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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어버이 주일설교

노년을 위한 복음 /시편 48장 9-14절/주준태 목사

by 【고동엽】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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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위한 복음
시편 48장 9-14절/주준태 목사


-오늘은 나이드신 부모님들은 어떻게 남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 젊은이들은 나이드신 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며 그분들의 삶을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Robert Browing(1812-89)은 "노년"이란 제목의 멋진 시를 읊었습니다. "나와 함께 나이를 먹자. 가장 좋은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인생의 끝, 그것은 처음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전부를 보라! 두려워 말아라!" 이 시가 귀한 것은 나이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중이 처음보다 더 낫다는 낙관적인 정신입니다. 전 7:8에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했고, 9절에는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시 8:2, 마 21:16에 보면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고 했으니 유아와 영아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마 18:3에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했고, 5절에는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하셨으니 어린이와 소년 소녀를 위한 복음입니다.


잠 1:4에 "잠언은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을 주기 위함이라"고 했고, 전 12:1에는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으니 청년과 장년을 위한 복음입니다. 레위기 19:33에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하나님니라"고 했고, 잠 16:31에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했고, 사 46:3-4에는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고 하셨으니 노년을 위한 복음입니다. 


 -노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질문은 "인생이 무엇입니까?"라고 바꾸어 물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하나님의 능력의 간증이요 찬송입니다. 하나님께서 차일같이 편 하늘 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의 감상자들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온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살아온 지나온 역사들을 더듬어 기억하고 감격하고 간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인생이란 하나님을 배워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웅대무비한 세계를 탐구하고 누립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시 24:1-2). 다시 말하면 주의 하신 일이 온 땅에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일생이란 죄지을 수 밖에 없고 멸망할 수 밖에 없던 나를 구원하신 그 놀라운 은혜를 성령으로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라가는 길고도 짦은 과정입니다. 시온은 주 하나님의 정의와 판단을 인하여 기뻐합니다. 주 하나님이 그들의 신앙여정에 베푸신 오목조목한 사연을 정확하게 서술하면서 놀랍고 벅찬 감정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주의 이름을 찬송하고 찬송합니다.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그러나 죄인이 의로운 하나님을 배워가며 닮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조역으로 살아갔던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모두가 험난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고생도 많고 험악한 사연도 많았습니다. 그 멀고도 먼 길을 걸어온 야곱이 애굽 왕에게 말합시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우리 부모님들은 참 어려운 세월들을 사셨습니다. 참으로 고생이 상식이 된 세월이었습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마지막으로 축복합니다. 나이 많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하나씩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르우벤으로부터 시작해서 단에 이르기까지 축복하고는 숨을 몰아쉬면서 말합니다. "주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피곤해진 인생은 하나님을 의지할 것 밖에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얻고는 계속해서 갓, 아셀, 납달리, 요셉, 베냐민을 축복합니다.


그리고는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 돌아갔습니다(창 49:33). 그 발은 어떤 발입니까?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다가 밧단아람으로 피난간 발입니다. 아내를 얻기 위하여 십사 년이나 고생한 발입니다. 한 떼, 두 떼나 되는 양들을 위하여 모질만큼 부지런히 일한 발입니다. 인간의 수단이 벽에 부딪힐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은혜에 붙들림을 받기 위하여 뼈가 뿌러져 장애자가 된 채 만년을 살아온 발입니다. 그렇게 주님께 이끌린 헌신과 복종을 상징하던 그 피곤한 발을 마침내 침상 위에 거두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달려갈 길, 하나님이 출발시키고 돌아오게 하신 그 코스를 마쳤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라톤 코스를 완주한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내지 않습니까? 자기의 역할을 힘을 다해 마치고 마지막 호흡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 우리들은 이런 의미에서 노년의 성도님들에게 존경을 드립니다. 자기의 과업을 기운이 진할 때까지, 눈감을 때까지 다했다는 것, 그들의 게임이 끝나가고 이후에 상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연로한 성도님들을 부러워합니다.


애기가 출생하는 것, 결혼하는 것,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들에게 맡길 새로운 사명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러나 한 성도가 그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하나님께 나아가 열조들과 한 반열에 서서 상을 받는 그 순간은 우리에게 더욱 심심한 반성과 교훈을 줍니다.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 7:2)고 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만년에 종말에 대한 자기확신을 이렇게 피력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바울 사도는 마지막 골인을 향하여 달려갈 때 첫째 얽매이기 쉬운 모든 것을 벗어 버렸다고 했고, 둘째 힘을 다하여 전력투구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부모님들은 이 말씀들을 한번 새겼으면 합니다. 기성세대가 변하지 않고 신세대가 당연히 새로워 질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정직원이 새로워지지 않고 더 나은 후진들이 의례히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품성을 변화시켜 갔습니다. 독특한 심뽀를 고쳐갔습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엄격만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누군가 질투와 시기로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근본주의자가 대 관용의 인물로 그 품성이 바뀌어졌습니다. 우리는 중간 전환점, 인생의 반환점을 돌면서 또는 최후의 피치를 올리면서 나에게 있어 은혜의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아직도 나에게 좋지 못한 고집과 구습이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하나인데 왜 나는 항상 이것도 저것도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고 있는가?" 천재 시인 Goethe가 바보스럽게 소리치고 사는 우리들에게 말했습니다. "자기의 독특한 점을 극복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운명을 누린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의 독특한 것,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들을 주님께 맡기고 순종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볼 때 안맞는 것 중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읍시다. 내 마음에 안드는 사람 중에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정다운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합시다. 최후의 순간까지 고칠 것이 있고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세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귀하고 후진들에게 사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바울은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했다"(고후 11:23)고 했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했다"(살후3:8)고 했습니다. 바울은 영적 포만상태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편하게 지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고 복음 전선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숨가빠 하십니까? 아니면 언저리에서 방관자로 비평자로 빙빙 돌고 있습니까? 우리가 언저리만 빙빙 돌고 있다면 사단은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주님의 싸움에 참여하면 사단의 화살이 여러분에게 날아듭니다. 우리의 싸움은 힘겨운 싸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마비증상, 영적 독선과 냉담, 자기만족과 변명에 머물러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더 큰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큰 역사와 희생, 그리고 봉사와 충성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을 때까지 늙은이가 아니었습니다. 앞을 내다보기를 그치고 뒤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가 바로 노년입니다. 그는 자기의 지난 날을 쳐다보는 어리석은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빌 3:12-14을 보세요. "나는 다 되었다거나 이미 끝났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한 일 즉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 노년이었지만 정신적으로 청년이었습니다.(Livingston).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십시오.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사람은 왕 앞에 설 때가 옵니다. 덜렁꾼은 실속이 없습니다. 무언가 이룩하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80년은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의 일에 착념합시다. 그분의 형상과 품성을 배우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합시다. 사는 날 동안 계속 성장하고 발전합시다. 하나님의 새로운 복을 받고 상급을 쌓아 갑시다. 


 -노년의 성도님들은 이 땅위에 그려진 하나님 역사의 산 증인들입니다. 년만한 분들이 해야할 독특한 사명은 바로 그 능력의 증거를 후손들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시편 78편은 선조와 후손사이에 선 노인 성도의 입장을 잘 보여줍니다.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야곱과 바울은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살아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자였습니다. 그들은 후세대에게 교훈을 베푼 살아있는 복음의 증인이었습니다. 이윽고 세계내 존재로 살기 위해 하나님께 전세냈던 집이 무너질 때가 다가왔습니다. 이 땅위에 거할 기한이 다 찼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땅엣 집이 무너지면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더 좋은 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장막집을 벗어버릴 때 하나님께서 지으신 더 좋은 집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고후 5:1-4). 성도 다윗도 말합니다. "옷을 벗는 것처럼 만물은 바뀌면 바뀌거니와 주는 여상하시도다"(시 102:26-27). "하나님이 파멸에서 나를 구해내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나니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4-5). 


 -예수그리스도르 믿는 성도들에게는 사실상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 겉사람은 점점 후패하나 우리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롭습니다(고후 5:16). 이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한번 벗어버릴 수 밖에 없지만 우리는 모두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활장은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함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1-58). 우리는 못 죽어서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일생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Happy Ending으로 끝나도록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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