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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추수 감사설교

추수감사절/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by 【고동엽】 2022. 4. 6.

추수감사절/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먼저 말씀을 듣기 전에 성찬예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성찬의 참 뜻을 한번 알아보고 성찬을 대하면 더 큰 은혜가 될 입니다. ▶성찬의 의미가 무엇인가?
  ⑴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고전11:24-25).
  기념이란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국어 대 사전)"입니다. 우리는 성찬의 떡과 포도즙을 나누면서 주님이 날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그 사랑과 뜻을 되새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⑵성찬은 세상 죄악과 욕심으로 향하던 나를 죽이는 예식입니다.
  내 죄가 그 거룩하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어떻게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성찬을 받으면서 우리는 그 동안 지은 죄를 회개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주여! 내 죄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다시는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주님의 모습을 닮아 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하야 합니다.
  ⑶성찬은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확립하는 예식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내 속에 채우니 이제는 예수님을 내 중심에 모시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이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살게 된 겁니다. 그러니 성찬을 받은 사람은 기도생활, 예배생활, 성경 읽기를 날마다 더욱 힘써야 합니다.
  ⑷성찬은 성도가 주안에서 사랑으로 뜨겁게 연합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었는데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대적하며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의 피로 한 형제 한 자매가 된 공동체입니다. 
  ⑸성찬은 부활의 소망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주님의 몸은 무덤에 장사된 3일 만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거룩한 성찬을 받은 우리도 주님처럼 마지막 주님 재림 때에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 소망을 굳게 가집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도 부활의 능력을 힘입게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⑹성찬은 이 몸을 주님께 드려서 주님을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입니다(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⑺성만찬의 중심은 두 가지입니다. 초림과 재림입니다.
  고전11:26절 "너희는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주의 죽으심'은 초림 예수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고 '오실 때까지'는 재림입니다. 이런 의미를 모르면 '성만찬 떡을 먹지말고 성만찬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로 예배를 드립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은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한 것만큼 건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행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그만큼 풍족한 삶을 삽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감사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지만,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축복의 문을 닫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랑도 없고, 소망도 없고, 발전도 없고, 더 나아가서 성장도 없습니다.
  신16: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여기 '네 모든 물산'이라는 것은 한 해 동안 얻은 '수확물, 소득, 수입'을 말합니다. '네 손을 댄 모든 일'이라는 말은 '내가 하는 모든 것, 사업과 직업 모든 활동 범위'를 가리킵니다. 즉 내가 움직일 때마다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더 나아가서 '복 주신 것'이 아니라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 즉 앞으로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 복 받을 것을 믿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즉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할/ ◀제목소개!▶

 

1. 지금 우리들이 드리는 추수 감사절은 두 가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구약의 추수감사절로 유대인들의 추수기를 기준해서 지켰습니다.
  출23:14절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유대인들은 이 명령에 따라서 일 년에 삼대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유월절'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킨 절기로 해방절기입니다.
  ▶두 번째 절기가 '맥추절'인데 이날은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절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수장절'로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은 것을 창고에 들이고 가을의 들판에 초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생활하며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 간 초막을 짓고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며 지키던 초막절 절기로 우리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23:17절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니라." 여기서 말하는 '너희 모든 남자'란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에 포함되는 20세 이상 되는 모든 남자를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남자 중 20세 이상 된 사람은 일 년에 세 차례, 즉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에는 의무적으로 성전으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감사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신15:19절 "너의 우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또 21절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최상급의 가축의 첫 새끼나 곡식이나 채소의 처음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조차도 이것이 습관이 되어서 마23:23절에서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에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첫 열매는 무조건 자기가 먹기 전 꼭 하나님께 드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초막절의 초막은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시27:5절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라고 한 것처럼 초막은 낮에는 더위를 가려주고 밤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 초막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합니다.

  ②또 하나는 미국에서 시작된 청교도 추수감사절 예배가 역사적 배경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을 설명하려면 1500년대 영국교회의 역사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 당시 스페인과 영국은 그 국력에 있어 양대 산맥이라 할 만큼 쌍벽을 이루었는데 그 당시 세상은 두 나라의 침략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23개국 언어가 스페인어 하나로 통하는 이유는 그 시절의 수백 년 동안 아메리카를 침략해서 식민지를 삼았기 때문에 생긴 문화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들이 거의 40여 개국이나 됩니다. 영국이 온 세계를 지배했던 역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스페인어와 영어만 가지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불편이 없을 만큼 이 두 나라 언어가 세계로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상대를 너무나 잘 알았던 두 나라는 전쟁의 충돌을 막는 것이 두 나라가 살길이라는 정치적 판단 하에 "우리 두 나라가 사이좋게 살면 세계는 우리 두 나라의 것이 될 것 아니냐?"라고 해서 왕실끼리 정략적 결혼을 했습니다. 스페인의 공주 캐더린과 영국 왕실의 헨리 7세의 큰아들 '아더' 왕자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한 지 6개월만에 영국의 아더 왕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죽은 대로 처리를 했으면 될 터인데 그의 동생인 헨리 8세가 형수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왕실과 교회가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최강대국의 왕자가 무슨 여자가 없어서 죽은 형의 아내 부인인 형수를 데리고 살아야 되느냐? 기독교 국가가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이렇게 교회가 들고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헨리 8세는 캐더린과 살아 6명의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그런데 5명의 아들이 다 죽고 메리라고 하는 딸 1명만 살았습니다. 이런 불행한 일이 왕실에서 계속 일어나니 이때부터 헨리는 이성을 잃고 잔인해져 자기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부인도 6명을 얻었는데 그 중에 둘째 부인 앤블렌과 다섯째 부인 캐더린 하워드를 공공연히 사형시켰습니다.
  이렇게 잔인하게 이성을 잃으니 기독교 국가에서 그 지도자를 좋게 보겠습니까? "이거, 나라 다 망했다!" 그러다가 헨리 8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들 중 유일하게 살았던 에드워드가 왕위에 올랐는데 또 금방 죽었습니다. 헨리 8세의 후손들 가운데는 오직 메리라고 하는 딸 한 명만 남았습니다. 그 딸밖에 없으니 여왕으로 나라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메리는 37살에 왕위에 올랐는데 왕실과 영국 교회간의 마찰을 어려서부터 계속 보면서 자라왔고 더군다나 영국 교회가 메리 여왕을 어떻게 취급했느냐 하면 "너는 사생아다. 정식으로 결혼해서 낳은 자녀가 아닌 사생아다. 너희 아버지가 형수를 데리고 사생아를 낳았을 뿐이다."라고 자기를 그렇게 취급했으니 이 메리 여왕이 얼마나 영국 교회에 원한이 쌓여 있겠습니까? 여왕이 되자 아버지 헨리보다도 훨씬 더 잔인하게, 피의 메리란 말을 들을 만큼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인 크랜머, 래티머, 리들리, 후퍼 감독들이 이 때 다 화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모두 불태워 죽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망명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마침내 1620년 남자 78명, 여자 24명, 합해서 102명이 '스피드웰호'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배가 항해를 하는 도중 고장이 납니다. 더 이상 그 배를 탈 수 없는 것을 알고 배를 바꿔 탔는데 그것이 '메이플라워호' 입니다. 이 사람들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앙을 위해서 나아갔던 땅 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원래는 북 버지니아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이미 영국의 왕권이 거기까지 미쳐서 그곳에서도 바로 신앙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겠다는 것을 먼저 감지합니다. 그래서 허드슨 강 유역, 그러니까 오늘의 뉴저지 지역에 자리를 펴려고 했습니다. 지명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는데 선장이 거기의 항구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이 사람들을 속이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플리머스'라는 장소에 배를 정박하고 사람들을 내려줍니다.
  이들은 아메리카의 지형을 모르니까 '여기가 허드슨 강이 있는 뉴저지 지역이겠거니' 생각하고 내렸습니다. 그 때가 1620년 12월 26일 청교도 102 명이 '플리머스' 해변에 상륙하자 이런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여러 가지를 감사 드립니다. 첫째로 180 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시속 2마일로 117일간 무사히 항해하였음을 감사 드립니다. 둘째로 항해 중 두 명이 죽었지만 한 생명이 배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 드립니다.
  셋째로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져 못 쓰게 되었지만 배가 파선하지 않은 것을 감사 드립니다. 넷째로 큰 파도로 여자들이 바다에 빠진 적이 두 번 있었지만 모두 무사하게 구출된 것을 감사 드립니다. 다섯째로 신대륙에 도착한 후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을 못 하다가 한 달만에 프리머스에 안착하게 된 것을 감사 드립니다.
  여섯째로 3개월 동안 항해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  드립니다." 이것이 청교도들의 첫 감사기도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반수 이상이 풍토병과 영양결핍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옥수수 씨를 얻어다 심고 경작해서 석 달 먹을 양식을 수확해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감사제를 드리고 난 후 이들이 그 다음에 한 것이 있었습니다. 가장 처음 한 것이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번 잘 믿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그래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자." 라고 해서 학교를 세웠는데 오늘날 그 정신이 소위 미국의 명문대학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가서야 자기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 후 1789년 초대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 승리와 헌법제정을 축하해서,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이날 전 미국인들은 교회에 모여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서로의 축복과 감사를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1863년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링컨 대통령은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국민에게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우리들의 조상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준 가장 위대한 신앙 유산을 만대에 계승하기 위해 이 날을 국가 축제일로 전합니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들은 이 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자'고 외쳤습니다. 
  그 후 미국 대통령들은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성명을 발표하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오늘 날 미국의 문제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윌슨 대통령은 이런 추수감사절 성명을 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덕에 미국인은 하나님께 감사 드리자." 또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가을 날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전통이다."
  이같이 미국은 성경대로 가장 추수 감사절을 가장 큰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추수 감사절을 가장 큰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미국은 3일간 전 국민이 쉬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독립기념일은 하루뿐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1921년부터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감사는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우물가에서 두 머슴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머슴 하나가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무리 물통에 물을 잔뜩 길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금방 다 써 버리고 또 길어야 할 텐데"하고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세상만사가 억울하고 공평치 못하다고 생각되어 원망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불평을 듣던 다른 머슴이 대답을 했습니다. "야, 그것은 네가 잘못 생각한 것 아니냐? 내가 물통에 물을 꽉꽉 길어 가면 집안 식구들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냐? 너도 마음을 고쳐먹으면 즐겁고 기쁠 터인데 늘 불평만 하니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니?" 그렇습니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같은 머슴 신세지만 빈 통으로 왔다가 채워 가지고 가는 것을 불평할 수도 있고, 물을 채워 가지고 가면서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죽도록 일만 한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고, 일할 것이 많다고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쪽을 택하느냐? 감사하고 기쁜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는 것이 세상만사입니다. /믿/
 
2.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 세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①항상 기뻐하라!
  여기 보면 '항상'이라는 부사에 악센트가 주어져 있습니다. 기쁨을 '카이로'라고 하는데, 그 뜻은 '유쾌하다, 은은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폭죽 터지듯 잠깐 기쁘다가 불꽃 사라지듯 꺼져버리는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은은하게 항상,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그런데 기뻐하되 '항상, 언제나'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즉 기쁠 때만 기뻐하지 말고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기뻐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그리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떤 면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종교적인 언어입니다. 신앙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아이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일 때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날 밤에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내일 새벽이면 예수님은 체포됩니다. 그리고 내일 오후에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을 미리 알고 계십니다. 자기를 팔 제자 가롯 유다가 그곳에 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감정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다에게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지금 심정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찬을 마치고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올라가십니다. 그 길은 결코 유쾌한 길이 아닙니다. 기분이 좋은 그런 등산도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 마26:30절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찬미한 것이 아닙니다. 그 찬미와 그 기뻐함이 바로 종교적인 힘이고, 신비한 능력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찬미했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도했고, 스데반 같은 이는 순교를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종교적인 삶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⑴기쁨의 원천은 어디인가?
  빌4: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안에서'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 밖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출세한 기쁨, 성공한 기쁨, 인기 누리는 기쁨, 돈 벌고 잘 사는 기쁨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365일이 기쁩니다. 일생이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성공해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실패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잘 살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병들고 못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예수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⑵성도가 누리는 기쁨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구원받은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눅10:20절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합3:18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롬14: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말씀 속에서 위로와 기쁨이 큽니다.
  렘15:16절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고 했고, 고전13:6절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시63:7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시46: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우리는 근심 중에서라도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 영적인 기쁨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기쁨으로 살아도 우리의 인생은 짧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기 혼자 세상 짐을 다 지고 가는 것처럼 근심과 염려의 얼굴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까?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②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냥 기도하라고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쉬지 말고'라는 말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말씀 같습니다. 눅18장에는 "항상 기도하라"고 했고, 엡6장에는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기도가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숨쉬는 것입니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기도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산소를 들여 마셔야만 살 수 있듯이 영적 생명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을 들여 마셔야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안 하면 죄가 됩니다.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았던 사무엘은 삼상12:23절에서 "결단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데 있습니다. 그럼 밤낮 예배당에서 기도만 하며 살란 말입니까? 그럼 언제 가정생활하며 언제 사회생활을 합니까? 이런 의미의 쉬지 말고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기도에는 4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와 ▶생활 속에 기도와 ▶삶 자체의 기도가 있습니다.
  여기 '쉬지 말고'는 24시간을 입으로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부단히 의지하라는 것이요, 항상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라는 의미요, 기도하는 정신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⑴믿음으로 기도한 자는 다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21: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⑵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성도들을 만나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⑶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만나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7:7-8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⑷주안에 있는 자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⑸기도 생활은 예수님이 몸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홀로 산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히5:7절 "그는 육체로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이것은 곧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인간의 육신을 입고 심한 부르짖음과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는 말씀입니다.
  ⑹기도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지름길이요, 통로입니다.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기도는 어떤 특정한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새벽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산에 가서만 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정해진 시간에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삶 속에서 쉬지 말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긴장을 풀지 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어느 순간 긴장이 풀리면 그 순간 방심하게 되고 허점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사탄이 틈을 타게 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항상 영적으로 긴장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엡6:18절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③범사에 감사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범사'란 말이 묘한 말씀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모든 경우에, 어떤 경우든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익이 주어졌을 때는 물론이고, 손해를 보았을 때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구원받은 백성으로 믿음의 감사를 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받고 나서 감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깨달음과 자족하는 감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감사는 감사 중의 감사이고, 최고의 성숙한 신앙 의식에서 주어지는 감사입니다.
  믿음의 감사는 받아서 하는 감사가 아니고 빼앗기고도 하는 감사입니다. 또 믿음의 감사는 건강해서 하는 감사가 아니고 병들고 나서도 하는 감사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감사는 오래 살고 장수해서 하는 감사가 아니고 일찍 죽으면서도 하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의 격이 다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이것이 믿음의 감사입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10남매를 잃었습니다. 집이 무너져서 한꺼번에 10남매가 죽은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 재산을 잃어버립니다. 동방의 부자였던 욥이 소유하고 있던 많은 양과 소와 약대들을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그는 또 아내까지 잃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몸에 병까지 들었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스럼이 돋아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기적일 뿐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그는 욥1:2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이것이 환난 중에 나오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그래서 이 감사를 믿음의 감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명령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씀은 어떠한 경우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평안하든지 고난스럽든지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범사의 생활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할 만한 조건을 찾아내어 감사하는 사람만이 신앙 인답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어떤 구두를 수선하는 노인이 지금 돈으로 1억 원이나 되는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래서 그 복권을 들고 입을 맞추고, 자랑을 하고, 감사를 하고, 또 감사를 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이 노인이 이제는 가난을 청산하자 하고는 땟물이 밴 구두수선 하는 궤짝을 짊어지고 강으로 갔습니다. 가서는 그 궤짝을 깊은 물 속에 집어던지면서 말하기를 "가난아 이제 물러가라" 하고 던져 버렸습니다. 그 지겨운 가난이 지금 노인 앞에서 멀리 멀리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 왔는데 그런데 와서 보니까 그 복권이 궤짝 속에 넣어 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때 충격으로 이 노인이 그만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적인 감사는 찰나적인 것이요, 순간적인 것이요,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감사는 차원이 높은 그런 감사입니다. /믿/

  ⑴감사하는 자는 태양과 같습니다.
  태양은 어두움을 물리치고 밝게 하고 온화하게 합니다. 가정에도 교회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은 햇볕처럼 따뜻하고 온화합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고 불평만 있는 집안은 찬바람이 불고 냉랭합니다. 시84:11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고 했습니다.
  ⑵감사하는 자는 단비와 같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작물은 다 말라죽습니다. 때를 따라 비가 와야 곡식에도 과일에도 윤기가 흐릅니다. 비가 오면 뿌려놓은 씨앗이 싹을 틔우게 되고 자라서 줄기가 나고 꽃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가정에도 교회에도 감사하는 자가 있어야 그곳에 메마르지 않고 새 생명의 축제가 넘쳐나게 됩니다. /아멘!/
  ⑶감사하는 자는 향기와 같습니다.
  감사하는 집안, 감사하는 교회에는 향기가 납니다. 영적인 향기가 풍겨납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가정은 우울합니다. 고후2:15절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할/ 항상 감사하여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향기가 나기를 바랍니다.
  ⑷감사하는 자는 양약과 같습니다. 
  잠3:7-8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되리라" 감사는 양약입니다. 양약은 병을 치료할 뿐 아니라 몸을 보호해 줍니다. 감사하는 것은 보약 같고 양약 같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가정과 교회는 언어도 생각도 마음도 건전합니다. /아멘!/ 감사의 양약을 드시는 성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마케도니아(데살로니가) 교회의 감사를 알아보자!(고후8:1-5)
  ⑴시련 중에 드린 감사입니다(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바울이 마케도니아 교회에서 보낸 헌금을 받아 들고 눈물로 기도하며 한 말씀이 바로 고후8:2절의 말씀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는 환란 중에 진짜 감사를 했던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워지면 뒤로 물러나는 습성이 있습니다. 사업도 그렇고,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케도니아 교회는 오히려 환란과 시련 때문에 더 풍성한 감사를 했던 교회입니다.
  ⑵힘껏 들이는 감사입니다(3).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였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원해서, 또 마음을 다 해서 해야 그것이 감사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는 '힘에 지나도록'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신16:16-17절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고후9:6-7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⑶자신을 들이는 감사입니다(5).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무엇 보다 좋은 봉헌은 '자신을 들이는 것' 입니다. 이것이 최선의 봉헌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서 손해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것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모르고 사는 감사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 그처럼 괴롭고, 슬프고, 답답하고, 불안스러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⑴우선 내가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언제 몇 월 며칠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⑵또 우리는 내일을 모르고 삽니다. 이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살기에 오늘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만일 내일 일을 다 알고 산다면 매일 매일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⑶그리고 내 몸에 무슨 병이 있는지 모르고 살기에 지금도 잘 먹고 잘 지냅니다. 알고 보면 불안해서 살 수 없습니다. 모르고 사는 즐거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⑷또 역사의 종말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감사요 행복입니다. 만일 그 날과 그 시를 알고 있다면 지금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⑸또 주님이 언제 오실 지 모르고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야 항상 긴장하고 깨어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⑹그러기에 믿는 우리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⑺우리의 모든 것이 주의 손에서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대상29:14절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나이다."
  ▶결론적인 성구는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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