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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관계 (엡6:1-4)

by 【고동엽】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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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관계  (엡6:1-4)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오늘은 참 좋은 날 입니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또 한자리에서, 그리고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가장 많이 희생된 것이 가정 입니다. 모두 뿔뿔히 흩어져 버렸습니다. 서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형제애도 멀어져 버렸고, 부모에게도 마음이 멀어진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모처럼 이렇게 함께 모여서, 한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니까 어떻습니까. 오늘은 다른것 생각하지 말고 가정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특히 부모만을 생각해 보고, 자녀들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어떤 관계 입니까. 세상에 이 보다 더 좋은 관계, 더 좋은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은 다음의 몇가지를 꼭 생각해 보시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부모는 나의 생명의 전수자다" 하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생각이 이쯤되면 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참 고마운 분 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다는 것만도 축복이고, 행복이고, 기쁨이라고 생각 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이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없어봐야 부모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이름이 아버지고, 어머니라는 이름 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얼마나 정답고 소중한 이름 입니까.

연산군은 어머니 없이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어린 연산이 하루는 밖에 나가서 놀다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 성종이 어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무엇을 보고 놀았으냐" 그 때 어린 연산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송아지가

어미소를 따라 가면서 엄마 하고 부르며 따라가는 그 모습이 그렇게도 부러웠습니다", 그 말에 성종은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관계 입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 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첫째 가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마땅히 공경 받아야 할 대상 입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 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모 공경함을 율법에 못을 박아 놓으신 것이며 그것이 이 세상에소 복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밝히 말씀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거이 가장 기본적이 도리이며 축복의 삶입니다.

두번째는 "자식은 상급" 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아무리 존귀한 존재라고 해도 혼자서는 존귀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있기 때문에 존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자식은 "상급" 이라고 했고 "열매" 라고 했습니다. 자식은 분명 상급 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힘이고, 열매 입니다. 자식이 있어야 어딘지 모르게 힘이 있고, 든든하고, 안정이 됩니다. 그래서 모두 힘이 들어도 자식을 낳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부모님들이 자식을 자랑하는 것을 들어 보십시요. 옛날에는 여편네 자랑을 왼병신이라고 했고 자식 자랑은 반병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생각해서 여편네 자랑은 왼병신일런지 모르지만 자식 자랑은 병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견하게 여기고,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그게 부모의 솔직한 마음 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아내는 남의 아내가 예뻐 보이고 자식은 자기 자식이 최고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하결같은 마음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자식을 귀여워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서는 그만큼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 는 것 입니다.

여러분, 이 두 관계는 좋은 관계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이 관계가 수난을 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외면 합니다. 어떤 자식들은 부모를 버리기 까지 합니다. 또 어떤 부모는 자식을 버리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아주 슬픈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떤 관계인데 이렇게 까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관계는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관계 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두가지 점에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식은 부모 공경으로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값이 주어지고 권위가 생기는 것은 부모를 알고, 부모를 공경할줄 아는데서 발생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을 했고, 잘 살고, 출세를 했다고 해도 이것이 잘 않되어 있으면 그것은 출세도 아니고, 성공도 아닙니다. 사람은 이 관계가 잘 되어야 떳떳하고 그 권위를 인정 받게 됩니다.

여러분, 김대통령을 보십시요. 다른 것은 잘 모르겠는데 그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만큼은 이름난 분 입니다. 그분은 타고난 것 같습니다. 다른 것

다 잘하고 이것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분이 복을 받는 것이고, 사람들이 그분을 좋아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권위 입니다.

자녀들은 이것을 잘 해야 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잘 않되면 아무리 오늘 잘 살아도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오늘만 날 입니까. 먼 훗날 까지 내다 보면 불효자는 복을 받지 못 합니다. 오늘에 심지 않은 사람은 내일에 가서 거둘 것이 없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생의 질서 속에 제시된 대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복의 근원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 하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생의 질서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질서이기 때문 입니다.

부모, 이것이 보통 단어 입니까.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경쟁세상에 나가서 노심초사 하시는 아버지, 또 아이 다섯을 낳고 여섯을 낳은 어머니, 그것도 부족해서 여덟을 낳고 열을 낳은 어머니, 열번째 낳은 아이는 젓을 먹일 때 등에서 내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때 쯤에는 어머니의 젓이 사정 없이 늘어져서 등에 엎힌 아이에게 직접 입에 물려줘도 충분할 만큼 늘어져 있습니다. 그 말은 몸이 몹시도 망가져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속이 모두 비어 있다는 말 입니다. 알맹이는 모두 빼 내 주고 자신은 빈껍데기만 가지고 사신다는 말 입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에게 이같은 본재입니다. 그래서 잠언 23:22절을 보면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잠23:22)고 했습니다. 또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첫째가는 계명이요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고마우신 부모님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부모는 삶으로 권위를 지켜야 합니다.

효가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그 효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은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않됩니다. 옛날에는 자식들에게 명령만 하면 들어 먹혔는데 오늘은 그게 잘 않됩니다. 오늘은 민주화 시대가 되다 보니까 대통령의 권위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이제는 명령해서 될 세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님들도 오늘 권위를 지키려면 다음의 몇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먼저 이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자꾸만 고부간에, 자식간에 불화가 잦은 것은 부모님들이 이 시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금은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의 문턱에 와 있는 시대 입니다. 옛날 시집살이 하던 그 때를 생각하고 자꾸만 고집 피우지 마십시요. 그것은 지혜스럽지 못한 행동 입니다. 아들이나 며느리는 이 시대에서 교육을 받았고,이 시대의 물을 마시고 큰 사람들 입니다. 내 마음에 들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또 노년에 이르게 되면 분별력이 상실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노년에 이르게 되면 쉽게 노여워 하고, 서운해 하고, 자기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고집만 늘어나고, 이해력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들에게 쓸데 없이 서운한 마음만 많아 지게 됩니다. 그래서 불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구시대의 고정관념을 빨리 이 시대에 맞게 고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들 하고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고, 또 서운한 것을 극복하고 살 수가 있습니다.

어떤 권사님이 아들 딸이 살고 있는 미국엘 갔습니다. 결혼해서 살고 있

는 아들 집에 가서 밥을 먹는데 며느리가 밥상을 가져오더니 시어머니 하고 겸상을 해서 밥을 먹고 앉아 있고 아들은 밥상 옆에서 아이 우유병을 들고 앉아서 젓을 먹이고 앉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까 기가 막힙니다. 이 자식을 어떻게 키워서 미국에 보냈는데 오늘 와 보니까 이 모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속에서 솟아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는데 그것을 참느라고 예수님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것을 생각하면서 참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이 밝자 마자 기분이 나빠서 딸네 집으로 갔습니다. 저녁 때 밥상이 들어 오는데 딸은 어머니하고 겸상을 해서 밥을 먹고 앉아 있고 사위는 밥상 옆에서 아이 젓을 먹이고 앉아 있습니다. 이 장모님이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까 얼마나 보기에 흐뭇했던지 전날 기분 나빴던 것 그 저녁에 다 풀었다고 합니다. 이 권사님은 그런 생각가지고 살면 마음 편안할 날 하루도 없습니다. 그분의 이 시대를 너무나 모르시는 분 입니다. 그것은 그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 시대, 그 사회를 알면 화낼 일 전혀 없는 일 입니다.

또 사람이 노년에 이르게 되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병 입니다. 말이 많다보면 할 말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말이나 마구 해 댑니다. 눈치도 없습니다.이미 조금 전에 한 말을 또 합니다. 좋은 말이 아니고 푼수 없는 말씀도 자꾸 하십니다. 그것이 노년의 현상입니다. 사람이 노년이 되면 이렇게 말씀이 많아 집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떤 노인학자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연구를 했는데 이런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사람이 노인이 되면 몸에 있는 모든 힘이 모두 입으로 모인다고 합니다. 노인은 무릎에도, 허리에도, 가슴에도 힘이 없어지고 입만 힘이 있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이 많다는 것은 아직 힘이 있다는 증거 입니다.

젊은이들은 바로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이 말씀이라도 많아야지 그것 조차도 없어지면 그것은 거의 끝나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말씀이 너무 많으셔" 그것은 좋은 징조 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힘이 있으시다 그 말 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말씀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합시다. 그것은 가실 때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곧 돌아 가십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젊은 며느리들이 유념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으로 하여금 이웃에 죽이 잘 맞는 할머니가 계시거든 두 며느리 끼리 짜고 두 노인을 자주 만나게 해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많이 하게 해 드리십시요. 그러면 건강을 오래 유지해서 오래 사실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이라도 많은 부모님이라도 계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에는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허전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나이가 들고, 늙어 갈수록 분별력을 잃지 말고 권위를 지켜 살아야 합니다. 오늘 가족들이 자꾸만 분산되고, 집안에 자꾸만 갈등이 생기는 것은 부모 책임 입니다. 부모가 권위를 잃어서 구심점이 상실되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 늙습니다. 노인을 무시하면 않됩니다. 노인은 힘이 없고, 능력도 없고, 분별력도 없기 때문에 업신여기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노인들의 그 움푹 패인 주름살을 깊이 들여다 보십시요. 그 속에 지혜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 속에 경륜과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젊은이들에게는 힘도있고 패기도 있어 좋긴 하지만 이같은 지혜와 경륜과 역사가 부족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하고 경솔한 행동을 하고 그럽니다.

다만 오늘을 사시는 노부모님들은 노년의 삶에 권위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다 큰 자식에게는 부모도 예의가 있어야 하고, 체통을 지켜야 하고, 권위를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앙드레 지드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아름답게 죽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노년의 삶을 더 세련되게, 경건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유산이 따로 없습니다. 좋은 집을 물려 주는 것만 유산이라고들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노년의 삶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볼 때 "나도 아버지 처럼은 돼야지" 생각하게 하는 이것 보다 더 좋은 유산은 없습니다. 며느리가 볼 때 "나도 어머니의 신앙 반만이라도 따라 가야지" 이 보다 더 큰 권위는 없습니다. 이것이 유산 중에서 가장 좋은 유산인 것입니다.

여러분, 참 인생의 깊이나 무게는 노년에 가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값을 잃은 노년의 삶은 젊어서 아무리 화려했고, 성공했고, 빛이 났어도 초라한 법 입니다. 그렇지만 젊어서 한때 방탕을 했던 사람도 노년에 가서 성숙한 인생을 살게 되면 젊었을 때의 방탕도 미담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권위 있는 인생 입니다. 그런 부모는 젊은 자식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탁해졌어도 그런 부모는 무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년의 삶은 경건해야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 해서 부모와 자녀들에 대해서 생각 해 보았습니다. 부모는 공경의 대상 입니다. 부모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 보다도 우선해서 공경 받아야 할 존재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분부하신 것입니다. 성경이 힘주어 강조하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있어서 권위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가정이 산산이 분산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노년의삶이 초라해 집니다. 부끄러워 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강조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어느 시대를 물론하고 적용되는 말씀 입니다. 이 관계는 어느 시대를 물론하고 변치 않는 관계이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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