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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1장43-54 / 화 있을진저...

by 【고동엽】 2023. 1. 18.
■2022년 12월20일(화)■
 
(누가복음 11장)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묵상/눅 11:43-54)


◆ 화 있을진저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오늘날 사람들에게 '바리새인 같다'라고 하면 칭찬으로 듣지 않고 모욕으로 들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바리새인에 대한 나쁜 인상이 박혀있다. 그래서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아무런 충격으로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바리새인은 존경받는 신분이었고, 사람들의 스승이었다. 집에 바리새인이 한 명만 있어도 가문의 영광이 되는 그런 시대였다. 바리새인들의 종교적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이여"라고 할 때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율법사는 서기관과 동일시되는데, 율법을 필사하거나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이었다. 상당수가 바리새파에 속하였으나, 일부는 사두개파 등에 속하기도 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자 한 율법사가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이 율법사는 바리새인은 아니었던 듯 하.


다만 이들이 바리새파에 속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들과 동일한 사상과 방향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초록 동색이라고 발끈했던 것 같다.


바리새인이나 율법사는 겉으로 볼 때 예의 바르고, 십일조를 철저히 하며, 성경을 해석하며 가르치는 성경 교사들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존경하며 이들이 훌륭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본인들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늘 의식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서 "화 있을진저"라고 하시니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가령 내가 큰 교회 목사로서 사람들이 나를 존귀하게 여기며 집에 방문하면 복이 임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환영하고 어딜 가든 VIP로 대접받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를 향해 "화 있을진저"라고 하면 얼마나 충격일까? 더구나 그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분이라면, 그 충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화 있을진저"라는 책망을 들을지도 모른다.


◆ 바리새인의 문제


도대체 바리새인과 율법사의 문제는 무엇일까?


풍부한 성경 지식, 철저한 십일조 생활, 율법대로 꼬박꼬박 드리는 제사와 예배, 수시로 하는 금식, 철저한 율법 실행, 구제와 기도…. 그뿐인가? 히브리어에 정통하여서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는 그 박식함, 사람들에게 존경받기에 합당할 정도의 설교…. 거기에 검소한 생활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세상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반만 닮아도 이 세상이 천국이 될 것 같지 않은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이렇게 평하셨다.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다."
다른 곳에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셨다(마 23:27).


평토장한 무덤이나 회칠한 무덤은 그 속에 시체가 썩고 있고, 뼈로 가득한 곳인데 사람들은 잔디가 깔려있고, 회칠하여 단장한 비석만 보고 아름다운 곳으로 오해한다.


바리새인의 가장 큰 문제는 '위선'이다.
'위선'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만 착한 체함'이다. 대부분 사람은 위선이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주 극단적인 사이코패스의 이중적 생활만을 떠올리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관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머무르는 한 위선은 불가피하다. 심지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조차 사람들을 의식하는데 하물며 인간 생활에서랴.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위선은 필요악처럼 느낀다.
신분이 올라갈수록 더욱 위선을 강요받는다. 그중에서 특히 종교적 신분은 더욱 이것을 부채질한다. 내 마음속은 전혀 영적이지 않은데, 영적인 사람처럼 살려니 위선의 정도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성도들에게 TV 보는 모습보다 기도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덕스럽고 은혜로운 말만 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기를 모르는 곳에 가면 완전히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이 행동한다.


어떻게 하면 진실할 수 있을까?
오직 예수, 예수를 믿는 믿음 만이 사람을 진실하게 할 수 있다. 주님, 이 믿음의 비밀을 알게 하소서!


◆ 율법사의 문제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율법사의 문제는 다 옳은 말 같은데 그것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율법사의 문제는 자신은 전혀 지킬 생각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강요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율법사에게 하신 책망은 설교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성도가 들어야 할 교훈이다. 자신은 형제들을 위해 돈 한 푼 쓰기조차 아까워하면서 사람들에게는 돈을 초월한 고고한 삶이 성도다운 삶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게 맞는 말일지라도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율법사들의 문제는 옳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옳은 말만을 많이 해서 문제다. 마치 욥이 친구들에게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욥 6: 25)라고 호소한 것과 같다.


매일같이 SNS로 좋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것을 만드는 자나, 퍼 나르는 자들은 이렇게 살 의지가 있을까? 아니면 단지 사람들에게 대단하다, 고맙다는 칭찬을 받고 싶을 뿐일까?


사람들은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선생노릇하려고 하는데 더 열심이다. 


내가 지킬 생각이 없는 말은 만들지도 말고, 퍼 나르지도 말자.
그것은 세상을 말만 잘하는 율법사로 가득차게 만들 뿐이다. 실천할 생각도 없이 오로지 사람들의 칭찬만을 기대하는 자는 바리새인과 율법사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변화될 수 있다. 그 믿음을 통해서 가치관이 바뀌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인생관을 갖출 수 있다.


이제는 율법이 나의 삶의 규범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삶의 규범이 되게 하자.


율법사 노릇 하지 말고,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자.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시고, 용서하신 그 삶의 길을 따라서 우리도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하자.


주님,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합니다.
그러나 믿으면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모진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아멘.

 

 

출처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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