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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키울 수 있다면(어린이 주일 설교)
누가복음2:40, 52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설교:
미국은 경매문화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나 또 오래된 귀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쓰지 않는 중고품들도 경매로 사고파는 일이 생활화 된 그런 나라입니다.
어느 날 조그마한 마을에 시장이 열리게 되었는데 마을 한 구석에서는 경매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한 상자에서 아주 낡은 바이올린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 바이올린은 너무 먼지가 많이 쌓였고 낡아서 소리가 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회자가 집어 들고 살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군중들 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 가격을 부릅니다. “1달러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2달러요!” 말 합니다. 더 살 사람이 없느냐 묻는데 한 사람이 “3달러!” 말을 했습니다. 한참을 지나도 더 이상의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없어 낙찰이 되려는 순간 뒤쪽에 있던 한 노인이 “잠깐! 사회자, 내가 한 번 봐도 괜찮겠소?”
사회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그 노인은 앞으로 나와 그 낡은 바이올린을 이리 저리 보고는 수건으로 먼지를 닦고 잠시 줄을 맞춰 소리를 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손길을 따라 그 바이올린에서는 멘델스죤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놀랬고 또 그 소리를 듣고는 시장 사람들이 모두 그 경매장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음악을 듣고 있는데, 연주를 다 마친 노인은 그 바이올린을 다시 사회자에게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한 번 해 보시지요.”
사회자가 다시 한 번 3달러 이상으로 살 사람이 있느냐고 군중들에게 묻자 어느 사람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칩니다.
“1000달러 내겠소!” 그러자 다른 사람이 질세라 외칩니다. “2000달러요!”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이 사겠다고 손을 높이 듭니다. “3000달러 내겠소!” 결국 그 바이올린은 3000달러에 팔렸습니다.
좀 전에는 3달러였는데 잠간사이 3000달러가 됐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았습니다.
저는 어린이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고민을 합니다. 어린이 교육에 대해 설교를 하여야 하겠는데 어떻게 성도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과연 성경의 가르침을 성도들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따라 순종할까 하는데 깊은 회의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누구 손에서 자라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좀 전의 그 바이올린 같이 볼품없어 보이고 형편없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 아이를 만드신 하나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연주하실 수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한다면,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능력 무한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맡으신다면 분명 우리의 자녀들은 바르게 자라 날것입니다.
세상 모든 부모는 이런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잘 성장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원하며 모두 행복해 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멘?
그런데 그 소망을 갖고 있는 여러분께 여쭤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혹시 하나님이 맡으셔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여러분이 길러보려고 힘쓰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고민하고 뼈 빠지게 고생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혹시나 “교육은 환경”이라고 했으니 여러분 중에 자식에게 좋은 환경 만들어 주려고 발버둥치시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 참으로 불우한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한 사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의 소년기는 참으로 우울했습니다. 한 아버지와 네 어머니, 배 다른 형들이 10명. 형들의 시기와 따돌림 속에 그는 소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 소년에게 더 큰 짐이요 아픔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박탈당한 형들은 아버지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그 소년을 괴롭히고 따돌리곤 하였습니다. 결국 청소년기에 형들의 손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는 먼 나라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됩니다. 이 정도면 누구인지 다 아실 것입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소년의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하는 그 나이에 그는 형들의 구박을 받아야 했고, 또 청소년기에는 그는 먼 나라로 팔려가 그곳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시작합니다. 목숨을 연명합니다.
여러분, 그를 요셉이라고 생각지 말고 여러분들의 자녀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식은 그곳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가 그 곳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아픔을 극복하고는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히 일을 합니다. 그런 요셉에게 찾아 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 성실의 결과는 바로 감옥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살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감당키 어려운 고난이 주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까지 참고 감옥에서 성실히 일 한 요셉에게 또 다시 찾아 온 것도 고통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의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복권이 될 때 요셉은 그에게 복권이 되면 죄 없이 감옥에 들어와 고생하고 있는 자신을 구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바로왕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고 말았습니다. 창세기40:23에서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라고 표현합니다. 그것도 2년간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은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어떤 성격이 형성되었겠습니까? 형들로부터 팔려온 사실, 고생의 연속, 정직과 성실이 무시된 현실, 일반 교육학적으로 보면 청년 요셉에게서 나올 수 있는 정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의 과거의 경험들을 보면 요셉은 폐인으로 전과자로, 사회 문제아로,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의 사람으로 성장했어야 맞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고 존귀한자가 되었을까요? 그는 부모를 잘 만났을까요? 부모가 좋은 교육을 했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그의 불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이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욕심꾸러기였습니다.
쌍둥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는 태어난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의 유산을 가로채고는 도망을 갑니다. 그는 자기의 것을 챙기기 위해 가족과 친척이라도 속여야 했으며 결국 그 성격은 현실로 나타나 외삼촌을 속여 재산을 빼앗고, 아내를 넷씩 얻기에 이릅니다. 그런 부모에게서 그것도 열한 번째 아들로 때어났으니 부모영향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의 10명의 형들은 아버지를 속이고는 동생 요셉을 팔아먹습니다. 말이 팔아먹은 것이지 그들은 정말 동생 요셉을 죽인 것입니다. 가족의 사랑이 깨어진 집안입니다. 그것도 13년 동안 감쪽같이 아버지를 속입니다. 그 집안은 막말로 표현하면 ‘콩가루 집안’ 입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한 가정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 집안은 성경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열한 번째 아들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범죄인이 되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환경을 안고 그들은 살아갔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문제의 정답은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세상의 학문으로 증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자녀를 살리시고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자녀의 앞날을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저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잠언3장 5절을 아십니까?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렇게 되려면 부모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매우 어렵지만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을 보세요.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한마디로 예수님처럼 자라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성장하셨습니까?
1.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셨습니다.
2. 지혜가 충족하게 자라셨습니다.
3.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입으며 자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구절입니다. 저는 이렇게 하면 후회하지 않는 자녀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이렇게 될까요?
부모의 자세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변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인도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하나하나 인도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앞날을 여러분이 인도하려고 하면 곧바로 한계상황에 부닥칩니다.
어떤 설문조사를 해보니 아이들이 자기가 부모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어느 시점인 줄 아십니까? 중학교만 가면 엄마보다 낫다고 믿고 고등학교만 가면 아빠보다 낫다고 믿는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대화 상대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가르칠 것입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인도를 믿으시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2. 신앙교육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하는 것은 부모책임입니다. 성경에 위대한 인물들 뒤에는 훌륭한 신앙의 부모가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성경을 자녀들에게 가르쳤고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요셉도 노예로 팔리기 전 아버지 야곱의 신앙을 보았고 그 증조부 아브라함, 조부 이삭,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의 신앙을 배웠습니다.
비록 가정은 엉망이었으나 신앙은 있었습니다. 그 17세 이전의 신앙교육의 능력이 요셉이 요셉 되게 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만나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내가 뭘 그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많이 가르쳐야 하고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철저히 가르쳐야 하고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할 것 같지만 성경은 그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가르치기에는 늦었습니다. 이미 우리 자녀들에게 너무 많은 실수와 잘못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주는 부모의 역할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인 것입니다. 거창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만 힘을 쏟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가르치려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못합니다. 대단한 본을 보이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속지 않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그냥 교회에 데리고 나오십시오. 교회에 오는 것을 막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 뒤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까지만 우리에게 원하고 게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식들이 하나님을 만난 후, 그때부터 알아서 나갈 길을 찾습니다. 그리고 알아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가졌던 지혜,
예수님이 가지셨던 건강,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여러분 자녀에게 이르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절로 닮아갑니다. 제일 어리석은 부모는 아이들이 주님을 만나러 敎會가는 길을 가로막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만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몫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도록 인도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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