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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어린이 주일설교

우리 아이 예수님처럼. (눅 2:52.)

by 【고동엽】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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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 예수님처럼. (눅 2:52.)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이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명이 있다면 그 어린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을 가장 소중한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뜻밖에 많이 않습니다. 우리들이 실제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키우는 것인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의 관심은 경제를 키우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라도 마찬가지고,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사는 일이, 행복하게 사는 일이 마치 경제를 키우는 일에만 걸려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은 경제를 잘 키우는 일에 언제나 대부분 밀립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 키우는 일도 돈을 버는 일로 대신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많이 사주고, 그리고 이런 저런 학교와 학원엘 보내는 것이 아이에 대한 부모의 책임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거나 힘들어할 때 부모들이 제일 잘 그리고 많이 하는 만 중에 하나는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라는 말입니다. 저도 부모이지만 이 말은 객관적으로 꼭 맞지 않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아이 키운 것으로 부모의 노릇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고 아이에게 내 세우는 것은 한번 깊이 검토해 볼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뜻밖에 많은 부모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양심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닐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세 아이를 주셨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나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는 교회보다 가정이 더 중합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는 것보다 아이 셋을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몇 백 명 몇 천 명을 목회해야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아이 셋만 잘 키워도 그 자체로 훌륭한 목회가 아닙니까? 아이 셋만 잘 키워도 하나님은 50% 남으시는 것입니다. 둘이 결혼하여 아이 셋을 잘 키웠다면 그것이 바로 50%의 성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도 아시겠지만 세상에 50% 남는 장사 쉽지 않습니다.” 생각만 그렇게 했지 실제로 그렇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언제나 그렇게 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가정과 자녀들을 교회나 목회 때문에 희생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와 같은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잘 키우시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시고 뜻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자라나신 모습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분명한 목표를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예수님처럼 건강하게 바르게 자라게 하기 위하여서는, 첫째, 우리 아이를 지혜로운 아이로 키워야만 합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아이를 지혜로운 아이로 키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보편적인 교육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뛰어난 아이로 키우는 것입니다.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 하고, 음악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는 그런 아이로 키우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지혜를 무시하고 재능 위주의 교육을 합니다. 그것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교육이 아니라 훈련입니다. 건방진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우리나라의 문제 중에 하나는 철학의 빈곤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처음에는 철학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철학이 문제가 됩니다. 재능은 뛰어난데 자기 철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만 잘 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하여서는 skill이 뛰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skill 만 뛰어나다고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하여서는 뛰어난 skill 위에 분명한 자기 철학이 있어야만 합니다. 자기 철학이 없는 사람의 음악은 천박한 것이 되어 훌륭한 음악이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처음부터 skill에 의존하거나 집중하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게 합니다. 자기의 전공과 상관없이 교양에 관계된 책을 많이 읽게 함으로 교양을 쌓게 하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 철학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재능 위주로 교육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당연히 처음에는 우리보다 뒤 떨어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우리를 훨씬 앞질러 갑니다. 우리보다 기본기가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본이 바로 지혜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어린이 문학 세계관 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우리 아이를 육체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키워야만 합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 ‘키가 자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이 키만 크셨다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아주 건강하게 성장하셨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경제가 발달함으로 아이들의 영양이 좋아졌습니다. 때문에 키는 예전의 아이들보다 더 많이 자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들의 육체적인 건강이 튼튼해졌다는 말과는 다른 말입니다. 육체적인 건강은 건강한 신체적 놀이를 통하여 발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의 문제는 건강한 신체적인 놀이를 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에는 참 놀이가 많았습니다. 자치기, 말까지, 말 타기, 찜뿡, 기마전, 썰매 타기, 대나무 스키 타기 등등.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그와 같은 건강한 마당놀이가 없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그저 컴퓨터 게임 정도뿐입니다. 때문에 아이들의 육체적인 건강한 발달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에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의 경우 공부만 잘해서는 입학할 수 없습니다. 음악활동과 체육활동, 사회봉사활동등을 총 평가해서 뽑습니다. 체육 만해도 그렇습니다. 개인운동도 경험이 있어야하고 단체운동도 활동이 있어야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입시전형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을 수능 성적 중심으로 선발하는 것을 과감하게 바꾸어야만 합니다. 어렸을 때 잘 놀지 않으면 선발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만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고 튼튼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하신다면 아이들에게 공부만 요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를 예수님처럼 자라게 하려면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키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셋째,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이로 키워야만 합니다. 십 여 년 전 포항에 한동대학교가 세워졌을 때 한동대를 방문한 모든 사람이 칭찬한 것이 있었습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학생들이 누구를 보든 인사를 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동대는 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부터 가르쳤습니다. 저는 그것이 한동대가 기적같은 성공을 이룬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을 아이들을 가르칠 때 무엇보다도 먼저 예(禮)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예를 교육함의 목적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편적으로 보면 예전보다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영리해 지고 똑똑해 졌는데, 예전 보다는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버릇없어지고 무례해졌습니다. 남을 생각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아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일등인가 이등인가 그렇답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예를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랑 받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기 위하신다면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의 아이들에게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사랑받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점점 더 사랑스러워져 가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교육 중 예와 함께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민주시민교육입니다. 민주시민교육이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는 교육을 의미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를 저는 민주시민교육의 부재라고 꼽고 싶습니다. 그 때문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는 갈등과 다툼입니다. 어려서부터 예와 민주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우리 아이들이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점점 더 사랑스러워져 가는 아이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에게 점점 더 사랑받는 아이로 키워야만 합니다. 아무리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사람에게 점점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고 하여도 내 아이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아이가 되지 못한다면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예수님처럼 자라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가 어려서부터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말로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이 생활과 삶으로 모범을 보임으로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한번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만 바쁘면 주일 날 빼먹고 일을 한다거나 놀러 가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동안 아이들은 하나님 경홀히 여기는 것을 아마 뼛속 깊이 배우게 될 것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악인의 꾀를 좇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믿음보다는 세상적인 처신을 먼저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을 통하여 우리 아이들이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데서 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험함이 허사로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께 점점 사랑받는 자녀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한 모든 일들이 다 허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새겨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아이들의 집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면 여러분들이 여러분 아이들의 집을 세워주기 위하여 한 모든 일과 행동들이 다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성을 지켜주지 않으신다면,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쌓은 모든 견고한 성들이 다 무너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결혼 후 자녀가 없는 부부들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저들에게는 이 설교가 깊은 상처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분들에게 위로를 주시기를 바라고 더 바라기는 예수님처럼 키울 자녀 주시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그러나 자녀를 낳은 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입양하여 키우는 것도 부모가 되는 아주 좋은 길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후배들과 세상에서 자라는 모든 아이들을 자기 자녀처럼 생각하고 저들이 예수님처럼 자라게 도와주는 것도 좋은 부모가 되는 좋은 길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국가의 제일가는 목표와 사명은 경제를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반듯하고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가정의 제일가는 사명도 소득을 높여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아이들을 예수님처럼 자라게 하여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처럼 자라는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김동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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