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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고 장수하는 복 (엡 6:1-3)

by 【고동엽】 2022.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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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고 장수하는 복  (엡 6:1-3)


인류 역사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님만큼 위대한 분들이 계실까요?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 다음으로 위대하신 분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자녀들에게 살과 피를 제공해 줌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대리자 역할을 하신 분들이요, 자녀들을 양육하고 보살피신 점에서,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 부모님을 기리는 어버이날이 있습니다.

영국 <웹스터>라는 조그만 마을에 자비스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부인은 교회에서 어린이를 26년 간이나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부인에게는 안나라는 친딸이 있었는데, 안나 말고도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을 똑같은 사랑으로 보살폈다고 합니다.
부인은 교회로부터 급료도 받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정성껏 보살피는 것이 부인에게는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수년간 아이들에게만 신경을 쓰다 보니 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병든 부인을 걱정하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자비스 부인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이들에게는 부인의 빈자리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자비스 부인의 1주기 추도식이 마련되었고, 식순의 하나로 부인의 딸 안나는 대중에게 평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난 후, 하얀 카네이션을 추도식 제단에 바쳤습니다.
그 카네이션은 부인이 살아 있을 때 집 뜰에 심었던 꽃이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큰 감동이 감돌았습니다.

그리고 자비스 부인의 이야기가 곧 미국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어머니날 운동은 특히 부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미국 역사의 험난했던 시대에 어머니들은 지혜와 용기로 가정을 이끌어 세웠고, 어머니의 희생으로 현재의 미국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어머니날 운동은 금세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여론이 형성되자 1914년 미국 국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날에,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는 빨간 카네이션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 앞에는 하얀 카네이션이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날의 유래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버이 주일은 선교사들이 이 어머니날을 지킬 것을 권면한 것에서 비롯되는데,1990년 6월 15일 구세군에 의해 공식적으로 어머니 주일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이 어버이 주일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다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을 쫓아서 <가정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성경은 대답하기를 <가정이야말로 사람이 세상을 살 동안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요람>입니다. 가정은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요람이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하신 거룩한 축복이 실현되는 기본 장소가 가정입니다>.

1. 첫째 부모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1-2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6:3절에 말씀한 대로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보장이 붙은 첫 계명이 축복입니다. 잘되는 것과 장수하는 복입니다.

1) 첫째 부모공경은 잘 되는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잘 된다>(야타브)라고 하는데 <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①첫째 잘된다는 말은 <형통하다, 그침이 없다, 막힘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물이 막힘이 순하게 흐르듯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만사가 흐르는 물처럼, 순리대로 그렇게 형통함을 뜻합니다.

② 둘째 잘된다는 말은 <기쁘게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공경은 <쾌감, 만족감, 행복감, 유쾌감>으로 이어져 가는 것을 뜻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늘 너희에게 유쾌감, 만족감, 행복감 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이요 잘되는 복입니다.
마음의 생각과 계획에서부터 행동하는 삶의 전반에 <쾌감이, 행복감>이 이렇게 <늘 이어져 간다>. 이것이 잘되는 복입니다.

그렇다면 잘 되는 복은 마음의 생각과 계획에서부터 행동하는 삶 전반의 모든 경우들에서 만사가 형통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약속이라고 하였습니다.

2) 두 번째 부모공경의 축복은 장수하는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5:16절에는 같은 원리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부모 공경의 계명을 지키면 약속된 가나안 땅에서 단명하지 않고 장수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기에 장수하는 복을 약속했는데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첫째로 부모를 공경하면 효도하는 개인이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그 개인이 육신적 생명의 장수를 누리게 됩니다. 효도하는 그 개인은 육신의 건강의 복을 받는단 말입니다.
시력이, 청력이, 다리가, 팔이, 사지 백체, 오장육부가 부모를 공경함으로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너무 확실한 복입니다.
② 둘째로 부모공경의 복은 계대적(繼代的)인 축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장수의 복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손들이 자자손손 대대토록 그 장수의 복이 이어져 간다는 말입니다.
건강의 장수, 물질의 장수, 명예 축복에 장수, 사회적인 지위의 장수, 이것이 <오래 산다. 생명이 길다. 생명이 연장된다>는 뜻입니다. 후손들로 이어져 감을 뜻합니다.
<오래 산다, 생명이 길다, 연장하다>라는 히브리말 <아라크>입니다. <계속해서 길어진다, 오래 머문다, 한없이 오래 산다>(신4:40)는 말도 됩니다. 영어로 <성공하다>(투 석시드 to succeed)라는 말로 역시 계속 이어져나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공의 비결이 부모 공경입니다.

ⓐ성경에 보면 레갑의 자손들이 이 복을 받아서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중 패역무도한 불효자 압살롬은 파멸했습니다. 그는 단명하였습니다. 그것도 그가 자랑하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노새를 타고 가던 중 상수리 나뭇가지에 그 머리털이 묶여버려 나무에 달린 채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삼하 18 :9. 15). 불효한 벌을 받았습니다.

③ 셋째 부모 공경하면 잘된다 장수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국민적인 축복까지 가리킵니다.
<장수>라고 하는 말 가운데는 국운(國運)이 장수한다, <나라의 운명이 길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기본단위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여 장수하고 잘되는 멤버가 자꾸 많아지는 사회와 마을과 나라는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가정은 국가 기초의 기본 멤버가 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계속해서 흥왕 해 나감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효도하는 자손들의 흥왕은 곧 그 사회와 나라 국민 전체와 효도는 관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적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믿을 만한 약속이 아닙니까! 이 축복은 개인의 장수와 계대적 축복과 사회와 국민적 축복까지를 말함인데, 그것은 비물질적인 축복(영적 축복)과 물질적 축복까지 전체를 총망라하는 축복을 말합니다.
부모 공경은 그 나라의 국기입니다. 국보입니다. 나라의 기초가 부모공경입니다.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이데오르기가 국기가 아니고, 국시가 아니고, 부모 공경히 국시요 국기란 말입니다.

2.둘째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은 부모공경이라고 하는 조건이 붙은 계명입니다.

다시 우리 본문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이유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고 하였습니다.
부모 공경이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부모공경이 장수의 법칙입니다. 변경시킬 수 없는, 고칠 수 없는, 영구불변의 법칙입니다. 부모공경이 축복의 법칙입니다. 요동할 수 없는 불변의 법칙입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기본 법칙! 제 일의 법칙, 가정의 축복의 기초요, 나라가 잘되는 축복의 국기가 바로 <부모 공경>이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이 말은 한문번역으로 <부모를 높이 받들어 섬기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히브리말에 <공경하라>는 이 말은 <카바트=무겁다>라는 말입니다. 이 <카바트=무겁다>는 말은 <카베트=간, 간장>이라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 몸에 오장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이 <간장>입니다. 간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란 말은 <부모를 간처럼 여기라>는 말입니다. <부모는 너의 간이다, 부모님을 간처럼 여겨라, 부모님을 무겁게 여겨라, 존귀히 여겨라>는 뜻입니다.
우리 간이 튼튼하면 온 몸이 다 튼튼하고, 간이 약하면 모든 것이 약해집니다. 간은 생명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이 튼튼한 사람은 땅에서 잘되고 오래 삽니다. 장수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부모를 너희의 간처럼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왜 부모를 간처럼 여겨야 될까요?

1) 첫째로 부모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가운데 들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창조질서의 제 일의 원인 자입니다.
말라기 2:15절에 <여호와의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1남 1녀를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유여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전능한 영으로 한꺼번에 많은 남자를 집단적으로 만들고, 많은 여자를 하나님이 집단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은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1남 1녀를 통하여서 정상적인 성교관계를 통해서 인격적인 하나님의 형상인 자녀가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남일녀를 통하여 경건한 많은 자손을 이어가고자 계획하셨다고 하였습니다(창 2:18 -23, 마 19 :4).
그리고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고(창 2:24), 경건한 종족 번성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제일의 존재 원인은 하나님이고, 자녀의 제 이의 존재 원인은 부모님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는 나를 있게 한 존재 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있게 했고, 부모님을 통하여 나를 있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는 나를 있게 한 창조질서의 원인 자입니다.
거기에 따라오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간처럼 여기라. 부모의 간에서 너의 간이 나왔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경건한 종족보존과 계승을 위해서 하나님 자신의 창조 계획에 작정되어진 법칙입니다.
말하자면 부모는 신적 창조의 영광이요, 신적 축복 질서의 거룩한 수단입니다. 여기에 따르는 하나님의 요구는 부모 공경의 계명을 자녀들에게 명했습니다. 부모로 말미암아 세상에 존재를 받은 자식에게는 공경이라고 하는 법칙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간처럼 여기라는 것입니다.

2) 둘째로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축복의 존재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축복의 대행 자입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축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말라기 2:10절에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젊은 부부가 홀로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어린 아기가 있었는데, 농사일이 바쁘다 보니 부부가 함께 밭나가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밭에서 돌아온 부인은 기절초풍할 장면을 보았습니다.
시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시다가 아기를 깔고 자면서 아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그 아기를 안고 얼른 바깥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혹시라도 시아버님께서 <자신이 아기를 깔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 괴로워 하실까>하고, 이 사실을 비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부인은 엉엉 울면서 아기를 안고 밭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아기의 뺨따귀를 후려쳤습니다.
<이런 불효 막심한 자식! 왜 하필이면 할아버지한테 깔려죽어서 할아버지의 심기를 괴롭히느냐 이놈! 너 같은 불효 자식이 천하에 어디 있느냐 이놈!> 하며 뺨따귀를 세차게 내리쳤습니다.
그 순간 죽었던 아기가 깜짝 놀라 깨어나더랍니다.
이 사연이 널리 퍼지면서 그 지역에 효자 효부가 산다하여 <효자동>이라 불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 효자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효도는 자식의 마땅한 도리요, 안의 도리이요, 신앙의 기본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은 주님을 대하듯 부모님께 효도하는 분들인 줄 믿습니다.

왜? 부모를 간처럼 여겨야 되느냐? 부모는 하나님이 나에게 줄 축복을 내 아버지 어머니를 통하여 전달하는 자이기 때문에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나에게 아버지 어머니라고 한 이름을 가지고 전달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전달자이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아버지(靈父)인 하나님의 축복을! 육신의 부모라고 하는 사람을 통하여 자녀에게 대신 축복하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에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의 존재적 가치와 의의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축복과 사랑을 대행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자녀들 앞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① 그래서 이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주어진 이름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학교에서 졸업장 받을 때 받는 것처럼 연구해서 받는 이름이 아니고, 실험실에서 실험기로 실험을 해 가지고 아버지 어머니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결코 어떤 학문적 노력의 과정이나, 연구나, 실험의 결과나, 다른 어떤 인간 자신의 산물이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직접주신 이름입니다. 신적인 이름입니다.

② 또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은 자녀를 가진 자들에게만 <아버지>하고 불러 줍니다.
용서하세요. 육신의 자녀 없는 사람들은 오해하지 마세요. 양육하는 자식이나 영의 자식 많이 가지면 됩니다.
그러나 자식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은 자식들로부터 아버지 어머니를 못 듣습니다. 자식을 가진 사람에게 자식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하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아버지 어머니란 이름입니다.

③ 따라서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가정에서의 전용적 이름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자녀를 위하여만, 자식을 위해서만 가정에서 전용되는 이름입니다.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회사에서 안 통합니다. 학교에서 아버지 어머니 안 통합니다. 저 국회의사당에서 내가 아버지 아름으로 말하노라 그거 안 통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내가 우리 집의 누구누구의 아버지인데 그 것 가지고는 회사에서 안 통합니다.
회사에서는 사장, 국회의사당에서는 의원, 뭐 장관, 이것은 다 조직 사회의 영역에서 그 사회를 콘트랄 하는 이름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가정에서만 사용하는 직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 전달하는 이름입니다, 가정에서 자식들에게만 전용되는 이름입니다. 축복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가정 외에 어떤 사회적 경영에서나, 학교에서나, 정치적 광장이나, 기타 다른 여러 영역에서는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류의 영역에는 또 다른 직함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자녀에게는 오직 아버지, 어머니 외에는 다른 직함으로는 통하지 아니합니다.

④ 가정의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아버지, 어머니의 직함은 몇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그 직함 전달 기능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기능은 자식을 위하여 기도로 축복하는 제사장 적인 기능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제물을 가지고 기도를 했고 축복을 했습니다.
오늘 신약시대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축복을 전달하는 그 기능이 제사장적인 기능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는 기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기도 하는 기능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올리는 기도만큼 깨끗한 기도, 거리낌이 없는 기도, 제한이 없는 기도, 이해 타산이 없는 기도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축복하는 기도만큼 확실하고, 깨끗하고, 정직한 축복이 제사장적인 기능입니다

또 가장으로서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주관하고, 기도하고, 그 자녀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부모들의 특권이요, 영예요, 자랑입니다. 자기 자녀를 위하여 쏟는 그 부모의 자애만큼 간절하고, 확실하고, 뜨거운 것이 세상에는 아무 곳도 없습니다.

두 번째는 부모는 선지자적 축복의 기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자식을 가르치는 기능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가르치고, 부모님이 어떤 분인가를 가르치고, 인생을 가르치고, 죄를 가르치고, 구원을 가르치고, 교회를 가르치고,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가 하는 일이지, 초등학교나 중학교 선생이 한 일이 아닙니다.
부모가 가르치는 선지자적 기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주의 훈계로 양육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성경교육의 감화를 힘입어 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모는 자식을 향하여 축복을 하는 왕적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는 선한 명령을 하시는 왕적 기능이 있습니다. <너하고 나하고 해 볼래> 하는 민주주의 이론이 아니고, <하라->고 하는 왕적 명령형입니다.
부모님들! 분명히 들으세요. 자식들에게 축복의 명령이 떨어져야 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교회 가자, 예수 믿어라, 기도해라, 찬송해라, 회개해라, 성경 봐라> 명령해야 합니다. 부모는 왕적인 명령권이 있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 자식에게 명령이 없는 부모는 부모가 아닙니다. 명령할 줄 모르는 부모는 위대한 축복 권을 잊어버린 부모입니다. 그런 부모는 하나님의 명령을 대행하는 명령들 가운데서 축복의 명령을 잊어버린 분들입니다.
오늘 부모가 축복권을 놓쳤습니다. 자식들이 교회 안 나와도 무덤덤합니다. 교회 가라고 명령 못하는 부모는 부모의 자격을 잃어버린 부모입니다.

가령 오늘 일부 예배 때 자식이 교회를 안 왔습니다. 이 때 부모는 <너 오늘 교회를 안 왔어! 너를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시키고 너를 등록금 대주면서 가르치는 것은 예수를 잘 믿으라고 하는 것인데 왜 너 안 갔어> 징계하는 부모가 진짜 부모입니다.
그러나 자식 앞에 벌벌 떨어 가지고 말 못하는 부모는! 축복 권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자식 복 못 받게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명령이 없는 나라는 망합니다. 대통령이 백성을 향하여 명령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나라가 유지합니다.
학생을 향하여 선생이 명령이 있어야 교권이 섭니다.
자식을 향한 부권 행사가운데 왕적인 축복의 명령이 있어야 됩니다.

러시아 혁명이 있을 때에 공산당들은 집들을 모두 태워 버리고 곡식을 모조리 없애 버렸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 때 모스크바로 여행을 갔던 어떤 사람이 들판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를 본 일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풀뿌리를 캐다가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창백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기에 어린아이를 품에서 떼어 냈더니 그 어머니는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젖꼭지를 칼로 베어서 피를 빨리 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먹지 못해서 젖은 나지 않고 아기가 젖 달라고 울 때 그 어머니는 젖꼭지를 잘라 피를 마시우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잘되고 장수하리라>. 부모는 그 자녀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부모의 축복기도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성공의 자리를 잡고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을 대신하여 부모라고 하는 직함을 받은 자에게 이 제사장의 기능, 선지자의 기능, 왕적인 기능, 이 세 가지 축복의 기능을 대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축복 속에서 자란 자녀들은 부모 공경이라고 하는 축복의 열쇠를 아예 가지고 자랍니다. 바로 경건한 축복의 사람입니다. 그런 자식들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열쇠를 가지고 자랍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란 이름은 축복의 대명사요, 형통의 대명사요, 행복의 대명사입니다. 순종과 복종과 감사와 공경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명령은 잘 되고 장수하는 성공의 결정적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의 법칙을 어기면 망하고 맙니다. 잠언 30: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불순종했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천벌을 받았습니다(삼상 4:11).

반대로 이 축복의 법칙을 준행하면 그는 땅에서도 잘 되고 장수합니다.
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던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였습니다.
②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에 순종으로 효의 걸음을 걸었던 요셉은! 그 길이 바로 애굽의 총리가 되러 가는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③아버지 이새의 명을 받아 형들에게 심부름을 떠났던 그 다윗의 효행이! 바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④어머니 한나와 함께 실로 성전으로 가던 어린 사무엘의 걸음이! 마침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되러 가던 걸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리학적인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①자녀 교육은 듣는 데서 10%, ②보는 데서 50%, ③실제로 자녀하고 의사 소통하는 데서는 70% ④그리고 그 의사소통관계로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이 실제로 주고받고 행동으로 옮겨 보는 데서 90%의 효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90% 실제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장소가 회사입니까? 가정입니다. 가정이 이렇게 인생 기초를 만드는 장소입니다.

부모공경은! 교육이전의 문제입니다. 부모 공경은 심리학 이전의 문제입니다. 부모공경은! 여러분 자녀 사랑하는 문제, 축복하는 문제는! 이것은 철학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를 간처럼 여겨라>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요, 이것은 인생본질적임 문제요, 총체적임 문제입니다.
바로 이것은 가정이라고 하는 장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과, 아들과 딸이라고 하는 자녀의 이름이 주안에서 어우러지는 실제적 삶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자녀 사랑과 축복,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은 가정이라고 하는 특수한 환경에서 아무런 형식이나 절차 없이 실제적으로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 자체가 벌써 잘 되고 장수하는 바탕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학 이전의 문제요, 심리학 이전의 문제입니다.
자녀 사랑, 축복 그리고 부모 공경! 이것은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요, 영적인 것이요, 신적인 축복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철학적 문제가 아니고, 도덕적 문제입니다. 정신적, 영적 문제입니다.

①4세기 정통 신앙의 기수를 만들어 낸 나찌안젠(Nazianzen)의 어머니 논나(Nonna)가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②유명한 교부요 콘스탄티노플의 대설교가 크리소스톰(Chrysostom)을 만든 그의 어머니 안두사(Anathema)가 그런 어머니입니다.
③유명한 성자 어거스틴(Augustine)을 만들어낸 그의 어머니 모니카(Monic a)가 그러했습니다.
④유명한 교부 오리겐(Origen)을 만들어 낸 그의 어머니 레오니데스(Leo nides)가 그러했습니다.
⑤세기적인 목사 챨스 웨슬레(Charles Wesley)를 만들어 낸 열 아홉 자녀의 어머니였던 수산나(Susana)가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⑥흑암의 대륙 아프리카에 구원의 빛을 던지도록 만든 저 불사조의 선교사 리빙스톤(Livingstone)을 만들어낸 그 아버지 네일(Neil)과 아그네스(Agnes) 어머니가 자식에게 제사장 선지자 왕적인 권위를 행사했던 부모입니다.

저들은 예외 없이 부모 공경의 명령을 준행하여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또 저들에게는 예외가 없이 신앙의 아버지나 신앙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내가 경험적인 말을 한 마디 하려고 합니다. 나는 늙어가고 6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제한을 느낍니다. 그런데 육신이 늙어갈수록 안 늙어 가는 것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줄 아십니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늙어도 자녀에 사랑은 결코 시들거나, 병들거나, 늙을 줄 모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지금 체험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세상에서 늙고 병들어 앓은 일이 있는데, 자녀를 향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은 병들 줄을 모릅니다. 믿습니까?
부모의 육신은 기운이 빠져서 걸을 힘이 없어서 숨이 가빠도! 자식을 향한 사랑은 숨 가쁜 줄을 모른단 말입니다.

그런 마음을 어디서 왔느냐? 그런 마음을 누가 주었느냐? 그 자식 사랑하는 맘, 생각하면 기분 좋은 마음, 생각만 하면 아쉬운 맘, 생각만 하면 시원한 맘, 생각만 해도 쾌감이 이르는 마음, 지금도 기다립니다. 조금만 안 보아도 기다려지고 보고 싶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그렇게 좋아 안 합니다. 안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이 온 다면은 기다려집니다. 아들이 쓸 기구를 깨끗이 닦아 놓고 기다립니다. 아들이 쓴 기구도 예뻐 보입니다.
그런 마음을 누가 주었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성입니다. 모성입니다. <자녀들아 이런 마음을 가진 부모를 간처럼 여겨라> 믿기를 축복합니다.
부모님이 자식 사랑하는 그 자체는 결코 병들어 앓을 줄 모릅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 곧 축복하고 싶은 마음, 잘 되기를 원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한 불사조입니다. 그것은 자녀를 향한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그 이름이 바로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의 축복과 사랑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자녀들이여!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래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하나님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결코 복은 사람 자신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축복의 시여자 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법을 정하여 놓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부모 공경이라고 하는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그 부모가 누구입니까? 가정에 있어서는 육친(肉親)의 부모입니다.
그 부모가 누굽니까? 나라에서는 위정자가 우리 사회의 아버지입니다.
그 부모가 누구냐? 교회에 목자가 교인의 영적 부모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이 아버지입니다. 사부입니다.
직업에 있어서는 그 주인(社長)이 됩니다.
연륜적으로는 사회의 선배들이 됩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잘되고 장수하는 이 축복이 광성의 가족들 위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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