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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추수 감사설교

롬 8:28절의 감사! (추수감사절) (롬 8:26-28)

by 【고동엽】 2022. 4. 6.

롬 8:28의 감사

 

 

                                롬 8:26-28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감사주일을 맞았습니다. 또 한해를 은혜 중 보내게 되었습니다. 금년 한해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갈등도 많았던 한해였습니다.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했고 대통령이 말이 많아서 온 나라가 어수선했고 수도이전 문제로 온 나라가 진통을 거듭한 한해였습니다. 거기다 경제가 추락함으로 모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앞으로 또 무슨 사건 사고 갈등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한편 마음이 불안한 한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바람 잘 날 없는 나라이고 참 시끄러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어려운 일, 불만족스런 일들은 잠시 잊고 그동안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한 일들만 생각해 보는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현실이 불만스러우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큰 영광들이 많았는데도 생각도 못하고 그냥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오늘은 이 은혜와 영광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언어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정감 넘치는 단어는 단연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선물, 친구, 어머니, 고향, 이웃이라는 단어도 정감 넘치는 단어에 속합니다. 그런데 어느 시인은 그런 단어들 보다 정신이 들어있고 삶의 진솔한 마음이 들어있는 단어는 “감사”라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감사”라는 단어 속에 정감어린 마음도 들어있지만 그 속에 은혜, 뜻, 보답, 보은이라는 마음이 듬뿍 들어있는 단어가 감사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감사라는 단어입니다. 모두 366개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느 주석자는 성경에 감사라는 단어가 366개가 나타난 것은 날마다 한번씩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금년 한해를 되돌아보면 날마다 한 가지 이상씩 감사한 일들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감사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금년에 첫 아이를 낳은 가정이 있을 것이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직장을 얻은 일, 승진한 일, 집을 구입한일, 결혼한 일, 죽을 뻔했는데 살아난 일, 건강하게 한해를 살아온 일, 농사가 풍년든 일,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온 일, 아이들이 잘 커서 입시 시험본 일, 아이들이 커서 결혼한 일, 금년에 신앙생활 시작하신 분, 영적으로 성장한 일, 세례 받은 일 등, 생각하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생각하면 모두가 감사한 일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 여기까지 살아온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날마다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은데 건강하게 오늘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이런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무지고 만용이고 죄인지 아십니까. 그래서 사람이 생각 없이 살고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짐승과 같은 생활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게 되는 데는 내가 나를 잘 관리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내가 여기까지 안전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알게 모르게 내 배후에서 나를 염려하고 안내하고 돌보시는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 신앙인의 삶이고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끼는 삶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보면 그 손길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날 위해 기도하심”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이 한때 방탕생활을 했습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방탕합니다. 그렇게 방탕생활을 하다가 15년 만에 집에 돌아옵니다. 돌아보니 어머니가 몹시 늙어 있습니다. 이웃 사람들에게 들으니 방탕한 아들을 위해서 어머니가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며 애절하게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때 어거스틴은 자신이 마음을 잡고 집에 돌아오게 된 이유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오늘 성경은 바로 그 기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신앙생활은 눈을 뜨게 하는 생활입니다. 눈을 떠서 보는 생활입니다. 눈을 뜨고 보니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되고 돌보심과 인도하심과 배후에서 역사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지금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내 힘과 능력과 재주라고 믿으면 오해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삶에, 마음에 감사의 마음이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금년 한해도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지켜주셨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날입니다.

 

 

 

“깨닫게 하시는 은혜”

 

 

 

또 2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여기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말이고 섭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깊습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들이 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불평스럽게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때로 살다가 무거운 짐을 지어야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짐의 의미를 모르면 너무 무겁습니다. 그런데 그 짐의 의미나 뜻을 알면 그 무게가 순간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결혼했는데 아기가 없습니다. 10년을 기도했는데도 아이가 없습니다. 15년 되던 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금년에도 아이를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아이 갖기를 포기하겠습니다. 그런데 15년 되던 해 임신을 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이 주실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이 아이를 하나님 뜻대로 키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까 불구아였습니다. 이 부부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겨우 15년 만에 주신 아이가 불구아인가 하고 원망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 아이를 맡길만한 부모를 찾는데 15년이 걸렸느니라. 너희 부부가 이 아이를 맡아 잘 양육하라.” 그 순간 이 부부는 이 아이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이 부부는 환희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짐이 순간적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때로 불평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일들이 어쩌면 그 뜻을 모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주어진 일도 그 뜻을 모르면 그만큼 짐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송명희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아주 흉할 만큼 뇌성마비로 온몸이 뒤틀려서 말을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만큼 일그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분은 7세 때까지 누워 지내다가 10세 때 겨우 젓가락질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일을 못해서 집안이 너무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명희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자살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하나님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이 분이 비로소 눈을 뜹니다. 그렇게 뜨여진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자신의 값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쓴 시가 이런 시 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이 가진 건강 없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상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을 지라도,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깨달음의 은혜가 은혜 중 은혜입니다. 이 깨달음이 없으면 사람이 생각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일이 잘될 때에는 만용하고 교만하고 자만하고 거드름을 떨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의 복이 가장 큰 복입니다.

 

어느 농부가 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 닭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도 낳지 못하는 묵은 닭이 알을 잘 낳는 새댁 닭들을 못살게 굽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얼마나 미운지 그만 붙잡아 독방에 가두곤 3일 동안 금식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3일되던 날 알을 낳더라고 합니다. 울안에 혼자 갇혀 생각하다가 이 닭이 깨달은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합니다. 그래서 닫힌 마음을 열게 하고 보이지 않던 천국을 보게 합니다. 이 깨달음이 복이고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해하도록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심”

 

 

 

또 본문 2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부모는 자식에게 가장 정직합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에게는 잘되기를 바라고 유익하게 해 줍니다. 어떤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업자가 그 불량식품을 자기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상했지만 하도 강하게 먹지 말라고 해서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작문시간에 글을 썼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불량식품을 만들어 팝니다, 그리고 우리보고는 먹지 말래요“. 그래서 그 아버지가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아버지도 자기 자식에게는 그 불량식품을 먹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또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잘되도록 도와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이 부모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야 말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신안 앞바다 섬에서는 호파 농사가 주 농사라고 합니다. 어느 장로님이 그곳에서 호파를 재배합니다. 재배해 놓으면 도시의 사업가들이 와서 밭떼기로 사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은 교회를 짓는데 헌금해야 하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적기인데도 팔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몇 일후 값이 1/10까지 폭락했습니다. 그러자 이분이 너무 사람들 보기에 장로가 욕심쟁이라고 욕할까 봐서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호파 밭을 포기하고 버리다 시피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호파농사를 망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신안 섬마을에는 날씨가 온전해서 호파농사가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 호파 값이 비싸져서 전보다 두 배를 더 받고 팔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단어는 감사라는 단어입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최상의 단어입니다. 그 속에 마음의 깊음이 있고 삶의 깊음이 있고 정신의 깊음이 있고 보은의 깊음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추수감사”라는 말에는 그냥 감사의 의미가 아니고 더 높은 감사의 뜻이 들어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 하면 청교도들의 감사를 언뜻 떠올리지 않습니까. 청교도들이 드렸다는 추수감사의 정신은 참 숭고하고 지극한 감사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순수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11년 동안이나 도피해 가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도피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영원한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 8. 15 고향을 떠나 미국 땅으로 향합니다. 그 길은 춥고 위험하고 장래를 알 수 없는 모험의 길이었습니다. 102명이 작은 배에 몸을 싣고 3400마일 되는 바다를 63일 동안 항해해서 마침내 미국 땅에 도착합니다. 항해하는 도중 그들은 선상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에서 그들은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새 세계에 가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며 살아보자, 그리고 우리의 인생 모두를 하나님을 위해 바쳐서 살아보자, 그리고 그 땅을 일구어 신앙의 나라를 세우고 일생을 마칠 때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남겨놓고 가자“.

 

배를 저어 가는 63일은 상당히 추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102명이 출발했는데 가다가 죽고 도착해서 죽어 한 해 동안 절반이 얼어서, 굶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첫 곡식을 추수해서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이 죽어 묻힌 공동묘지에서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첫 추수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그들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멕시코 사람들처럼 황금을 캐러 온 것도 아니다, 우리는 참된 신앙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 앞으로 이 땅에서 신앙의 자유가 꽃을 피울 것이며, 인간의 삶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이 우주에 빛날 것이다.” 이것이 추수감사의 정신입니다. 얼마나 처절함을 딛고 창조하고 개척한 고난의 길입니까.

 

한때는 어렵고 춥고 배고프고 동료들이 죽어가는 아픔도 있었지만 오늘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통해서 마침내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은혜를 입어 오늘 미국인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결과를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후손들이 오늘 연중 명절 가운데서 추수감사절을 가장 뜻있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우리가 농사도 짓지 않는데 무슨 추수감사냐 하고 불평을 합니다. 여러분, 야만이 따로 있습니까.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것이 야만입니다. 농사짓지 않으면 무엇을 먹고 산단 말입니까. 인간이 다른 피조물보다 우월하고 값이 있다는 것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을 알고 사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스펄 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의 빛을 주신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매년 맞이하는 절기의 예배가 아니고 진정 우리로 하여금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이 오늘 여기까지 은혜 중에 살아온 것은 모두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배후에서 기도해 주시고 염려해 주셔서 오늘 이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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