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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효도의 뜻! (창 9:20-29)

by 【고동엽】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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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효도의 뜻! (창 9:20-29)

 

시골에 계시는 70이 넘는 아버지가 부인과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홀로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서울에 사는 아들이 아버지를 서울로 모셔 올라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여러 가지로 힘들었습니다. 얼마동안 지내면서 집안에 위계질서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집안 질서가 가장 중요한 1호가 며느리더라고요. 며느리가 왕이고, 둘째가 손자 손녀 아이들이에요. 세 번째가 자기 아들…… 아들이에요. 네 번째가 이집의 식모에요. 다섯 번째가 이집의 강아지에요. 그리고 자기가 여섯 번째 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며느리가 집에 딱 돌아오면 자기 남편 언제 돌아온다 했냐. 묻고, 그리고는 강아지 밥 줬냐? 이걸 물어보지만 할아버지 점심 대접했냐.……. 묻는 법이 없어요. 얼마 동안 지내다 지내다가 괴로워서 다시 시골로 내려가면서 아들에게 편지를 써놓고 갔습니다. 편지는 간단합니다. ‘3호야 잘 있어라. 6호는 간다.’ 요새 세상이 이렇습니다.
공자의 제자였던 민자건의 이야기는 역사에 나오는 아주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덕행과 효행은 후세에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렸을 때에 그의 계모는 아주 심성이 고약했습니다. 한겨울이 되면은 자기 아이들에게는 두툼하게 솜을 넣어서 옷을 만들어 입히고 민자건, 이 전처의 자식에게는 옷은 입기는 입었는데 솜 대신에 갈대 잎을 넣어서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민자건은 이것을 잘 알지마는 전혀 원망하지 않고 잘 참고 견뎠습니다. 어느 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불 같이 화를 내면서 이 후처를 당장 내 쫒을 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민자건은 아버지께 이렇게 유명한 말을 합니다.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어머님이 계시면 아들 하나가 춥고, 어머님이 없으면 아들 셋이 춥습니다.” 이 말에 아버지도 감동하고 계모가 회개하고 새 마음을 가져서 그래서 그 아들에게 잘했고 아들이 그 계모에게 효성을 다 해서 후세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특별한 효의 덕이 나타납니다. 이 효도라 하면 일단 부모님을 육체적으로 편안하게 해드리는 겁니다. 음식이나 옷이나 잠자리나 또 용돈이나 뭐 이런 주로 물질적인 문제에 여유를 드리는 편안함을 드릴 때 효도라고 하겠죠? 두 번째의 효도는 좀더 높은 효도입니다. 정신적으로 부모님의 뜻을 잘 받들어서 순종을 합니다. 내 생각에 있어도 생각을 돌리고 부모님의 뜻을 따라가며 부모님의 말씀을 잘 순종할 때에 효자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 높은 것은 그가 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이름을 얻어서 그래서 부모님께 좋은 명예를 드리는 겁니다. 이 사람이 아무개 아들이 아니냐……. 그 부모가 누구가 아닌가 해서 부모님께 높은 고귀한 이름을 드리는 것. 그것이 효도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이야기고 그리고 섬세하고 실제적인 말씀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유능한 하나님의 사람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습니다. 600세 가량 된 거 같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이 오래 살았어요. 홍수 이후에는 급격히 사람의 수명이 짧아집니다. 그런데 600세가 된 노인입니다. 무료하고 또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던 거 같은데 나이가 이런 실수가 옵니다. 그래서 탐식을 하게 되고 자기 조절을 잘 못하지요. 그래서 포도주를 좀 지나치게 마시고 그만 대낮에 벌거벗고 주무셨단 말이에요. 이것을 그 아들이 보았습니다. 이 둘째 아들이 봅니다. 그러고는 신 바람나게 가서 형제들에게 이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벗고 지금 저렇게 주책없이 노망을 떤다고 그랬어요. 이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주석 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 아들이 원래 좀 방종해서 아버지로부터 책망을 많이들은 거 같다고 그래요. 더구나 술 취함으로 인해서 아버지로부터 큰 책망을 들은 일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오늘 보니깐 아버지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깐 신나게 가서 날보고 술 취하지 말라고 하더니 저도 먹어요. 이러고 소문을 낸 거예요. 두 형제는 급하게 와서 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옷을 들고 뒷걸음을 쳐서 뒷걸음을 쳐서 와서 덮어드렸다……. 잠에서 깨어 난 다음에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저들이 행한데에 합당하게 이제 축복과 저주를 내립니다. “함 너는 형제들의 종이 될 것이다. 또 지성을 다해서 아버지의 명예를 높이고 부끄러움을 덮어준 내 아들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얘기는 그겁니다. 그러나 이 속에 엄청난 중요한 효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 자식은 부모의 깊은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뜻을 이해해야 됩니다. 나이 많으면 고독합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낙이 없습니다. 그러니깐 낙이 라는 건 오로지 먹는 거 밖에 없습니다. 뭐 텔레비전을 본다고 하지만 켜놓고 졸고 앉아있고, 그리고 생각도 없고 생각하기도 귀찮고, 그리고는 그저 끼마다 맛있게 음식 잡수시는 그거 밖에는 없어요. 이게 유일한 낙입니다. 그래서 탐식을 하게 되고 지나치게 음식을 많이 해서 한 그릇 잡수시면 밤에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 나이 되서야 비로소 깨 닳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늘 말씀하기를 “나이가 많으면 말이다. 내가 얼마를 먹고 있는지 이 배부른 걸 모른다. 그래요. 의학적으로 위신경이 둔해져서 먹는 걸 몰라요. 그러니깐 그대로 먹어놓고는 일어서면은 일어 설 수가 없어요. 힘이 든다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 말씀이 눈으로 짐작을 해서 요만큼만 먹어야겠다. 하고 먹어야지 배부를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안 된다고, 그런 말씀을 하실 때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이제야 알아요. 이제야……. 그게 그 뜻이구나. 그렇게 된다고요. 나이 많으면 이런 이런 나이 많은 분들에게만 가지는 사정이 있어요. 또 잔소리가 많지 않습니까? 그 왜냐하면 기억력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안 노여서도 그렇지만 지금 한 말을 잊어 버렸거든요. 30분밖에 기억을 못한데요. 그러니깐 또 할 수밖에…….
얼마 전에 숭실 대학 강단에서 저 북한 과학기술대학 설명회라고 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을 기도 부탁했는데 한 80넘은 장로님인데 기도 할 때 가만히 들어보니깐 그 때 월드컵 할 때거든요? 아니 과학 기술대학을 위한 예배에 왜 월드컵이 나옵니까? 월드컵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평양으로 갔다가 다시 월드컵으로 왔다가 이걸 세 번 왕복을 하더라고요. 왔다 갔다 하고, 아이고 큰일 났구나 이거 언제 끝나나 하고 제가 초조했는데 끝났어요. 그게 어떻게 끝났나 했더니 뒤에 알아보니깐 사회 하시는 장로님이 가서 끌어 내렸데요. 그만하라고……. 여러분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이 많으면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려요. 또 할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여러 번 같은 장면을 보았습니다. 저의한테 할아버지 한 80넘은 할아버지가 며느리라고 그래도 환갑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에게 “아가야.” 그럽니다. “네.” “오늘이 며칠이냐?” “며칠입니다.” “음력으로 며칠이냐?” “며칠 입니다.” “무슨 요일이냐?” “무슨 요일입니다.” 조금 있다가 또 “아가야. 오늘이 며칠이냐?” 자꾸 반복해서 저는 버릇이 없거든요. 할아버지 앞에…… “할아버지, 아까 물어 봤잖아요. 왜 자꾸만 물어 보느냐고…….” 어머니가 크게 책망을 하세요. 백번을 물어 보아도 똑같이 대답을 해야 한다. 그 뿐 아닙니다. 언젠가 한번 저의 어머니 저를 만나서 “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요. “할아버지가 왜? 날짜를 물어보는지 아냐.” 이게 바닷가기 때문에 음력에 따라서 물때가 좌우되거든요. 그 물때에 따라서 시장에 생선이 나오거든요. 그걸 잡수시고 싶은 거예요. “내가 모르겠냐?” 그걸 잡수시고 싶은 거예요. “내가 모르겠냐? 다 알지.” 여러분, 그런 거로 충분히 이해해야 됩니다. 다른 낙이 없어요. 그래서 실수도 하고 주책도 하고 과식도 하고 과음도 하고 또 건망증도 있고 노망도 있고 자, 충분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효도에요. 그 분입니까. 그것을 허물을 덮어 드렸어요. 자신들도 안 보려고 뒷걸음질 했어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잠언 10장 12절, 야고보 5장 20절, 베드로전서 4장 8절 사랑은 덮는 것이요. 아니 덮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 허물이 보이질 않아요. 사랑하면 허물이 허물로 보이질 않아요. 다 이해가 되니깐 말입니다. 갈라디아 4장 13장, 14절을 전 읽을 때마다 늘 가슴 뜨겁게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 너의 믿음을 시험 할만 한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나를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했느니라. 할 수만 있으면 자기 눈이라도 때어 주었으리라.’ 얼마나 굉장한 말씀입니까? 얼마나 뜨거운 말씀입니까?
이렇게 한번 추리해 보십시다. 그는 간질병이 있었던 거 같아요. 갈라디아 교회 가서 설교하다 말고 간질병이 발작해서 쓰러졌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거품을 물고 쓰러졌어요. 이제 믿음에 시험이 들것 아닙니까? 아니 제병도 못 고치는 주제에 무슨 설교를 하니? 주의 종이 뭐 저런 정돈가? 안 그렇습니까? 너희 믿음을 시험 할만 한 것이 내 육체에 있건만 너희는 나를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했느니라. 너무 감사해 하고 있어요. 그의 허물과 그의 단점과 그의 약점과 다 덮었어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거예요. 노아는 바로 이 문제에 감사하고 있어요.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두 형제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기억합니다. 온 세상이 다 죄악에 빠질 때 죄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이요. 120년 동안을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한 사람이요. 식구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한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누가 뭐래도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오늘 저 부끄러운 사건이 문제가 아니요. 그래서 저들을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높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축복 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 복을 빕니다. 이삭이 야곱과의 사역에 복을 빕니다. 야곱이 12지파를 앞에 놓고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면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복을 빕니다. 오늘도 노아가 세 아들을 앞에 놓고 함에게 저주하고 두 아들에게 복을 빕니다. “너는 종의 종이 되리라.” 무서운 말씀 아닙니까? 여러분 다시 한번 영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부모님의 마음속에 복 비는 마음이 있어야 되요. 설사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진정으로 자식을 향하여 축복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요. 어떻게……. 오늘 노아와 같이 이렇게 자식의 사랑을 느낄 때, 고마움을 느낄 때 복비는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리고야 비로소 복을 받는 것이에요. 여러분 모순 중에 가장 지극한 모순이 뭐냐면,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기 자식 효자 만들겠다는 사람이에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자식 잘되길 바라는 이게 멍청한 사람들이지……. 그게 턱이나 있는 말입니까? 여러분 복 받는 비결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데 있어요. 그 복이 이어지는 것이에요. 옛날 엔요. 그저 이 세상에 사람 태어난 것만 가지고 기뻐했어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있고야 부모님에게 효도할 마음이 있는 거예요. 지금 내가 괴로울 때마다 부모님이 왜 나를 낳아 놓았나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근본적으로 자기 생 자체를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명예와 신분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지요. 물려받는 데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부모는 첫 번째 가장 근본적인 선생님입니다. 그로부터 신앙을 배우고 기술을 배우고 학문을 배우고 인간의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 물려받은 것에 대한 감사가 비로소 효로 이어지는 것이올시다. 이것은 개명입니다. 약속 있는 개명입니다. 우리 가정 분위기를 참으로 서로 사랑하는 존경하는 분위기를 이루어야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원래 좋지가 않아요. 아주 좋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데 어쨌든 어느 날 어머니가 아이들 앞에서 “나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다시 너희 아버지 아내가 될 거다.” 그랬어요. 그러니깐 아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아이고, 우리 아버지 불쌍해서 어떡하나?…….” 그랬어요. 그게 말이라고 다 되는 줄 아십니까? 감동을 주는 것이 있어야지 여러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KBS방송 프로 가운데에 ‘행복한 세상’이라고 하는 동화 형식의 짧은 프로가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딸 하나만 데리고 사는 그리고 어렵게 사는 어머니가 분식점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그리고 딸을 잘 키우기 위해서 지금 고등학교 다니는데 애가 예술적인 미술적인 소질이 있다고 해서 지금 미술 학원에 보냈습니다. 어느 날 분식점에서 일을 하는데 비가 오더니 장대비가 막 쏟아지는 거예요. 그는 깜짝 놀라서 딸이 돌아 올 때가 된 걸 알고 우산 두 개를 가지고 미술 학원으로 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서 문 앞에 서서 보니깐……. 아이고 일 하던 대로 그냥 왔어요. 앞치마를 둘렀죠. 뭐 옷은 말이 아니죠.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었죠. 이 모양을 하고 여길 온 거예요. 아이고……. 애들이 보면 이거 얘가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가 부끄럽다고 생각 할 텐데……. 그러나 어떡하나 여기까지 왔으니 우산 둘을 쓰고 지금 처마 밑에 서있는데 시간이 되서 저 2층에서 딸이 내려다보는 거예요. 아이고 내가 왔다고 손을 흔드는데 이놈이 안 나오자나요. 엄마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창피해서 안 나오나 보다 요 녀석이 꼭 나를 속 썩이는구먼.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 와요. 한 달 동안 말은 안 했죠. 너무 속상해서 그랬는데 한 달 후에 그림을 잘 그렸다고 미술 발표회를 하고 상 받는다고 해서 미술 학원에 갔어요. 특상을 받았는데 자기 딸이 받았는데 그 상의 제목 그 그림이 제목이 뭐냐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거예요. 우산 둘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 비 맞으며 서 있는 그 어머니의 모습을 딱 그린 거예요. 어머니는 너무 고마웠어요. 그 딸을 끌어안고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효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참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모든 흠을 모든 부족함을 다 덮을 때 그 이름을 높여 줄 때 거기 속에 참 기쁨이 있고 참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장수와 형통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효도하고 장수하고 효도해야 형통한다고 성경은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모쪼록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서 모두가 효도하는 마음 기쁘시게 하는 마음 그리고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복비는 마음 바로 그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귀한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혹이라도 부모의 이름을 부끄럽게 했으면 용서해 주시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또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서 마음껏 복을 비는 그러한 마음들로 이어지면서 가정 가정이 크게 복 받는 그런 귀한 은혜가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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