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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V)행복한 교회 (골 2:6-7 / 추수감사주일예배)

by 【고동엽】 2022. 4. 5.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사실 이렇게 감사주일을 정하면서까지 감사를 하라고 강요하는 건 어떤 면에선 옳지 않습니다.

감사는 스스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감사하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인데 워낙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니까

반강제적으로 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어버이날을 만들고 어린이날을 만들어서

부모님 생각 해드리고, 아이들 생각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주보에 간략하게 실어 놨습니다.

시간 되시면 한 번 씩들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단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구원 받지 못한 세상의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사실 다 이 쪽 아니면 저 쪽입니다.

이쪽은 우리처럼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입니다.

저 쪽은 예수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입니다.

비록 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우리의 호흡이 끝나고 삶을 마감할 때는 엄청난 차이를 갖게 됩니다.

 

어떤 차이가 날까요?

성경에서는 이런 차이가 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히 9:27-28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지금은 아무 구별 없이 그냥 우리가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우리 죽고 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선한 일을 한 사람, 곧 예수를 믿은 사람은 영원히 사는 생명의 부활로 살고,

악한 일을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사람은

영원히 벌 받는 심판의 부활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뜻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네.

당연히 선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편에 서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는 권면의 말씀 중

6절의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라는 삶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우리 생명의 구주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니까

이제 우리 살 길은 예수 안에서 사는 길인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조상 때부터 예수 믿었기 때문에 그저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예수 믿을 수 없습니다.

 

엡 2:8-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미처 예수 믿는 것을 생각지도 못 했을 때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안에서 지으시고 그 안에서 행하고 살도록 하신 아주 귀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욕심들로 인해서 죄도 짓고

허물도 많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서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여부에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이 공부 잘 하는 걸로만 사랑하는 건 아닙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그것으로 고맙고 감사한 겁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계속 해서 추구해가야만 할 신앙적인 자세가 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자세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7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에는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네 가지의 권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뿌리를 박으며”입니다.

 

렘 17: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나무는 뿌리를 잘 내려야만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뿌리를 통해서 모든 영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뉴스에서 요즘 길 가에 심은 가로수들이 뿌리를 제대로 내리질 못해서

말라 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가로수들이 아름답고 멋진 단풍을 보여줘야 하는데

뿌리를 통해서 물을 공급받지 못하니까 말라 죽는 잎만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로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그 뿌리를 박고 살아야만 합니다.

성도의 삶은 말씀에 뿌리를 두는 삶입니다.

때문에 말씀 앞에 부지런히 서야만 합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우리 심령은 메말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지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영양분이고, 말씀이 양식이고, 말씀이 힘입니다.

 

다음은 “세움을 입어”입니다.

“세움을 입는다.”는 것은 건물로 지어져 간다는 의미입니다.

 

엡 2:19-22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건물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의 삶을 중심으로 해서 점차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완성되는 건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벽돌을 한 장 한 장 올려 건물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 닮는 그런 삶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어리석지만 점점 더 예수님을 닮는 모습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이 이제 내가 아니라 예수님임을 고백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믿음에 굳게 서서”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세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벧전 5:9-10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구약에서 자주 표현되는 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그런 자세를 말합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 믿음을 버리지 않는 자세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들의 삶은 결국 죽음뿐이고 멸망뿐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영원한 형벌의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가치를 따라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환경이나 형편에 따라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입니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사 51: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감사함이라는 건 새삼스럽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두 말 하면 잔소리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나를 만들어 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실제로 오늘 헬라어 성경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말을 수동태로 나타낸

다른 세 가지의 권면과는 다르게 능동태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당연한 태도입니다.

 

우리 교회는 가난한 개척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지킬 수 있음은

감사에 깨어 있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일을 사오고 떡을 만들고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하는

귀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복된 성도들입니다.

 

이런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나무목교회는 언제나 감사가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나무목교회 때문에 이 세상의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그런 은혜가

끝까지 계속되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 3:12-14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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