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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은 네가 받고 저주는 내가 받고
창세기 27:5~14
최일환 목사 어버이 주일 설교
5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11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14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설교: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가정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지켜야 할 중요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부모를 공경해야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왜일까요? 부모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모든 자식은 부모를 통해 육신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를 통해 사랑을 입고 그 부모를 통해 성장했습니다.
그러기에 부모에 대한 공경은 인륜의 기본입니다.
불륜이란 해서는 윤리에서 벗어난 것을 말하고 패륜이란 윤리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업신여기고 부모를 학대하고 부모를 괴롭히는 행동, 한마디로 기본을 깨는 패륜의 자식은 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왜요? 패륜은 하나님이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절대 그냥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왜 연세 많으신 분들을 ‘어르신’이라 합니까? 믿기 어려운 학설이지만 어르신이란 어린신의 변형어랍니다. 즉 연세가 드시면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신이라 하던 것이 어르신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노인의 지혜를 배우고 그를 존경하고 그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6장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했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부모를 통해 자식이 복을 받는 모습을 수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등의 사랑을 보면 훌륭한 어머님의 자식이 복을 누리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부모에게 효를 다한 자녀들이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야곱은 놀라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그는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모친이 그를 복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자식 사랑은 정말 유별나다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랑입니다.
그 여인은 누굽니까?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37세 되던 해 모친 사라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3년을 홀로 사는데 늙은 홀 애비와 37살 아들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결국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그의 종을 고향땅에 보냅니다.
그때 그 종이 라반의 집에 도착하여 리브가를 데려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이 뜻이라 여기자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땅,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남편을 만나러 그 늙은 종의 말만 듣고 따라 나서는 대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의 소유자인 리브가는 원일인지 결혼한지 20년이 다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기도의 응답으로 쌍둥이를 선물로 받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쌍둥이가 태중에서부터 싸웁니다.
창세기25:21~23을 보세요.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는 알고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큰 아들보다 복을 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삭이 나이 늙어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진 것입니다. 연세가 드셔도 입맛은 더 당기는가 봅니다. 자식을 축복하려는데 별미를 해오면 축복하겠다고 큰 아들 에서에게 약속을 합니다. 그때 리브가가 그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이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깨닫고 둘째 야곱과 공작을 벌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1. 부모는 자식을 축복한 권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특권은 자녀의 앞날을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부모가 자식을 축복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비단 축복권만 아닙니다. 저주권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저주 할리는 없으나 그래도 자식을 저주하면 그대로 됩니다.
노아가 함을 저주한 사건을 아시나요? 셈과 야벳은 축복하나 함은 저주합니다. 결과는 그대로 되었습니다.
창세기9장25절~27절을 보세요.
25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결국 그대로 됩니다.
야곱도 말년에 12명의 자식들을 축복도하고 저주도 합니다. 그대로 됩니다. 창세기 49장을 보세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의 이삭, 그는 그야말로 늘어빠진 노인이지만 그가 별미를 얻어먹고 축복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가 속아선 한 축복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 것이기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부모에게 주신 고유한 권한이고 특권입니다. 그러기에 자녀들을 믿음으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왕 축복할 것 크게 하시고 믿음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 축복해 주려고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삭은 잠간 실수를 할 뻔합니다. 이삭이 보기에는 에서가 장자이고 믿음직하고 사나이답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축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결국 복은 야곱에게 돌아갑니다.
2. 부모를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서가 왜 부모의 복을 누리지 못했을까? 그것은 부모공경이 뭔지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부모공경은 곧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근심케 하지 않는 것이 공경인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결정적으로 부모를 근심케 하였습니다.
그것은 부모의 허락이 없는 이방결혼을 하면서 부모를 근심케 했던 것입니다. (창26:34~35)
에서는 믿음의 어머니, 믿음의 아버지를 두었으면서도 이방여인, 우상을 섬기는 헷족속의 딸중에서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나 맞아 들였습니다. 그러니 이삭과 리브가는 그 사건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처녀총각 여러분!
절대로 불신자와 결혼을 하지 마세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자식의 결혼에서 불신결혼을 절대로 허락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왜요? 그곳은 곧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고통의 시작이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부모를 근심케하고 부모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은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특히 결혼 문제가 그렇습니다. 자식의 결혼은 중대사입니다. 일생일대에 최대 중대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불신앙적인 모습으로 일을 저지르면 부모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식이 예수를 믿지 않는 행위는 믿음의 부모들에게 최대의 근심거리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배우자를 선택하십시오. 믿음이 없다면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모든 것이 헛것입니다. 결혼 조건의 ABCDE가 있답니다. A는 나이, B는 미모, C는 경력과 직장, D는 학위, E는 경제력, 여러분은 어느 것을 중요시합니까? 여기에 F가 없으면 말짱 꽝입니다. 믿음, FAITH 즉 믿음입니다.
제아무리 잘 난 사람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 복은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제게 당신 자식을 자랑하는데 그런 말씀을 하더군요. 우리 애는 공부도 잘했고 직장도 좋고, 마누라도 다 좋은데 예수를 안 믿어 그게 흠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못했습니다.
그 말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말짱 꽝이네요. 100X100X100X0은 무엇입니까? 0입니다. 다 백점이어도 신앙이 없으면 모든 것이 꽝임을 아셔야 합니다.
야곱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어도 부모가 물려준 믿음의 복을 가졌기에 12지파로 자손이 번창했고 거부가 되었으며 그의 자손중에 대 애굽제국의 총리도 나왔고 그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자신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십니다. 이것은 대단한 영광이며 복입니다. 그 복을 야곱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 27절이하를 보세요.
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부모의 축복은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3.부모가 축복의 물꼬를 틀면 복을 받으려고 해도 안됨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는 그 사이에 축복의 물고를 돌립니다. 리브가는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야곱에게 있다는 것을 리브가는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식들이 태중에서 싸울때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아비의 축복이 작은 아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너무 편애하는 것 아닙니까? 항의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부모의 심정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 누구나가 다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리브가는 독하게 맘을 먹습니다. 장자 에서를 제끼고 작은아들에게 복의 물고를 돌립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에게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복을 받도록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하는 계시를 태중에 있을 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면 몰라도 하나님의 뜻을 안 이상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그 엄청난 일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에서를 버리고 야곱에게 복을 주시려 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예레미야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로마서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하나님께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의 복이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으로 내려갑니까? 그것은 하나는 첩의 아들이라 그런다 치고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중에 왜 야곱입니까? 그들은 쌍둥이로 한어머니 모태에서 동시에 태어 났는데 왜 차별하실까요?
또 야곱의 12아들 중 장자인 르우벤도 아니고 애굽의 총리를 지냈던 요셉도 아닌 4째 유다가 메시야의 혈통을 이어가는 것일까요? 그는 며느리에게서 자식을 보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닙니까?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요? 그 해답은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기에 리브가는 지독한 편애를 한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순종했던 믿음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또 에서는 복을 담을 그릇이 없었습니다. 에서는 장자이면서도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던 아들입니다. 그는 영적 경건성에서 그 부모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그릇, 특히 가치관이라는 그릇입니다.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천한 것을 천하게 여겨야 그릇이 있는 것입니다. 에서에게는 그런 그릇이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팟 죽 사건입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장자의 명분을 하찮게 여긴 자입니다. 사냥을 하고 돌아와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그때 동생 야곱이 팟죽을 쑤고 있었는데 일부러 그때 그 시간에 팟죽을 쑨 것 같습니다. 에서는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그 배를 채우려고 팟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팔아버립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16절에는 그를 “망령된 자”라고 표현합니다. 결국 그런 사람이기에 축복권도 빼앗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에게 내릴 축복의 물꼬를 틀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기에 늘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부모가 저주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구 죽일 놈, 이 놈의 염병할 놈” 하면 그 저주가 임합니다.
어떤 글을 보니 시골 모친이 오랜만에 자식집에 와보니 애완견을 기르더랍니다. 그런데 그 개가 자기 팔자보다 낫더라는 것입니다. 고기만 먹고 침대에서 잡니다.
실제로 요즘 애완견들이 집집마다 판을 치는데 애완견이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면 얼른 병원으로 데려간답니다. 그러면 한번에 3, 4만원하는 치료비를 내야 한답니다. 개는 보험이 안 됩니다. 때만 되면 예방주사 맞춰야 한답니다. 그런데 부모는 뭘 잡수시는지, 몸이 어디가 좀 편찮은지 신경을 안 씁니다.
“아이구, 나쁜 놈, 지부모를 애완견만도 못하게 여기는 놈” 하면서 저주를 내 뱃고 돌아갔답니다.
나는 여러분의 부모님 입에서 저절로 여러분을 축복하는 소리가 나오도록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여러분의 부모님 입에서 여러분의 자식들, 즉 손주 손녀들을 축복하는 소리가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13절을 보세요.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이 말이 뭡니까? 축복은 네가 받고 혹시 저주를 받는다면 그것은 내게 돌리라 그곳은 네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지겠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이 놀라운 부모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부모의 이 사랑의 크기와 그 깊이를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빨리 깨닫고 효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깨달았다 싶으면 이미 세상에 떠나시고 안계십니다.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축복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저주는 자신이 받기를 각오한 리브가의 사랑이 여러분의 부모님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독한 편애같이 보이고 장자를 버리는 독한 어머니 같으나 그러나 이것이 모든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받은 그 축복을 효도로 돌려드리기 바랍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함께 있어주고 대화해 주고 작은 사랑을 나누면 됩니다. 언제 여러분의 부모가 큰 것을 원합디까?
혹시 부모님이 이미 떠나신 분이 있으십니까? 후회스럽지요? 그러나 여러분의 육신의 부모님은 떠났으나 영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또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친척 분들이 계십니다. 그들에게 최선의 효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감사하고 기뻐하십시요. 아직 부모의 축복을 받을 기회가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감사헌금의 봉투에 이렇게 썼습니다.
“양가 부모님 모두 살아계신 것을 감사합니다.” 살아만 계셔준다는 사실, 이것만으로 엄청난 감사 조건입니다.
여러분은 엄청난 부모의 사랑을 입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이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요, 부모님의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그들은 소원합니다. 축복은 내가 받으라 저주는 내가 받겠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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