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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어린이 예화 81편

by 【고동엽】 2024. 6. 9.
처음 돌아가기
 
 
 
명언<어린이>
* 명 언 *(어린이)
인명:윌리암 펜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아이들보다 말과 개를 더
조심스럽게 다룬다.


인명:아이작 와츠

작은 둥지의 새들은 화목하다. 그러나 수치스러운
것은 한 가족이 외면하고, 비웃고, 싸우는 것이다


인명:그로리아 가이더

아이들-그들은 당신의 가장 좋은 희망이라는 씨앗의 열매이다 
 
 
 
 
 
 
 

성공한 크리스천 55% 20세이전에 신앙생활

어린이도 거듭남(중생)이 가능하며 이 거듭남의 시기가 빠를수록 인격과 신앙도 빠르게 성장,모범적이고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어린이 스스로 거듭남을 자각할 때 성경말씀을 받아들이고 세상 문화를 이해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같은 사실은 세계어린이전도협회가 미국의 종교심리학자 보너 박사를 통해 의사 변호사 교수 박사 기업체 임원 등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이 조사에 따르면 보너 박사는 성공한 크리스천 전문직 종사자 253명에게 언제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고 질문한 결과 20세 이전이 138명(55%)으로 가장 많았다.이어 21∼30세가 65명(26%),31∼40세가 22명(9%),41∼50세가 4명(2%),51∼60세가 3명(1%),60세 이상이 1명(0.4%) 순이었다.

세계어린이전도협회는 “또 다른 조사에서 오늘날의 기독교인 86%가 15세 이전에 기독교를 알고 거듭났다고 말하고 있으며 스펜서 박사가 1000명의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집계한 ‘언제 구원받았는가’란 질문에 548명인 55%가 20세 이전에,34%인 337명이 30세 이전에 거듭남을 체험한 것으로 대답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교사의 벗은 4월호에 이같은 내용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거듭남은 어머니께로부터 받은 육신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생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으로 이것은 나이와 상관없으며 이 사실을 교사들이 강조하고 깨닫게 하고 확신시켜주는 교회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교사의 벗 4월호는 ‘어린이도 거듭날수 있나’란 특집에서 “스펄전 목사가 5세 된 어린이도 복음을 가르치고 양육하면 성인처럼 구원을 받으며 어린 시절에 구원받은 어린이가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크리스천이 된다고 말한 사실이 있다”면서 어린이의 중생에 대해 깊이 있고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교사의 벗은 특집의 결론에서 “회심을 체험한 아이들에게 성경말씀은 인생에 귀한 자양분으로 작용하므로 일찍 거듭남을 자각시키고 변화가 일어나도록 도와야 한다”며 “거듭나도록 하시는 분은 성령이지만 이를 자각하도록 돕는 것은 거듭난 교사와 부모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어린이들을 이렇게
 
도로티 로톨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어린이들을 믿음안에서 말씀으로 키운다는 것은 중요하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기록 하고 있다.

미국 초기에 교회를 먼저 짓고 후세 교육을 위해서 성경 학교를 먼저 세웠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 예일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이 모두 성경 학교로 세운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많이 타락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갔지만 그래도 근본 사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흐르고 있다. 어린아이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라는 문화가 존속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 속에 어린아이가 있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단지 과거 속에만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일생을 지배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것들이 우리가 지금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서도 그대로 잠재되어 있으면서 우리의 성격을 결정한다.생각해 보면 내 마음 속에도 어린 아이의 자아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영향이 그대로 살아남아 아버지의 성격대로 내가 아들에게 반복하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나의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셨다. 항상 명령조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대화가 되지 않았다. 평생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헤아린다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학교에 다녀온다고 해도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물어보신 적이 없다.병이 나서 누워 있어도 어디가 아프냐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바라만 보시던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의 성품을 내가 그대로 닮았음을 문득문득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자주 아들에게 화를 냈고, 호령하듯 말을 했다. 그리고 아들과 대화를 좀처럼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나의 성격이 아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것이었다.그래서 나는 내적 치유에 관하여 공부를 시작했고, 내 속에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영국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아들아, 요즘은 내가 내면적 자아의 치유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그리고 너에게 잘못한 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그 후 아들로부터 답장이 왔다. “아버지, 아버지가 치유에 관한 책을 읽고 계신다고 하니 정말 기쁩니다. 실은 저도 아버지께 고백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으셨고, 또한 교회를 섬기느라 항상 바쁘셨기 때문에 더욱 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아빠는 피곤하시니 가까이 가지 마라’ 하시며 방문을 닫아 버리셨습니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제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으나, 지금은 그 원인을 알고 기도로 치유해 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아들의 편지를 읽는데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내 속에서 어린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성격이 나에게 형성되었고 그래서 아들에게 상처를 준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성장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성숙하고 변화되는 과정에 있지만,어린시절의 내 모습이 그대로 있고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가 내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부끄러웠다.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수행비서의 역할을 맡기고 늘 동행하면서 3개월을 지냈다. 나는 아들에게 나의 문제점을 고백하면서 잘못한 것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했고 아들과 함께 수없이 울었다.장성한 아들의 손을 잡고 산길을 걸으면서 눈물로 땅을 적셨다.

아들은 나에게 너무 감사해서 절을 하고 싶다고 했다.아들은 땅에 엎드려 절을 했고, 나는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빌었다.그리고 서로 얼싸안고 얼굴을 맞대고 눈물로 뺨을 적셨다.

“병들면 잘난 것이 무슨 소용 있고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나.건강하게 살아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내가 낳고 싶어 낳은 아들이 아니요,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니 못난 나를 닮는 것보다 예수님 닮으면 되는 것이거늘….”

쓸데없이 자녀에게 불만인 것을 회개했다.좋은 자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예수 닮는 자녀가 최고다.

 

 
 

어린이의 믿음

중세 때 이야기. 한 성당에서 찬양대원들이 열심히 성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 한 어린이가 지휘자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니?” 지휘자가 물었다. “저 찬양대원이 되고 싶어서요.” 소년의 대답에 지휘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우리 찬양대는 어른만 하게 되어 있어. 그래서 어린이는 받아들일 수 없단다. 너는 안되겠다. 네가 찬양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자 이 당돌한 꼬마는 맑은 눈빛으로 지휘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휘자님,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쓰시겠다고 하시는데요.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왔어요.” 주님께서 쓰신다고 했다는 고백을 들은 지휘자는 감동을 받고 그 어린이를 찬양대원으로 발탁한다. 그 소년은 믿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찬양도 탁월하게 잘해 눈길을 끌었다. 이 아이가 자라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창작한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 바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다.

 

 

 
 

단순 명료하라!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갈 것이라는 말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들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단순 명료 간단합니다.


아이들은 길을 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친구를 보면 그 즉시로 "아빠,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아빠에게 돈이 있는지, 지금 배가 부른지, 근처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은 따지지도 않고 아예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런 고민은 아빠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사마광(司馬光)이 소년 시절에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그만 물이 가득 차있는 커다란 독 안에 빠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데 사마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큰 돌맹이를 주워와 독을 깨뜨려 친구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먼저 '값비싼 물독...그것이 깨지면 어떻게 되나' 하는 등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고 망설이다가 정말 중요한 아이의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마광의 행동은 단순함 가운데에서 나온 '지혜'입니다. 지혜를 짜내기 어려운 이유는 번뇌(煩惱)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머릿속이 헝클어져버린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나를 울린 꼬맹이

PC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저는 어느 날 꼬마 천사를 만났습니다.

손에 꼭 쥔 100원짜리 동전하나를 건네며
10분만 인터넷을 할 수 있느냐고 떼를 써서
500원이 있어야 30분을 사용할 수 있다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꼬맹이는 “형아, 저 100원밖에 없는데 10분만 하게 해 주시면 안돼요?” 라며 계속 생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내일 400원 더 가지고 오라고 타이르는데 갑자기 “저희 아빠한테 편지 써야 된단 말이에요”
라고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습니다.

“꼭 컴퓨터로 해야 되는 거 아니잖아.
편지지에다 쓰면 되잖아.”
“그럼 편지지에다 쓰면 하늘나라에 계신 저희 아빠가 볼 수 있어요?”
“어? 엉?”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에게 편지를 써도 답장이 없어서 컴퓨터는 모든 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으니까
하늘나라에도 갈 거라는 꼬마의 황당하고도 천진한 대답.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가슴이 짠~해져 컴퓨터 한 자리를 내어 주고 꼬마가 건네는 100원을 받았습니다.

정확히 13분이 지나서 꼬맹이가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형아, 저 다 썼어요. 하늘나라에 보내 주세요~”
“으..응. 알았어.^^”

* 그 꼬맹이가 쓴 편지 내용입니다



TO: 하늘에 계신 아빠

아빠, 저 승우예요~
아빠, 거기는 날씨가 어때요? 많이 따듯해요?
아니면 많이 추워요?
여기는 너무 더워요~
아빠, 진지는 하셨어요?
저는 조금 전에 할머니가 밥 차려 주셔서
콩나물이랑, 김치랑 먹었어요~
아빠~ 이제는 제 편지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어제 할머니 약 사 드리고 남은 돈 100원으로
PC방 와서 아빠한테 편지 쓰니깐요~
아빠 많이 보고 싶어요.
제 꿈속에서라도 아빠 보고 싶은데
저 잘 때 제 꿈속에 들어와 주시면 안돼요?
아빠 저 이제 그만 써야 돼요.
다음에 또 편지할게요.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승우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한테 드림
- 새벽편지 가족 -

어느 시인은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이는
맑은 물처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욕심 없고 천진한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 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처럼 살고 싶습니다.
- 동심을 찾아 떠나는 하루 되세요 -

 

 

 
 

어느 초등학교 교실

5교시와 6교시는 미술 시간. 아까 점심을 먹고 칠판에 큼지막하게 이렇게 썼다.
“미술시간에 ‘풀’ 필요함.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해 올 것”
밥 먹고 다들 어디론가 우르르 나가기에 옆 반에 풀 빌리러 가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반 희주가 조심스럽게 오더니 묻는다.
“선생님, 저 풀이 딱풀이죠?”
“응. 당연하지. 미술시간에 쓸 건데”
“"근데-_-;; 지금 애들이 화단에서 풀 뽑고 있는데요.”
“-_-

“내 제자들, 방학동안에 바보가 돼서 돌아온 게냐?--;;”
미친 듯이 웃어대며 창가에 가서 운동장을 내려다봤더니
녀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웃겨 죽을 뻔 했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누나의 옆 반 선생님이 겪은 얘기를 쓴 글입니다.^^ 너무 재밌죠?
동심은 아직 살아 있다고 봐야겠죠? - 장현석 -

통통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들.
동심은 예측불허라서 어른들의 마음을 시시때때로 쥐락펴락합니다.
- 아이들 덕분에 웃습니다 -

 

 

 
 

어린이에게 예수를 심자

제가 어느 절에 갔을 적에 주지 스님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자기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서울에 자기 아들이 있는데 자기 아들을 꼭 예수 믿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은 주지 스님이면서 왜 아들은 중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했더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지만 내 아들은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어렸을 때 연필 한 자루 받기 위해, 또 떡 얻어먹으러 혹은 사탕 얻어먹으러 교회에 나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가 세상에서 나쁜 짓하고 죄 짓고 또 사업하다 망해 감옥에 들어가서 어렸을 때 교회 다니던 생각이 떠올라 예수를 다시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번 씨를 심어 놓으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예수를 심어 주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하겠습니다. 지금 선진국에서는 십대 청소년들의 문제가 가장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십대 청소년 문제를 연구하는 기관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성 관계를 경험해 본 청소년이 70퍼센트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회 문제의 채결 방법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 사회에서 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악해져 가고 있으며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완전히 말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습니다. 중동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덕적 종말, 심리적 종말, 영적 종말이 왔습니다. 나갈 길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할 이야기는 예수님의 이야기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준 하나님의 메시지는 예수 복음입니다. 이것 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윷놀이의 기적

어느 교회에서 윷놀이가 벌어졌습니다. 두 팀을 나누어 노는 데 한 팀이 완승하게 되어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던지고 나면 그 다음에 무엇이 나와도 승리입니다.
4개째 나는 것이고 상대방은 아직 3개도 달지 못 하였으니 일방적인 게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 기울어졌다고 여기고 마지막 던지는 데 그 사람이 자리를 뜨게 되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에게 어른들이 "네가 마지막으로 대신 하여라"라고 말했습니다. 자포자기속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는 "잠간만이요!" 하더니 옆방으로 갔습니다. 좀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기다리다 못 하여 가보았더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나 보고 하래요.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나 가능하다고 그러셨잖아요? 이기게 하여 주세요"
이런 기도였습니다. 어른 들은 하도 기특하여 어린 아이가 기도하고 돌아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돌아 와서 윷을 던졌습니다, 한꺼번에 모가 6번이나 나오고 윷이 나와서 상대방은 하여 보지도 않고 윷놀이판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도 예수님만 의지하는 순수한 믿음에 하나님이 같이 하여 주신 것입니다.

 

 

 
 

세살을 넘기기 힘든 아이

이 소년의 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는 비극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빈궁한 가정환경과 병약한 몸으로 수업이 어려움’
소년의 아버지는 고무공장을 운영하다가 부도를 맞아 도피 중이었다.

 

 어머니는 작은 채소가게를 운영하며 네 아들을 키웠다. 소년은 집안을 돕기 위해 거리에서 성냥을 팔았다. 소년은 갓 태어날 때부터 몸이 너무 약해 젖을 빨 힘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세살을 넘기기 힘든 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장점이 있었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이 그것이었다. 그는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세계적인 대부호가 됐다. 이 소년의 이름은 ‘노벨평화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의 가시채를 갖고 있다. 또한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가 한두 가지는 반드시 있다. 다만 그것을 계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어린아이처럼

양자를 키우는 어떤 부잣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배려와 보호를 아낌없이 받으면서 어린아이의 천성적인 무관심 가운데 매일매일 자유롭고 밝은 마음으로 아버지의 집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지켜보면서, ‘만일 어린아이가 자신의 음식이나 의복, 혹은 장래의 교육이나 용돈, 생활비 등을 걱정하며 근심에 빠진다면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려는 부모들의 마음에 이보다 더 큰 상처와 고통은 없을텐데… . 하물며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시는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어리석게도 세상적인 근심, 걱정에 늘 사로잡혀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당신의 어린 자녀가 순수하게 믿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으며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당신은 흐뭇할 것이고 깊은 사랑으로 그들을 돌볼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 자세”를 배우라. 그리하면 인간의 지성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화평이 당신에게 임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치 충실한 파수꾼처럼 당신의 몸과 마음을 늘 지켜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

이스라엘 역사박물관에는 여섯 개의 촛불이 켜져 있고 그 옆에는 비누 세 개가 놓여 있다. 여섯 개의 촛불은 히틀러에게 희생 당한 600만명의 유대인을 의미한다.
세 개의 비누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들의 몸에서 뽑아낸 지방으로 만든 비누다. 그 촛불과 비누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악랄한 독재자 히틀러를 저주한다.

어린 시절,히틀러의 이웃에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히틀러는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지주의 사생아였다. 히틀러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학대 받으며 분노가 억압된 채 성장한 것이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주 요인인 공격적 행동은 어린 시절의 폭력과 학대와 해결되지 않는 슬픔의 결과물이다. 어린 시절,학대 당하며 성장한 아이가 커서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미움 받고 자란 아이가 남을 미워하고,사랑 받고 자란 아이가 남을 사랑한다. 수입 없는 지출은 없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갈 6:7∼9)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아이들

지난 10월 우리 부부는 유럽 순회강연을 하고 돌아왔다. 공항에 앉아 사람들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옷차림만으로 중국아줌마, 일본아줌마, 한국아줌마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젊은 애들 특히 청소년들은 옷차림만으로는 3국 구분은 커녕 동양애인지 서양애인지도 구별이 안 됐다.

먹는 것도 중년 이상은 각자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먹지만, 애들은 콜라 먹고, 켄치(KFC) 먹고, 맥(맥도날드) 먹고, 진 입는다. 요즘은 다 배꼽 티 입고, 귀 뚫고, 코 뚫고, 문신하고, 머리 물 들이고 다 같은 문화권 같다. 아마 세계는 저절로 한 가족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몸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마음, 생각, 사고는 20세기를 넘어서지 못하는 우리들은 자녀들과 얘기도 안 통하고 겉돌게 된다. 나만해도 비교적 내 아이를 좀 이해하는 엄마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 만큼만 너희들 이해하라고 해라”
“엄마가요? 우리 엄마는 꽉 막혔어요”
이 말은 나에게 큰 쇼크였다. 아이의 눈에 비친 부모는 정말 꽉 막혔나 보다. 어릴 때는 아이들이 어설퍼 보이고 부족해 보이지만 지금 와서 보니 아이들은 어느 새 우리를 저만치 능가하고 있다. 이제 자녀들보다 경제적으로나 좀 나을까 이미 모든 면에서 딸리고 있다. 젊은 그들을 능가할 체력도 부족하고 컴퓨터나 디지털카메라나 MP3 등 기능을 익히고 활용하는 면이 취약한 게 사실이다. 나도 싸이월드를 하고 며느리랑 메신저로 수다도 떨지만 그들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할 때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순종했고 어른들의 가치관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해져 내렸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져 가고 있다. 내 아이가 짧은 미니스커트에 배꼽티를 입고 교회에 왔다. 이 노릇을 어떻게 하나? 창피스럽고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겠다고 아이를 닦달하고 야단치고 “아이구, 너 때문에 못살아”하며 아우성을 칠 것인가? 그럼 노친네처럼 20세기식 옷을 입고 다니면 좋을까?

그냥 내버려 두라. 이것도 한 때이지 않은가? 나이들어 결혼하고 아이낳고 아줌마되면 입으래도 못 입을 텐데… 지금 다들 그렇게 입는데 왜 내 아이는 꼭 엄마 맘에 드는 옷을 입어야 하는가?자유분방한 옷차림이면 자유분방한 사고도 하게 되고 (자유분방이란 말이 우리세대에서는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었으나 지금은 유연한 사고, 혹은 창의적 사고를 의미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인생도 살고 돈도 벌지 않는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백퍼센트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아이들을 나의 잣대로 재단하려 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유연성은 부모에게도 필요하다.

 

 
 

딩크족

딩크(DINK)족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산업 사회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이들 중에 소위 딩크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딩크란 말은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칭으로 ‘수입은 두 배로 갖돼 아이는 낳지 않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결혼 후 맞벌이를 하면서 부부의 생활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딩크족은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전문직 종사자 부부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1997년 IMF이후 여성의 약 82%, 남성의 약 70%가 딩크족이 되기를 원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부부만의 행복과 안락한 삶을 누리려는 개인주의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과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1.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로다
성경에는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고 또 큰 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이란 의미가 무엇입니까?

기업이란 생계를 꾸리기 위한 소득을 얻는 산업입니다. 자영업, 중소기업, 대기업 등이 있지 않습니까? 직업의 종류만 해도 미국은 3만 가지, 일본은 2만 5000가지가 있고 한국은 1만 가지가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바로 자식인 것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에게 생계를 꾸리기 위한 소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귀찮다. 식구가 많으면 살기가 힘들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성인아동증

어른이 되어도 아이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한다. 모든 것이 일방적이다. 생떼를 쓰고 투정을 부리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한다. 의학적으로 이런 것을 가리켜 성인아동증이라고 한다. 균형이 깨어진 생각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균형을 잃어버린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이웃에게 상처를 준다.

암이나 중풍만이 큰병이 아니다. 성인아동증은 더더욱 큰 병이다. 왜냐하면 질병은 인간의 육체만 파멸시키지만 성인아동증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육신으로는 성인이면서도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그래야 자신뿐 아니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이 주일 유래

1856년 6월 둘째 주일에 미국의 메사츄세츠주에 있는 유니버셜리스트 제일교회의 레오날드 목사는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께 헌신한 일이 얼마나 귀중함을 알리는 반면 부모들에게는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렇게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훈련시키고, 어른들을 재훈련시키는 뜻의 의식에서 어린이 주일이 생겨났다. 특히 스토아 목사는 주일날 성찬 탁상을 예쁜 리본으로 묶은 꽃다발을 장식했다가 일곱 살 된 어린이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 어린이의 생일과 유아세례 받은 날짜를 기입하고 목사 자신이 서명한 성경책과 함께 꽃다발을 하나씩 주면서 예배를 드렸다.

1860년 메사추세츠주 로엘의 조합교회 목사는 교회에서 어른이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새론의 장미꽃)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 의식화 되어 1868년에 미국 감리교회 연회에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결의를 보았고 1883년에는 장로교회와 조합교회가 총회에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 곧 꽃주일로 지키기로 결의하였다.

이 꽃주일 행사는 미국만이 아니라 복음의 씨가 뿌려지는 곳마다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1923년 고 방정환 선생의 열의 있는 주장으로 어린이 명절을 해마다 지켰으나 일제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에는 다시금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지켜왔으며 1956년 아동문학 협회가(어린이 헌장)을 공포하였다. 교회는 1957년 5월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 곧 꽃주일로 정하고 1964년 전국 기독교 교육대회에서 (기독교 어린이 헌장)을 공포했다.

 

 
 

자녀를 슬프게 하는 8가지 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자녀가 부모에게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꾸중은 무엇일까? 부산시 청소년 종합 상담실은 11일 개소 10주년을 맞아 발간한 부모 교육 자료에서 "자녀를 슬프게 하는 말' 8가지를 소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나가버려.",

"너의 형은 안 그러는데 왜 그래."

등과 같이 자녀를 밀치거나 형제간 비교하는 말이 자녀를 슬프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다시 한 번 그런 짓 하면 그냥 안 둔다'(위협하는 말),
'답답해 죽겠다'(재촉하는 말),

'엄마는 화내고 싶어서 화내는 줄 아니'(변명하는 말),
'너는 정말 어쩔 수 없다'(가능성을 부정하는 말),
'너는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결점을 비난하는 말),

'너는 몰라도 돼'(무시하는 말) 등도 자녀가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 데 하나였다.

상담실은 또 부모가 버려야 할 불합리한 생각으로 나와 내 자녀는 완벽해야 한다, 나와 내 자녀는 서로 같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우리 아이는 철이 없어 부모 마음을 모른다, 자신보다 자녀를 언제나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등을 들었다.

 

 
 

햇볕이 되고 싶은 아이

아직 바람이 찬 봄날, 화분을 손보러 빨간 벽돌집 뒤켠 공터로 나오니 다섯살바기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모여앉은 아이들이 자기의 꿈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내 어린 시절의 한 자락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아이가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야, 너는 뭐가 될래?" "그래, 빨리 정해라."
친구들이 지친 듯 쪼그리고 앉아 재촉하는데도 그 아이는 망설이기만 했다.
그때 내가 빙긋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빨리 말해라. 친구들이 기다리잖아."
그러자 머쓱해진 그 아이가 뭔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서더니 햇볕이 잘 드는 벽으로 뛰어들어가 기대어 섰다.
"난 햇볕이이야, 너희들 모두 이리로 와 봐."

나는 속으로 ’어허, 제법이네’ 하며 그 아이를 힐끗 쳐다봤다. 어리둥절해 하던 아이들도 모두 달려가 그 아이 옆에 섰다. "와, 따뜻하다" 하며 벽에 붙어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나는 가끔씩 노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곤 했다.

오늘은 색색 플라스틱 포크에 토끼모양으로 깎은 사과를 들고 나오다가 무심결에 햇볕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우리 할머니는 시장에서 나물을 파는데 할머니가 앉아 계신 곳에는 햇볕이 잘 들지 않아요."

 

 
 

어린이 주일

1856년 6월 둘째주일에 미국의 메사츄세츠주에 있는 유니버셜리스트 제일교회의 레오날드 목사는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께 헌신한 일이 얼마나 귀중함을 알리는 반면 부모들에게는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렇게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훈련시키고, 어른들을 재훈련시키는 뜻의 의식에서 어린이 주일이 생겨났다. 특히 스토아 목사는 주일날 성찬 탁상을 예쁜 리본으로 묶은 꽃다발을 장식했다가 일곱 살 된 어린이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 어린이의 생일과 유아세례 받은 날짜를 기입하고 목사 자신이 서명한 성경책과 함께 꽃다발을 하나씩 주면서 예배를 드렸다.

1860년 메사추세츠주 로엘의 조합교회 목사는 교회에서 어른이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새론의 장미꽃)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 의식화 되어 12868년에 미국 감리교회 연회에서 6월 둘째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결의를 보았고 1883년에는 장로교회와 조합교회가 총회에서 6월 둘째주일을 어린이 주일 곧 꽃주일로 지키기로 결의하였다.

이 꽃주일 행사는 미국만이 아니라 복음의 씨가 뿌려지는 곳마다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1923년 고 방정환 선생의 열의있는 주장으로 어린이 명절을 해마다 지켰으나 일제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후에는 다시금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지켜왔으며 1956년 아동문학 협회가(어린이 헌장)을 공포하였다.



교회는 1957년 5월 첫주일을 어린이 주일, 곧 꽃주일로 정하고 1964년 전국 기독교 교육대회에서 (기독교 어린이 헌장)을 공포했다.

 

 
 

어린아이

어떤 어머니가 자기의 어린아이 하나를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네가 부엌에서 과자를 훔쳐먹었는데 "훔쳐먹을 때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그러니까 이 아이 대답하기를 "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늘 지켜보고 네 마음속까지 다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 "네" 그랬어요. 꼬박꼬박 "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다 못해서 "그럼 하나님께서 너를 지켜보면서 네가 과자를 훔쳐먹을 때 뭐라고 말씀하시던?"하고 물었습니다.

이 어린아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던 걸요. '이곳에는 너와 나 둘 뿐이구나. 그러니 두 몫을 훔쳐라'" 그럽니다. 어린 아이는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신다, 하는 것도 자기에게 이롭도록 해석합니다.

뭐든지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에게 이롭도록 해석하는 그러한 속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말합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인형

어떤 목사님이 어떤 교인 가정에 신방을 갔는데 그 여자아이가 많은 인형을 가지고 놉니다. 유달리 인형이 많은 것을 보고
"야 너 인형 좋아하냐?"
그러니까 얘가 되돌려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인형을 좋아하세요?"
"그럼 나도 좋아한다"
"그럼 어느 인형을 제일 좋아하세요?"
아 이거 골라낼 수가 없어요. 주저주저 하니까 이 어린애가 하는 말이
"나는요, 저 인형을 제일 좋아해요"

그 인형은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다 찢기고 상한 인형이에요. 목사님은 물었습니다.
"너 왜 저 인형 을 하필이면 제일 좋아하냐?"
"저 인형은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으니까요"
목사님이 그 어린애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사랑의 이유는 이것뿐입니다.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저를 사랑합니다.

 

 
 

성인 아동의 여섯가지 모습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는 속담에는 인간성의 기초는 두 살에서 세 살까지 95% 형성된다고 밝힌 현대심리학을 수백년 앞지른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어릴 때 자란 환경의 영향이 어른이 된 다음에도 계속 남습니다. 그래서 몸과 나이는 어른이지만 그 내적 정신세계와 심리적 성숙도는 어린아이 수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을 심리학에서는 < 성인아동 >이라고 합니다.

< 성인아동 >의 유형에는 다음과 같은 여섯가지 유형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첫째, < 성취지향적인 성인아동 >인데 이 유형은 무엇을 하던지 꼭 일등을 해야합니다. 2등이면 너무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런 사람의 배후에는 완전주의적 사고를 가진 부모가 있습니다. 이런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95점을 받고도 야단을 맞습니다. " 아니 한 문제만 맞았으면 100점 아니냐! "는 다그침 속에서 자랍니다. 이런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 일반적 수준으로보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의 성공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늘 자기의 인생은 실패하였다는 열등감 속에서 삽니다.

둘째, < 분노하는 성인아동 >인데 이런 유형의 사람 뒤에는 아주 강압적이고 냉정한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의 감정적인 체벌, 지나친 간섭과 훈계는 아이에게 알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한 사람을 만듭니다.

셋째, < 의존적 성인아동 >인데 이런 유형의 사람 뒤에는 지나치게 과보호형의 부모가 있습니다. 이런 부모는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으로 자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변호하고 돌봐줍니다. 그 결과 그 자녀는 자기 일을 남들이 해주기를 바라고 상당히 만족할 만한 조건 속에서도 불평 불만합니다.

넷째, < 절제하지 못하는 성인아동 >인데 이런 유형의 사람 뒤에는 대개 인생에 대한, 자녀 양육에 대한 아무런 철학도 없는 유약한 부모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자녀들은 자라면서 그 부모에게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사람은 난폭 운전, 과식, 지나친 낭비적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섯, < 고독한 성인아동 >인데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고독합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 뒤에는 방치형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가 직장이나 사업 관계로, 혹은 편모나 편부이어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경우입니다. 이런 유형은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였으므로 사랑할 줄 모릅니다. 사람에게 쉽게 접근하지도 못하고, 친밀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서툽니다. 언제나 외톨이로 빙빙돕니다.

여섯, < 자학적인 성인아동 >인데 이런 유형의 사람 뒤에는 자녀에 대한 무책임과 증오와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무의식 속에 " 너도 나를 버릴꺼야! "라는 의심과 불안을 안고 삽니다.

 

 
 

아빠의 포옹 그리고

'스킨십은 말보다 강하다.' 육체적인 접촉 없이 자란 아이들보다 안아 주거나 입맞춤을 해준 아이들이 훨씬 건강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딸을 많이 안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아빠의 품에 안겨 여성성을 키워 나갑니다. 아들은 아빠의 품에 안겨서 남성성을 키워 나갑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우주에는 성전이 하나뿐인데 그것은 인간의 몸이다. 인간의 몸에 손을 댈 때에 우리는 하늘을 만진다."고 말했습니다.
- 김성묵 한은경의《고슴도치 부부의 사랑》중에서 -

*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부모의 따뜻한 포옹과 스킨십은 아이들의 가슴을 덥혀주고 그 온기가 고스란히 세포 속에 남아, 그 아이가 자라면서 사랑이 고갈될 때마다 다시 되살아나 가슴을 덥히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사랑이 담긴 부모의 손끝에 하늘 같은 아이들의 일생이 달려 있습니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

어느 나라 임금이 푸른 오월을 맞아 군대를 사열하기 위하여 부대로 가는 길이었다. 철길 곁에 큰 호수가 있고 그 옆에 나지막한 야산이 있었다. 산에는 온갖 나무가 싱그럽게 자라고 여러 종류의 새들이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뻐꾸기의 소리가 아름답고, 가끔 산에서는 나뭇꾼의 노래 소리도 들렸다. 임금님
은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야산과 호수를 구비돌아 부대에 도착했다.


훈련된 병사들은 완벽하게 사열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임금은 아무말 없이 좌석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갔다. 신하들은 두리번거리며 임금님을 찾았다. 한참 후에 임금이 돌아왔다. 임금은 사열을 받지 않고 만족한 표정으로 군인들을 해산하도록 했다.
신하들이 의아해서 물었다.
"임금님, 왜 사열을 받지 않고 해산을 시키십니까?" 임금님은 웃으면서 대답한다.


"난 이미 사열을 다 끝냈소. 내가 원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군대가 아니라 장차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 들이요. 나는 사열대신 국민학교에 가서 씩씩하게자라는 소망찬 어린이들을 보고 왔소. 건강한 어린이가 있는 한 이 나라의 장래는극히 소망적이요." 왕은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와 어린이들을 위하여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정책을 폈다.
어린이가 자라면 어른이 된다. 어린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자.

 

 
 

생활 속의 아이들

1) 꾸지람 속에서 자란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2)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싸움질만 하게 되고
3) 놀림을 당하며 자란 아이는 수줍음을 타게 되고
4) 관용 속에서 자란 아이는 참을성을 알게 되고
5) 격려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6)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알게 되고
7) 공정한 대접 속에서 자란 아이는 올바름을 배우게 되고
8) 안정 속에서 자란 아이는 믿음을 갖게 되고
9) 두둔받으며 자란 아이는 긍지를 느끼며
10) 안정과 우정 속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에 사랑이 충만함을 알게된다(Kevin Leman의 Parenthood without Hassles - Well, Almost)

 

 
 

어린이에 관한 자료

1. 구약과 신약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다른 문화권에서와 같이 자녀, 특히
아들을 몹시 원했다(창15:2, 30:1, 삼상1:11,20, 시127:3, 128:3,눅1:7,28).
2.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으로, 속전을 지불해야
만 했다(민3:40-51).
3. 어린 아이는 때때로 특별한 봉사를 위하여 하나님께 헌신되었다
(삿13:2-7, 삼상1:11, 눅1:13-17,76-79).
4. 어린 아이의 훈련은 체벌을 동반한 엄격한 것이었다(잠22:15, 23:13,29:15).


5. 아이에게도 본받을 것이 많다(잠20:11).
6.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복종과 존경이 명령되었다(출21:17, 엡6:1-3, 골3:20, 딤전3:4,12, 딛1:6).
7. 어린 아이를 향한 애정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죽은 아들에 대한 다윗의 사랑(삼하12:15-23)에서, 그리고 엘리야(왕상17:17-24), 엘리사(왕하4:18-37), 예수(마9:23-26, 막5:35-43, 눅8:49-56)가 어린 아이의 생명을 살려준 기록에서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8. 어린 아이에 대한 예수의 사랑과 관심은 공관복음서에 많이 언급되었다
(마18:1-14, 19:13-15, 막9:35-37, 10:13-16, 눅9:46-48, 18:13-17).
9. 예수는 어린 아이의 놀이를 알고 계셨다(마11:16).
10.성경에는 모세(출2:1-10), 사무엘(삼상1:20-3:19), 예수(눅2:7-40),
디모데(딤후1:5, 3:14,15) 등의 어린 시절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어떤 가능성

한국컴퓨터선교회 독일의 한 나이 많은 교장 선생님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는 아침마다 교실에 들어가서는 언제나 모자를 벗고 예의를 갖추어 그들에게 절을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소년들 중에 장차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말은 옳았다. 왜냐하면 그 소년들 중의 하나가 마틴 루터였기 때문이다.
안드레는 보리떡과 물고기를 가진 소년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을때 자기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한 소재를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 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때에 우리는 어떤 가능성을 마련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어른보다 지혜있는 어린이

80먹은 노인이 세 살 먹은 어린아이에게서 배울 때가 있다.
확실히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사람이 아는데는 어느정도
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가르치는 선생의 처지
에서 보아도 제자를 가르치노라면 제자들에게서 배우는 바가
많다고 한다. 선현이요, 대학자인 공자도 가끔 이런 경험을 했
다고 한다.


어느 날 어떤 아이가 천하에 위명을 떨치고 있던 공자를 찾
아와서 질문을 했다.
"공자님, 하늘에는 별이 몇 개나 있습니까?"
아무리 공자가 천하의 경륜을 다 안다고 하더라도 하늘에 있
는 별의 수효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그렇게 먼 곳에 있는 일보다도 가까운 곳에 있는 일에
흥미가 있다."


공자로서는 할 법한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말에도 여
러가지의 뜻이 있었다
. 우선 쓸데없는 귀찮은 수작이라는 뜻도 되려니와 가까운 곳의
일도 바로 알기가어려운데 하늘의 일을 알아서 무엇하겠느냐
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대답에 기가 질려서 더 이상 물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어서 다음 질문을 했다.


"하늘의 별의 수효를 멀어서 모르신다면 가까이 있는 선생님
의 눈썹 털은 몇입니까?"
실로 기상천외의 질문이었다. 이 물음에 공자는 그저, "또 모
르겠다. 그리고 알려고 생각지도 않는다."하고 대답했다. 공자로
서는 좀 창피하리만큼 초라한 대답이었다.

 

 
 

유아 수출국

일전에 `뉴욕 타임스'는 올림픽 주최국임을 과시하고 있는 한국이 한 해에 미국에만도
6천여 명씩의 유아(乳兒)를 수출하고 있다는 후진성을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 수는
미국에 입양된 모든 외국 어린이의 59 %에 해당된다 하고, 이 입양으로 4천 달러씩의
경비를 받고 있으며 정부의 은밀한 장려 아래 자행되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아무리 기아(棄兒)들일 망정 제 나라 사람 제 나라에서 기르지 못하고 아기 낳기 싫
은 서양사람들의 육아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방출한다는 것은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기아(棄兒)와 입양에 대한 서양사람들의 일반적 인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는 것을 알면 더욱 그렇다.


19 세기 유럽에서 인도주의가 싹트기 시작한 직접적인 동기는 아이들을 밥먹이듯 버리
는 기아(棄兒)의 상습화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18 세기의 대사상가 장 자크 루소
도 가정부 테레즈와의 사이에 낳은 사생아 다섯을 고아원에다 버렸다고 그의 `고백(告
白)'에서 고백하고 있다.
어찌나 많이 버렸기로 14 세기경부터 `투르(회전상자-回轉箱子)'라는 것이 웬만한 도
시에는 설치돼 있었다.


밤중에 얼굴을 가린 어머니가 고아원 외벽에 설치된 이 회전상자에 아기를 버리고 간
다. 그러면 그 상자가 회전하고 벽내부로 들어간다. 물론 누가 버렸는지 모른다. 영아
살해보다는 인간적이긴 하지만 슬픈 회전상자가 아닐 수 없다.
1758 년 파리의 사망자는 총 1만 9천 2백 2명, 결혼한 수가 4천 3백 42쌍인데 비해 기
아수는 5천 82명이나 되고있다.
결혼한 수보다 기아수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구미(歐美)에 있어 양자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은 우리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우리 나라에서는 혈통을 잇기 위해 항렬을 따져 양자를 들이는데, 서양에서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가엾은 기아를 데려다 기른다는 복지차원의 양자인 것이다. 따라서 실자(
實子)가 있어도 양자를 들인다.


프랑스의 경우 양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1) 친부모가 입양에 동의한 아이로서 양친(養親)보다 15 세 이하의 아이 (2)
국가가 후견인이 돼 있는 전쟁고아 (3) 재판소에서 정식으로 버려진 기아로 인정된 아
이여야 한다.


1980 년도 프랑스의 입양수는 3천 9백 22 건인데 그중 3천 1백 29건이 외국에서 입양
한 고아였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가 입양을 위한 아기 수출
왕국이라는 인식은, 가난하고 무지하며 미개하고 비인도적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는
것이다. 국가가 재빨리 손을 써야 할 지구촌의 치부랄 것이다.

 

 

 
 

가장 귀한 보물(아들)

그리이스의 두 귀부인이 아주 오랫만에 만나게 되었다.

한 여인은 아주 호화로운 모습에 화사한 차림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여인은 조촐하고 얌전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값진 거야. 남편이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선물한
것인데 옛날 터어키 귀족이 지녔던 것이란다.


` 그 보석을
자랑하는 귀부인의 얼굴은 아주 만족하고 자랑스럽게 보였다
그러다가 그 화려한 모습의 귀부인은 잠자코 미소만 짓고 있
는 친구에게 졸라댔다


. `얘 그동안 너도 상당히 귀한 보물을
모아 두었을텐데 나에게도 좀 보여주렴!` 조촐한 차림의 귀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 `그럼 꼭하나 네게 보여주고 싶은
보물이 있단다.` 그러면서 그 부인은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불렀다. 방문이 열리고 준수하게 생긴 두 아들이 들어오더니
어머니 에게로 왔다 `부르셨어요` 그부인은 그친구들에게
`내게 가장 귀중한 보물은 이 아이들 이란다`

 

 

 
 

깊은 사랑으로 어린이를

도로티 로톨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 가게 된다면 남
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 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
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
려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고마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정
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도벽을 고친 신뢰

1953년 미국 뉴오린스에 <선한 사마리아의 집>이 문을 열
었다. 감옥을 자주 출입하는 불우 여성들을 돕기 위해서다.
거기에는 알콜 중독자, 매춘부, 아편 중독자, 가출 소녀.소
년들 등 세상에서 죄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갱생의 길을 걷게 하는 곳으로 사랑이
넘치는 곳이다. 어느날 제니라는 소녀가 들어왔다.



그 소녀
는 부유한 가정인데도 5세 때부터 어찌나 도벽이 심한지 부
모는 매로 다스리기도 하고, 감금도 해보았고, 교정학교에
보내기도 했으나 도저히 고쳐지지 않아 최종적으로 이곳으로
보냈다.



 원장 죠이스 키미카엘 여사는 사랑으로 돌보며 그를
중고 옷가게의 금전 출납계를 시켰다.



 그토록 도벽이 심한
제니가 많은 돈을 관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제니는 돈을 한
푼도 훔치지 않았다. 그는 여러번 눈물을 흘리며 `원장님,저
를 정말 신용하시는 거죠?` 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랑뿐이다.

 

 
 

부전자전/어린이가 배워서 아는

부자(부자)가 둘이서 장작을 패던 중 부친이 실수하여 하마터면 아들의 팔을 도끼로 찍을 뻔 했다.

아들이 저도 모르게, 이 늙은이가! 위험하지 않아! 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곁에 앉았던 손자가, 할아버지를 욕한다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나쁜놈! 자기 아버지한테 그런 말을 하는 법이 어디 있어.

 

 

 
 

소녀와 우산

어느 농촌 지방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이 거의 말라죽
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모두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께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

몇 시간 동안의 간절한 기도가 끝나자, 밖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
났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산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
다.

모두들 현관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만 쳐다보고 있을 때, 그 어른
들 틈에서 어린 소녀가 우산을 들고 나왔다. 소녀는 하나님께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우산을 준비해 온 것이
다.

 

 
 

아버지를 신뢰하는 어린이

하나님은 우리가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신뢰하듯이 당신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시기
위해서 고통이라는 것을 사용하신다.



 때로 표면적으로 하나님은 불공평하시거나 혹은 도움을 원하는 우리의 부르짖음에 냉담한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한 아버지로서 그는 우리와 함께 아파하신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고통이나 고난과 같은 너절한 것들로 해서 우리의 연약성 내지는 의존 필
요성을

 

 
 

아직 파란 사과들에게

파래야 할 땐 한껏 파랗게 싱싱하세오.
비바람이 짖궂고 어두운 밤이 되풀이 된다해도
아무도 파랗고 싱싱한 소망과 무지개 빛 꿈을
빼앗지를 못한답니다.
파란대로 완전하세오. 그리고 매일매일 힘차게
발돋음하면서 자라나세오.
파랗다는 것은 성장하고 있다는 것,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한 결실을 약속함이니 그날을 향해 한껏 자라세요.
성장에는 아픔이 따르는 것. 결실에 이를 때까지!많은 눈물의 나날이 있겠지만 그래
도 자라세요.

 

 

 
 

어린 예수님은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라고 했고, 세례 요한도 `아이가 자라
며 심령이 강하여지며`(누가 1:80)라 하였으니 어린이 시절
에 믿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난 것을 뜻함이라 하겠다.

 

 구
약에 있어서도 사무엘은 엘가나와 한나와의 사이에서 기도로
태어나고 자라났으므로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
니라`(삼상2:21)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분들은 어머니 품
에 안기어 어머니의 젖을 빨 때부터 그 사랑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요사이 사람들은 아이들이 체중이 늘고 키가 자라는
데 치중하지마는 실상은 몸과 지혜가 같이 자라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현모라고 불리울 수 있는 사람
은 아이가 철이 없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여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키우는 것이 지혜의 전달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키워지는 아이는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 사랑의 마음

오래전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노인이 공원
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지나
가던 경찰관이 하도 이상히여겨 가까이 가니 무엇인가를 주
머니에 가득히 담고 막 가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 노인을 파
출소로 연행하여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서는 깨진 유리병 조각과 못, 그리고 삐
죽삐죽 나온 쇠붙이 같은 것들이 나왔다.

 

 깜짝 놀란 경찰관
이 그런 것들을 무엇하려고 주워 모으느냐고 묻자 이러한 것
들을 어른들이 무심코 버릴 때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들이 다
치게 하겠느냐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학자 요한 페스탈로찌 였다

 

 

 
 

어린이 권리선언

1959년 12월 2일 유엔 총회에서 `어린이 권리 선언`이 선포되었다. 그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어린이는 어떠한 신분이든지 차별받지 않고 모든 권리를 갖는다.
2. 어린이는 법률과 다른 방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아야 하며 기회와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3. 어린이들은 그 출생시부터 이름과 국적이 주어져야 한다.
4. 어린이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5. 어린이는 신체, 정신, 사회적인 장애의 치료와 교육과 양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6. 어린이는 인격의 조화된 성장을 위하여 사랑과 이해를 받아야 한다.
7. 어린이는 적어도 초급 학교의 교육을 무료및 의무적으로 받을 권리가
있다.
8.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든지 우선적인 보호와 구호를 받아야 한다.
9. 어린이는 모든 형태의 방임 학대및 약취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10. 어린이는 인습으로부터 보호되고 그의 능력과 힘이 인류에 대한
봉사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 전도

종교 심리학자 Spencer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기독교인이 기독교에 입신한 연령층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천명의 입신자 중 548명은 20세 이전에, 337명이 20세에서 30세 사이에, 96명이 30세에서 40세 사이에, 겨우 15명이 40 세에서 50세 사이에, 그리고 50세 이후의 입교자는 5명의 비율이다.


어려서 교인이 되도록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이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

어느 나라 임금이 푸른 오월을 맞아 군대를 사열하기 위하여 부대로 가는 길이었
다. 철길 곁에 큰 호수가 있고 그 옆에 나지막한 야산이 있었다. 산에는 온갖 나무
가 싱그럽게 자라고 여러 종류의 새들이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다.



 어디서 들려오는
지 뻐꾸기의 소리가 아름답고, 가끔 산에서는 나뭇꾼의 노래 소리도 들렸다. 임금님
은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야산과 호수를 구비돌아 부대에 도착했다.
훈련된 병사들은 완벽하게 사열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임금은 아무말 없이 좌석에
서 일어나 어디론가 갔다. 신하들은 두리번거리며 임금님을 찾았다.



한참 후에 임금
이 돌아왔다. 임금은 사열을 받지 않고 만족한 표정으로 군인들을 해산하도록 했다.
신하들이 의아해서 물었다.
`임금님, 왜 사열을 받지 않고 해산을 시키십니까?` 임금님은 웃으면서 대답한다.
`난 이미 사열을 다 끝냈소. 내가 원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군대가 아니라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 들이요.



나는 사열대신 국민학교에 가서 씩씩하게
자라는 소망찬 어린이들을 보고 왔소. 건강한 어린이가 있는 한 이 나라의 장래는
극히 소망적이요.` 왕은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와 어린이들을 위하여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정책을 폈다.
어린이가 자라면 어른이 된다. 어린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자.

 

 
 

어린이라는 말은 없었다

`소남소녀`라는 말이 있었다. 흔히는 `소년남녀`라고도 했다. `늙은이`,
`젊은이`는 있어도 `어린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의 애기다.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 8월 `잿골의 잔물`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1920년 8월호
`개벽`지). 잿골이라면 서울의 제동. `잔물`은 `소파`. 소년운동가 방정환이
처음 지어낸 것이다. 그 무렵만해도 어린이람 말이 여간 생소하지 않았다.
신문에서는 반드시 괄호를 넣고 소년이라고 밝혔다.


`어린 사람을 헛 말로 속이지 말아 주십시오/ 어린 사람을 늘 가까이
하시고, 자주 이야기해 주십시오(중략)/ 어린 사람에게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발이나 목욕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1922년 5월 1일 서울 장안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진 종이들이 뿌려졌다.
또한 `장가와 시집 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라는 글귀도
있었다. 66년 전의 일이 이제는 고담조가 되었다.

 

 

 
 

어린이와 두개의 시

어린이와 두 개의 詩
나를 믿는 자는 이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를 죄 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새번역, 마태복음 18:6)

어린이 주일이 되면 생각나는 두 개의 시가 있다. 하나는
워어즈워어드의 무지개 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면 나의 가슴은 뛰어 오른다.
내 삶이 시작될 때 그러하였고,
어른이 된 지금도 또한 그렇다.
나이 들어 늙어도 그랬으면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으리!
어린이야말로 어른의 아버지 원컨대
내 생애의 하루 하루가 순진한 경건으로 맺어지기를...

또 하나는 칼릴 지브란의 아이들에 대하여 이다.

너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되 생각은 주지 말라.
저들은 저들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아이들의 몸을 위한 집을 주되
혼의 집까지는 주지 말라.
저들은 혼은 내일의 집에 사나니
너는 거기를 꿈에도 가볼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아이같이 되려고 애씀은 좋으나
저들을 너같이 만들려고 하진 말라.
생명이란 뒤로 물러남도 없고
어제에 머뭄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활이요 자녀는 화살이니,
그 활로 너는 자녀를 산 살로 퉁겨 보낸다.


활쏘는 이(하나님)가 무한의 활터 위에 그 과녁을 겨누고,
자기의 화살들이 빠르고 멀리 가도록
그분의 힘으로 너를 당겨 꾸부리신다.
너는 활쏘는 그분의 손에서 꾸부러짐을 즐거움으로 하라.
그분은 달리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또 억센 활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마 18:6) 는 예
수의 말씀이나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격노케 말지니 라
는 바울의 말씀도 결국은 위의 두 개의 시와 같은 뜻을 말하
고 있으리라.


 
 

어린이날의 유래

1922년 5월 소파 방정환이 처음 어린이날을 제정한 뒤, 이듬해인 1923년
5월 1일의 행사는 자못 뜻이 있었다.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천도교소년회가
중심이 된 `조선소년운동협회`가 주최한 이 어린이날엔 `소년운동 첫 선언`도
발표되었다.



소년 운동의 숨은 공로자인 김기전이 초한 이 선언문은
봉건시대의 윤리적 압박, 경제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며,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제네바` 선언이라고도 부르는
`국제아동권리선언` 보다도 1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세계 최초의 `어린이
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제치하, 더구나 독립만세 이후
민족의 앞날은 어둡기만 했을 때, `어린이날`을 민족적 각성의 날처럼 보낸
어른들의 그 심정은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어린이날은 그 후 5월 1일의
`메이 데이`를 피해 5월 5일로 바뀌었다.



 오늘 세계의 여러나라들은 `유엔`의
권고(1954년 10월)에 따라 각기 좋은 날을 `어린이 날`로 채택, 행사를 갖고
있다.

 

 
 

어린이의 흰 옷

어떤 사람에게 다섯 살 난 사내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성경을 읽
어주던 중 모든 성도가 흰 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거닐 것이라는 대목을
읽어 주었든데 아이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흰 옷도 가지고 계시냐고 물었다.



 그 아버지는 아이에게 말했다.
`예수님은 몸이 크거나 작거나 신앙이 크거나 작거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입
을 옷을 갖고 계신다`라고

 

 

 
 

예수님의 어린이 관

우리는 아이들의 인격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젖먹이의 입으로 하여금, 주의 대적 즉 원수와 보수자로 잠
잠케 하신다(시8:2).



 또 영아가 젖을 사모하는 모습을 순전
하고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다(벧전2:2). 그렇게 함으로써 사탄의 궤계를 소멸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또 아이들의 특징으로서 배워야 할 것
은 악에게 물들지 않는 점이다. 아이들은 원한의 마음을 품
지 않는다. 이따금 욕심과 교만을 부리는 일이 있지마는 다
음 날까지 그 교만과 욕심을 품고 지내지 않는다.



언제나 겸
손해서 자기들이 만들은 조직과 규정에 잘 복종한다. 그래서
잘 단결하며 또한 이익과 손해를 타산하지 않고 정직과 진실
한 태도는 우리 어른들이 배워야 할 점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어서 이러한 어린 아이들의 진실된 인
격과 겸손하게 맡은 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점을 높이 평가
해 주셨다고 보여진다.

 

 
 

미국 어린이 자살율 추이

다이어 (Wayne Dyer) 박사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 어린이 (8-12세)
의 자살율은 1967년에 비해 15년 후인 1982년에는 400%가 상승했다고
한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부모의 욕심과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좌절되는 결과라고 분석하였다.



부모의 욕심스러운
기대가 한 생명의 가치를 좌우해서는 안된다. 사랑은 기대가 아니고
협조이다. 바람직한 환경을 조성해 주어 자기 힘으로 자기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도록 도웁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어린이는 부모를 통하여 세상에 오지만 결코 부모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그 생명의 출발은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하였다.

 

 
 

-10세까지어린이를

5살부터 10살까지의 아이를 결정적으로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가장 쉬운 것이다.


 나는 구원 전도대가 한 일을 기뻐한다.
이것을 통해서 파산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상한 남자와 여자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크리스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만족스러운 크리스찬이란 아이 시절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크리스찬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은 21살 이전에 거듭난 자들이다



. 당신의 교회가 어떤 것을 하건 간에 이들에 대한 의무를 충분히 완수해야 할 것이다.

 

 
 

카릴 지브란이 말하는 어린이

카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책 속에 나오는 예언자 알무스타파는 어린이에 대한 부모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대의 아이들은 그대의 아이들이 아니니라. 그들은 삶이 스스로를
아쉬워해서 낳은 아들과 딸이러니. 그들은 그대를 빌어서 오나 그대로부터
오지는 않느니라. 그리고 비록 그들이 그대와 더불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대의 것은 아니니라.


그대는 그들에게 그대의 사랑을 주어도 좋으나, 그대의 생각을 주려고
하지는 말라. 그들은 그들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대는 그들이 몸담을
집을 지어줄 수는 있으나, 그들의 넋이 깃들 집은 지어줄 수 없나니, 그들의
넋은 그대가 찾아갈 수 없는, 꿈에서라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서 살고
있기에.
그대는 그들과 같이 되려고 애써도 좋으나, 그들을 그대와 닮게 만들려고
하지는 말거라. 삶은 뒷걸은치지도 않거니와 어제와 더불어 꾸물거리지도
않기에.


그대는 활이고 그대의 아이들은 거기서 쏘아지는 산 화살이거니. 활 쏘는
이는 끝없이 뻗은 길 위에 놓은 과녁을 보느니라. 그리고 그의 화살들이 빨리,
또 멀리 가도록 힘껏 그대를 당기느니라. 그대가 휘어짐은 기꺼운 마음으로 활
쏘는 이의 손에 맡길지니라. 날아가는 화살 못지 않게 그는 또한 제자리에
있는 활도 함께 사랑하거니.`

 

 

 
 

태국선교사 정석천

해외선교는 나의 여러 관심사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직접 선교사가
되어 일한다는 것은 정말로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모태신앙은 아니었으나 유치원 시절부터 교회에 출석했던 나로서는 그저
[보통신자]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 든든한 일이었다.

나는 이런 기독교적 분위기에 흠뻑 젖은채 신학을 택했다. 총신대와 합
동신학원을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달랐다. 목회를 잘 하려면 선교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던 내게 중요한 사건이 발생
했다.

어느 날 인도네시아의 한 선교사로부터 그곳의 실태에 대한 슬라이드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살아가는 어린
이들의 모습을 보며서 나의 마음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님, 바로 저것입니다. 제가 가야할 길은 바로 어린이 선교사역임을
믿습니다. 저를 보내주옵소서]

나는 감히 이렇게 고백했다.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삶의
최우선순위로 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선교에 대한 열정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았다.특히 마태복음 22장 37-40절 말씀은 내 삶의 지표가
되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
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결국 나는 태국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전 국민의 94가 불교를 믿고 있다는 이곳에서 내가 맡은 일은 어린이
사역이었다. [주님,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어린 영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부부는 새벽마다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무슨 일부터 어떻게 시작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태국에는 15세미만의
아동이 무려 1천5백만이나 됐다. 그중에서 특별히 70여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촌부리선교센터에서 어린이 캠프를 갖게 됐다. 나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용사들에 관한 이
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동화정도로만 듣던 어린이들에게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선생님,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가요? 저희들도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
겠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의 조그마한 입에서 기도가 터져나
오기 시작했다. 캠프파이어를 하던 날 어린이들은 그들의 주머니와 품에
간직하고 있던 부적들을 불에 던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두렵지 않다. 내 마음에 예수께서 와 계시니 두려움이 없다.]
기적같은 사건이었다. 어린이들은 울면서 통성기도를 했다.
나는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어린이선교사역에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나이다]

 

 
 

주님의 모습

댄네이커라고 하는 독일 태생의 유명한 조각가가 있었다.그는 정성을 들여2년간 노력
끝에 예수님의 모습을 조각했다.어느 누가 보아도 그만하면 휼륭한 조각품이었다.이만
하면 되었을까 하고 자기 작업실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에게 그 조각품을 보여주었다.


그 소녀는 멋있는 작품이라고 했다.댄네이커가 그 소녀에게`너는 이 조각품이 누구의
상인지 알겠니?`라고 묻자 소녀가 대답했다.`자세히 알 수 없지만 유명한 사람 같아요
.`그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그는 즉시로 망치를 들고 조각품을 두들겨 부숴버
렸다.예수님의 상을 조각했는데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유명한 사람 같다니 실패 작품
이 아닐 수 없었다.그는 다시 망치와 정을 들고서 새로운 작업에 들어갔다.

 

구후 6년간
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새로운 작품을 완성했다.그리고 그는 작업실에서 일하는 새로
온 소녀에게 작품을 보이며 이 조각품이 누구의 상인지 아느냐고 물었다.그러자 말없
이 한참 동안,조각품을 들여다본 그 소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두 손을
모아 가슴에 대면서 무릎을 끓더니`주님,저도 여기 왔어요`하는 것이었다.

 

그 조각품은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고 하시면서 어린아이들을 맞아주시는 주님의
모습이었다.그후 그 작품이 공개되었을때 댄네이커는 신앙적인 고백을 했다.자기가 조
각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주님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셨고 그 모습을
조각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주일학교 운동의 공로자

세계 어느나라 보다도 주일학교 운동이 맹렬한 나라는 미국 이다.

 미국 주일학교 운동의 공로자 중 한 사람은 팩슨(Ste- phen paxson)이다.

 

그는 말을 타고 일평생을 여행하며 동네 마다 주일학교를 설립 해 주었는데 그 수는 1314개 학교에 달했으며 학생수는 83000명에 달했다. 팩슨의 말은 이상한 습관을 가졌었다.

 

어디에서나 어린 아이만 보면 멈추어 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팩슨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위스칸신 주의 브라운(Joseph Brown)씨는 주일학교와 가정 을 찾아다니며 교사와 부모의 훈련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는 데 1083개 주일학교를 방문하여 3654명의 교사를 훈련하고 8476개 가정을 방문하여 부모들에게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역 설하였다.

그는 말을 타고 2570마일을 전도여행하였다.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것

억만장자 집에 태어난 여섯살까지 아이가 있었다. 사바나라고 하는 딸이
었다. 아버지는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어머니도 또
한 아버지를 따라 저녁마다 파티에 나가느라고 분주한 생활을 했다.


어떤 때는 여섯 살짜리 사바나도 부모를 따라 파티 장소에 나가서 귀한손
님들을 만나야만 했다. 물론 그 집에는 식모도 있었고 아기를 봐 주는사람
도 있었으며 가정 교사도 있었다. 필요하다고 하면 무엇이든 전화 한 통화
면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딸 사바나의 얼굴에는 웃음이라고는 찾아
볼 길이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물어보면 [네 아버지,내 어머니.]하는
식의 정중한 대답만 할 뿐 얼굴에는 기쁨이 없었다.

 

그 아이에게 유일한 친
구가 있다고 하면 텔레비젼을 보는데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부모들이
자기들에게 관심이 없으니 집에서 살 필요없이 집을 나가자고 의논을 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사바나도 부모 몰래 집을 뛰쳐 나갔다. 공원쪽으로갔
다가 문이 열려 있는 아주 낡은 고물 자동차의 뒷자리에 숨어 버렸다.
그 자동차는 형무소에서 탈옥한 두명의 죄수들이 숨어 다니는 자동차였
다. 그 두 죄수들은 여섯 살짜리 사바나를 키우게 되었다. 그들은 별로 하
는 일도 없이 사바나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 주었다.

 

돈이 없어 장난감을 사
다줄 형편이 못되었고 간혹 훔쳐다가 주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사이
에는 인정의 꽃이 피게 되었다. 웃음을 모르던 사바나의 얼굴에도 웃음꼿이
피어났다. 즐겁고 행복에 겨운 웃음이었다.

부모가 억만장자이면 무엇하며 사회에서 명성이 높고 권력을 한손에 쥐었
으면 무엇하랴? 자식이 귀하다고는 하면서 자식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사라
지게 한다면 그 가슴에는 시커면 멍이 들어 있지 않을까?[ 또 아비들아 너
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4)

 

 

 
 

예수님의 성장 과정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매우 특별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주 안에서 아름답고 총명하게 무럭무럭 자라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읽는 것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요약한 구절을 통하여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지적인 성장 예수는 그 지혜 … 가 자라가며 둘째, 신체적인 성장 예수는 … 그 키가 자라가며 셋째, 영적인 성장 예수는 … 하나님 … 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넷째, 사회적 성장 예수는 …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지적으로,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여자 친구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를 않는다. 그분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떻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 같은 걸 채집하느냐?'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가 나가느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 이것이 그분들이 묻는 말이다.


그제서야 그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그 분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내질 못한다.


 '1억짜리집을 보았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거, 참 굉장하구나.'하고 감탄한다."


생떽쥐베리의 동화같은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다

 

 
 

방정환 선생님의 당부

해마다 맞이하는 어린이날.우리 조상들은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에 뭐라고 불렀을까?

놀랍게도 ‘애새끼’ ‘자식놈’ ‘딸년’ ‘아들놈’과 같은 조금은 과격한(?) 호칭을 사용했다. 그러던 것을 1920년 방정환 선생이 번역한 ‘불켜는 아이’라는 시를 통해서 ‘어린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는데, 당시만 해도 조혼 풍습이 남아 있던 관계로 열 살만 넘으면 모두 짝을 찾아 결혼을 해야했다.
그러다 보니 열 살에 어른 행세를 했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자연 어린이라고 따로 통칭하여 부를 만큼 진짜 어린이(?)가 없었던 것도 제대로 된 아름다운 이름을 갖지 못한 이유가 되겠다.


또 하나, 장유유서라는 유교 윤리와 가부장 중심의 가족 제도 밑에서 부모는 자식들을 마치 자신의 부속물인양 여겼기 때문에 ‘어린이’라는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물론 시대적 상황이 일제 강점기라는 것도 상기해야 할 부분이다.
일손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어린 자녀도 노동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억압적인 자녀관을 바꾸고자 1922년에 제정한 ‘어린이날’을 계기로 비로소 ‘어린이’라는 말이 적극 사용되었던 것이다.
어린이날을 선포하면서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당부한 내용을 보면 재미있다.

 

 
 

어린 천사의 시

인천의 한 회사에 취직했을 때 나보다 열살이 더 많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서른 둘 노총각이었던 그는 여직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그를 본다는 기쁨으로 출근했지만, 그는 저를 어린 학생처럼 대할 뿐이었습니다. 화장을 진하게 해보기도 했지만 그가 관심조차 두지 않을 땐 어찌나 서운했던지요.


그래서 그가 모르게 날마다 그의 책상위에 꽃을 꽂아두거나 시집을 읽다 좋은 글이 있으면 예쁜 카드에 적어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읽어보고는 "누군지는 모르지만 감사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인사하곤 했습니다.

 

누가 올려놓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며 '혹시 애인이 있는 건 아닐까?'하고 그의 전화통화 내용을 유심히 엿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마음을 온통 차지한 그에게 바보처럼 말한번 못한 채 4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결혼을 하여 미국으로 떠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날부터 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주일동안 심한 탈수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일주일 뒤, 초췌한 모습으로 출근을 하니 그는 이미 퇴사하고 난 뒤였습니다. 정신없이 인사과로 내려가 그사람의 주소와 연락처를 알아내어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어머님이 울음을 터뜨리며 '뇌종양 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해서 미국으로 간다는 사람이 웬 뇌종양이란 말인지, 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사람의 흔적이 너무 많은 회사를 더이상 다닐 수 없어 사직서를 작성하여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책상을 정리하려고 서랍을 열자 상자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안에는 제가 그에게 매일 썼던 시 한편 한편이 차곡차곡 묶여 있었습니다. 꽃잎을 따서 시와 함께 코팅된 예쁜 쪽지에는 '당신은 나의 천사였어요. 천사는 하늘나라에서 만날 수 있대요'라는 그의 글이 남아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힘들었는데, 그는 이미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수술뒤 1년도 채 안되어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저는 그사람을 잊을 수 없어 7년동안 방황하다가 서른셋이 되어서야 결혼을 했습니다.그가 남긴 시집앨범은 결혼 전날 태워 그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월미도 앞바다에 띄웠습니다. 그 바닷물이 흘러 없어질 때쯤이면 어디선가 그를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명복을 빌며 이제 그만 그를 잊고자 합니다.

 

 
 

어린이의 흰 옷

어떤 사람에게 다섯 살 난 사내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성경을 읽어주던 중 모든 성도가 흰 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거닐 것이라는 대목을 읽어 주었든데 아이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흰 옷도 가지고 계시냐고 물었다.

 

그 아버지는 아이에게 말했다.


"예수님은 몸이 크거나 작거나 신앙이 크거나 작거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입을 옷을 갖고 계신다"라고.

 

 
 

깊은 사랑으로 어린이를

도로티 로톨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인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똑똑한 아이 안달이 아이 망친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를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골로새서 2 : 23)
'우리 아이는 똑똑하게 키워야 할텐데' 자녀교육에 욕심이 많은 우리나라 부모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것이 영재교육. 돌도 안된 유아에게 지능계발프로그램을 들이밀거나 영재학습교재라면 거금을 들여서라도 구입하는 것이 예사다. 그러나 '똑똑한 아이로 키우려는 안달이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만 4~5세미만의 아이에게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면 학습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 있으며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시키는 만능교육은 아이의 소질과 흥미를 발견할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요즘 많이 활용하는 문자카드는 더 많은 지식을 외우게 하는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과제집착력 논리적 확산적 사고 등 더 중요한 요소들을 기르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한국영재가 아니라 다양한 체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자기 수준에 맞는 과제 등이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혹사당하는 원인중의 많은 부분은 부모의 지나치며 이기적인 관심 때문이다. 과연 아이들이 이 땅에서 성공하고 유명해 지게 하는 것만이 기독부모들의 온전한 목표가 되는 것일까?



이땅의 기독 부모들이여!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지나친 관심을 버리자. 그리고 그 힘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심어주는 참 믿음의 부모들이 되자.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어린이의 총기 난사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22 : 6)

미국 전역은 아칸소주 조스버로(인구 4만 5000)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끔찌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경악했다. 11살, 13살 짜리 소년 두 명이 숲속에 매복해 있다가, 엉터리 화재경보를 듣고 교정으로 뛰어 나오는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마구 총질을 해 4명의 여학생이 숨지고 12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나이 어린 소년들은 사고 뒤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는데, 아직까지 왜 이처럼 끔찍한 사고를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학교에 엉터리 화재경보를 울리게 한 제 3의 소년이 있다며 이 소년의 행방을 찾고 있다. 이날 미국 방송들은 이 사건을 잇따라 머릿기사로 보도하면서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미국에서는 나이 어린 소년들의 총기난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믿음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주일아침 일찍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는 머리를 예쁘게 묶고, 깔끔하게 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는 분명 교회에 가는 중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아침 일찍 어디에 가니?” 그 아이는 살짝 웃어보이며 “교회에 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저는 거듭 물었습니다.“교회는 무엇하러 가지?” 저의 물음에 그 아이는 맑은 눈동자를 또렷이 뜨고 “하나님 보러 가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때, 마음이 뜨끔했습니다.“아차! 이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몰랐구나!”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어떤 뜻으로 우리에게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어린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할버톤이 어느 날 어린 아들과 친구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한 소년이 아들에게 이런 자랑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이 도시의 시장님과 아주 친하단다" 그때 아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친하지"
할버튼은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 감격해 왈칵 눈물을 쏟았다. 어린 시절에 신앙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때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갓난아기는 하루에 평균 300번씩 웃는다.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면 그 1차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어린이는 하늘이 부모에게 잠시 맡겨준 선물이다.

 

 어린이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만약 이 선물을 훼손하면 나중에 주인으로부터 큰 책망을 듣는다. 어린이는 아직도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늙고 병들었을 때 제자들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메시지를 하나만 들려주십시오" 소크라테스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아테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시민들을 향해 간절히 외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네" 제자들이 다시 물었다. "그 말이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으는 일에만 충실하지 말라. 그것을 물려받을 어린이들에게 좀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아라. 이것이 내 일생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이다."


사람들은 간혹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며 살고 있다

. 어린이를 잘 양육하는 것이 부모에게 맡겨진 제1의 사명이다.
어린이의 마음은 하늘과 닿아 있다. 어린이는 하늘이 인류에게 보낸 선물이다.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을 '어린이'라고 불렀다. 이 말 속에는 '어리신 분'이라는 존경의 뜻이 담겨 있다.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떤 어머니가 자기의 어린아이 하나를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네가 부엌에서 과자를 훔쳐먹었는데 "훔쳐먹을 때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그러니까 이 아이 대답하기를 "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늘 지켜보고 네 마음속까지 다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

 

"네" 그랬어요. 꼬박꼬박 "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다 못해서 "그럼 하나님께서 너를 지켜보면서 네가 과자를 훔쳐먹을 때 뭐라고 말씀하시던?"하고 물었습니다. 이 어린아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던 걸요. '이곳에는 너와 나 둘 뿐이구나. 그러니 두 몫을 훔쳐라'" 그럽니다.


어린 아이는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신다, 하는 것도 자기에게 이롭도록 해석합니다. 뭐든지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에게 이롭도록 해석하는 그러한 속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말합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심리학자 데이빗 엘킨트 라고 하는 분은 이 박사님께서는 The Hurried Child라고 하는, '재촉받는 어린이'라고 하는 책을 쓰십니다. 부제로서는 Growing up Too Fast Too Soon 이라고 하는 부제가 있습니다. 최대한으로 아이들은 지금 재촉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는 대로 모든 것의 성장 성숙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과정이 필요합니다. 상당한 시간 기다려 주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재촉했습니다. 빨리 크고 빨리 알고 빨리 천재가 되라고 몰아칩니다. 그래서 '초등교육부터 잘해야겠다.' 요새 '초등학교 교육부터 영어를 가르쳐야겠다' 뭐 이런 거예요. 그런가 하면 '아∼ 초등교육은 늦다. 유치원부터 해야 된다.' '유치원도 늦다. 나자마자 말도 못할 때부터 그때부터 가르쳐야 된다.' 좀더 나아가서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모교육부터 해야되겠다.' 이렇게 서두르다 보니 '빠를수록 좋다.' 학습의 압력, 대단합니다.

 

 이 속에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몸이 커지는 것을 성장이라고 합니다. 속에 있는 내적 인격이 커지는 것을 성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장은 있는데 성숙이 없다. 없는 것만이 아니라 반비례해서 더 작아졌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

어머니와 아이가 쇼핑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휠체어를 탄 청년과 맞닥뜨렸다.
그는 두 다리가 없고 얼굴도 심한 화상을 입고 있었다.
아이가 청년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다.
"엄마, 저 사람 좀 봐."
어머니는 아이에게 장애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흉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청년에게 다가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와, 정말 멋진 모자네요."

 

 
 

페스탈로치를 기리는 꽃다발들

나는 스위스를 갈 기회가 가끔 생긴다. 그곳에 갈 때면 취리히 호수의 아름다운 공원에 가서 페스탈로치의 동상을 한참씩 바라보곤 한다. 동상은 그가 어린이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다.
취리히 출생의 교육가 페스탈로치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선 반드시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미래의 훌륭한 사람들이여, 재미있게 노세요!”라며 주위에 버려진 유리조각이나 돌들을 치웠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를 미래의 훌륭한 어른으로 본 것이다.

희망이 솟구치게 하는 그의 겸손한 실천은 오늘의 살기 좋은 스위스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스위스 사람들은 교육가요 자선사업가인 페스탈로치를 세계에 자랑한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어린 날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르게 자랐다.


스위스의 가을은 호수가 매우 맑다. 사람들은 그 호숫가를 거닐면서 여유로운 생활에 젖는다. 그리고 꽃송이를 페스탈로치의 동상 앞에 꽂고 지나간다. 존경심 때문이다. 이 가을에 우리 주위에도 존경스러운 사람은 없는지 찾아가보고 싶다.

 

 

 
 

천재들의 어린시절

토마스 에디슨은 '너무 어리석어 우둔한 아이'라는 평을 들었다. 다섯살때는 오리의 알을 품에 넣고 부화를 시도한 몽상가였다. 그는 열세살 때 퇴학을 당했다.
조각가 로댕의 학교성적은 항상 꼴찌였다.
예술학교 입학을 세번이나 거부 당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왜 하필 우리 집에 이런 바보가 태어났는가"라며 통탄했다.


아인슈타인의 수학 성적은 항상 낙제점이었다.
네살 때까지 전혀 말을 할 줄 몰랐다.
일곱 살때 겨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담임 선생은 '정신발달이 느리고 사교성이 없으며
환상에 사로잡힌 아이'라고 혹평했다.


<전쟁과 평화>의 저자인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점수를 받았다. 교수들은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과학자나 예술가들도 어린 시절에는 악평을 들었다. 하늘이 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학교성적이 좀 떨어졌거나 입시에 실패한 자녀의 기를 단번에 꺽어서는 안된다. 지혜로운 부모들은 자녀의 소질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어린이에게 생명의 말씀을

어느 사람이 교회에 가는 길에 길 한 모퉁이에서 빈둥 거리고 노는 네 명의 소년들을 보았다. 그 사람은 그 네 명의 소년들을 자기가 다니는 교회로 인도 하였고, 그들을 중심으로 주일 학교의 한 클라스를 시작하여 그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여러해가 지난 후에 그 네 명의 소년들은 장성해서 각각 헤어졌다. 그런데 주일 학교를 지도한 그 사람의 생일이 되었을 때(1932년), 그에게는 과거 주일학교의 그 네 학생으로 부터 생일 축하 편지가 도착되었다.


한 통은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보낸 것이 었다.

다른 한 통은 연방 정부의 은행 총재로부터 왔다. 세번째의 편지는 당시의 대통령인 후버 대통령의 비서관이 보낸 것이었고, 마지막의 것은 과거에 그 네 소년 중의 하나로 주일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직접 보낸 친서의 생일 축하 편지였던 것이다!

 

 
 

사랑으로 어린이들을

울 도로티 로놀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 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 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어린 아이의 눈

부산 모교회 주일학교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전에는 요절지를 나눠 주어서 따로 외우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선생님은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요절지를 가지고 똘똘 말아서 담배꽁초처럼 만들어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담배 피우는 시늉을 내더랍니다.
그래서 선생이 그 학생을 보고
"얘, 너 그것 담배 지우는 모습인데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했다고 합니다.


그 때 그 어린 학생의 대답이 (퍽 미안해 하면서)
"나는 선생님이 그저께 저녁에 광복동 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걸어가시길래 내가 그래도 상관없는 줄 알았어요"하더랍니다.
이 어린애의 말을 들은 그 선생님은 회개를 하고 그 때부터 담배 끊고 신학공부를 하고 후에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얼룩이

어느 기독교 초등학교 성경 공부시간.교목이 아이들에게 물었다.“만약 착한 사람을 흰둥이라고 하고 나쁜 사람을 검둥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슨 색일까요?
잠시 생각한 후 대답을 해봐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기저기 이쪽저쪽에서 대답이 쏟아져나왔다.


“흰둥이요”“검둥이요” 그런데 한 아이만 아무 말이 없었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 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아이: 선생님,전 얼룩이일 거예요.
선생님:그게 무슨 소리니?
아이:저…저는요 흰둥이도 되었다가 검둥이도 되었다가 하거든요.

 

 

 
 

어린이 신앙 교육과 국가의 운명

오 헨리(O. Henry)의 작품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한 남자가 아내를 잃고 어린 딸만 데리고 살았는데, 직장에 갔다오면 신문만 보고 딸아이가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물어 보면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함께 놀자고 해도 놀아 주지도 않고 무관심하게 대해 주니까, 그 소녀가 점점 자라서 불량한 짓을 하고 거리의 깡패가 되고 말았습니다.

 

후에 그 소녀가 죽어서 천당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가 너 같은 사람은 여기에 못 들어 갈 것이라고 말하니까, 이 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니다. 그 소녀를 들어오게 하라.

 

그러나 너무 바쁘다고 해서 자기 자녀를 돌보지 않은 이 아버지 같은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라”고 말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자녀교육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눈

한 아이가 하얗게 김이 서린 차창에 동그라미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게 뭐야?” 열심히 동그라미를 그리던 아이가 대답했다.“하나님 눈이에요”
“하나님 눈?” “예”
“그런데 하나님 눈이 왜 그렇게 많으니?” 궁금해진 교사가 물었다.
“하나님은 나도 보고요,선생님도 보고요,엄마 아빠도 다 봐요”


자기도 보고,선생님도 보고,엄마 아빠도 다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눈은 과연 몇 개일까? 그 수는 아이만이 아는 숫자일게다.그런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작은 공간 속에서 그들의 순수의 세계를 보다 더 아름답게 장식하고자 아내와 나는 그들만의 세계를 보존하고픈 작은 바람의 몸부림으로 아이들을 위한 음식 만들기를 즐긴다.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나 음식에도 이미 만들어진 음식보다는 아내의 손길과 사랑,정성의 양념이 듬뿍 밴 음식들을 만들어주는 행복한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풍성한 진수성찬은 아닐지라도 아이들은 그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행복해한다.그 어떤 기름진 음식보다도….
아이들은 어른들과 지도자들의 사랑이 밴 작은 손길을 원한다.자신들을 위한 진정한 사랑에 그들은 고마워하고 감격해한다

 

 
 

유아기와 자긍심의 관계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온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각’에 달려 있다.


이러한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은 출생 후부터 세살 사이 우리의 보호자들의 시선에 따라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며 태어난 뒤부터 자기 이미지는 최초로 나를 돌보아주는 사람의 눈에 의해 형성된다.

 

 나 자신을 내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나를 돌보아주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모두 깊고 심오한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각자가 소중하고 독특하고 특별하며 순수하다. 그러나 어린아이였을 때의 우리는 미성숙한 채로 보호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이것은 마치 아직 가공되지 않은 10조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우리의 운명은 일찍부터 보호자들에 의해 많은 부분 결정돼버린다. 나 자신에 관한 나의 우선적인 믿음은 나를 대하는 어머니의 감정과 욕망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나의 정의는 사실상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그의 부모가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에 그를 어떻게 대하였는가,그리고 어떻게 사랑해 주었는가에 따라 자신에 대한 존재가치인 자존감과 인간관계 형성 방식을, 그 중에서도 특별히 사랑을 느끼고 주고받는 방법을 가장 결정적으로 학습받는다고 한다.

 

 

 
 

어린이 교육

마19: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

1847년, 12살 때 부모를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힘들게 전보 배달원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루는 땀흘리며 전보를 배달 했을 때 수취인이 소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명하게 생겼구나.지금이야 몇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인물로 자라거라』


소년에게는 갑자기 미래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소년은 후에 산업자본가로 대성, 교육과 사회복지에 헌신했습니다. 강철왕 카네기 이야기입니다.
어린아이들의 교육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린아이의 믿음

1862년 2월 링컨 대통령의 아들 '윌리'가 죽은 지 얼마 못 가 다른 아들 '데드'가 심각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
병원을 찾은 링컨은 '내 생애에 가장 큰 어려움이구나.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챤 간호원은 자신은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은 미망인이라고 밝히며, 그러한 시련 후에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알게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모든 것을 이미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가능하죠'.


'처음 불행이 닥쳤을 때도 완전히 복종했나요?'
. '아니요. 하지만 불행이 닥칠수록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완전히 복종할 수 있었어요'. 며칠 후 그녀를 찾아온 링컨은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고 한다.

 

 

 
 

유년기와 정신적 성장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있어요
하버드 대학교의 로렌스 콜버그라는 심리학자는 ‘아이들의 도덕적 성장과 의식작용’ 연구에 일생을 바친 결과 태어나서 7세까지 아이들은 ‘도덕 이전의 상태’라고 결론지었다. 아이들을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아이의 신체 부위를 때리는 것과 그들이 나쁘다는 이유로 벌을 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비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수치심이다. 부모로부터 자신에 대해 수치스럽게 느끼도록 하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를 자신의 내부에 투사시킨다. 이 말은 원래 부모가 아이에게 던졌던 ‘수치심을 심어 주는 대화’를 아이가 자신의 내부에서 계속해서 듣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돌보았던 방식으로 자신을 돌보게 된다. 가족체계 속의 나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어릿광대나 마스코트로서 가족들의 긴장을 해소시키고 화합하는 역할이었는가,아니면 영웅처럼 온 가족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한 것이었는지에 따라 성장체계는 달라진다.


자신의 독특성을 포기한 채 가족체계가 원하는 역할을 감당했으면 그만큼 그 사람은 의존적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부모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체적 체벌이나,성적 차별과 학대,혹은 정신적 학대를 경험했거나 목격한 경우에는 그만큼 의존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만일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매 맞는 것을 보고 자란 딸이라면 성장하면서 아버지보다 더욱 무서운 폭력자에게 더욱 순종적이고 의존적이 될 것이다. 또 아들이라면 다른 여자를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아버지보다도 더욱 폭력적이 되려고 할 것이다.

 

 
 

아이 심부름 보내기

다섯 살이 된 큰아이가 요즘 멋부리기에 한창이다.
머리에 리본을 달고, 흰색 티셔츠에 멜빵 바지를 입겠단다.

원피스를 찾는 날이 있는가 하면, 꼭 노란 신발을 신겠다고 하는 날도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어 아이들에게 세세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제 다섯 살, 세 살 된 두 아이가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것이 여간 안쓰럽지 않다.
그래서 주말엔 주로 집안에서 지내다 보니 아이들은 밖에 나가기를 겁내고 골목에서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에서 아이가 혼자 심부름을 다녀오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하늘아! 너도 심부름을 다녀올 수 있겠니?” 하고 물어보았다.


“엄마, 나도 저 애 못지않게 심부름 잘 할 수 있어요.”
하늘이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하늘이에게 심부름을 한 번 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아, 엄마랑 가던 슈퍼에 가서 우유 하나 사고, 큰엄마 댁에 이 땅콩 좀 갖다드려라.”
하늘이의 손지갑에 돈을 넣어주며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물어보고 심부름을 보냈다.


창 너머로 보니 골목 한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가는 큰애가 보였다. 왠지 불안해서 나가볼까 하다가 아이에게 자신감을 키워줘야겠다 싶어 그냥 두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창 밖을 보고 있었는데, 10여 분이 지나 하늘이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 하늘이예요. 문 열어주세요. 큰엄마가 놀다 가라고 했는데 우유를 냉장고에 넣어야 할 것 같아 빨리 왔어요. 다시 큰엄마 댁에 가서 놀래요.”


신이 나서 문을 나서는 아이의 등에 땀이 젖어 있었다.
저렇게 많이 자란 아이를 부모라는 이유로 내 뜻대로만 하려고 하지 않았나 반성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졌다

 

 
 

순수하다는 것

아이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안다.
아이들은 그들의 친구를 한 눈에 얼른 알아본다.

아이들은 제 또래의 아이들을 좋아하고, 착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밝은 눈이 있다.

그 눈은 마음속 깊이 자리하면서도 착함과 악함, 좋고 싫음, 사랑과 미움을 다 읽는다.

착한 마음은 사랑이 자라는 모습을 느낌으로 안다
그리고 정성으로 가꾸어 간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모양새도 예쁘게 빚는다.
무늬를 입히거나 색칠을 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사랑하는 마음을 읽는다.
아름답게 자라는 사랑의 마음을 함께 읽는다.

* 순수함의 정수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초심(初心), 곧 첫마음입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입니다.



인생에 견주면, 어린아이의 마음입니다.
천국(天國)도 어린아이 같아야 들어갈 수 있다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마음엔 불순물이 없으며, 불순물이 있으면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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