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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사랑 /욥 1:1-5

by 【고동엽】 2021.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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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사랑
욥 1:1-5

5월은 사랑의 달입니다. 사랑의 달 첫 주일에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티없이 맑고 바르게,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그들을 사랑하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보살피고 기도해주는 신앙의 가정이 되기를 바라면서 <자녀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사랑을 말씀드리려니 지난 4월 22일 오후 2시, 평안북도 룡천역 폭발 참사 사건으로 76명의 소학교 학생들이 비참하게 죽었고 많은 어린이들이 화상을 입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비참한 모습이 자꾸 눈앞을 가로막습니다. 몇 일 만에 흙더미에서 구출을 받은 어린이가 <너무 배가 고픕니다>라고 한 소리가 귓전을 우리는 것 같습니다.
그들도 사랑을 받고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들입니다. 그들도 가정의 귀한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북녘의 어린이들에게도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어린이날은 3·1운동 이후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색동회를 조직하여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치름으로써 비로소 어린이날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27년부터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계속 행사를 치르다가 1946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습니다.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선포하고 1970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어린이날을 공휴일로 정하였습니다.

어린이주일은 Massachusetts주의 First Universalist교회의 Leonald목사에 의해 6월 둘째 주일을 정하여 어린이를 말씀으로 양육하는데 부모들의 헌신을 요구하면서 제정이 되었는데 한국교회에서도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변경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주일은 <꽃 주일>이라고 했는데 이는 1870년 미국의 한 조합교회에서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에 우스 땅에 거하는 욥이 자기 자녀 사랑한 모습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욥이 거주한 우스 땅은 팔레스타인 동남부 지방으로서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입니다(욥31:26-28). 욥은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였을 뿐 아니라 여러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는 경건한 부모의 역할을 잘 하였습니다.

1. 신앙인격

본문 1절에 자녀사랑이 깊은 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이 말씀은 욥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인격을 갖추었는가를 보여줍니다.

1) 그는 순전했습니다. 순전하다는 것은 순수하고 완전하다는 말입니다. 순수하다는 건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마음에 딴 생각이나 그릇된 욕심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완전하다는 건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부족함이나 흠이 없다는 겁니다. 욥의 도덕적 성품이나 종교생활이 균형이 잡혀있어서 아무런 흠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욥이 순전했다는 말은 무죄하였다는 말이 아니라 그는 교활하지 않았고 위선을 행치도 않았고 성실하게 산 결함이 없는 아버지였다는 겁니다.

2) 그는 정직했습니다. 욥은 내적으로는 순전하였고 외적으로는 정직하였습니다. 그의 삶과 행위에 나타난 정직은 내적 순전함의 증거였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 순전할 때, 그 행위는 인간들에게 정직하게 나타납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경외란 공경하면서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경외는 곧 신앙입니다. 욥의 신앙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중시하였으며 그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의 두려움, 즉 거룩한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4) 그는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그는 악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악으로 악을 이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악에서 떠났다는 말은 악을 미워하고 악을 피하였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악을 떠나는 겁니다. 악은 때로는 그럴듯한 모양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게 둘러 싸여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악에게 빠지지 않고 악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악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도, 눈도, 손도, 발도 악에서 떠난 자이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경건한 아버지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2. 가장 큰 자

욥은 세 가지 경우에 번영과 풍요를 누렸습니다. 이런 번영을 누구나 다 원하지만 누구나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욥은 이 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도 이런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1) 그는 자녀의 복을 받았습니다. 욥의 소생은 아들이 일곱이요 딸이 셋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자녀의 번성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중에 큰복으로 여겼습니다. 시127:3-5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고 했습니다.

2) 그는 부자의 복을 받았습니다. 욥1:3에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라고 했습니다. 고대에는 부가 가축의 수효에 의하여 평가되었습니다. 그 집에 종이 몇 명인가로 평가했습니다. 욥은 경건한 신앙의 사람으로 부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와 재산은 그 자체로서는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물질은 모든 악의 뿌리가 아닙니다. 물질 때문에 하나님도 없고 형제도 없고 황금 제일주의로 사는 것, 돈을 제일로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욥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것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욥31:24-25에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정금더러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던가 언제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던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부자라고 해서 종이나 노비를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욥31:13에 "남종이나 여종이 나로 더불어 쟁변할 때에 내가 언제 그의 사정을 멸시하였던가"라고 했습니다.
욥31:16에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한 것을 보면 그는 가난한 자를 위해서 물질을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3) 명예로운 인물입니다. 본문 3절 끝에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라고 한 걸 보면 욥은 탁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욥은 그가 살고 있는 우스 땅에서 가장 믿음 좋은 사람.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 가장 존경을 받는 명예로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동방사람 중에 가장 큰 자이었습니다. 동방이란 아라비아 북부와 팔레스타인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나라를 말합니다. 이 동방에는 부유한 사람이 많은데 그 중에 욥이 가장 큰 자였습니다. 욥이 큰 인물이 된 건 단순히 그가 부자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의 인품이 지니는 권위였습니다.

3. 자식 사랑

본문 4-5절에 보면 욥이 자식을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보여줍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기 신앙에 힘을 쓰다보면 자녀들의 신앙에는 소흘하기 쉽습니다. 많은 재산관리를 하다보면 자녀를 보살피는데 구멍이 나기 쉽습니다. 밖앗 세상에서 명예를 얻고 인심을 잃지 않게 살려고 하다보면 자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욥은 참으로 훌륭하게 자녀를 사랑했습니다. 아마도 욥의 아내는 어려울 때, 남편도 자식도 버리고 가출한 걸 보면 욥 보다는 믿음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욥은 참으로 훌륭하게 자식사랑을 한 아버지의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1) 편애가 없이 자식을 사랑했습니다. 그러기에 형제화목을 이루었습니다. 본문 4절에 "그 아들들이 자기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라고 한 말씀을 주목해 봅시다. 10남매가 자기생일이면 각각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한 자리에서 형제우애를 나누었습니다. 형제자매간에 함께 나누는 우애, 아픔도 함께 나누고 즐거움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자기생일이면 자기 집에 형제를 초청하여 수고하며 대접할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 형제가 무엇입니까? 형제는 우애를 나누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쌍둥이도 시기합니다. 에서와 야곱이 그랬지 않습니까? 믿음의 사람 야곱의 아들들도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속이면서 아비의 맘을 아프게 하지 않았습니까? 시집간 딸들도 친정, 친정 하다가 어쩌다가 친정에 다 모이면 신랑 잘 만나서 별나게 치장을 하고 온 언니나 동생을 보고는 시기합니다. 누구 꼴 보기 싫어서 다시 친정 안 간다고 합니다. 자식이 많으면 나도 모르게 편애하기 쉽습니다. 이 편애가 형제우애를 깨뜨립니다. 그런데 욥의 10자녀는 특별한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욥이 얼마나 형제간의 조화와 사랑을 성숙시켰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자식사랑을 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은 자식사랑을 하는 욥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다 같이 읽읍시다. 욥1:5에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아멘

생일 잔치가 지나면 자식을 불러모아 성결케 하였다고 했습니다. <불러다가>한 것을 보면 자녀들을 예배에 참석시켰음을 봅니다. 욥이 자식 사랑한 건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한 겁니다. 자식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버려 두고 나만 경건히 예배드린다면 진정한 자식사랑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신 뿐 아니라 자식들이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내리는 은총을 입게 해야합니다. 이게 자식사랑입니다.

욥은 그 자식들이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게 살도록 해야한다는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욥은 그 자녀들이 집안에 은금을 쌓아두기보다는 믿음 안에서 살기를 원했고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사는 것 보다 성결한 자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자식사랑입니다.

욥은 그 자녀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림으로 그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식을 사랑합니까? 그들의 명수대로, 이름을 불러가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식사랑입니다.
욥은 자식들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족장의 자식이니까 형식적으로라도 예배드리는 척, 기도하는 척 하여 체면을 유지하는 것으로 다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를 염려하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이 없이 헌신하도록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자식사랑을 한 욥의 모습이 한두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한 것을 보면 끝없이 자식사랑을 한 것입니다.
삼상2장에 나타난 엘리 제사장은 자식에 대하여 무슨 짓을 하던지 무관심하였습니다. 이건 자식사랑이 아닙니다. 자식을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욥이 자식사랑을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서 우리도 자식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헌신하도록 믿음으로 키우는 부모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 자식사랑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을 사랑합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을 쓴 배우 김혜자 씨는 지구촌의 어린이를 한결같이 가슴에 안고 사랑했습니다. 6,200만원을 룡천의 어린이를 위해서 쓰도록 보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의 많은 어린이를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사랑합시다. 마19:14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는 내일의 교회주역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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