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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의 은총
마1:18~25
예루살렘에 가면 야드 바셈(Yad Vashem)라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6백만 유대인의 학살을 절대로 잊지 말고 영원히 기념하라고 1945년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유대인 학살기념관입니다. 어린아이의 희생을 기념하는 기념탑 뒤편 언덕에는 어린아이 10여명을 끌어안고 있는 어른의 동상이 있습니다. 동상의 이름은 '코르작과 게토의 어린이들'(Korzak und die Kinder des Getto)입니다. 코르작(Janusz Korczak)은 폴란드의 아동작가이며 교육자입니다. 독일 나치가 폴란드의 유대인 학교를 급습하였습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코르작은 아이들을 양팔로 감싸 안으며 내놓지 않았습니다. 독일군 장교가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니, 선생은 물러나고 유대 아이들만 내 놓으시오!" 그러나 코르작은 필사적으로 독일군에게 저항을 합니다. 끝내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로 향하는 트럭에 올라탑니다. 스승으로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가스실에도 함께 들어가 죽음 앞에 떨고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말합니다. "선생님,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끝까지 함께 해주시니 편안해요. 하나님이 지켜주시니 더는 두려워 떨지 않을 거예요." 진정한 사랑은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임마누엘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와도 함께 하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기초하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들과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성탄입니다. 비천한 말구유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히브리어로 '임마누' 는 '우리와 함께'(with us) 라는 뜻이며 '엘'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탄에 내리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로 구원의 증거입니다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L. Stevenson)이 폭풍우에 대해 쓴 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배가 암초에 부딪쳐 승객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된 장면이 나옵니다. 배가 옴짝달싹하지 못하자 공포에 질린 한 승객이 배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갑판 맨 위에 있는 조타실로 가보았습니다. 키잡이가 두 손으로 배의 키를 조종하는 조타기를 꽉 붙잡고 선체를 돌려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뱃머리는 조금씩 바다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키잡이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어깨 너머로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 승객은 정신 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 소리쳤습니다. "제가 키잡이의 얼굴을 봤는데요,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잘되어 가나봐요.” 키잡이가 보여 준 그 미소는 배에 탄 승객들의 마음에서 공포의 먹구름을 일시에 거두어 갔습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꿔놓았습니다. 키잡이의 미소가 승객의 두려움을 잠재운 것처럼, 삶의 폭풍우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하심을 위해 주께로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구원을 통해서만이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증거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목적은 죄로 인해 멸망할 인간을 구원하여 천국 백성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토록 엄청난 구원의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돈, 권력, 세상적인 무엇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결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소망이 있습니다.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예수의 구원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며 은총입니다. 금번 성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가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 임마누엘의 은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화해의 증거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성탄절 전야입니다. 서로 총을 겨누고 전투하던 병사들의 마음은 이미 고향과 가족에게 가있었습니다. 한 병사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을 조용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하고 마침내 참호 안에 성탄절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노래를 마쳤을 때, 그들은 상대편 참호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상대편 병사들도 그들의 언어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밤 병사들은 함께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비록 전쟁터라도해도 화해가 있는 천국 같은 곳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가까이 계실 때 이 땅에 횡행하는 불일치가 평화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어둠은 밝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 임할 것입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께 더 헌신함으로 화해의 메신저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필요한 다리는 놓지 않고 불필요한 벽을 쌓는데는 열중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죄악된 인간의 서글픈 모습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남북의 갈등을 넘어 동서의 갈등까지 만나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와 이방인 사이에도 큰 벽이 있었습니다. 유대민족들은 이방인을 개 취급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없어져야 할 민족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오심으로 이 무서운 벽이 무너졌습니다. 원수가 되었던 둘을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 분은 화평이신지라 둘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화해의 대사로 다가오심이 성탄의 사건입니다. 기묘자요 모사이신 예수께서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심이 임마누엘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통하여 임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분쟁과 시기와 쟁투로 얼룩진 불화의 현장에 임마누엘의 은총으로 인한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셋째로 임재의 증거입니다
1964년에 상영된 '아름다운 생애(It's a Wonderful Life)'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촬영하던 중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기도하는 장면을 찍던 주인공 배우인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가 거듭남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도 영화를 찍을 당시 주인공처럼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스튜어트는 영화의 주인공이 자신의 입장과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 역시 미래에 대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각본대로 촬영에 임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계셔서 기도를 들으신다면 제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 각본에 써있는 대로 기도하였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각본에도 없는 연기가 나온 것입니다. 각본대로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그 감격으로 흐느껴 울었던 것입니다. 영화처럼 자신의 삶 역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 었음을 그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두웠던 미래가 새로운 꿈과 열정으로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면 우리도 동일한 거듭남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은총은 하나님의 임재의 은총입니다. 예수의 탄생을 바라보는 입장이 아니라 마음속에 예수가 탄생하는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의 임재를 느끼는 성탄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자녀는 부모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모름지기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받고 실망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게 합니다. 구원을 가볍게 여기고 부인하도록 만듭니다. 세상적인 것과 예수를 바꾸게 만듭니다.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꾼 에서처럼,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은총에 감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에서 임미엘로 나아가야 합니다. '임미' 는 '나와 함께(with me)' 라는 의미로서, 임미엘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라는 뜻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원을 주시며 나와 함께 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 는 '우리' 라는 단어에 파묻힌 익명의 내가 아닙니다. 내 삶의 누추한 자리도 피하지 않으시고 내게 오셔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금번 성탄은 임마누엘을 고백하며 그 은총을 얻는 성탄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주고받는 성탄카드에만 계신 하나님이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백화점의 조명과 성탄 캐롤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나의 영혼에 함께 하시어 구원과 화해와 임재로 다가오시는 임미엘과 임마누엘의 은총을 통해 복된 성탄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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