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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디모데 (딤후 1:3-5)

by 【고동엽】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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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디모데 (딤후 1:3-5)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해서 한 가지 또 빼놓을 수 없는 날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날이 성년의 날입니다. 옛날 같으면 이날 관례를 행하면서 굉장히 소중한 날로 보냈을텐데 요즘은 성년의 날이 청년들에게조차도 아주 무의미한 날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청년들을 생각해 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청년은 그 사회의 가능성 그룹입니다. 젊은이에게는 미래가 있고 꿈이 있고 용기가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사회는 그만큼 부강하고 건강하고 미래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정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이 많은 사회나 가정이나 교회나 단체는 모두 축복을 받은 곳입니다.
청년, 젊은이, 청춘, 이 얼마나 소망이 넘치고 희망찬 단어입니까? 거기에 미래가 있고 가능성이 있고 꿈이 들어 있고 장래가 들어 잇는 그런 말들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한창 싱싱하게 자라고 잇는 젊은이들을 보면 마치 지금 한창 떠오르고 있는 태양과도 같이 아름답고 희망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젊은이들의 힘찬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들 때문에 또 크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용기가 있고 패기가 있고 힘이 넘친다고 해서 반드시 능사는 아닙니다. 그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실수의 조건이 될 수 있고 실패의 조건도 될 수가 있고 또 자만에 빠지게도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사고를 내는 것을 보면 헌 차는 사고율이 적습니다. 헌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은 무리하게 달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고율이 적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내는 차를 보면 대부분은 새 차입니다. 새 차는 조금만 밟아도 잘 달리니까 사정 없이 달리다가 그만 사고를 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사고를 내는 사람들도 보면 노인들이나 병든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사고를 많이 냅니다. 젊은이들은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너무 과신합니다. 자신의 힘을 너무 믿습니다. 그러다가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젊은이다운 젊은이를 한 명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젊은이야말로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했던 디모데라는 청년입니다. 이 데모데는 적어도 세 가지 위대한 자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내용이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본문 4절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속에는 거짓이 없는 보배로운 믿음이 있다." 이것이 바로 디모데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자본입니다. 청년이 청년 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깨끗하고 참신하고 거짓이 없는 마음과 생각 때문입니다. 젊은이의 값은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젊은 루터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까 마음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런게 순수하고 맑고 청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죄를 짓게 되어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마다 루터는 수도원장을 찾아가서 고해 성사를 했습니다. 고해 성사를 하고 나오다가 순간적으로 좋지 않은 생각이 스쳐만 가도 다시 되돌아가서 고해 성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깨끗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때 수도원장이 가만히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자꾸만 가지고 와서는 괴롭힙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 다음에 올 때는 좀 큰 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수도원장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보였지만 루터의 마음이 너무나 맑고 청결했기 때문에 불순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까지도 감당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청년의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년의 값이고 자본이고 무기입니다. 청년이 그런 값을 지니지 못하고 구태 의연하고 무미 건조하고 새로움이 없다면 그는 이미 젊음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당시 루터의 가슴 속에 그런 청결한 마음과 신앙이 있었으니까 당시 최대 권력을 지니고 있던 교황권과 싸워 가면서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존 웨슬리에게도 그런 청결한 마음과 깨끗한 신앙이 가슴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8세기 극도의 합리주의로 인해서 사회가 인본주의로 치닫고 윤리 도덕이 무너져 내리던 영국 사회를 영적 혁명을 일으켜서 변화시키지 않았습니까?
또 다미앵이라는 신부도 그런 야망과 청결한 신앙을 가슴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23살의 그 젊음을 이끌고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 들어가서 나병환자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의 인생을 그곳에서 다 바쳐 버립니다. 이런 용기는 젊은이들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흉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또 젊은이라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가슴 속에 청결하고 꾸밈이 없고 깨끗한 신앙이 들어 있는 젊은이라야 그런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원래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참 고민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꾸만 헬라식 문화를 주입시켜 주었습니다. 헬라 문화는 개방 문화요, 인본주의 문화요, 세속 문화입니다. 젊은이들이 아주 좋아할 그런 문화입니다. 아버지는 아들 디모데가 헬라 사람이 되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정반대입니다. 어머니  우니게는 아주 정숙한 유대인으로 히브리적인 정통 신앙을 가진 여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 디모데에게 경건한 신앙을 심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디모데에게 있어서는 굉장한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살기는 세속 사회인 헬라에서 배우고 살면서 마음으로는 경건한 신앙을 가져야 하니 얼마나 갈등이 심했겠습니까? 그때 디모데가 누구를 따라야 했겠습니까?
그렇게 고민하다가 끝내는 디모데가 어머니를 따릅니다. 그리고 젊은 디모데는 평생 그 가슴에 청결한 신앙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그것도 보통 분명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그렇게 칭찬을 합니다. "내가 밤낮 기도할 때마다 너 보기를 원함은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청년은 무엇보다도 이 같은 내용을 지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비로소 젊은이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배경이 든든한 젊은이였습니다.

 

말하자면 빽이 든든한 젊은이였다는 말입니다. 어떤 빽이냐 하면 믿음의 배경입니다. 어떤 믿음이냐 하면 역사성 있는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5절을 보면 "(딤후1:5)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디모데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거쳐서 3대에 내려오는 역사가 있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굉장한 빽이고 든든한 배경입니다. 이것이 굉장한 배경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그 사람이 바로 신앙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원래 배경에는 여거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재물의 배경도 참 좋은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두 젊은이가 청운의 뜻을 품고 사회에 첫 발을 디뎠ㅅ브니다. 그런데 이 두 젊은이 중 하나는 재별의 아들이었꼬 또 하나는 농사 짓는 필부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됩니다. 마치 경기장에서 한 사람은 중간에서 뛰어가고 또 한 사람은 처음부터 뛰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청운의 꿈을 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수많은 졺은이들이 이런 사회적인 불공평한 환경을 보고 나서 실망을 하고 낙심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악을 써 가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고 하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의 배경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좋은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화려한 가문의 벼경입니다. 이것은 물질의 배경보다 훨씬 더 좋은 빽이고 배경입니다. 케네디가 젊은 나이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그의 화려한 가문의 배경이 큰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케네디가 무명의 어느 농사꾼의 아들이었어 보십시오. 그렇게 젊은 나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것들보다 훨씬 더 좋은 배경은 신앙의 배경입니다. 그것도 "역사성 있는 신앙"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배경이고 든든한 빽입니다. 수년 전에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서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하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왜 똑같은 기간에 미국은 이렇게 발전을 했는데 우리 남미는 발전이 더디냐"하고 물은 다음에, 스스로 그 원인을 대답하기를 "맨 처음 북미의 개척자들은 하나님을 찾아서 이 대륙을 건너왔으나 우리의 조상들은 황금의 노다지를 찾아서 남미로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분석입니까? 사실이 그렇습니다.
미국의 조상들은 신앙을 찾아서 그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남미의 조상들은 노다지를 캐려고 그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세월이 가고 역사가 흐른 다음 오늘에 와서 보니까 이렇게 현저한 차이을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미국 선교사 스탠리 존즈 박사가 한 이야기입니다. 1852년 어느 날 미국의 중남부 도시인 오마하를 떠나서 서부 태평양 연안을 향하여 달리는 두 무리의 포장마차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두 무리는 같은 길을 함께 계속해서 달려가다가 마침내 두 갈래 길이 아놀 때 서로 갈라져서 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 한떼는 그들이 포장마차에 "가드 시커스"라는 표를 달고 달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대륙에 건너온 청교도들의 후예들입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포장마차에는 "골드 시커스"라는 표를 달고 달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노다지를 찾아서 헤매는 황금 추적자들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청교도들의 후예들은 북미 대륙을 개척해서 오늘날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설했지만, 황금 추적자들은 황금을 찾아 다니다가 황금을 얻기는 했지만 오늘에 와서는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는 오늘의 남미를 건설한 조상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어떤 유산, 어떤 배경, 어떤 빽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어떤 면에서 보나 복을 받고 살아갈 사람이 못 됩니다. 아주 불성실하고 거짓되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니믄 그를 버리지 않습니다. 가는 곳마다 따라가십니다.
가셔서 야곱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곁에서 도와주십니다. 위로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야곱을 포기하실 수가 있습니까? 야곱의 할아버지가 누구입니까? 할머니가 또 누구입니까? 아버지가 누구며,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를 불성실하다고 해서 쉽게 버릴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던 야곱이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그를 인도해서 마침내는 성자로 만들어 놓습니다. 얼마나 힘있는 빽이고 배경이고 좋은 유산입니까?
디모데는 그렇게 화려하지는 못했지만 두고 두고 힘이 되고, 든든한 빽이 되는 역사성을 지닌 믿음을 배경으로 둔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세속 사회에 몸 담고 살았던 디모데였지만 후에 그렇게 순전하고 참신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가는 배경과 빽은 바로 이런 역사성을 지닌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장래성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딤후1:6)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게 하라" 지금 디모데의 가슴 속에는 하나의 은사가 들어 있습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 은사는 무한한 밈을 동반한 잠재력입니다. 그 은사를 활용만 하면 무한한 능력을 공급해 주는 하나님의 힘이었고 능력이었습니다. 얼마나 장래성이 있는 축복을 지닌 젊은이입니까? 젊은이에게는 이 같은 잠재력이 있어야 합니다.
며칠 전 어느 TV를 보니까 그런 대화가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쁜 처녀에게 사회자가 묻습니다. 앞으로 결혼한다면 다음의 세 후보 중에 어떤 사람을 선택하겠느냐고 하면서 세 모델을 말합니다.
한 젊은이는 잘생긴 젊은이고, 또 한 젊은이는 부자 청년이고, 나머지 청년은 지금은 가진 것이 별로 없고 초라하긴 하지만 똑똑한 청년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택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그 쳐녀가 똑똑한 청년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청년이야말로 오늘은 별로 화려하지도 않고, 가진 것도 별로 없지만 그 대신에 모든 것을 가능케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주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사람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젊은이에게는 장래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비록 오늘은 초라하고 화려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뜻을 이루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그 잠재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야말로 무한한 장래성이 있는 젊은이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격려하기를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라"고 격려합니다. 그 결과 후에 디모데가 얼마나 훌륭한 전도자가 됩니까?

오늘의 젊은이들은 너무 현실 위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너무 하려한 것을 우선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겉에서 보면 약고 야무지게는 보이는데 좀 깊이 들여다보면 디모데 같은 그런 잠재력이나 깊은 내용은 없습니다. 이것이 온르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큰 약점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누구보다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얼마 지나면 그만 그 자리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몯 내면을 경히 여기고 외면을 중시해서 그렇습니다.
5월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 가정을 생각해 보고, 부모를 생각해 보고, 또 젊은이들은 디모데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보다 소중한 것들이 뭔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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