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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세 아들 (창9:18~27)

by 【고동엽】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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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세 아들 (창9:18~27)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경로석에 한 아가씨가 눈을 감고 자는 척 하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한 어르신이 서 계시다 괘씸한 생각이 들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시요. 여기는 노약자 지정석인데 ... ” 그 말이 떨어지자 아가씨가 눈을 번쩍 뜨더니 신경질적으로 대꾸합니다. “저도 돈 내고 탔는데 왜 이러세요?” 그러자 그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기는 돈 안 내고 타는 사람이 앉는 자리거든.” 요즘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대해 존경하고 어려워하는 미덕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소위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이런 현상이 팽배합니다.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고 사회가 문명화되면, 사람들의 심성이 더 좋아지고 어른을 공경해야 될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반증이며, 말세에 더욱 심화될 것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딤후3:1~2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 말씀대로라면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 사회가 이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각성하고 새로워지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효 사상이나 경로사상이 유교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그런 점에서 약하다고 말합니다. 혹시 제사 문제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전적인 오해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단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꼭 지켜야 될 도리인 십계명(十誡命 The Ten Commandments) 가운데 제5계명이 바로 효의 계명인 것입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 ”
  한번 따져 보십시오. 십계명이 앞서는가? 공자님이 앞서는가? 모세가 출애굽 직후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는데, 그 연대가 언제죠? 많은 학자들이 B.C. 1446년경으로 봅니다. B.C. 15세기죠. 그런데 공자(孔子)는 언제 사람입니까? 그보다 거의 100년 후인 B.C. 6세기~5세기 사람(B.C. 552~479)입니다. 그러니까 공자가 효를 강조하기 훨씬 전에 이미 성경에서 효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어버이날을 지키는데, 그것이 교회와 크리스천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08년 여교사였던 애너 자비스(Anna Jarvis)에 의해 시작된 겁니다. 그의 어머니는 평소 제5계명 효를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추도예배 때 식장을 온통 카네이션으로 장식했고, 그 모습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어머니날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의 헌신적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백화점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어머니날 기념행사를 벌였습니다. 참석한 어머니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선물도 증정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매년 5월 둘째 주일에 어머니날 행사를 가졌고, 그런 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1914년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대통령 때 국가기념일로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Mother's Day)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버이날도 거기서 유래합니다. 1930년 청주제일교회에서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5월 둘째 주일 어머니날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러다 크리스천인 이승만 대통령이 1956년 당시 5월 둘째 주일이었던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제정한 겁니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소외시킨다 하여 1973년 ‘어버이날’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펴본 것처럼 기독교는 어른 공경과 효를 얼마나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좋다면 반드시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런 원리를 꼭 기억하시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할 뿐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 노아의 세 아들 이야기
  본문은 노아 홍수 후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홍수 심판으로 모든 사람이 멸절되고, 노아의 식구들만 생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인류는 노아와 그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고 홍수 심판을 이겨낸 노아는 대단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역시 인간은 별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① 노아의 실수 :
  홍수 심판 이후 하나님의 축복으로 번성하고 있는 가운데, 아마 노아가 방심한 듯합니다. 21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잔뜩 취한 나머지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 평소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추태였습니다.
  ② 세 아들의 태도 :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둘째 아들인 함이 그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겁니다. 물론 그 자체로는 아무 잘못이 아니죠. 의도적으로 본 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22절.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알리매”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자세히 보면서 희롱하고 즐겼습니다. “에구머니!” 하고 그냥 나오든지 아니면, 아니면 이불 같은 것으로 가려드리든지 해야 될 텐데 밖에 나가서 동네방네 떠들었습니다. 두 형제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다행히 두 아들들은 지혜롭게 일을 처리합니다. 23절.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 하였더라” 그들은 옷을 어깨에 멘 채 살금살금 뒷걸음질로 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가려드렸습니다. 얼마나 사려 깊은 행동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노아가 실수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로 인해 평소 세 아들들의 신앙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겁니다. 함은 거들먹거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도 시원치 않고, 아버지는 공경하지도 않았던 겁니다. 그런 태도가 이런 기회에 여실히 드러난 겁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도 깊고, 아버지를 공경하는 사람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③ 세 아들의 운명 :
  이로 인해 세 아들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모든 상황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을 혹시 이렇게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자기가 잘못 해놓고 둘째 아들 함만 나무라고 화풀이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노아가 실수를 했지만 어디까지나 신앙의 족장입니다. 구약 시대에 족장은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하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의 화풀이가 아니라, 세 아들들에 대한 예언적 선언입니다.    
  함(흑인종의 조상)과 그 아들 가나안의 미래는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25절. “ ...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종들의 종’은 히브리어의 최상급 표현입니다. 가장 비천한 종이 된다는 겁니다. 함과 더불어 그 아들 가나안을 언급하는 것은 아마 그가 타락한 모습을 갖고 있고, 또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으므로 그런 것 같습니다.
  셈(황인종의 조상)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했습니까? 26절. “ ...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셈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 축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야벳(백인종의 조상)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27절.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 야벳족은 번영의 축복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셈족의 영적 축복도 함께 누리게 된다는 겁니다.
  놀랍게도 역사 가운데 이 예언들이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여러분, 함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흑인종으로 한때 이집트, 바벨론 등을 세우고 세도를 부렸으나 결국은  셈족(황인종), 야벳족(백인종)에게 정복당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정복이 그것입니다. 그 후 그들은 노예로 팔려 다녔습니다. 최근까지도 아프리카 지역이 식민지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물론 백인들이 식민 통치를 하고 노예로 판 것은 엄연한 죄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흑인종도 복음 안에서 회복되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뤄진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 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이 그 대표적인 셈의 후손입니다. 그들 가운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큰 복입니다. 그로 인해 온 인류를 위한 영적 축복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야벳은? 영토를 전 세계로 확장하고 번성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축복도 받았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의 역사가 그 예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서울 정도로 놀랍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들의 부모에 대한 태도가 이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나의 미래, 나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내 위에 세워주신 부모님이나 어른들에 대한 태도가 나의 미래, 나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심지어 후손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 경외와 부모 공경은 일맥상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부모 공경 어른 공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이 중요성을 꼭 깨닫고 실천해서 하나님 앞에 칭찬받고 아름다운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부모 공경에 관한 성경의 교훈
  부모 공경에 관한 교훈은 성경에 수두룩합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① 부모 공경의 당위성 :
  성경은 부모 공경이 선택 사항이 아니리 필수 사항임을 강조합니다. 엡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십계명 중 제5계 명입니다. 십계명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죠. 1~4 계명은 하나님에 대해 지킬 계명, 즉 대신계명(對神誡命)입니다. 5~10계명은 인간에게 대해 지킬 계명, 즉 대인계명(對人誡命)입니다.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 지킬 계명 중에 으뜸이 바로 부모 공경이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 다음으로 높여야 한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일 뿐 아니라, 그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지당한 겁니다. 그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표현을 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수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② 부모 공경의 방법 :
  그러면 어떻게 부모를 공경할까요? 공경한다는 단어 자체에 그 방법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베드’(???)인데, 무겁다(be weighty, heavy)는 뜻입니다. 또 명사로는 간(肝 liver)이란 뜻입니다. 결국 부모를 무겁게 여기고 존중하라는 뜻(honour)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경하면 좋겠습니까?

  첫째, 존경하는 것입니다. 잠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이 말씀은 부모님을 중요한 분으로 여기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이 젊을 때는 힘이 있지만, 나이가 드시면서 힘이 빠집니다. 이처럼 부족한 면이 있어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한 초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학부모 회의가 있으니까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게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얼굴에 큰 흉터가 있어서 창피했던 겁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어서 결국 엄마는 학교에 갑니다. 온통 신경이 써진 소년은 멀리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합니다. 다행히 엄마도 주위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안도합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하나 둘 가고 엄마가 선생님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궁금해서 귀를 쫑긋하고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이 “참 아름다운 얼굴이신데 ... 실례지만 어떻게 해서 흉터가 생기셨나요?” 묻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한번도 듣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머뭇거리다 말을 합니다. “사실은 저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불이 났습니다. 불길 가운데 저 아이를 구하려다 이렇게 됐죠. 다행히 저 아이는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죠. 후회는 없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소년은 엄마를 와락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엄마! 왜 이야기 안 했어?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창피하게 생각했잖아.” 그 어머니의 흉터는 자식을 위해 희생한 흔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우리 부모님이 부족한 면이 있다 하더라고 그것은 자식을 위한 흉터입니다. 그 부족함을 갖고 자식을 키우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겠습니까? 잘난 다른 부모들보다 얼마나 더 고심하며 수고했겠습니까? 부모의 흉터는 자식을 위한 고생의 증표요, 빛나는 훈장입니다.

  둘째, 봉양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주고, 주고, 주고, 또 주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나를 길러주셨기에 이제 자식 된 나는 장성하면서 부모님을 섬기고 봉양해 드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자 친(親)자와 효(孝)자의의 유래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옛날 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나무를 해갖고 장터에 팔러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초조한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멀리 아들의 모습이 나타나는지 봅니다. 그 모습이 어버이 ‘친’(親) 자입니다. 아들이 반찬거리와 생활용품을 가갖고 오다 멀리 나무 위에 서 계신 어머니를 보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빈 지게 위에 업고 집으로 모시고 갑니다. 그 모습이 효도 ‘효’(孝)자입니다. 아들이 노모를 업은 형상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게 인간이 사는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세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지금까지도 주고 또 주셨는데, 자식은 계속 달라고 요구합니다.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5남매 대학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세월이 흘러 몸이 쇠약해지면서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식들과 며느리, 사위를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말을 꺼냅니다.  “사실은 내가 사업 하다 빚을 졌다. 이자가 불어서 7억이 됐구나. 그렇다고 빚을 남기고 죽을 수도 없고 ... 그래서 부탁인데 너희들이 조금씩 갚아주면 좋겠구나. 이 종이에 갚아줄 수 있는 액수를 적어라.” 아버지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보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제일 어렵게 사는 셋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원이라고 적습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도 마지못해 1천만원, 1천 5백만원, 2천만원 ... 이렇게 적습니다. 그 후 몇 달 후 아버지가 다시 소집합니다. 자식들은 무슨 말씀을 또 하시려나 걱정하면서 모였습니다. 아버지가 입을 엽니다. “그동안 고민 많이 했다. 유산 조금 남은 것 갖고 내가 죽은 후에 너희들이 반목할까봐 걱정하다 이런 생각을 해냈다. 지난 번 적은 액수에 5배씩 계산해서 주겠다. 이것으로 상속은 끝이다.” 그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게 오늘의 현실 아닌가요?
  
  이런 것은 동서(東西)가 따로 없는지 독일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한 아버지는 열 자녀를 기를 수 있지만, 열 자녀는 한 아버지를 섬기지 못한다.”
  셋째,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부모 말을 잘 듣는 자식치고 잘못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자식 잘 되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부모 순종과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 공경이 좀 다릅니다. 성경 보면 그냥 순종하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말씀합니까? ‘주(主) 안에서’ 순종하라! 순종하되 하나님 안에서 순종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부모님보다 높은 분입니다. 나뿐 아니라 부모님 인생의 생사화복까지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상위법이고, 부모님 말씀은 하위법입니다. 하위법이 상위법과 모순이 될 때는 당연히 상위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마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 ”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부모님이 아주 싫어합니다. 핍박합니다. 고민하다 “그래 부모님이 싫어하시는데 신앙생활 접자!” 이렇게 말한다면 그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모르시는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함께 예수 믿고 천국 가야지 이게 진정한 효도입니다.
  여러분,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을 잘 아시죠. 그분은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투옥되어 순교하신 분입니다. 옥고를 치르면서 온갖 고초를 다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있었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 걱정입니다. 감옥에 있는 아들, 앞으로 죽으면 얼마나 더 고통스러워하실까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주 목사님이 감옥에서 노모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면 구구절절 눈물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국 순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라 그 길을 간 겁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불효자입니까? 아닙니다! 진정한 효자입니다. 장차 천국에서 그 부모님은 그 일로 인해 영광과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친 부모님 외에 어른들을 공경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레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여러분, 이처럼 사람들이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이 가득해진다면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경제 발전이 대수가 아닙니다. 국민소득 몇 만 불이 대수가 아닙니다.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게 진정으로 나라가 발전하는 겁니다. 돈 있다고 흥청거리며 부모 몰라보고 어른 무시하면 그건 상놈이고 망나니입니다. 국민소득 몇 푼 적어도 영적 도덕적 질서가 회복되면 그게 일류 국가입니다.
  ③ 부모 공경의 중요성 -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
  우리가 부모님과 어른들을 공경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보너스를 주십니다. 노아의 세 아들의 모습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부모 공경 어른 공경 여부가 노아의 세 아들의 운명을 갈라놓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이 점에 대해 누누이 강조합니다. 엡6:2~3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장수의 축복, 형통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이를 위해 우리 자신도 효도하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어려서부터 효도 교육을 시키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서보다 자녀들을 위해서 그래야 합니다. 엎드려 절 받는 것 같지만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잘 하는 훈련을 시켜야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부모 공경, 어른 공경을 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한다고 무섭게 경고합니다.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신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출21:15, 17 “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 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우리가 꼭 명심해야 될 중요한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어버이주일에 부모님에게, 어르신들에게만 꽃 한 송이 달아드리고, 선물 한 두 개 드리고 때우는 식으로 지나가지 맙시다. 평소 매일의 삶 속에 부모 공경 어른 공경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인격과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넘치도록 축복하십니다. 아무쪼록 성경에 명령하는 대로 부모를 공경하고, 성경에 약속된 대로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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