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세베루스(Septimus Severus)의 치하인 202-3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두 여성이 기독교인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페르페투아(Vibia Perpetua)라는 20살이 약간 넘은 귀족 여성과 그녀를 돕는 여성 펠리키타스(Felicitas)가 함께 투옥되었다. 페르페투아는 결혼하여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이의 엄마였다.
아직 경찰에서 심문을 받고 있을 때 귀족 아버지가 찾아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집안을 택할 것을 권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버리도록 요구하였다. 페르페투아는 아버지에게 꽃병을 가리키면서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꽃병”이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아버지에게 “꽃병을 꽃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기독교인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고 하며 신앙을 지키고자 하였다.
다른 날 다시 찾아 온 아버지는 페르페투아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신앙을 버리도록 권하였다. 어머니보다 어떻게 먼저 죽을 수 있는지, 특히 아직 젖을 떼지 못한 갓난 아이를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고 감정에 호소하였다. 딸의 발 앞에 엎드리어 간청을 하기도 하였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딸에게 화를 냈다가 눈물로 호소했다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신앙을 져버리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페르페투아의 신앙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페르페투아는 그녀대로 아버지에게 자신이 당하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천국을 위한 기쁨일 뿐임을 알리고자 하였다. 비록 사람의 눈에는 당장 고통 속에서 죽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 우리 삶이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증거하였다.
심문관인 힐라리아누스는 페르페투아의 마음을 꺽으려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심한 매질을 하게 하였다. 그녀에게 이중적인 고통을 주려는 심산이었다. 신앙적인 고집 때문에 노령의 아버지가 매질을 당하는 고통을 딸이 받기에는 너무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그녀는 참았다. 그녀는 기도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었다.
드디어 처형날이 다가왔다. 젊은 여자들에게는 미친 소를 풀어 싸우게 하였고 소가 그녀의 옆구리를 들이박아 많은 피를 흘렸지만 죽지 않았다. 페르페투아는 다른 여인들을 돌보아 주려고 하였고 다시 표범을 풀어 물게 하였다. 표범의 공격에도 살아남게 되어 결국 군인들의 칼에 생명을 마치게 되었다.
갈비뼈를 심하게 다쳐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어진 그녀는 검투사에게 목을 쳐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오히려 손을 떨고 있는 검투사에게 목을 내밀어 최후를 마쳤다.
처형장에 흘린 그녀의 피가 1,8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 신앙 속에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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