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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효도 (창 22:6-14)
이런 유머 한 토막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우연히 아들과 며느리가 하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답니다. “자기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그야 물론 당신이지! 당신은 영원한 나의 1번이야!” “그럼 그 다음은 누가 좋아?” “우리 멋진 아들이지!” “그럼 세 번째는 누가 좋아?” “우리 예쁜 딸이지!” “그럼 네 번째는 누구야?” “당신 낳아주신 장모님이지!” “그럼 다섯 번째는 누구야?” “음... 우리 강아지!” “그럼 여섯 번째는 누구야?” “그... 그것은 우리 엄마!”
시어머니가 너무 기가 막혀서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새벽 같이 일어나 집을 나가면서 냉장고에 메모 하나를 남겼습니다.
“아들과 1번 보아라! 6번 밖에 나간다!”
참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이 유모 속에 오늘의 세태 풍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자리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바쁘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에 쫓기다 보니 점점 부모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성경 출 20: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의 말씀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5-10계명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이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 엡 6:2를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 말씀하는 효도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은 “존귀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효도는 부모님을 존귀하고 소중히 여기는 일이 핵심입니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효도란 부모님의 우선순위가 앞 번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부모님이 1번일 때 최상의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3번 이후로 밀린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효도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드린다고 해도, 아무리 호강시켜드린다고 해도 우선순위가 3번 이후가 되면 결코 바람직한 효도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서 부모님의 우선순위는 몇 번입니까? 여러분이 진정 부모님을 공경하고 계십니까? 부모님을 존귀하고 소중히 여기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이삭의 태도 속에서 부모 공경의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바람직한 효도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행하더니”
본문 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모리아 산으로 갈 때 아들 이삭이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이 대화하면서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을 받들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런데 이삭마저 가지 않겠다고 버티면 어땠을까요?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볼 때 이삭이 저렇게 선선히 따라주니 얼마나 고마울까요? 그리고 이렇게 힘이 들 때, 아들이 든든하게 자기 곁에 있어주니 얼마나 힘이 될까요?
그렇습니다. 효도란 우선 곁에 있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드리는 것입니다.
최근 주목할 만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정재기 교수의 [한국의 가족 및 친족 간의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의 양상]이란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부모 자식 간의 유대관계가 부모의 재산에 좌우된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OECD 15개국을 함께 조사했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14개국이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의 재산이 적을수록 자녀들의 방문 횟수가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부모의 재산이 적을수록 자녀들의 방문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와의 접촉빈도가 반비례하고 있는데 비해, 유독 우리나라만 정비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가 재산이 많을 경우 상대적으로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져서 자녀와의 만남의 빈도수가 그 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재산이 적을 경우 시간적 여유가 많아 자녀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부모가 소득이 많을수록 자식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부모와의 만남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소득이 적을수록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만남의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부모를 필요할 때 부모를 찾지만, 부모가 자기를 필요로 할 때 부모를 잘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대표적인 불효입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우리나라만 이렇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동방예의지국’이 ‘동방불효지국’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 고대 예기에 보면 효도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사성어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선 ‘혼정신성’(昏定晨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昏定)’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候)를 살핀다.’는 뜻의 ‘신성(晨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그리고 ‘온청정성’(溫淸定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溫),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고(淸),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드리고(定),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省)’는 뜻입니다.
또한 ‘동온하청’(冬溫夏?)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부모를 섬기기는 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드린다’는 뜻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가 부모님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그 곁에서 보살펴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공경의 으뜸이고, 바로 이것이 바람직한 효도의 출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을 자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멀리 계시면 자주 안부를 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 보살펴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도착해서 번제를 드릴 준비를 합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 위에 나무를 벌여 놓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지금 이삭이 20세 가까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120세 가까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청년기에 접어들었고, 아브라함은 노인 중의 상노인입니다. 이삭이 마음만 먹으면 아버지를 뿌리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아버지가 자기를 제물로 죽여 하나님께 바치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은 지금 이삭은 아버지에게 묻지도 않습니다. “아버지 왜 이러십니까? 왜 날 번제로 바치려 하십니까?” 물을 만도 한데 묻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아버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효도란 부모님의 뜻을 헤아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따라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님이 자식에게 보낸 편지....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약하고 지저분해지거든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이해해다오.
늙어서 우리가 음식을 흘리며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늙어서 우리가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말하는 중간에 못하게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다.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점점 기억력이 약해진 우리가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될 때면 기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우리가 기억을 못해 내더라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다오. 왜냐하면 그 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와의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요,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네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또 우리가 먹기 싫어하거든 우리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말아다오. 언제 먹어야 하는지 혹은 먹지 말아야하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단다. 다리가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니?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네게 한 것처럼 네 손을 우리에게 빌려다오.
그리고 언젠가 나중에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에게 화내지 말아다오. 너도 언젠가 우리를 이해하게 될 테니 말이다. 노인이 된 우리의 나이는 단순히 살아온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가를 말하고 있음을 이해해다오. 비록 우리가 너를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 우리는 부모로써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부모로써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가슴시린 글입니다. 부모님이 나이 들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뜻을 헤아리고 말없이 그 뜻을 따라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따지거나 변명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저 그 뜻을 말없이 따라드리는 것 그것이 효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의 마음을 살펴드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뜻을 헤아리고 말없이 따라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다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개입으로 중지하게 됐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숫양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이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불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왔는지 지금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 이레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와 이레의 신앙을 자기도 마음 깊이 간직하게 됩니다. 이후로 아버지가 보여주신 이 여호와 이레의 신앙을 본받아 살게 됩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달리 아브라함은 땅 한 평도 소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약속의 흔적은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을 사서 아내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 묘지는 대대로 묻힐 수 있는 권한이 있어서 자손 대대로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삭은 바로 이 헤브론 땅을 끝까지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가 결국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이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남긴 믿음의 유산을 이은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삭은 이 유산을 자기 아들 대에 잘 전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비록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가 애굽에서 죽었을 때 자기를 헤브론 그 막벨라굴에 장사지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를 이어온 믿음의 유산을 잘 지킨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 역시 아버지 대를 이어 애굽에서 죽었으나 자기 시신을 애굽에 가 매장했다가 하나님의 인도로 출애굽할 때 자기 시신을 가나안 땅 저 막벨라 굴에 장사지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대를 이어 믿음의 유산을 잘 지켜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효도란 부모의 유산을 잘 지키고 이어가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님이 남긴 믿음의 유산을 잘 지키고 대를 이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가문에서 가장 바람직한 효도는 무엇보다 믿음의 대를 잘 잇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님이 믿음이 없는 분이라면 부모님께 믿음을 전해 드리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효도인 것입니다.
미국의 독립 영웅 가운데 한 분인 페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분이 믿음과 관련해 또 다른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가족에게 유산을 물려주면서 남긴 말입니다.
“이제 내 모든 재산을 내 가족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가족에게 한 가지 더 주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 신앙입니다. 가족이 기독교 신앙을 유산으로 받는다면 내가 그들에게 1실링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부유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신앙을 유산으로 받지 않는다면 내가 그들에게 이 세상 전부를 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가난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자녀들이 믿음의 대를 잘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자녀들은 무엇보다 이 마음을 잘 헤아려서 믿음의 대를 잘 이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효도 중의 효도인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가 효도를 다해야 하겠습니다. 바람직한 효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또 잘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바람직한 효도란 무엇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존귀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우선 부모님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곁에서 그 필요를 채워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따라드리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믿음의 유산을 잘 지켜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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