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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어버이 주일설교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베소서 6장 1절∼4절

by 【고동엽】 202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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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아멘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장 1절∼4절


지금은 고인이 된 사람입니다. 동화 작가 정채봉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시도 많이 남겼습니다. 그가 쓴 어머니에 대한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도 하고, 젖가슴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중 딱 한 가지만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겠다.
마음의 고향을 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채봉 선생님의 시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이라고 하는 책에서 근대와 현대를 구별하는 특징은 전통적 결속의 단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결속의 단절. 전통적 결속이란 가정을 말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또, 손자 손녀 이어가는 전통적 결속, 그것이 양심이요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힘이요 그것이 질서인데 말입니다. 또 성경대로 말하면 그것이 지혜의 근본인데 이것이 파괴되어간다는 것이죠.
여러분, 어떤 논문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중국에 대해서 앞으로 중국이 경제, 정치, 문화에서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전망하면서 그 좋은 점을, 그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설명해 나가는 중에 제게 인상을 준 가장 강한 것이 뭔가 하면은 ‘strong family tie' 가장 강한, 이 전통적 가정이라고 하는 그 결속력이 중국의 장래의 힘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울리히 벡은 다시 말합니다. 이렇게 전통적 결속이 단절되면서 개인화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개인주의에 빠져버렸어요. 그 결과 잃어버린 게 너무 많다. 첫째가 안정감입니다. Security. 우리 마음의 안정이 없습니다. 좋은 집에 살아도 돈이 많아도 지위가 있어도, 성공하면 불안하고 실패하면 불만하고, 안정이 없어요. 그 이유는 바로 가정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는 인간의 삶의 지향과 의미를 제공하는 이정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정표를 잃어버렸어요. 부모님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거기서 이정표를 찾고 그 길을 따라가면서 사는 거죠. 여기에 가치의 기준이 있었는데 이게 무너지고 나니까 표류되는 것이죠. 가치관이 표류되요. 이정표가 없어요. 그리고 내적 고향을 상실했다, 라고 말합니다. 내적 고향, 마음의 고향이 없어요. 안정도 이정표도 마음의 고향도 없는 이 세대가 어디로 가느냐는 거죠.
요새는 정치가와 학자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제가가 그런다고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합니다. CEO가 지배한다. Chief Executive Officer, 이 CEO가 모든 분야에서 이 세상을 인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CEO들을, 이 중요한 분들을 연구해 보니까 이분들은 대부분 좋은 가정을 가지고 있어요. 어렸을 때 자라온 환경에 대하여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어요. 특별히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성공하고 이 사람들에게 창작이 있고 이 사람들에게 발명이 있다는 것이올시다. 대단히 중요한 사회학적 결론입니다.
인생은 세상에 나면서 세 가지 복을 타고나야 됩니다. 이건 내 선택이 아닙니다. 첫째, 부모를 잘 만나야 됩니다. 어찌하겠습니까?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게 아닙니다. 부모가 나를 낳아 주어서 세상에 태어났지요. 부모를 잘 만나는 것, 이거 결정적인 축복입니다. 두 번째 복은 선생을 잘 만나야 됩니다. 단 한사람의 좋은 선생을 만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단 한사람의 천하의 못된 선생을 만나서 일생이 망가지고 맙니다. 이것이 복이라는 겁니다. 셋째는 배우자를 잘 만나야 됩니다. 마누라, 남편, 이거 잘못 만나면 큰일 납니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행복을 찾아 결혼한다만은 너희가 진정으로 사랑하면 천국이다. 오늘 천국에 들어가는 거다. 사랑이 식어지고 나면은 오늘부터 십자가를 지는 거다.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생각하는 곳이 가정이다. 라고 말입니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란서 혁명 이후에 불란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지마는 아이들이 빵 한 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하며 만족해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높은 사랑, 하도 귀한 사랑을 받고 그것을 배신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미움받고 미워하는 것이야 당연하지. 그러나 사랑 받고 미워하고 특별히 고상한 사랑을 받고 배신한다면 죽어 마땅한 것이죠. 아주 어렸을 때 외할머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홀로 된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정성을 다해서 그 힘든 일을 해가면서 돈을 벌어서 이 아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답니다. 이 아들이 보고 싶어 못 견디겠어요. 편지도 쓸 줄 모르고 요새처럼 전화도 안 됩니다. 그저 아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아들을 보러 서울로 왔는데, 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문에 서서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자기 애인하고 같이 손을 잡고 나오고 있더랍니다. 반가워서 "얘 아무개야!"하였더니 그 애인이 남자에게 묻기를 "저 여자 누구야?" 이 남자, 이 아들 하는 말이 "어, 그 우리 집에 오래 전에 있던 식모야"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그대로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만요. "사랑을 배신하지 마라." 사랑에 대한 배신은 죽어 마땅한 거예요. 그 아들이 살아서 뭘 하겠어요. 성경은 이런 죄를 무섭게 책망합니다.
한 200년 전에 중국에 선교를 할 때, 아시는 대로 중국은 그 당시 유교, 유교 문화에 꽉 젖어 가지고 있는데 이제 기독교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는데 그게 마음이 열리기가 어렵죠. 그럴 때에 그 때에 만들어진 전도지를 보니까 그 전도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어느 종교보다도 가장 높은 효도의 종교입니다" 그랬어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21장17절을 인용합니다. 부모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출애굽기 21장15절, 레위기 20장9절에는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무조건 쳐죽여라. 신명기 21장 18절로 21절에 보면 패역한 자식,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고 징계도 듣지 않는 자가 있거든 공회에 끌고 가서 증거를 내고 끌어내서 돌로 쳐죽여라 그랬어요. 패역한 자식은 죽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악을 제하라. 이 무서운 성경구절을 전도지에 써 놓았어요. 그리고 다시 긍정적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아버지가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그 때에 나이, 이삭이 스물일곱 살 입니다. 아버지 나이 127세. "너를 재물로 바치란다" 할 때에 "100세가 넘더니 노망했구려" 충분히 그럴 수가 있죠. 그러나 이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고 공경하고 제단에 올랐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절대 순종한 것이요. 이것이 기독교다 그것이에요. 그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데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기독교는 철저한 효도의 종교다 이렇게 전도를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문이 열린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두 가지입니다. 순종이란, 굴종이 아닙니다. 복종이 아닙니다. 굴종이나 복종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겁니다. 공경이라는 것은 티마라고 하는 말은 특별한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쓰여지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요새는 부모를 불쌍히 여기는 자식들이 많아요. 안되었다 싶다나요. 이런 망언이 어디 있습니까? 또한 하나의 친하는 친분정도의 그런 사랑을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높이 섬기라. 낮춰 사랑하는 게 아니고, 수평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높이 사랑하는 거예요. 공경하라. 높이 섬기라 이거예요. 이것은 존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옳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국교회에서도 어머니 주일을 지킵니다. 이 어머니 주일을 지킬 때에 늘 학생,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중요한 예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미국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것은 중요한 실제적 교훈이기 때문이죠. 미국 사람들이 존경하고 잘 아는 조지 워싱턴, 1대 대통령 워싱턴이 어렸을 때 그의 꿈이 뱃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이 되고 마침내 선장이 되고 바다를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바다의 사람이 되겠다, 생각을 하고 우선 선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짐을 다 꾸려가지고 하인들과 같이 이제 배를 타러 나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났을 때, 큰 뜻을 품고 집을 나가는 아들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울기만 합니다. 줄줄 우는 겁니다. 워싱턴은 그 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꿈을 포기하고 "짐을 내려라." 다시 짐을 풀어놓고 어머니에게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에 유명한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떠났더라면 그저 잘해서 선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큰 뜻을 품고 다 준비했던 것도 버리고 어머니를 따랐습니다. 왜요? 어머니가 나보다 지혜로우니까. 나보다 어머니에겐 경륜이 있으니까. 어머니의 명예를 높이고 어머니의 인격을 높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알았어요. 그를 높이고 높여 순종한 것이에요.
그리고 공경이란 것은 그를 높이는 것이요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이런 분입니다. 내 아버지는 이런 분입니다. 그는 이렇게 훌륭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런가 하면 공경이란 대가성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공경해서 무얼 받아내자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거래가 아닙니다. 질투 없는 사랑은 오로지 효(孝) 하나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사랑에 대한 응답이올시다. 또한 이 사랑에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에 응답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소원 아버지의 기도, 그것을 알고 그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많더라도 아니요, 그의 소원을 우선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선합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의로운 것입니다. 때로 부모님이 "공부하라 공부하라" 입버릇처럼 하지만은 알고 보면 거기에는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제 때에 공부를 못해서 이렇게 늘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고로 너는 공부하라' 이것입니다. 그래, 이 말이 이렇게 듣기 싫었습니다. 그 속에 소원이 있단 말입니다. 간절한 소원이 있어요. 또한 부모님의 소원 중에 가장 큰 것은 건강입니다. 여러분, 병들지 마세요. 병들면 불효자입니다. 건강을 잘 지켜서 건강해야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지, 앓아 누워있는 자녀는 불효자입니다. 그것도 내 잘못으로 인하여 내가 병들었다면,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부모님 앞에서 한숨쉬는 것 아니에요. 죽기 전에는 슬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님 앞에 탄식하고 괴로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마음에 기쁨을 드려야겠으니까요. 그의 소원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특별히 정직하게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죠.
효는 가정교육의 기초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골에 계시는 70이 넘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홀로계시는 아버지를 생각을 하니 며느리나 아들이나 마음이 편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서울로 모시고 옵니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가 보니까 너무나 무료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집안의 공기가 어떤가를 조금씩 깨달음이 옵니다. 위계질서가 이런 식으로 되어있더랍니다. 가장 중요한 1호는 며느리고요, 둘째가 손자 손녀요, 세 번째가 자기 아들입니다. 네 번째가 그 집의 가정부가 4호입니다. 그리고 그 집안의 강아지가 다섯 번째 그리고 당신은 여섯 번째 랍니다. 며느리가 외출을 하고서는 돌아온 다음에 제일 먼저 물어 보는 게 남편이 언제 돌아온다고 했냐? 그리고 아이들은 밥을 먹었느냐? 그리고 강아지는 밥을 줬느냐? 그런데 당신에게는 아무런 물음도 없고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랍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괴로워서 그냥 하향을 결심을 하고서는 아들에게 편지를 간단히 쓰고서는 가십니다. 내용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3호야 잘 있어라 6호는 간다. 요새 세상이 이렇습니다.
여러분, 요새는 아이들이 효도를 하려해도 효도하는 방법을 몰라요. 효도하는 것을 못 보았거든. 언제 효도를 보았나? 못 본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못 배운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자녀가 말을 안 듣거든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했나 생각해 보세요.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 없어요. 잊어버려요.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 거예요.
오늘 성경말씀에는 장수하게 되고 형통하리라. 이건 통계학적 진리예요. 효도하는 사람이 오래 살아요. 효도하는 가문이 장수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형통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지혜로 가정으로 세계적으로 형통합니다. 이스라엘의 강한 점은 그 전승을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전승의 뿌리는 효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경, 그것이 바로 인격의 뿌리입니다. 공경을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가 없어요. 공경을 몸에 익히지 못한 사람 공경과 순종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영영 구제 불능이에요. 마틴 루터는 그의 대요리문답에서 부모란 네가지를 말합니다. 낳아준 부모, 나를 가르쳐준 선생부모, 나를 지켜주시는 왕부모, 그리고 내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는 목사부모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란 스토르게만이 아니에요. 이런 네가지 부모 속에 있어요. 부모에게 순종하라 순종의 덕을 익히고 비로소 인격이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됩니다. 이것이 가풍이 되고 가문의 전통이 될 때 자자손손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고 건강하며 형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를 항상 새롭게 일깨워 주심에 감사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순종의 덕을 몸에 익히면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가정들이 효의 가정이 되고 주의 약속된 복을 다같이 받고 또 이어가는 거룩한 가정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청소부 틸리 부인
시카고의 “데일리 타임즈”지 기자는 신문에서 “공무원을 죽인 자를 잡도록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5천 달러를 상금으로 주겠음”이라는 광고를 보았을 때 무엇인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어 광고주를 방문했었다. 그 사람은 초라한 집에 혼자 살고 있는 늙은 청소부 여인이었다.
이야기는, 그녀의 아들이 경찰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는 진짜 범인을 잡는데 필요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11년 동안 일주일에 6일을. 하루에 8시간씩 청소를 했으며 등이 아팠으나 3천 5백일을 야간작업까지 하여 드디어 5천 달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처럼 그 아들의 무죄를 확신하게 된 기자는 사건을 다시 조사했고 진범은 잡지 못했지만 그녀의 아들이 범인이 아님을 밝혀내어 마침내 무죄 석방이 되었다.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래서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을 때 어머니는 어떤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내놓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곽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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