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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모세는 (히11:24∼26)

by 【고동엽】 202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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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모세는 (히11:24∼26)

여러 해 전에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휴스턴 경찰 당국이 이런 흥미로운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못된 자녀 만들기 10가지 방법"입니다. 자기의 자녀를 못된 사람으로 만
들려면 이런 방법을 쓰면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1. 어려서부터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사 주라. 그리하면 그 아이는 온 세
상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이다.
2. 아이가 나쁜 말을 할 때 그냥 웃어 넘기라. 그러면 그 아이는 자기가 재치 있는 줄 생각
하고 더욱더 좋지 않은 말과 악한 생각으로 깊어질 것이다.
3. 아무런 영적인 훈련과 교육도 하지 마라. 크면 제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내버려 두라.
4. 잘못된 품행을 책망하지 말고 그냥 넘겨라. 이 다음에 자동차를 훔치거나 다른 못된 일을
저질러 사회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리라.
5. 아이가 정돈하지 않은 이불, 옷가지, 신발 등을 정리해 주라. 그러면 자기 책임을 다른 사
람에게 미루는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이다.
6. 어떠한 프로그램이나 책, 그림 등을 마음대로 보도록 내버려 두라. 머지 않아 그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 아이들 앞에서 부부가 다투고 가족들이 자주 다투며 싸우라. 이다음에 자신들의 가정이
깨어져도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8. 달라고 하는 대로 용돈을 얼마든지 주라. 살아가는 태도에서 곧 썩는 길을 쉽게 터득할
것이다.
9. 먹고 싶은 것이나 마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먹이고, 갖고 싶은 것이나 좋아하는 것은
다 해 주라. 그러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떠한 거절이라도 한 번만 당하면 곧 낭패에 빠
지는 사람이 되리라.
10. 아이가 이웃 어른 또는 선생님이나 경찰관들과 대립되는 자세를 보일 때, 언제나 아이의
편이 되어 주라. 건전한 사회가 모두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결국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자녀가 바르게 잘 자랐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릇되게 자랐는
가는 전적으로 부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의 자녀가 죽고 사는 것은 부모인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예컨대 모세를 생각해 보
십시다.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만일 그때 모세의 부모에게 믿음이 없었더라면, 모세는 어떻
게 되었겠습니까? 모세는 바로 그 길로 나일강에 던져져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모세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에
게 믿음이 있어야 자녀에게 사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모세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에서 건져내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이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에서 어떻게 건져낼 수가 있겠습
니까?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유혹하는 마귀의 손길에서 어떻게 건져낼 수가 있겠습니
까? 길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믿음뿐입니다. 부모인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고, 우리
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는 길뿐입니다.
뜻 깊은 어린이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서 모세처럼 훌륭
한 믿음의 사람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의 모세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는 위대하고도 훌륭한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세의 삶은 40년씩 3기로 구분이 됩니다.
애굽에서 살았던 40년, 광야에서 보낸 40년, 그리고 출애굽의 지도자로서의 40년입니다. 말
하자면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애굽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자아가 완전히 깨어지게 하는데 40년을 쓰
셨습니다. 그러고 난 후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 출애굽의 영웅으로 귀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히11:24∼26은 모세가 장성했을 때, 곧 그의 나이가 40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말하자면 제 1기의 삶을 끝내고 제 2기의 삶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때 되어진 일
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뒤에 있는 27절은 모세가 광야에서 보낸 40년 때의 일입니다. 그
리고 28∼29은 그의 생애 마지막 3기 때, 그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쓰임 받을 때의
일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히11:24∼26의 말씀을 통해서 모세의 믿음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매 절마다 모세의 믿음을 잘 묘사해 주는 동사
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24절은 "거절하고"입니다. 모세는 믿음에 어긋나는 것은 거절했습니다.  
둘째, 25절은 "더 좋아하고"입니다. 모세는 믿음에 부합된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는 믿음
으로 올바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셋째, 26절은 "바라봄이라"입니다. 모세는 믿음에 어긋난 것은 거절하고 믿음에 부합된 것은
더 좋아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도 모세처럼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메사에 올바르게 선택하
며, 이 세상의 부귀 영화보다도 언제나 하나님이 주실 상을 소망 가운데 바라볼 수 있는 믿
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모세가 거절한 것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4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모세가 장성했습니다. 행7:23에 보면 그때 모세의 나이가 사십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
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함은 애굽의
왕자입니다. 그는 한 몸에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를 다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함으로써 일순간 세상적인
부귀, 영화, 권세를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4절 첫 단어는 "믿음으
로"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역사에 의하면 그때 바로의 공주는 무남독녀였습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
다. 그래서 바로의 공주는 시녀들을 데리고서 나일강으로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 애
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생산의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
가 없는 사람은 나일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아이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바로의 공주는 갈대 상자에 들어 있는 모세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바로의 공주
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야말로 하늘이 내게 내려 준 아이로구나. 내가 이 아이를 내 아들로 삼아서 훌륭한
인물로 키워야지.'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입적이 되었습니다. 뒤에 모세는 애굽의 궁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곳에서 애굽의 왕자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모든 면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행7:22을 보면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모세가 그때 받은 교육은 나중에 그가 모세오경, 곧 다섯 권의 성경을 기록하는데 큰 밑거
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역사적인 기록에 있는 일입니다. 애굽과 에디오피아 사이에 전쟁
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모세는 애굽의 왕 바로를 대신해서 애굽군의 총사령관으로 출전을
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때 익혔던
통솔력은 나중에 모세가 출애굽의 영웅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얼마든지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다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로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함"으로 일순간에 그 모든 부귀, 영화,
권세를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모세는." 믿음 때문이었습
니다.
그러면 모세에게 있었던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
다. 모세는 그의 어린 시절을 부모의 품에서 자랐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서 모세를
발견했을 때입니다. 그때 멀찌감치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바
로의 공주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 요게벳을 모세를 위한 유모로 소개해 주
었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어려서부터 그의 부모님 품에서 신앙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
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어린 모세에게 힘써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허락하셨던 약속들을 어린 모세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 주었습니다. 모세는 어린 시절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그의 부모에게 받았던 신앙적인 교육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마음속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어릴 때 불과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그의 부모를
통해서 신앙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모세는 오랫동안 애굽의 궁에서 세상 사람
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일평생의 삶을 지배하며 주관했
던 교육이 무엇이었습니까? 애굽의 궁에서 받았던 세상적인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
절 부모에게서 받았던 신앙적인 교육이었습니다. 어릴 때 가정에서 받는 교육을 절대로 소
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주일학교에서 실시하는 신앙적인 교육도 결코 소
홀히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 아이들의 일평생의 삶을 주관하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암 부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손을 쓰기에 앞서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먼저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 마귀
가 우리 자녀들에게 죄악을 심어 주기에 앞서서 우리가 먼저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을 심어 주어야 한다."
어린 시절의 신앙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의 마음속에
먼저 하나님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자녀들
은 모세처럼 믿음으로 잘 자라서 모세와 같이 이 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될 것
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모세가 더 좋아했던 것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5절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
난 받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 전자는 고난의 길
입니다. 후자는 낙을 누리는 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했습니까? 그는 믿음으로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길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더불어서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를 향해서 나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낙을 누리는 길은 어떠합니까? 그것은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
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길의 종말은 파멸입니다.
독버섯을 아시지요? 눈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습니다. 죄악이 그렇습니다. 쾌락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낙이라는 말 앞에는 언제나 "잠시"라는 말이 단서로 붙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린 후에
는 오랜 기간의 고통과 파멸이 대가로 따라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
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브리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루는 어떤 스승이 자기의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공동 묘지앞을 지나
가게 되었습니다. 큰 무덤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그 무덤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
니다.
"메아리와 아지랑이를 알고 가노라."
스승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이 묘비명의 뜻이 무엇이겠느냐?"
제자들은 아무도 대답을 못했습니다. 스승은 일깨워 주었습니다.
"메아리는 권세를 뜻하는 말일 것이고, 아지랑이는 부귀와 영화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아마
도 이 무덤에 묻힌 사람은 살아 생전에 이 세상을 온통 쥐었다 놓았다 하는 사람이었을 것
이다."
그러면서 스승은 또다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생각에 메아리와 아지랑이, 곧 권세와 부귀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한 제자가 손을 들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에 허망일 것 같습니다. 둘 다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는 다 그렇습니다.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에 불과합
니다.
만일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그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론 잠시 잠깐 부귀와 영화와 권세는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
다. 어쩌면 애굽의 왕 바로가 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애굽 사람들로부터
신으로 숭배를 받았을 것입니다. 죽고 난 후에는 피라미드에 묻혔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육신은 미이라가 되어서 애굽의 박물관에 보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어
떻게 되었겠습니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지움을 당해서 지금도 지옥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 곧 하나님 나
라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되겠습니까?
"얘들아,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야 된다. 그래야 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공할 수 있단
다."
물론 이러한 가르침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가르침은 무엇이겠습니
까?
"얘들아, 너희들이 살아가다 보면 이런 저런 선택을 해야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기
도하면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여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도 언제나 의로운 고
난의 길을 택하도록 하여라. 그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모세의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우리 자녀들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모세가 바라보았던 것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6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
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
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몹시도 핍박했
습니다. 어느 날 그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손에 받아 쥐었습니다. 그리고 다멕섹에 있는 성도
들을 붙들어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가 다멕섹에 거의 가까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홀연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은 바울의 히브리식 이름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
지로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
습니다. 애굽의 박물관에 가면, 피라미드 속에서 발굴된 보화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피라미드 하나에 들어 있는 금의 무게만 수 천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어마어
마한 양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훨씬 더 크고 값진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 언제나 크고 후하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
다.
미국 필라델피아 있는 어느 선박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물건을
잔뜩 실은 선박이 그날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사장은 회사의 모든 직원을 다 불러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이 일요일인 것은 알지만, 선박이 이제 당도했으니까 내일은 모두 출근해서 선박에 실
려 있는 짐들을 함께 내려 주었으면 좋겠소."
그러자 한 청년이 난색을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저는 일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주일입니다. 저는 교
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출근할 수가 없습니다."
사장이 그 말을 듣고서 몹시도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구만. 회사를 그만 두어야 되겠네."
어쩔 수 없이 그 청년은 주일을 성수하기 위해서 그 선박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
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서 부지런히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일자리는 쉽게 찾
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선박 회사 사장에게 그의 절친한 친구로부터 이러한 연락이 왔습니다.
"여보게, 이번에 새로운 은행을 열게 되었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좀 추천을 해 주
게."
그때 선박 회사 사장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뜻밖에도 자기가 해고했던 그 청년을 친구에게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의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자기의 믿음과 신념을 바꾸는 사람이 아닐세.
그러니 자네가 믿고서 은행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네."
그래서 그 청년은 그 은행에 발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보다도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
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보상을 해 주십니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가 받을 상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 받기까지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유리할 것입니다. 결제
되지 않은 대금은 언제나 이자라는 동료를 데리고 오기 때문입니다. 히11:6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
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뜻깊은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모세의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모세는 믿음으 로
거절해야 할 것을 거절했습니다. 더 좋아해야 할 것을 믿음으로 올바르게 선택했습니다. 믿
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
랍니다. 또한 이 믿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히브리 민족은 자기의 자손들에게 두 가지의 유산을 물려준다고 합니다.
한 권의 책과 한 채의 집입니다. 한 권의 책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
다. 한 채의 집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두 가지, 곧 하나님의 말씀
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신앙만큼은 꼭 믿음의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자녀들도 모세처럼 믿음으로 잘 자라서 이 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는 훌륭한 믿음
의 인물들이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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