해 복종하라고 명령하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아내들이 이렇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현실적으로 이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도는 아내들에게 주 안에서 마땅한 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복종은 자기의 뜻을 굽히며 상대방에게 순종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는 노예적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의미가 남편에게 아내를 복종시킬 어떤 권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남성우월주의의 탐욕적 해석을 허용하는 구절이 아닌 것이다.

B. 인격이신 하나님을 앎
이 복종은 아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규정된 신적인 질서를 이해하는 데서 오는 복종이다. 그러므로 사도가 이 편지를 불신자가 아닌 골로새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 쓰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아내의 꿈은 자신을 복종시켜 남편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남편과 이 가정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 질서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복종을 하는 아내의 관심사여야 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인격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 여기에서부터 진정한 복종과 사랑이 나옴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도가 상정하고 있는 아내들이 골로새교회 교인들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들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주고 있다. 지금은 성도라 불리지만 예전에는 불신자였고 그들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던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도 사실은 하늘나라에 잇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나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할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알고 나니 의무에 대한 감각이 생기고 그 감각이 생겨 질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는 그 마음, 경건한 남편에게 경건한 아내가 복종하며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다툼과 분노, 두 사람의 관계의 깨어짐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보자. 그것은 바로 참된 질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의미가 모든 면에서 남편의 영광이 자신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내는 가정에서 남편을 깊이 존중하려고 애쓰고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를 따라서 남편에게 복종하려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정생활을 행복하게 해가는 성경적인 첫 번째 원리이다.

III. 남편을 향한 권면
A. 아내에 대한 사랑
계속해서 남편을 향한 권면이 이어진다. 남편에게 사랑을 하라는 이유는 이 또한 사랑보다 괴롭게 하는 것이 자연적인 본성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임을 보여준다.
결혼 전 사랑은 되니까 하는 사랑이지만 결혼 후 사랑은 될 때도 있지만 되지 않을 때도 있는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자기 이외의 사람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자 하고 이미 맺어진 관계는 그것을 돈독하게 하고자 하는 정신과 마음의 성향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인데 이것은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누림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지만 후일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도 그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변경하였다.
인간을 향한 사랑은 최종적인 사랑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용어를 빌자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고 최고의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 궁극적인 목적이 사람들이 함께 사랑하며 함께 모여서 행복하고 사는 것이라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최고의 목적에 이바지함으로써 이 두 목적이 상충되지 않고 서로 성취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입증이나 하듯 성경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심을 주심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이 어찌 감당할 수 있는 명령인가. 완전한 자기희생의 사랑으로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계시니 누가 자신의 아내를 충분히 사랑했으며 의무를 모두 이행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아내를 향한 이 남편의 사랑은 명백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고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교회를 통해 나에게 부어진 사랑이고 다시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은 다시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랑이다.
이는 원천을 하나님께로 둔 사랑이다. 돌아갈 목적을 하나님께 둔 사랑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발생적인 원인이기도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만약 한 남편이 아내를 한 없이 사랑했는데 남편이 죽은 후에 일주일 만에 아내가 너무 외로워서 따라서 자살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내를 사랑하도록 기대하신 그런 종류의 남편 사랑이 아니다.
이 편지는 불신자에게 주는 편지가 아니라 골로새교회의 경건한 성도들에게 주는 편지였다. 이 안에는 그 하나님의 큰 사랑을 힘입어 남편은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아내를 잃어도 아내를 사랑하게 한 하나님은 사라지신 것이 아니니 만족을 잃지 않는 진정한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아내를 사랑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뤄갈 수 있는 것이다.

B. 괴롭게 하지 않음
이는 남편이 아내를 괴롭히는 일이 본성상 쉬운 일이며 아내를 상처받게 하지 않는 일이 어려운 일임을 보여준다. 남성은 원래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 정복과 개척에 적합한 정신을 많이 주셨다. 그래서 남성성의 거친 태도는 죄가 들어오면서 더 거칠어졌고 여성성은 쉽게 상처를 받게 되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참다운 가정으로 회복되기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서 보고 그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보다는 어머니라 부르고 싶은 세심한 하나님의 배려들이 등장한다. 이는 하나님이 여성적이시라기 보다는 하나님 자신이 가지신 사랑이 자기의 백성들을 배려하게 하신 것이다. 사랑은 배려이고 사랑은 긍휼히 여기는 것이다. 사랑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남성들의 거친 폭언이나 폭행 거친 언사 안하무인격의 저만 아는 태도는 결코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적합한 태도가 아니다. 사랑은 오래 참게 만든다. 부족한 부분은 배려 속에서 고치고 다듬으며 서로를 통해 온전한 사람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한데 묶어 놓으신 것이다.

IV. 세상 끝 날까지의 결합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라는 시간인데 다툼과 원망, 미움과 학대 속에서 괴롭히며 살아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아내를 학대하고 괴롭게 하는 것은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니 아내와 남편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참된 복종과 사랑, 사랑과 자비의 관계를 세상 끝 날까지 결합하며 유지하도록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신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가정은 그 몸을 이루는 세포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의 질서를 알고 복종하며 자비롭게 대한다면 그 건강한 세포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건강한 몸을 이룰 것이고 이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요새는 깨뜨려진 가정이 아주 많이 있기 때문에 가정이 교회 다니면서 행복하게만 살아도 그 자체가 커다란 선교가 된다.
끊임없이 부족해 보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결점이 많이 보이는 아내를 사랑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도 사랑하며 살게 하는 마음은 우리 자신이 가진 자연적인 양심과 인간적인 마음에서는 무한히 솟아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로 말미암는 까리따스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 속에서 새로워질 때 아내와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나오는 것이다.

V. 결론
많은 사람이 자신이 외롭고 슬픈 것은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한 몸에 받아도 그는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슬픔도 고통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솟아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이 세상에 주시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에 넘치게 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는 사람에게는 이 사랑을 주셔서 복종하기 어려운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사랑할 수 없는 아내를 사랑할 수 있게 하신다.
여러분도 이 신앙의 힘으로 부부의 결합을 굳게 하며 고난도 슬픔도 이기고 세상 끝 날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김남준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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