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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부활 주일 설교

부활의 노래! (고전 15:50~58)

by 【고동엽】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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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노래! (고전 15:50~58)

 

오늘 본문을 담고 있는 고린도전서 15장은 일명 “부활장”이라고 불립니다. 모두 58절로 되어 있으며, 고린도전서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부활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고전15:12 말씀처럼,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고전15:35 말씀과 같이, 그들은 이와 같이 물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이미 다 썩어버린 몸인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부활장은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합니다. 고전15:3~4 말씀처럼,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도 자세하게 밝혔습니다.

그런 후 부활장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설명합니다. 고전15:20 말씀처럼,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장은 죽은 자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양상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부활장의 결론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힘차게 불러야 할 부활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네 대지로 나누어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입에서 환희에 찬 승리의 개선가가 힘껏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부활로 인한 변화(50~53절).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몸은 부활합니다. 그 때 우리의 몸은 변화됩니다. 왜 우리의 몸은 변화되어야만 합니까? 또한 그 때 우리의 몸은 어떤 식으로 변화됩니까? 오늘 본문은 우선 부활로 인한 우리 몸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혈과 육”이라 함은 사람의 몸, 곧 사람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예컨대 히2:14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육체를 입으신 것을 가리켜 혈과 육을 지니셨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천국을 의미합니다.   

혈과 육 곧 사람의 몸은 흙에서 왔기에,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따라서 썩어 없어질 혈과 육으로는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이는 너무나도 기본적이며,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의 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에는 결코 적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몸은 영생을 누리기에 적합한 몸, 곧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다시 오실 때의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행1:11에서 천사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 때는 어떠한 일이 생깁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고린도 교회가 아직은 잘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곧 새로운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미 잠자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죽어서 그 몸이 무덤에 묻힌 자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아직은 잠들지 않은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그 몸이 살아있는 채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질 때, 이미 잠자는 자들도 또한 그 때까지 잠들지 않은 자들도 모두 다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모두 다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의 때 살아있는 몸이라고 해서, 더 빨리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죽은 지 오래 되었다고 해서, 더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변화되는 순서는 그 반대로 나타납니다.

 

고전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장차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납니다. 그들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런 후에 그 때 살아 남은 자들도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됩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순서는 살전4:16~17에서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납니까? 그만큼 오래 기다려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순서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모두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됩니다.

 

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모두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됩니다. 이미 죽은 자는 부활해서 변화됩니다.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는 채로 변화됩니다. 아무튼 이 변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어떤 식으로 변화됩니까? 썩을 것을 벗고, 썩지 아니할 것을 입습니다. 죽을 것을 벗고, 죽지 아니할 것을 입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몸은 죽지도 아니하고, 병들지도 아니하고, 노쇠하지도 아니하고, 죄를 범하지도 아니합니다.

빌3:20~21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일어나는 우리 몸의 변화를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러니 장차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은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둘째로, 부활로 인한 승리(54~56절).

 

부활로 인한 변화는 부활로 인한 승리로 이어집니다. 부활의 몸은 전혀 썩지 아니합니다. 부활의 몸은 결코 죽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사망은 부활의 몸을 결단코 주장하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에 부활로 인한 승리가 있습니다.

 

고전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부활의 때,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함을 입습니다. 그리고 죽을 것은 죽지 아니함을 입습니다. 따라서 그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사25:8에 기록된 말씀, 곧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성취됩니다.

사망은 우리에게 이런저런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예컨대 사망은 우리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갑니다. 또한 사망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더 이상 못하도록 막아버립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사망을 가급적이면 피하려 듭니다.  

그러나 사망은 필연적입니다. 사망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육신의 장막을 벗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때 우리는 변화해서 부활의 몸을 입습니다. 부활의 몸은 썩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그 때는 더 이상 사망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의 때가 되면, 사망은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사망은 아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천국에서 다시금 사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가 되면 사망은 완전히 정복됩니다.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는 호13:14 말씀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으로 사망을 비웃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사망은 이기기도 하고 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 사망은 삼킨 바가 되고 이긴 바가 됩니다. 사망은 완전히 정복을 당합니다.

여기에 “쏘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벌에는 쏘는 침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망에도 쏘는 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은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들을 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망은 이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쏘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침을 쏘아버린 벌이 당분간 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벌은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망은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쏘아버렸습니다. 따라서 사망은 더 이상 우리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다음절에 보다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고전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먼저 사망이 쏘는 것은 죄라는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사망이 쏘는 침, 곧 사망의 무기는 죄입니다. 그러기에 죄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사망은 그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죄가 없는 곳에는 사망이 전혀 그 힘을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이미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시103:12 말씀처럼, 하나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습니다. 미7:19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롬8:1 말씀처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이미 다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망은 더 이상 우리를 쏘지 못합니다. 사망은 이미 그 쏘는 것으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사망은 그것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이제 사망은 이미 침을 쏘아버린 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사망은 그저 우리 주위를 맴돌며, 다만 우리를 성가시게 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망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116:15 말씀을 보면,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망은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사망이라는 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인도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 있는 자는 문제가 다릅니다. 그는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그의 죄는 용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모든 죄가 그대로 남습니다. 그러면 사망은 그의 죄 때문에 그를 쏘아서 그를 지옥으로 던져 넣고 맙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오늘 본문 고전15:56 하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죄를 깨닫게 하는 권능이 율법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롬4:15 말씀처럼,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함도 없습니다. 또한 롬5:13 말씀과 같이,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니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는 말씀의 뜻은 율법이 바로 죄를 깨닫게 하는 권능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율법은 성경에 기록된 성문법과 아울러 하나님이 사람의 양심에 새기신 불문법을 모두 포함합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합니다. 일단 죄가 드러나면, 죄는 사망에게 쏘는 것을 부여합니다. 그 결과 사망은 사람의 영혼을 영원히 죽입니다. 

오늘 본문 고전15:16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율법은 죄를 드러냅니다. 드러난 죄는 사망에게 쏘는 것을 제공합니다. 그 결과 사망은 죄를 범한 사람에게 치명타를 입혀, 그 사람의 영혼을 영원히 죽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로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리하면 비록 우리가 율법을 범하더라도, 사망은 우리를 쏘지를 못합니다. 사망은 이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쏘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지금이라도 사망을 비웃으며, 이제라도 사망을 향하여 개선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사망을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부활로 인한 감사(57절).

 

부활로 인한 변화는 부활로 인한 승리로, 그리고 나아가서 부활로 인한 감사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 부활로 인한 변화가 있고, 우리에게 부활로 인한 승리가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 힘으로는 모든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율법을 범한 죄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사망의 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있는 승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일단 우리가 율법을 범하고 죄를 지으면, 우리는 이미 지은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의 삯인 사망을 받아야만 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대속물로 드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주시는”이 현재분사형입니다. 계속해서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미 골고다의 언덕에서 승리는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믿음 안에서 승리를 누립니다. 그리고 부활의 때, 우리는 궁극적이고도 절대적인 승리를 얻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오늘도 내일도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오직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넷째로, 부활로 인한 삶의 자세(58절).

 

우리에게는 부활로 인한 영광스러운 변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로 인한 확실한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로 인한 넘치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부활로 인한 마땅한 삶의 자세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위대한 결론을 밝히는 단어입니다. 부활로 인한 변화가 확실합니다. 부활로 인한 승리가 틀림없습니다. 부활로 인한 감사가 넘칩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로 마땅한 삶의 자세가 따라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부활로 인한 마땅한 삶의 자세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교리적으로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바른 교리, 곧 부활의 신앙에 견실하게 서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는 거짓된 속임수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적으로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15:32 말씀처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리적으로 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실천적으로 우리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22:12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의 수고는 주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상을 주시며, 우리가 행한 대로 다 보상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힘써 기도합시다. 더 열심히 전도합시다. 더 많이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둡시다. 잠시 살다 갈 세상의 일보다, 썩어질 육신을 위한 일보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씁시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도 부활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역시 부활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과는 다릅니다.

요5:29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생명의 부활로 그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옵니다. 우리는 영생을 누리지만, 그들은 영벌을 받습니다.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가운데서, 선택은 각자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그 책임을 영원히 져야만 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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