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감사! 감사! 또 감사! (시 136:23-26) (추수감사절)

by 【고동엽】 2022. 4. 6.
 
목록가기
 

감사 감사 또 감사

 

 

                              시 136:23-26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 입니다. 해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을 때는 한해가 저물어 갈 때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반드시 추수만 해서 감사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한해 전체를 은혜 중에 살아온 것을 감사하는 주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금년 한해를 은혜 중에 살아온 것을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개인에 따라서, 교회에 따라서 이 감사한 일들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은혜들을 생각하고 되새겨 가면서 오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값은 이렇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삶에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감사의 장”이라고 부르는 말씀입니다. 본 시편의 내용은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인자하심과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내용의 시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 본문 136편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인자하심을 찬양하라는 후렴이 붙어있는 아주 독특한 시입니다. 이 시는 구약시대에 예배하기 위해서 성전에 들어갈 때 청중과 찬양대가 서로 응답하면서 낭송했다는 시입니다. 예배드리러 성전에 들어갈 때 앞서가는 찬양대가 “여호와께 감사하라”하고 부르면 뒤따라가는 청중들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고 서로 응답하면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건별로 지적해서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에 비천한데서 이끌어내신 일을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23절을 보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서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고 했습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누구나 한때 비천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의 가난함, 초라함, 실패, 무지함들, 생각만 해도 참 그때는 암담했을 것입니다. 지난날 우리민족의 가난, 우리 집집마다의 궁핍함, 무지함들 그 때를 생각하면 참 암담합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그 초라했을 때를 생각하고 오늘을 생각하면 참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넘치게 살고 이제는 살쪄서 고민인 것을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과거의 비천한데서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또 24절을 보면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나 우리민족이나 지난날의 그 암담함, 식민지생활, 또 전쟁의 고난에서 건짐 받은 것을 생각하면 또 감사한 일입니다. 지난날 우리민족은 배고픔의 기억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인데 거기다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전쟁의 아픔도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민족이 일본으로부터 지배를 당하고 살아갈 때 지배하던 일제의 힘이 너무 막강해서 우리는 당해낼 엄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6,25때 공산주의의 무자비함이 너무나 잔인해서 우리는 전쟁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밀려서 후퇴하고 낭패를 당했었습니다. 그때 UN국제 연합군이 참전하는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민족은 벌써 공산화되었을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일제로부터 해방되었고 전쟁에서 헤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도 안 되는 이론을 앞세워 6,25전쟁이 해방전쟁이었다느니 UN군이 없었다면 벌써 통일 되었을 것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참 철이 없어도 분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교수라는 사람이 학문의 표현이라고 철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학문이 그런 학문이 있습니까. 모두 배부르니까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배가 부르면 이렇게 만용을 저지르게 됩니다. 감사는커녕 자만해지고 인간주의를 선언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지혜로운 민족의 신앙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사람은 생각이 바르고 사실을 사실로 보고 판단하며 살아가야 복을 받습니다.

 

세 번째는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25)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25절을 보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고 고백합니다. 생각하면 모두가 감사할 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모두가 감사한 일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특별히 우리들이 몇 가지를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풍년을 주신 것을 감사”

 

 

 

참 우리나라는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별로 백성들이 선하지도 못하고 정직하지도 못한데 하나님은 우리민족에게 해마다 풍년을 주십니다. 우리나라는 참 비옥한 나라입니다. 서울에서 개성을 가다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기름지고 비옥한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펼쳐지는 북한 땅을 보면 산에 나무 한그루가 없는 황량한 빈들만 보입니다. 그렇게 삭막할 수가 없습니다. 산뿐 아니고 들을 보아도 벼들이 너무 빈약해서 태풍이 불어도 넘어질 것도 없을 만큼 짧고 이삭이 볼품이 없습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오려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다 보면 참 남쪽 땅은 낙원입니다. 온 산이 나무와 숲으로 풍성하고 들은 황금물결을 이루고 시냇물이 흐르는 참 비옥한 땅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이 남한 땅은 축복을 받은 땅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집트에서 돌아다니다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들어서게 되면 금방 표 나는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이집트 땅은 전체가 황무지 땅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공항을 비롯해서 전 국토가 벌건 황무지 땅입니다. 나무 한그루가 없습니다. 온 국토가 사막과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면 녹초가 있고 푸른 산이 보이고 푸른 들이 펼쳐집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가는 곳 마다 모든 것이 넘칩니다. 풍성합니다. 생각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람들이 많이 먹고 살아가게 되니까 사람들이 옛날 배고팠던 때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살찌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우량아를 선발하기도 했습니다. 살찐 아이들이 우량아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모두 살쪄서 고민입니다. 오늘 우량아는 모두 고민덩어리 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 성경은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고 고백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줄 것 있음이 감사”

 

 

 

이렇게 풍성해지니까 나누고 베풀고 주게 되었습니다. 이점이 무엇보다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게 나누고 주고 베푸는 삶, 이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늘 구제받고 살면 안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원리일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한때 얻어먹고 살던 민족입니다. 한때 구제품도 받았고 구제 옷도 받아 입었고 신발도 받아 신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없으면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구제는 잠시 동안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구제대상에서 스스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 생활을 오래하면 그 구제 상태가 자꾸만 연장됩니다. 그리고 오래 얻어먹으면 거지근성이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자존심도 체면도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인간이 구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민족은 잠시 얻어먹다가 곧 바로 주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한국의 월드 비전은 한국 동란 때 한국의 고아들 때문에 생긴 국제 구호기구입니다. 피얼스라는 분이 6,25때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후 한국의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고 월드비젼이라는 국제 구호기구를 만들어 미국의 구제물자를 들여와 한국의 고아들을 집중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국의 월드비젼이라는 기구가 오늘은 가난한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는 기구로 발전했습니다. 이제는 나누어주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2004년도 한국이 해외에 원조한 금액이 723억 원입니다. 그중 기독교 단체가 보조한 금액이 539억 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원조한 금액이 전체금액의 74.6%입니다. 그중 한국의 월드비젼이 지난 한 해 동안 가난한 나라들의 어린이들에게 도와준 금액이 82억 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북한을 위해서 정부가 지원한 것이 1,200억 원입니다. 그런데 민간단체가 지원한 금액이 1,470억 원입니다. 그 민간단체 대부분이 기독교 단체들입니다. 이렇게 돕고 나누고 살아가니까 오늘 하나님이 이 땅에 이렇게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주어야 넘칩니다. 나누어야 풍성해집니다. 베풀 때 또 다시 받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눅 6:38)고 했습니다. 주는 삶에 복이 있고 은혜가 있고 행복함이 있고 넘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민족이 줄 수 있는 민족이 된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할 수 있음이 감사”

 

 

 

감사는 먹을 것이 풍성하게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감사는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배우면 비로소 눈이 뜨이고 감사할 조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좀 깊이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작은 볍씨 하나를 심으면 최소한 100개에서 많으면 120개의 벼가 열립니다. 이런 장사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120배의 장사입니다. 작은 호박씨 한 알을 심으면 씨보다 수백 배나 더 되는 큰 호박이 열립니다. 이래도 감사한 마음이 울어 나오질 않습니까. 겨자씨보다도 작은 배추씨 하나를 땅에 심으면 엄청난 배추 한포기가 생산됩니다. 과일나무를 한번 심어놓으면 매년 저절로 탐스런 열매들이 열립니다. 이 열매들이 너무나 많이 열려서 속아내야 할 정도로 열립니다.  

 

이것을 보고도 감사함이 없다면 그것이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그래서 사람이 생각이 없으면 항상 불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복을 받는 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판단이 다르고 보는 시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릅니다. 달라지면 내 마음에서 인색함이나 원망이나 불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감사함의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삶의 질이 나타나고 향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감사하며 살아갈 때 기쁨이 주어지고 즐거움이 주어지고 행복한 삶이 만들어집니다. 그때 물질이 창고에 가득 없어도, 노루 같은 건강이 없어도 행복해집니다. 그때 너도 사랑하게 되고 누구를 만나도 반갑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일이 잘되고 일의 능률이 나타나고 일의 즐거움이 주어집니다. 그때 진정 일하는 즐거움이 주어지고 행복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오늘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시에 살고 있고 우리는 농사도 짓지 않고 추수할 것도 없는데 무슨 추수감사절을 지키는가.” 그 생각 자체가 교만이고 자만이고 무지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매일 같이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흙을 먹습니까. 돌을 먹고 사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탄식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지만 ... 어리석게 되어 미련해졌다“(롬1:21)고 말입니다.

 

말을 잘해야 합니다.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옛 말에 말대로 된다는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말은 그 사람의 의식에 그대로 적용하도록 암시를 줍니다. 그래서 말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생각도 잘해야 합니다.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을 하게 되면 그 생각과 그 말에 스스로 사로잡혀 마침내 올무에 빠지기 쉽습니다.

 

죠지 뮬러 목사가 하루는 농촌을 방문했습니다. 부잣집 농부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풍성한 음식이 차려졌습니다. 그때 무디 목사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시다” 하고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농부가 “나는 그런 것 못합니다, 농사는 내가 지은 것인데 누구에게 감사한달 말이요, 그리고 나는 지성인입니다“하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바라보던 죠지 뮬러 목사님이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존재가 하나 있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 농부가 반갑게 “아니 당신 집에도 지성인 대학생이 있단 말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뮬러 목사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아니요, 우리 집 돼지가 그렇소.”

 

사람은 감사하고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감사의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은혜도 알고 살아갑니다. 그래야 먼저 하늘의 은혜를 알게 되고 다음으로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고 농부의 수고를 알게 되고 농산물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내 밥상에 까지 오르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종은 “오늘 몸에 한 가닥 실오라기라도 감았거든 항상 베짜는 여인의 수고를 생각하고 하루 세끼니 밥을 먹거든 매양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고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감사하며 은혜를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인생이 성숙했다는 말이고 인생의 깊은 은혜를 알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 147편을 보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그가 구름으로 산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여호와는 말이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신다“(7-11)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탈도 많았던 2005년도를 보내면서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한 해 동안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날입니다.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들뿐입니다. 모두가 은혜입니다. 마땅히 감사할 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넘치는 감사의 삶이 만들어지고 더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오늘 이 같은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