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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신앙
고후 7:1
그런 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
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
이 하자.
오늘은 청년 주일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인데 어린이 주일도 있고 어버이 주일도 있는데 청년주일과 여성주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오늘을 청년주일로 지키고 다음 주일은 여성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어린이들이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문제입니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짐으로서 어린이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사회 전반에 국가에도 농촌에도 어린아이들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여파가 오늘 교회의 위기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위기는 젊은이들이 자꾸만 교회를 외면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교회에 젊은이들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고 젊은이들의 교회에 대한 관심도 멀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이것도 분명 위기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교회는 이 젊은이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많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청년기에 까딱 잘 못하면 길을 잃을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동시에 경륜이 적고 피는 끓기 때문에 그 젊은 시기에 중심을 잘 잡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서 배우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마음에 신앙으로 중심을 이루어 그 인생을 든든하게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젊은이들을 반듯하게 성장시켜서 우리사회로 내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회에 나아가서 예수의 정신과 뜻을 품은 젊은이들이 그 사회에서 자기의 역할을 다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회가 변화되고 개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젊은이들에게 주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참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공부하기도 힘들고 직장 얻기도 힘들고 미래를 계획하기도 참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젊은이들에게 장차 어떤 일을 하려느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합니다. 그만큼 장래를 준비하며 살아가는데 애매모호한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오늘 젊은이들이 신앙생활 하기가 얼마나 힘든 시대입니까. 오늘 젊은이들은 교회 다니는 것이 참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갈 곳이 너무나 많고 젊은이들을 오라고 손짓하는 곳이 너무나 많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젊은이들이 교회에 와 주는 것만도 고맙고 교회에 와서 졸고 앉아있는 모습만 보아도 예쁘게 보일 정도입니다. 그만큼 오늘 이 시대는 젊은이들이 신앙생활 하기가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젊은 때는 참 중요한 때입니다. 젊은이들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젊었을 때 시간 선용을 잘못하면 그 아까운 시간이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 젊었을 때 까딱 잘못하면 인생의 방향이 엉뚱한 방향으로 뒤틀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면 청년 때에 청결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즉 사랑하는 자들아 ...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자“. 영과 육이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은 마음과 생각과 뜻이 맑고 깨끗하고 청결하라는 말씀입니다. 청년의 때는 가장 먼저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 우선 입니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위해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청결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독해지고 탁해져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그만큼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타락하고 현실에 물들고 이 세상에 찌들면 이 세상 누구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도 두려워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해서 무서워졌다는 말입니다.
특히 청년의 때는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인생이라야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지하고 그 뜻을 따르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삶 속에 엄숙함이 있고 신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마음과 마음의 중심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섭리를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끔찍하고 무서운 일들이 끊임없이 우리 이웃에서 동네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은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모두 막 살아가고 요령을 신으로 모시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사람들이 일시적으로는 이익을 보고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면 그 삶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반드시 실패하게 됩니다.
미국의 어떤 생물학자가 술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개 두 마리에게 술을 먹였습니다. 한 마리에게는 술을 매일 한잔씩 먹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마리에게는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술을 먹은 개는 처음에는 능률이 나타나고 행동이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중간쯤 지나가니까 약해지기 시작하고 끝 부분에 가서는 그만 쓰러지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술을 먹이지 않은 개는 처음에는 느리고 순발력이 떨어지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간쯤 가니까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끝 부분에 가서는 일을 아주 잘 해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신앙 자들은 처음엔 교인들 보다 스타트가 빠를 수 있습니다. 출세도 빠르고 처음에는 빨리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넘어집니다. 실패합니다. 뒤처집니다. 요령과 수단을 무기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앞서가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반드시 올무에 걸리게 되어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누가 주관하는지를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내가 마련하고 내가 계획하고 내가 이루며 살아가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생각과 뜻대로 된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내가 세상에 내 마음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나의 미래의 일도 나의 운명과 삶의 시간도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모두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점을 고백하고 그 하나님의 섭리에 나를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정직하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그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고 그 두려운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또 나를 그분에게 맡기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초 작업입니다. 기초가 반석위에 세워지면 적어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기초가 건전하게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청년기는 기초를 세우는 때입니다. 청년의 때는 건전한 정신과 생각과 마음으로 인생의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인생이 길게 성공하게 됩니다. 청년에게는 꿈과 이상과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청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청년은 그만큼 청결함과 깨끗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는 사회의 비리에 대해서 항거하고 데모를 합니다. 왜냐하면 청년은 그만큼 양심이 청결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온 후 날씨가 맑아지면 하늘이 맑고 깨끗하고 멀리 시야가 뚫려 보이듯이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인생의 먼 미래가 내다보입니다. 그래서 청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마치 꿈꾸는 것 같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청년의 때는 아직 순결하고 때가 묻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는 미래에 대단한 큰 꿈과 계획을 말하고 기성세대는 오늘에 집착해서 현실을 말합니다. 그 점이 젊은이들과 기성세대들과의 생각과 의식에서 오는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20대는 기도할 때 “내가 장차 이 세계를 변화시키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다 30대에 가면 “내가 이 나라를 변화시키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가 수정됩니다. 그러다 40대에 가면 “내가 우리 집안을 변화 시키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고 50대에 가면 “나 자신을 변화시키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다가 70대에 가면 “내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해 달라”하고 기도의 폭이 아주 좁아지게 됩니다. 마음과 생각이 탁해지고 오염될수록 사람은 현실적인 사람이 되고 그만큼 꿈과 생각이 좁아집니다.
청년의 때는 온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꿈이 있는 때입니다. 그것이 젊은이의 때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마음이 청결하기 때문에 그런 용기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괴테는 청년의 때는 술을 마시지 안 해도 취하는 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청년들은 너무 계산적이고 수단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이해관계에 크게 좌우됩니다. 그러니까 청년이 청년답지가 않습니다. 청년이 청년답지 않으면 이미 때가 묻었거나 현실적으로 이해타산에 물들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부교역자를 청빙하기로 하고 광고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한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로 하는 말이 “월급은 얼마나 됩니까, 사택은 단독주택입니까, 아파트입니까, 몇 평이나 됩니까?”하고 묻더라고 합니다. 어떤 회사에서 사원을 모집하기 위해서 면접을 하는데 질문하기를 “퇴직금은 얼마나 줍니까?”하고 묻더라고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이 나오는가 하면 그 마음이 이미 현실적으로 이해 타산적으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에서 보면 분명 젊은이인데도 그의 가슴에는 청년이 가져야 할 꿈도 없고 비전도 없고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있다면 오직 현실적인 것만 있고 타산적인 계산만 가슴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기초가 부실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청년이 아니고 겉늙은 기성세대입니다.
차 두 대가 충돌했습니다. 차 두 대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차를 운전하던 남녀 두 사람은 다친데 가 전혀 없었습니다. 여자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차는 다 망가졌는데 우리 둘은 말짱하네요, 마치 하늘이 우리 둘을 짝지어 주려는 계시 같네요. “ 그 말을 듣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더니 여자가 차 트렁크를 열어보니 속에 있던 포도주 병도 말짱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 한 병과 잔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 운전사가 말합니다. “이 포도주 병이 말짱한 것을 보니 우리 둘이 언약식이라도 하라고 하늘이 주신 은혜인가 봐요, 이것 나누어 마시고 오늘 우리의 만남을 기념합시다. “ 그러면서 남자에게 한잔 따라 주었습니다.
이 남자는 포도주 잔을 받아 무심코 마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도 한잔 따라 주었더니 여자는 마시지 않고 포도주 잔을 그냥 들고 서 있습니다. “왜 마시지 않고 그냥 서 있느냐, 마시라”고 하니까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뇨, 마실 필요 없어요, 이제는 경찰이 오길 기다려야죠.”하고 천연스럽게 서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여자입니까. 오늘은 지극히 이익지향적인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사람들이 이웃이 없고 친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은 큰집에서 살고 사람들은 많은데 오늘 사람들의 삶이 외롭고 고독한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모두 마음에 청결을 잃고 꿈을 잃고 동화를 잃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동화를 잃은 삶은 삭막함만 있고 꿈과 기대와 미래가 밝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자.” 청년일지라도 일찍부터 정신이 타산적으로 변하면 이런 용기나 꿈 그리고 기상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청년인데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세상에 완전히 찌들은 기성세대들처럼 이익 지향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청년이 아닙니다. 애늙은입니다.
“세상을 자신 있게 살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가장 먼저 이 용기가 사라져 버립니다. 자신감도 사라지고 담대함도 없어져 버립니다. 청년의 때는 무엇보다도 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청년의 때에 이 용기가 없으면 평생 이 용기를 갖고 살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용기는 뱃장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지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용기는 깨끗함에서 나오고 청결에서 나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살아가면서도 왕궁에서 시중들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아서 높은 지위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자 얼마나 모함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온갖 모함에서도 다니엘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청결함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모함을 하고 누명을 씌우고 약점을 털었지만 털어도 흠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이방 땅에서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아가며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중세기 그 막강했던 교황권과 맞서서 싸웠습니다. 그 당시 교황권은 황제를 폐위시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막강한 힘입니까. 그런데도 일개 젊은 수도사 루터가 그 교황권에 맞서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루터에게 이 청결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세교회의 타락함과 교황권의 세속화를 질타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신앙적 마음으로 교황권에 맞서서 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서 그 교황권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교회의 세속화를 막아내는 종교개혁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 냈던 것입니다.
쏘크라테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통곡합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아무 죄도 없는데 감옥에 갇히다니요, 세상에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 쏘크라테스가 대답합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내가 꼭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와야 시원하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용기와 여유가 있는 것은 그 마음에 당당하고 깨끗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 정의, 정도, 청결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게 해 줍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너희는 청결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청결하라는 말씀이고 또 한편으로 세상에서 자신 있게 살기 위해서 청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흉악한 강도도 어린 아이에게는 칼을 대지 못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십시오. 그 맑은 눈동자 들여다보면 감히 그 아이에게 아무리 강도라 할지라도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청결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이고 용기이고 능력입니다. 그 마음이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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