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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평화의 요소! (마 10:12-13)
5월은 가정을 생각하게 하는 달입니다. 5월은 자녀들을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하고, 가정을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달입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산업 사회가 되면서 가장 많이 희생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좋은 가정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이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이 가정 제도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제도들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제도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3대가 안방에 화로를 중심으로 모여서 서로 대화하며 집안 이야기며 이웃에 대한 이야기며 친척들의 대소사를 이야기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천국의 축소된 모습이나 마찬가지의 안식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이같이 좋은 가정 전통들이 모두 변질되었고 퇴색했고 마침내는 삭막해졌습니다. 전에 비해서 돈도 많아졌고 집도 커졌고 생활도 윤택해지기는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전과 같은 그런 아기자기한 가정의 모습들은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선 갈등을 겼는 가정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불화하는 가정들도 많아졌습니다. 또 많은 노부모들이 수난을 당하고 방치되고 무시되고 있ㅅ브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좀 잘 살면 무엇합니까? 좀 큰 집에서 산다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은 가정마다 보면 평화가 때진 가정들이 많아졌습니다. 근래 우리 사회는 이렇게 좋은 전통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전도자들을 내 보내면서 당부하신 분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집에 가든지 들어가거든 먼저 "평안을 빌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이 가정다워지려고 하면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평안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깨지면 그 집은 아무리 좋은 고대 광실 높은 집이라고 해도 그것은 불행한 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느 집을 가든지 먼저 평안을 빌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평안" 이것은 행복의 요소입니다.
그런데 가정에 평안이 있고, 평화가 있는 가정이 되려고 하면 그냥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닏. 거기에는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1.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의 원칙입니다. 가정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려야 비로소 평안이 있고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런 가정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속상해 하시고 서운해 하시고 불화하시면 가정 전체의 평화가 깨지게 됩니다. 여러분, 부모님들에게 생존해 계시는 동안 마음 평안하게 해드리십시오. 그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생존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축복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비로소 알게 됩니다. 부모님이 앉아 계시던 자리가 얼마나 큰 자리인지, 그 분들의 역할이 얼만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그 분들이 앉아만 계신 것도 얼마나 큰 것인지는 가신 뒤에나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부모! 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어머니, 아버지, 이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세상에 또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이 부모들의 자식을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진합니까?
여러분, 옛날 고려장 이야기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고려장이 있었다는 시절에 어떤 아들이 늙어서 쓸모가 없게 된 어머니를 지게에 태워서 산속으로 데리고 갑니다. 깊은 산속에 갖다 버리러 가는 중입니다. 그때 지게 위에 앉아 있는 어머니는 손에 닿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자꾸만 길에 뿌리고 갑닏. 그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나뭇가지를 자꾸만 꺾어서 버리십니까?" 그때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네가 집에 돌아갈 때 혹시 길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어서 그런다. 돌아갈 때 나뭇잎만 보고 가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자식을 향한 마음입니다.
거기 어디에 이해 타산이 있고 계산이 있고 술수가 있고 가면이 있습니까? 이 같은 부모의 마음은 하늘이 준 마음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으 마음은 동물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 하늘이 주신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공경하는 면에 있어서는 부모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여기서 있습니다. 계명 중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하나님 공경과 부모공경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잘 이루어지면 하늘과 땅의 뜻을 다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정이 바로 스위트 홈이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데는 그곳에 이해 타산이 없어야 합닏.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 하고 전적인 공경이어야 합니다. 거기에 이해 타산적인 계산이 개입되면 가식적인 사랑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값이 없어집니다.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머리 위에 부어 가며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이 전적인 사랑입니다. 거기 어디를 보아도 아까워 하거나 주저하는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거기에 이해 타산적인 마음이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런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렇게 흐믓해 하셨지 않습니까? 얼마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랑이고 헌신이고 공경입니까?
그런데 가룟 유다는 곁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고는 그것을 돈으로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 타산적으로 따지고 있습니다.
여려분, 진정한 사랑에는 낭비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낭비가 없이는 진정한 사랑도, 헌신도, 희생도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원래 진정한 사랑을 말할 때는 값을 따지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값이 비싼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비싼 향유를 바쳤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렇게 흐믓해 하신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이나 헌신이나 희생에는 돈이 다가 아닙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더 소중한 모습은 자기의 머리를 풀어서 그 머리털로 흘러내리는 향유를 닦아 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전적인 사랑이고 전적인 헌신입니다. 이것은 돈 가지고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진정한 사랑입니까? 이런 사랑이 있는 곳에는 이해 타산적인 마음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문제가 있다면 모든 것이 이해 타산적이라는 것입니다. 가정들이 자꾸만 불화한 것도 보면 거기에 이해 타산적인 계산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오늘 노부모들이 수난을 당하고 자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도 보면 거기에 이해 타산적인 계산이 들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얼마나 세속적입니까? 부모가 이용 가치가 있으면 온갖 관심을 다 보이지만, 무능해서 별로 이득될 것이 없는 부모들은 지금 어떤 대우를 받고 살고 있습니까? 얼마나 계산적입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미리 알고 향유를 갖다 부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순수한 마음과 헌신하는 마음으로 평생 고이 간직해 두었던 향유를 갖다가 주님께 부은 것인데 주님은 뜻밖에도 의미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니라" 마리아는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며칠 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알고 보니까 자신의 행위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알고 한 일같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마리아는 나름대로 진실하게 살고 순수한 뜻을 가지고 헌신했는데 그만 뜻밖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하고 베풀고 사랑하고 순수한 뜻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선한 결과로 연결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평화롭고 행복한 거정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고, 그 사랑에는 이해 타산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있다면 오직 일방적인 사랑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정이 비로소 평안이 있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시면 아무리 잘해도 후회만 남습니다. 그래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스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 평화를 이루는 가장 기본이 되는 도리입니다.
2. 가정에는 부모의 자기 소멸도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부모들도 예전의 부모들 같지가 않습니다. 오늘의 부모들은 몸을 사리고 자기 삶을 중시하고 예전같이 희생하고 헌신하려는 그런 마음이 점점 흐려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이 시대의 풍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제는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전과 같이 희생하고 살아가려고를 하지 않습니다. 우선 편하려 하고, 자기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자꾸만 구심점이 분산되고 산만해져 갑니다. 이제는 부모들의 예전 같은 자기 소멸적인 헌신의 모습은 없어져 가고 자기 인생 위주로 살아갑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어떤 일에 인생을 걸고 정신 없이 매달려 일하며 살고, 몰두해서 살아가는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정신 없이 매달려 살고 몰두해서 일할 일터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 가정의 부모들이 가정을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마음을 다해서 헌신적인 삶을 살고 평화로운 가정을 조성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아내들이 결혼해서 아이 낳고 기르느라고 정신 없이 살아갑니다. 그때는 하루 해가 그렇게 짧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허튼 곳에 눈길 한 번 줄 틈이 없습니다. 아리 키우랴, 살림하랴 정신 없이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느라고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고민도 없고 걱정할 틈도 없습니다. 다른 곳에는 정신 쏟을 여유조차도 없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면 행복한 것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소위 자기 소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는 한 적어도 고민할 틈이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살아가다가 나이 40이 되고 50에 접어들게 되면 그 달갑지 않은 사추기(思秋期)라는 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크고 여유가 생겨서 시간이 많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앉아서 거울을 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거울을 보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늙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부터가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정신 없이 살아가느라고 몰랐는데 좀 여유가 생겨서 조용히 앉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니까 아주 초라해진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입니다. 이때가 소위 사추기라고 하는 때입니다. 지금 많은 여성들이 이 사추기의 정신적인 변화 때문에 굉장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가정을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 기쁘고 보람 되고 행복하게 생각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후회스럽게 생각되고 억울하고 허무하다고 생각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후회의 단계를 넘어서 우울증으로까지 반전하고 어떤 이는 자실하려고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각한 심적인 변화입니까?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정말 자식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꼬 또 가정 평화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라면 사추기 같은 것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을 보고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또 늙어 버린 모습을 보고서도 후회하거나 놀라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자식들을 사랑했고 헌신적으로 가정을 위해서 살아왔따면 자기 자신이 완전히 소멸되고서도 소멸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삶이 진정 헌신의 삶이고 사랑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삶이 아깝고 억울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사람이 정말 평생을 열심히 심고 가꾸고 살았다면 심은 그대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늙어 버린 자신의 모습만을 보고서 후회하고 허무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자기 소멸의 삶의 모습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밤늦은 시간에 문앞에 서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웃짐 사람이 지나가다가 추운 밤에 밖에서 왜 그렇게 서 있느냐고 물으니까 "딸이 돌아오지 않아서 기다린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들어가서 기다리든지 하지 그렇게 서 있으면 더 빨리 오느냐 들어가서 기라리라고 하니까 이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여기에 이렇게 서 있으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처녀 때 밤늦게 돌아 다닐 때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서 있습니다. "얼마나 진지한 깨달음입니까?
지금은 모르지만 후에는 모두 이렇게 알고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지금 자신의 인생을 허비해 가면서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고 희생하면서 살아가지만 그것은 그렇게 억울한 일도 아니고허비하는 일도 아닙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모두 그런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만 오늘 많이 심으면 언젠가는 심은 만큰 거두게 된다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모두 가정을 꾸려 나간다면 그 가정이 어떻게 불화하고 갈등하고 분산되고 불효하는 일들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정이 가정답고 평화한 가정이 되려면 거기에는 부모님의 자기 소멸적인 삶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비로소 진정으로 평화한 가정이 조성되고, 만들어지고,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5월을 맞이했습니다. 5월은 다행스럽게도 우리들의 소중한 가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달입니다. 연중 바쁘고 분주해서 잊고 살던 가정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입니다.
가저이 평화한 가정이 되고 은혜로운 가정이 되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이런 수고들이 필요합니다. 사랑과 희생과 자기 소멸적인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축복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5월 가정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의 가정에 이 같은 평안과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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