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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노인에게 교만할 것이며! (사 3:1-5)

by 【고동엽】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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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노인에게 교만할 것이며! (사 3:1-5)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과 더불어 ‘효’를 사람의 대표적인 덕목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처럼 부모에 대한 효도를 귀중히 여기던 우리 조상들이 보았으면 기절초풍을 할 일이 얼마 전에 이 나라에서 진짜로 일어났습니다. 일개 정당의 대표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육칠십 대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고 그냥 집에 앉아 계십시오.’라는 말이 튀어 나왔던 것입니다. 저는 아마 우리 노인들이 다들 비분강개하시고 악착같이 투표하러 나오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총선 이후에 통계 조사를 보니 실제로 그 세대 노인들의 투표율이 이전 총선 때보다 더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효’라는 덕목을 전통적으로 존중해 오던 이 나라에 살면서 당신들의 귀로 직접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너무나도 철딱서니 없는 소리였던지라, 아마 제대로 역정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충격들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바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들이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본문 이사야 3장 5절 하반절에서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히」 대하는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나라란 다름 아닌 유다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가 장차 심판받아 망하게 될 날에 그런 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노인에게 교만하게 대하는 나라는 망하는 나라’라고 다른 사람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우리가 그 말씀을 적어도 세상 정치가들이 선동적으로 하는 말보다는 훨씬 더 새겨들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저는 특히 이 나라의 젊은 청년과 학생 세대가 우리의 연로하신 부모님 세대 앞에서 절대로 교만한 자식들이 되어서는 아니 될 구체적인 이유 두 가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이 나라의 ‘노인’들은 이 나라의 ‘아이’ 세대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신 세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조 유다를 망하게 하신 길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였는데, 그 첫째가 바로 ‘경제적 파탄’이었습니다. 본문 이사야 3장 1절에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의뢰하는 것’이라는 말과 ‘의지하는 것’이라는 단어들은 서로 같은 말을 하나는 남성명사로, 하나는 여성명사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그 근본적인 뜻의 차이는 없고 그냥 그 의존하는 상태를 아주 강조하기 위하여 그렇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가 그처럼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양식’과 ‘물’이었습니다. 그런 양식과 물이 백성 개개인에게 필요한 만큼 충분하게 공급되어야 만이 유다는 한 나라로서 힘을 발휘하고 존속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유다가 국가로서 존재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모든 양식’과 ‘모든 물’을 완전히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바로 그 나라를 망하게 만들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제로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기 직전 그와 같은 식량 부족과 식수 고갈 상태를 맞이했었습니다. 그처럼 일단 식생활이 타격을 받게 되자, 외적의 침략 앞에서도 맞서 싸울 힘도 의지도 남지 않게 되었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먹고 사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별로 오랜 옛날도 아니고 바로 지금의 우리 부모님들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이 분들이 물려받은 나라라는 것은 일제의 철저한 수탈로 인하여 빈껍데기만 남은 나라였습니다. 그나마 연이은 ‘육이오 사변’으로 인하여 완전히 파괴되고 벗겨진 나라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부모님들은 ‘배고픈 맛’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겪으면서 자라셨습니다. ‘보리 고개’란 것을 연례행사로 치러야 했습니다. ‘저 놈, 오늘 저녁밥 주지 마라.’는 말이 우리 아버지들께서 우리 할아버지들께로부터 받는 제일 무서운 벌이었던, 그런 어린 시절을 실제로 사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배고픈 서러움을 단단히 겪으면서 자라나셨던 우리 부모님들이 또한 단단히 결심한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라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런 우리 부모들에게 ‘힘든 직장’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었고 그저 닥치는 대로 죽어라고 일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대졸 간호원들이 독일에 가서 사람 죽은 시체나 닦으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대졸자들은 이력서에 일부러 학력을 고졸이라고 낮추어 속이기까지 하면서 독일에 광부로 가서, 그 어두운 막장의 밑바닥을 파면서 번 피땀 젖은 돈을 고국의 가족들에게 보내었습니다. 월남전에 파병된 병사들은 실제로 목숨과 돈을 바꾸어서 이 나라 경제 성장에 크게 한몫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늘날의 팔자 좋은 젊은이들처럼 무슨 ‘3D 직종 기피’라는 개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문자 그대로 피땀 흘려 돈을 벌면서 가졌던 생각은 단 한 가지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내 새끼들은 절대로 굶기지 않겠다.’라는 이 소원 하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우리 부모님 세대의 희생 때문에 지금 저와 여러분 청년 세대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남한보다 더 나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전체의 국민총생산량이 우리나라의 제주도 것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나라의 좌경 세력들은 우리 부모님들에게 ‘수구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매도하고, 그 대신에 북한의 공산주의 독재자들을 자기 부모보다 더 존중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이처럼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룩해 놓은 부모들에게는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서 발 닦고 잠이나 주무시라.’하면서, 북한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비렁뱅이 나라로 만들어 놓은 독재자들을 두고는 ‘미제의 침략에서 조국의 주체성을 지켜낸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우리 청년들이 이따위 선동에 넘어가서 세상에 다시없을 불효자가 되려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청년 실업률이 높다고 하지만, 공장에서는 일손이 모자라서 야단 아닙니까? 조금만 변두리로 나가면 사무직도 얼마든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사지 멀쩡한 젊은이들이 힘든 직장을 마다하고 그 대신에 여전히 부모에게 용돈 타가지고 놀고들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식들이 지금 우리 부모 세대를 가리켜 ‘수구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까?

백번 절하고 감사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런 부모들을 보고 정말 그런 욕을 감히 입 밖에 내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당시 세간에 떠들썩했던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건’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그때 우리 집에 제 사촌 형님이 함께 지내고 계셨는데, 그 형님과 저는 그것을 두고 ‘지극히 졸렬한 언론 탄압’이라고 비분강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아주 언짢은 어조로 한 마디 하시는 말씀이 ‘너거(너희)들은 모른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뭘 모르고 있다면 그 모르는 것이 뭔지나 알려 주시고 그런 말씀하셔야 할 터인데,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너거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 헌법 개정해서 장기 집권하고 자기를 비판하는 언론을 부당하게 탄압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가 하는 것은 삼척동자에게도 뻔한 일인데, 우리가 뭘 모른다니, 정말 기가 막힐 소리였습니다.

그러니 제 사촌 형님이나 저나 둘 다 밥알이 뱃속에서 곤두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저녁에 저는 ‘밥 먹는 자리에서 정치 얘기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절로 깨우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너거들은 모른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의 뜻을 조금 더 세월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미국에 가서 공부하면서 밥벌이 하느라고 밤일과 새벽일도 해 보고, 어떤 때는 시장 볼 돈도 떨어져 보고 하면서, 저는 절로 그 ‘몰랐던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아하, 그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너희들은 가난이란 것이 뭔지, 배고픈 맛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는 뜻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박정희 대통령이 부당한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셨겠습니까?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군사 독재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것이 바로 가난이라는 것을 체험해 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장면 정권 같은 무능한 민주정부보다는 국민을 일단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 군사정권이 백 번 더 낫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물론 박정희 아니라 아무나 해도 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글쎄요, 그 뒤의 대통령들, 특히 민주화 이후의 첫 대통령이었던 분이 이 나라 경제를 위해 해 놓았다는 것이 ‘IMF’였던 것을 보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불법적인 장기집권을 했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지금도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 부모님 세대가 성취해 놓은 이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결코 과소평가하거나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부모님들께서 저와 여러분 같은 당신의 자식들에게는 배고픈 맛을 남겨 주지 않으려고 그토록 고생하셨다는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열 번 백 번 감사드려도 모자랄 자식들인 줄로 깨달아야 합니다.

 

2. 이 나라의 ‘노인’들은 이 나라의 ‘아이’ 세대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낸 세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망하게 하신 두 번째 방법은 바로 나라의 지도자들을 없애 버리신 것이었습니다. 본문 이사야 3장 2절과 3절에 「(제하여 버리시되 곧…)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유다에서 정치, 군사, 종교, 기술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지도자급 인사들이 다 없어지게 만드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복술자’들이나 ‘요술자’들이 포함된 것은 그들을 무슨 바른 종교인으로 인정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 하여튼 유다 사회에서 지도자가 될만한 인물들을 모조리 다 제거해 버리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이며, 그들 역시 거기에 포함되었을 뿐입니다. 그 대신에 4절에서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유년기에서 청년기까지 다 포함되는 포괄적인 세대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즉 아직 신체적, 지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세대, 또는 육체적으로는 성숙했지만 영적으로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란 물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런 ‘아이’들로 ‘방백’ 즉 유다의 고위 관리들을 삼으신다는 말은, 그만큼 유다에는 쓸만한 인재가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적자’라고 번역된 말도 ‘아이’란 단어와 동의어로서, ‘미숙한 아이’를 뜻하는데 ‘철부지’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에 더 잘 맞습니다. 즉 유다에는 쓸만한 지도자들이 다 사라지고 그 대신 철부지 같은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다스리며, 아이들 세대가 나라를 제 마음대로 이끌어가는 지경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철부지 애들이 다스리는 나라라면 그 꼴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바로 이어지는 이사야 3장 5절에서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라고 했습니다. 그런 유다는 외적에게 침략을 당해서 망하기 이전에,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서로 적대관계를 이루고, 가깝게 지내야 할 이웃들끼리 오히려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한 나라의 백성이 그 안에서 저희들끼리 나뉘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5절 하반절에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덤벼들고, 저질적인 인간들이 그 사회에서 명망 높고 덕망 있는 자들에게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대어드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로 뭉쳐져야 할 유다 민족은 젊은 세대가 노년 세대를 대항하게 되고 저질적인 자들이 사회에서 높임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홀대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 둘로 쫙 갈라지게 되면서 망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바로 그런 망조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정치가들은 새파란 ‘아이’들을 선동하여 표몰이를 하고, 그렇게 부추김을 받은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를 ‘통일을 저해하는 반민족적인 세대’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 정치계에서 이렇게 푸대접을 당하고 있는 노인 세대, 이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경제성장 말고 또 한 가지 더 해 놓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반공사상을 고수하고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지켜 놓은 일입니다. 이 분들이 군사독재 시대에 사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군사독재를 옹호한 공범인양 몰림을 당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 부모님들은 공산독재정치란 것이 일제나 군사독재정치보다 최소한 열 배 이상 더 무섭고 악랄하고 나쁘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반공정신을 가지고 이 대한민국을 북한 공산주의의 남침으로부터 문자 그대로 육탄으로 지켜낸 분들이, 지금 젊은 세대가 반민족 세력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이 노인 세대입니다. 이 대한민국을 김일성의 적화야욕의 손아귀로부터 신앙의 자유, 언론과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로 지켜온 사람들은, 지금 이 나라에서 제 세상 만난 듯이 설치고 있는 좌파 정치권 세력이 아니라, 바로 지금 지팡이 짚고 간신히 출입하고 계시는 이 노인 세대인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인터넷 가지고 잘난 체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 세대보다는 백 배 더 훌륭한 세대이며, 민주화 투쟁은 자기 혼자 다 한 것처럼 뻐기고 있는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보다 적어도 천 배는 더 존경 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철부지’ 같은 정치가들은 지금 대한민국의 ‘아이’들로 하여금 이런 ‘노인’ 앞에서 제멋대로 교만하도록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자기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 나라 안에서 지역감정을 은근히 부추기고 이용해 먹던 정치가들이,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아이’와 ‘노인’ 세대를 또 둘로 쫙 갈라놓고 있는 것입니다. 신세대가 구세대를 수구주의라고 욕하게 만들고, 수준 이하의 저질 정치가들이 이 사회의 진짜 양식 있고 실력 있는 어른들을 반민족적 친미 집단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마는, 원래부터 반공을 국시로 삼고 있던 이 대한민국에 대통령들이 들어서서 이 사상에 대하여 온 나라 백성을 완전히 둘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육이오 사변이 북침이라고 하면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인데, 대통령이란 분이 육이오를 가리켜 ‘통일전쟁’ 운운하면서 국민들을 혼란시켰습니다. 현재의 대통령께서는 물론 잘 하시는 것도 많지만, 또 왜 가끔 그리 ‘철부지’ 같은 모습을 국민들 앞에 보이고 계시는 것입니까? 대통령께서 외국 순방을 가셨으면, 다음날 상대방 국가 통치자와 어떻게 회담을 잘 이끌어서 국가 이익을 꾀할 수 있을까 하고 밤새워 국사에 대해서 고민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밤새워 ‘노사모’ 앞으로 편지 한 장 쓰고 계셨다지요. 대통령 자리란 것이 이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의 안보와 복리를 위한 것이지 무슨 팬클럽 회장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편지를 받고서 ‘노○○을 사랑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즉시 홍위병 신고하겠습니다.’라고 응답들을 하셨습니다. 그 ‘홍위병’이란 말, 어감이 뭔가 멋있게 들리니까 꽤 좋은 뜻인 줄 아는 모양인데, 그 홍위병에 대한 역사를 알고나 쓰고들 계십니까? 모택동이 집권하여 자기 말마따나 ‘백지 위에 그림 그리듯이’ 즉흥적인 정책을 쓰다가 중국 경제를 다 망쳐 놓았습니다. 그러자 유소기가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여 그 다 죽어 있던 경제를 완전히 회복시켜 놓으니까, 자기 입지가 위태로워졌고, 그때 모택동이 만든 것이 바로 홍위병이었습니다. 그것은 젊은 애들이 노인 세대에게 가질 수 있는 반감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서, 모든 책임을 노인 세대에게 돌리고, 노인 세대가 해 놓은 것은 모두 나쁘다고 몰아붙이면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하면서, 그 젊은 애들로 하여금 ‘모택동 어록’만 줄줄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모택동에게 부추김을 받은 홍위병들이 그 자기네 젊은이의 흥분되기 쉬운 감정, 파괴 심리, 폭력 쾌감들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자기 부모들을 고발하고 자기 선생들을 잡아 때리면서 중국의 모든 귀중한 전통 문화를 깡그리 파괴해 버린 것이 소위 ‘문화 혁명’이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서 유소기 같은 인물이 홍위병에 의하여 체포되어 결국 죽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홍위병이란, 제 나라 다 때려 부수고 자기 부모 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을 다 죄악시하면서, 단지 모택동의 개인 독재 권력만 강화해 주었던 모택동의 ‘사병(私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실상 자기네들을 보고 누가 ‘홍위병’이라고 부르면 분개하고 항의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노인네들은 투표도 하지 마시오.’라는 소리 들어도 이제는 화를 낼 기운마저 사라져 버리신 우리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저라도 감히 대변하고 싶어서입니다.

이 나라를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물려주신 이 어른들을 향해서, ‘반공하는 것은 곧 수구주의’라고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몰아붙이고 있으니, 이 목사라도 이 분들을 대신해서 한 마디는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런 ‘아이’ 정치가들로부터 반민족 세력이라고 욕을 듣기에는 너무나도 훌륭하신 부모님들이십니다. 바로 이 한반도 반쪽 북쪽에 그 공산주의 정권의 노예가 되어 바로 이 시간에도 굶어 죽고 갇혀 죽고 맞아 죽고 있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볼 줄 안다면, 이 대한민국을 그런 무서운 공산독재에서 지켜낸 우리 부모님들께 적어도 제대로 된 자식이라면 진정 감사하는 마음 하나는 간직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이가 노인에게 교만한’ 나라는 바로 저주를 받은 나라이며 반드시 망하게 될 나라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누가 이런 망조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까닭에 부모 역시 공경할 줄 아는 우리 기독 청년들이, 기독 청소년, 기독 신세대가 이런 악한 조류를 거슬러 막는, 이 나라의 진정한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청년 여러분, 그리고 우리 학생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들께서 “너희들이 배고픈 맛을 아느냐?”라고 말씀하시면, 제발 그 분들에게 “그런 소리 우리한테 왜 하세요?”라고 대꾸하지 마십시오. “너희들이 공산주의의 무서운 것을 아느냐?”라고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면, 제발 “아버지, 어머니야말로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모르는 소리 마세요.”라고 대어들지 마십시오. 우리 부모님들은 저와 여러분 같은 자식들로부터 그런 소리 들어야 하실 분들이 결코 아니십니다. 이 분들은 여러분들처럼 영어로 팝송을 부르지도 못하고, 인터넷은커녕 컴퓨터 켜고 끄는 것조차 못하는 분들이지만,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런 부요한 의식주생활,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만들기 위하여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신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여러분들처럼 일자리가 없어도 굶을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가 활동처럼 데모나 정치 운동도 할 수 있는 그런 여유일랑 조금도 못 누리시고, 그 대신에 공산주의 침략의 총칼을 맨 몸으로 맞서 싸우면서 이 대한민국을 지켜내신 분들입니다. 그런 우리 부모님들께 “아버지, 어머니, 그냥 발 닦고 잠이나 주무세요.”라는 따위의 소리는 정말, 제발 하지 마십시오. 경제를 망치면 통일은 고사하고 일단 우리 자신부터가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단 한 나라도 성공 사례를 남기지 못했던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 버리면, 이 나라 역시 남북이 합쳐서 그 공산국가들의 망국 역사를 고스란히 재현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들께서는 이 둘 다 너무나도 훌륭하게 극복하신, 정말 이 나라의 위대한 ‘노인’들이십니다. 우리에게 이처럼 부요한 나라, 자유민주의 나라를 남겨 주신 이 부모님의 희생과 용기에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자식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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