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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잠15:15~17

by 【고동엽】 2022.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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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잠15:15~17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소박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습니다.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뉴욕 항에 유해를 실은 군함이 도착할 때 사람들은 유해를 보기 위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환영예포는 뉴욕시가 진동하도록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유해의 주인공은 전공을 세운 위대한 장군도 아니요, 노벨상을 받은 인물도 아닙니다. 세계적인 정치가나 예술가나 발명가도 아닙니다. 단지 온 세상 사람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지은 사람일뿐입니다. 그는 'Home, Sweet Home' 이라는 노래를 지은 존 하워드 패인(John Howard Payne)이었습니다. 패인(Payne)은 배우요 극작가요 시인으로 고향 미국을 떠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고, 말년에는 튀니지에서 영사로 일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가정이 없이 혼자 살았습니다. 그는 외로울 때마다 어린 시절 즐거웠던 가정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 결과 '스위트 홈' 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는 어떤 교훈보다도 더 깊이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내 집뿐이리".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살도록 창조하셨으며 가장 귀한 선물인 가정을 주셨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신비한 요람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보혜사이신 성령의 숨결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을 통해 임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처음으로 행하신 이적도 가정의 회복이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 걱정이 있던 가정을 즐거운 가정으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사역하셨던 대상도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한 가정이었던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 역시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는 가정과 교회가 공동의 터전 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본문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행복한 가정의 원형을 찾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버지니아(Virginia)에 사는 흑인 노예 영(Young)은 무식하고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7남매가 있었습니다. 물론 돈이 없어 충분히 교육시킬만한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예배를 드리며 같은 말만 계속했다고 합니다. 성경 어디를 읽었어도 설교는 한가지였습니다. "우리 집의 가장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그 하나님을 잘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면 우리 후손들은 복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노예의 신세를 영원히 면치 못할 것이다". 그는 비록 노예해방으로 육체적으로는 쇠사슬에 묶인 노예는 아니지만 경제적, 사회적 무능은 곧 노예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훗날 7남매 자녀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지도자적인 삶을 사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의 믿음을 실망시키지 않았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근거를 두었을 때 행복한 가정이 된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복은 외적인 소유에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복의 첩경이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전에는 누구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가정의 화목을 이루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가족의 의견을 모으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질 때 가족 간에 다양한 차이가 있음에도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안에서 일치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의 근거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기초합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환경을 보고 근심하지 말고 불행한 환경을 운명으로 돌리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는 확고한 믿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즐거움을 누려야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는 독실한 신앙인입니다. 서점 점원으로 출발하여 세계적인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믿음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역경을 극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83세 때에 사업가로서 60주년을 맞았습니다. 기자가“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성공할 수 있게 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합니다.“하나님이 주신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사람들은 즐거움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누림으로 기쁨을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어라 마시라 하면서 춤을 추게 되면 기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락을 함으로 여행을 함으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누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미 즐거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근심과 걱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스트레스를 없애주었습니다. 인간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근본적인 죄의 문제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즐거움은 무엇을 소유해서 얻는 즐거움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 나를 죽음에서 구원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이미 얻은 즐거움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며 기뻐했습니다. 시편 16편 8절과 9절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미 허락해 주신 즐거움을 누린 것입니다.  
예수 믿는 가정은 무엇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까?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으로 기뻐해야만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쁨을 가지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박국 3장 17절과 18절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원하십니까? 이미 주어진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온다해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기쁨,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인한 즐거움을 빼앗기지 마시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서로 사랑해야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던 최씨가 병원을 찾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한 채 횐 머리가 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혹시나 하고 병원을 찾아가 눈을 뜨는 수술이 가능한 지 물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며칠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뻐하세요! 수술하면 눈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내일이라도 빨리 오세요!" 최씨는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최씨는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수술비가 없어서도 아니고 시력을 되찾는 게 싫어서도 아닙니다. 아내가 마음에 걸려서입니다. 최씨는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수술을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서워서 그러시나요?" 말합니다. 그러자 최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에게는 화상을 입은 아내가 있습니다. 제가 두 눈을 얻게 되면 아내의 흉칙한 얼굴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분명 아내의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수술을 포기하는 겁니다. 다소 불편하지만 그냥 남은 인생도 맹인으로 지내겠습니다." 의사는 최씨에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나보다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사랑의 출발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아니하고, 무엇을 먹고사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데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가난하다 할지라도 행복이 있고, 보잘 것 없는 음식에도 벅찬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진실한 사랑이 있고, 부모의 헌신적 사랑을 자녀들이 느끼며 자란다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사랑하며 아내이기 때문에, 남편이기 때문에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홀로 사는 곳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입니다. 따라서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미워하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을 보면 사랑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조건을 보고 우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무식하여도 내 부모입니다. 아무리 공부 못해도 내 자녀입니다. 아무리 형편이 가난하여도 내 남편이고 아무리 못나도 내 아내입니다. 우리는 가족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영국의 대처(Margaret Thatcher)여사가 수상으로 재직할 때입니다. 수상 집무 후, 그녀는 가정에 돌아와 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보아 가족의 음식을 손수 차려주었습니다. 직접 청소도 하고 자녀들의 옷을 손수 기워 입혔습니다. 그녀의 딸이 런던시내에 방을 얻어 살게되었을 때는 손수 찾아가 페인트를 칠하여 주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수상이기 전에 가정에 충실한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내와 어머니로서 가정의 질서와 화목을 세우는 행복을 창조하는 가정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였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되돌아가고 싶고 찾고 싶은 곳이 됩니다. 행복한 가정이 있어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힘든 세상을 살아가며 승리하게 됩니다. 부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이미 주신 즐거움을 누리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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