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예수님 (누가복음 18:15-17)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사실을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기 자녀에게 손을 대어 주시기를 원해서 주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아이들을 꾸짖으면서 내보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오히려 아이들을 부르시면서 아이들을 용납하시고 저들을 품에 안으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나라가 잘되려면 세 가지 소리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①글 읽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미래에 학자가 많이 생기고, 훌륭한 지도자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②기계소리입니다. 산업이 발달된다는 의미입니다. ③아이의 우는 소리입니다. 한 세대는 가도 많은 자녀가 이 땅에 자라서 나라를 지키고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역군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자녀에 대한 의무를 잘 감당해서 아이들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믿음을 잘 계승하여 훌륭하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는 있지만, 어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의무 즉 양육의 의무, 교육의 의무, 특별히 신앙의 의무를 잘못해서 자녀들이 가출해서 방랑자가 되기도 하고, 또 범죄를 해서 악명 높은 생애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 주셨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어린아이들을 불러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16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데리고 온 어린아이들을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어린아이들을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왜 어린아이들을 부르셨는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꾸짖고 오히려 곁에 오는 것을 금했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어린아이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①이 어린아이들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천하보다 귀한 생명입니다. 어른을 한 명 전도하는 것이나 어린이를 한 명 전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어른을 한 명 전도하는 것도 귀하지만 아이들 전도하는 것은 더 귀합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어느 정도 살만큼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예수 믿으면 주의 일을 갑절이나 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의 귀한 생명을 어떤 육체적인 가치에 두지 말고 그 영혼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6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②어릴 때 주님을 영접하면 어른 때 주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전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실패, 절망, 좌절, 죽음의 공포, 허탈감 등 세상에 기대했던 것들이 허무함을 느꼈을 때 비로서 하나님이 주신 종교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어릴 때 예수 믿으면 평생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사실 늦게 예수 믿은 분도 신앙을 잘 지키는 분이 있지만, 어린아이들이 어려서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아이들은 평생토록 그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유아세례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찬양대원으로 혹은 주일학교 교사로 많이 봉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가진 신앙은 매우 귀합니다. 육체의 건강도 귀하지만 예수 잘 믿는 영적인 건강은 육체의 건강보다 더 귀합니다. 물질의 부요함도 귀하지만 믿음의 부요함은 더 귀한 것입니다.
둘째, 어린이를 용납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16절) '용납'이란 환영하는 것 이상입니다. 용납은 가까이해주실 뿐 아니라 품에 품어주시고 가장 가까이해주시는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가장 가까이해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부모는 공부가 중요해서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오늘 과외선생님 오시는데, 아니 오늘 숙제가 있는데 교회에는 나중에 가고 어서 공부해' 이런 집사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집사에게까지도 책망하시고 축복을 거두실지 모릅니다. 공부보다 신앙이 더 우선인 것을 가르쳐주는 마음만 가져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마태복음 6:33에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자녀를 왜 주님이 용납해주시는지 아십니까? 창세기 17:7에 보면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것이 그의 자손들에게 유업으로 이어지게 하였는데,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입니다. 부모의 신앙과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꼭 목사가 된다고만 사역이 아닙니다. 평신도로서도 얼마든지 사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일 하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돈을 벌어도 주님을 위해서 벌면 얼마나 좋습니까? 또 공부 잘해서 주님께 영광 돌리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셋째, 어린이를 천국 입국의 모델로 삼아주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6,17절) 예수님은 어린이를 천국 입국자의 모델로 삼아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8:3에도 보면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워즈워드는 말하기를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어버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도 많이 있지만 아이들에게서 배울 점도 많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순진하고 깨끗하고 겸손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의지성이 강합니다. 우리도 아이들이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로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겼다가도 찾아가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맡기는 자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손을 붙잡아주십니다.
넷째, 어린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크게 축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주님이 손을 얹고 축복해주기를 그렇게 소원했습니다. 마가복음 10:16에 보면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분이 있다면 이것은 인간의 기본 인격에도 탈락되는 부모입니다. 절대로 어린아이들은 화풀이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아이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아이들을 자꾸 축복하는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아이들을 품에 안고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주셨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들을 부르시고, 어린이를 용납하시며, 어린이를 천국 입국의 모델로 삼아주시고,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고 축복 받는 자녀들이 다 되게 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어린이와 예수님-1
누가복음 18:15-17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사실을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기 자녀에게 손을 대어 주시기를 원해서 주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아이들을 꾸짖으면서 내보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오히려 아이들을 부르시면서 아이들을 용납하시고 저들을 품에 안으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나라가 잘되려면 세 가지 소리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①글 읽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미래에 학자가 많이 생기고, 훌륭한 지도자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②기계소리입니다. 산업이 발달된다는 의미입니다. ③아이의 우는 소리입니다. 한 세대는 가도 많은 자녀가 이 땅에 자라서 나라를 지키고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역군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자녀에 대한 의무를 잘 감당해서 아이들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믿음을 잘 계승하여 훌륭하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는 있지만, 어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의무 즉 양육의 의무, 교육의 의무, 특별히 신앙의 의무를 잘못해서 자녀들이 가출해서 방랑자가 되기도 하고, 또 범죄를 해서 악명 높은 생애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 주셨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어린아이들을 불러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16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데리고 온 어린아이들을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어린아이들을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왜 어린아이들을 부르셨는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꾸짖고 오히려 곁에 오는 것을 금했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어린아이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①이 어린아이들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천하보다 귀한 생명입니다. 어른을 한 명 전도하는 것이나 어린이를 한 명 전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어른을 한 명 전도하는 것도 귀하지만 아이들 전도하는 것은 더 귀합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어느 정도 살만큼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예수 믿으면 주의 일을 갑절이나 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의 귀한 생명을 어떤 육체적인 가치에 두지 말고 그 영혼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6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②어릴 때 주님을 영접하면 어른 때 주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전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실패, 절망, 좌절, 죽음의 공포, 허탈감 등 세상에 기대했던 것들이 허무함을 느꼈을 때 비로서 하나님이 주신 종교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어릴 때 예수 믿으면 평생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사실 늦게 예수 믿은 분도 신앙을 잘 지키는 분이 있지만, 어린아이들이 어려서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아이들은 평생토록 그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유아세례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찬양대원으로 혹은 주일학교 교사로 많이 봉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가진 신앙은 매우 귀합니다. 육체의 건강도 귀하지만 예수 잘 믿는 영적인 건강은 육체의 건강보다 더 귀합니다. 물질의 부요함도 귀하지만 믿음의 부요함은 더 귀한 것입니다.
둘째, 어린이를 용납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16절) '용납'이란 환영하는 것 이상입니다. 용납은 가까이해주실 뿐 아니라 품에 품어주시고 가장 가까이해주시는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가장 가까이해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부모는 공부가 중요해서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오늘 과외선생님 오시는데, 아니 오늘 숙제가 있는데 교회에는 나중에 가고 어서 공부해' 이런 집사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집사에게까지도 책망하시고 축복을 거두실지 모릅니다. 공부보다 신앙이 더 우선인 것을 가르쳐주는 마음만 가져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마태복음 6:33에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자녀를 왜 주님이 용납해주시는지 아십니까? 창세기 17:7에 보면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것이 그의 자손들에게 유업으로 이어지게 하였는데,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입니다. 부모의 신앙과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꼭 목사가 된다고만 사역이 아닙니다. 평신도로서도 얼마든지 사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일 하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돈을 벌어도 주님을 위해서 벌면 얼마나 좋습니까? 또 공부 잘해서 주님께 영광 돌리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셋째, 어린이를 천국 입국의 모델로 삼아주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6,17절) 예수님은 어린이를 천국 입국자의 모델로 삼아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8:3에도 보면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워즈워드는 말하기를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어버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도 많이 있지만 아이들에게서 배울 점도 많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순진하고 깨끗하고 겸손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의지성이 강합니다. 우리도 아이들이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로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겼다가도 찾아가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맡기는 자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손을 붙잡아주십니다.
넷째, 어린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크게 축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주님이 손을 얹고 축복해주기를 그렇게 소원했습니다. 마가복음 10:16에 보면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분이 있다면 이것은 인간의 기본 인격에도 탈락되는 부모입니다. 절대로 어린아이들은 화풀이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아이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아이들을 자꾸 축복하는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아이들을 품에 안고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주셨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들을 부르시고, 어린이를 용납하시며, 어린이를 천국 입국의 모델로 삼아주시고,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고 축복 받는 자녀들이 다 되게 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피종진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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