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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스승, 예수 그리스도
빌립보서2:5~11
최일환 목사 설교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설교:
우리 옛 선비들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을 일생의 복으로 여겼습니다. 좋은 스승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고 학문적 감화를 주고받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허준이라는 명의가 탄생한 것은 ‘유의태’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삼중의 고통을 가진 헬렌 켈러가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셜리번이라는 스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은 제자의 생각을 바뀌게 하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을 변화시키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니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오늘 우리 교회는 스승의 주일로 지킵니다. 스승의 날은 1963년 “은사의 날”이라는 행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가 64년에는 제1회 "스승의 날"이 전국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에 의해 기념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변하다가 정부에서 1973년도에 스승의 날을 국민교육헌장선포일(12.5)에 통합하여 시행하면서 폐지했습니다. 그러나 5공 정부에서 82년도 5월 15일에 다시 부활하여 이때부터 제1회로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유교 영향으로 일찍부터 “君師父一體”하여 왕과 부모와 스승은 하나라고 가르쳤습니다. 부모는 육신을 낳아준 분이라면 스승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해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만큼 선생님이 존경받는 나라도 드뭅니다. 최근에는 심각한 모습을 보입니다만 선생님이 존경받고 대우 받는 현상은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보면 교사가 尊敬받고 높임을 받는 나라는 잘 사는 나라고 건강한 나라입니다. 더불어 스승을 존경하고 높이는 사람이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여러분을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도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지만 특별히 스승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도 여기저기서 스승과 제자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스승 모세가 가르쳐 준 말을 잘 순종하였습니다.
또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잘 따랐기에 위대한 선지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스승 바울 선생을 잘 따르고 섬겼기에 하나님이 들어 쓰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스승일지라도 불완전하고 흠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원한 스승, 그리고 흠 없는 완전한 스승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주이시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셨나요? 그리고 예수님을 스승으로 두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1. 예수님은 겸손을 몸으로 행해 보이신 스승입니다.
예수님은 신분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 된 신분을 가지고 창세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런 분이시지만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곳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천하고 천한 우리를 섬기시고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참 스승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참 스승은 섬기는 자이며 낮아지는 자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겸손에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위선이고 외식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사랑이 있어야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참 스승은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 권위는 사랑을 통한 겸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천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신 그 모습이 바로 사랑을 통한 겸손이고 그 분이 바로 참 스승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스승의 능력은 지식으로나, 지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스승은 사랑을 입은 겸손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이 어떻게 제자들 발을 씻기셨을까요? 우리 주님이 어떻게 손수 그 갈릴리 촌놈들의 발을 씻기셨을까요? 그곳이 사랑을 입은 겸손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영원한 우리의 스승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 교감 선생님 한분이 참 엄하기도 하고 자상하시기도 하셨는데 어느 날 그분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름철 옛날 화장실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푸세식이라는 화장실을 당신이 직접 청소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 여러분, 중고등부 선생님과 우리 교역자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 사랑을 먼저 입고 그리고 주님처럼 겸손으로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스승이 되는 길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지셨던 그 겸손으로 낮아지시고 낮아지셔서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길이 욕을 얻어먹는 길일지라도 그 길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일지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혼을 인도하는 길이기에 믿음으로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자기 사명에 생명을 거신 분이십니다.
우리 스승이신 예수님은 당신이 받으신 구속사역, 십자가를 지시고 죄를 속하신 구원 사역에 생명을 걸고 나가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마지못해 십자가를 지신 분이 아니십니다. 자원하여 지셨고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고난당하시는 중에 한 번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짜증내시거나 힘들다고 벗어버리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주님이 그것을 거부하시려 했다면 얼마든지 안지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이 뭐라 조롱하셨습니까? “저가 남은 구원하였는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였다”고 조롱합니다. 그때 주님이 얼마든지 그 십자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짠~ 하고 뛰어 내려 “내가 메시야다” 하고 외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묵묵히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왜요? 사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부여 받은 사명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명에 여러분의 목숨을 거시기를 축원합니다. 왜요? 그 사명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에 보내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이 없었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이 세상에 때어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외쳤던 사도 바울이 그토록 위대하게 쓰임 받은 이유가 여기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이 맡기신 그 일에 생명 걸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일을 책임지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맡기신 일은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거나 취미삼아 하듯 시간나면 하고 안 나면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그를 하나님이 세우시겠습니까?
구약시대의 선지자 요나를 보세요.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자기 생각과 안 맞는다고 포기하고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결국은 십리도 못가서 바다 속에 던져지고 물고기가 삼켜 돌이킬 수 없는 환경을 맞게 하십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하나님이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누군가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사명을 주어 보냈는데 그 사람이 그 사명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세상일에 재미 보며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축구 감독이라면 선수를 운동장에 들여보냈는데 차라는 공은 안차고 카메라만 의식하고 있다면 그 선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뻔~ 하지요, 멤버 체인지입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하나님이 부여한 직분, 하나님이 부여한 사명을 단순히 재미삼하 하지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거기에 목숨을 거시기를 축원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죽을 만큼 하라는 것입니다.
시간나면 하고 형편 되면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거기다 걸고 온 힘을 다해 죽을 만큼 하면 하나님이 생명의 면류관으로 보상한다는 것입니다. 구역장도, 주교 교사도, 그리고 교역자들도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에 목숨 건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찌 그냥 계시겠습니까?
성경을 가만히 보세요.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전부 목숨 걸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김 사람이고 모세도, 요셉도, 그리고 다윗도 전부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진정한 스승은 부여받은 사명에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그렇게 살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이 하늘로 높이신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우리 스승이신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곳 무덤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낮아지신 주님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하늘 주님의 보좌에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영원한 구주라는 칭호를 부여하시고 모든 사람들의 입으로 주님이라고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 스승이신 예수님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렇게 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도 그분을 닮아 낮아져야 합니다.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과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스승으로 둔 제자로서 언제까지나 제자로만 살아야 할까요? 우리도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야라는 스승에게 배운 엘리사가 좋은 스승 되었듯이, 바울이 가르친 디모데가 많은 제자를 둔 스승이 되었듯이, 오늘 우리도 누군가에게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할까요?
1) 전도를 통해 영적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였습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제자 삼는 첫 걸음은 전도입니다.
전도는 안하고 남이 전도해 놓은 성도를 제자 삼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전도하여 그 사람을 구원하여 복음으로 낳아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아버지도 되고 스승도 되는 것입니다. 영적 스승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으로 낳았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스승입니다. 그러나 또한 디모데도 많은 성도를 영적으로 낳았습니다. 그래서 스승이 되었습니다.
나는 전도는 못해, 그러나 가르치는 것은 잘해! 하는 말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말입니다. “나는 애기는 못 낳아, 그러나 기르기는 잘해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전도가 필요한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알기만 하고 행치는 않으면 그것은 영적 스승이 될 수 없는 자이며 주님을 가슴 아프게 하는 제자입니다.
2) 삶을 통해 제자를 만드는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보고 들은 것을 따라 가는 자입니다.
영어로 제자란 “disciple” “follower”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뭘 따릅니까? 주님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스승의 행동, 스승의 언행,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그대로 따르는 제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를 따르지 말라 나는 자격이 없으니 저 사람을 따르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4장 16절에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였듯이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말, 여러분의 행동 하나가 제자를 만들기도 하고 마귀의 자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스승은 스승으로서의 삶이 자기 보람과 자기만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스승은 고차원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께 영광입니다. 내 돈벌이, 내 보람, 내 만족이 목표라면 그것은 포기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스승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어떤 책에 보니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는 균형 감각을 잃기 쉽다. 마찬가지로 스승이 없는 스승은 더 위험하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학교 스승, 훌륭한 영적 스승, 그리고 영원한 스승을 다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훌륭한 제자가 되어 또 하나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멋있는 제자, 멋있는 스승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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