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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마 1:18-25)

by 【고동엽】 2022.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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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마 1:18-25)

 

  다사다난했던 2011년도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았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금년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고 내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옆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
  세월이 가지만 우리 여유를 가지고 보내고 맞이합시다. 세계에서 제일 여유가 있고 내일을 기대하는 민족은 중국사람이라고 합니다. 죽어 가는 사람도 이렇게 말하며 여유를 갖는답니다. '오늘 못 죽으면 내일 죽지' /믿거나 말거나/
  '케이체프 노이드'라는 심리학자는 사람들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들어가 사는 감옥이 여섯 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1감옥은 '자기 도취의 감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주병 같은 감옥입니다.
  제2감옥은 '남의 단점 감옥'입니다. 사람들을 볼 때 좋은 점을 보지 못하고 나쁜 것만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들어가 있는 감옥입니다.
  제3감옥은 '만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감옥'이랍니다.
  제4감옥은 '옛날만 생각하는 과거 지향적인 감옥'입니다.
  제5감옥은 '남이 가진 것을 무조건 좋게 보고 자기 것을 초라하게 보는 열등감의 감옥'입니다.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입니다.
  제6감옥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감옥'입니다.
  이제 2011년을 보내면서 이런 감옥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음과 믿음의 결단을 가지고 힘차게 새해를 준비하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제목 소개!▶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성탄절입니다. 만 왕의 왕이 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신 목적입니다. /할/
  ▶어느 왕이 나라를 여기 저기 돌아보았습니다. 시골에 들어갔을 때 아주 예쁜 처녀를 보았습니다. 왕은 그 처녀를 아내로 맞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신에게 '저 처녀를 데리고 오라.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그 대신이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폐하! 안 됩니다. 왕의 신분으로 천민과 결혼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내가 시골로 내려  가서 거기서 결혼하고 싶다.' 신하가 또 말했습니다. '폐하! 그것도 안 됩니다. 왕의 신분으로 시골에 내려가서 살면 안 됩니다.'
  왕은 너무도 그 여자가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천민의 신분이 되어 시골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처녀를 사랑하며 그 곳에서 살았답니다. 이 이야기는 '킬케콜'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전하려고 쓴 '왕과 시골 처녀의 사랑'이라는 글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아멘!/
  이 말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온 세계를 지배할 때, 장군들이 여기저기 나가 전쟁을 치르며 로마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곳에 전쟁을 치르는 장군들을 지휘하는 일이 황제의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작전지시를 전달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전화가 없던 시대입니다. 사람이 전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노예가 황제의 말씀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가다보면 적들에게 붙들려 죽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전략은 백일하에 들어나게 됩니다. 이런 중에 황제가 생각하여 낸 교묘한 말씀 전달 방법이 있었습니다.
  노예의 머리를 모두 깎았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황제의 말씀을 바늘로 찔러서 쓰고 먹물을 뿌립니다. 그리고 조금 기다립니다. 머리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장군에게 보냅니다. 가다가 적에게 붙잡혀도 비밀이 탄로 날 염려가 없었습니다. 황제가 보낸 노예가 장군에게 오면 장군은 노예의 머리를 다시 깎았습니다. 그리고 황제가 자기에게 주는 작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준행했습니다.
  노예가 장군에게 오면 사람들은 '노예가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노예가 올 때 군사들은 '이제 황제의 말씀이 온다'고 말하며 노예를 영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말씀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받으면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말씀을 받으면 치유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받으면 지혜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받으면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받으면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명의 말씀을 받으면 사명의 사람이 됩니다. /할/
  예수님은 하나님을 말씀으로 보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탄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이르기까지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본문은 주님의 탄생의 배경입니다. 주님의 탄생의 배경은 사복음서에 다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눅1:26절 하반절의 기록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나사렛 동네에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 왔습니다. 천사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노라!'고 할 때,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 '무서워 말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하자 마리아는 '내가 처녀의 몸으로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하자 천사가 대답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그러면서 더 확신 있는 말씀 한 마디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때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주옵소서'라고 순종하자 그 모습을 보고 천사가 떠나갔습니다.
  과연 천사의 예언대로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는 창3:15절의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아기 예수의 탄생할 것을 예언한 예언의 성취의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냥 오신 것이 아니고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것입니다.

 

  ①창3:15절의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②미가서 5:2절에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수많은 곳 가운데 하필이면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매우 심장 합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의미는 무엇일가요? 그 지명에서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⑴베들레헴은 죽음과 슬픔의 장소입니다. 지명마다 첫 인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담사하면 전두환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부엉이 바위라는 지명을 들으면 금방 노무현의 자살이 생각납니다. 성경에서 베들레헴의 첫 인상은 죽음과 슬픔입니다. 그 곳에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복음을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극복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부활을 전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죽음과 슬픔의 인상을 가지고 있는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⑵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위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렘22;2-4) 요한은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진 분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계3;7) 거지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부를 때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습니다.
  ⑶작은 것을 크게 들어 쓰심에 상징입니다.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마2장에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입니다. 베들레헴은 작은 나라에서도 작은 동네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들어 크게 사용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고전1:27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⑷예수님의 사역의 상징이 드러난 지역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6:3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할/


  ③사7:14절에 '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주님 탄생하시기 800여 년 전에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인간의 타락 후 멀리 떠나셨던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찾아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예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④사9:6-7절에 '그 어깨에 정사'를 메고 오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⑴정사: 통치자란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분입니다.
  ⑵기묘자: 인간의 과학으로는 해석하지 못할 기묘자, 즉 신기하고 오묘하여 인간이 가히 해석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기묘한 것일까요? 예수님의 예언이 기묘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기묘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기묘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기묘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기묘자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기묘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기묘자입니다. /할/
  ⑶모사: 계획하고 설계하시는 분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카운슬러' 즉 인생의 진로를 상단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할/
  ⑷전능하신 하나님: 한나가 고백한 하나님입니다. 삼상2:6-7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⑸영존하신 아버지: 여기 아버지란 말은 창조자 혹은 주관자라는 말로, 영원히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되시는 그분만이 영원할 수 있습니다.   
  ⑹평강의 왕: 그 분이 다스리는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요14:27/시72:7).


  ⑤민24:17절에 '한 별로, '홀'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라고 한 예언인데 여기서 '별'이나 '홀'은 다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홀'은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지팡이입니다.


  ⑥사53:4-6절에 보면 인간의 모든 질고를 지신 분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할/


  ⑦그리고 마22:32절에서 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산 자의 하나님으로 나타난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믿/
  성경은 두 종류의 인간, 즉 산 자와 죽은 자를 말합니다. 죽은 자는 생리적으로 잉태하여 난자요, 산 자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난자입니다. 죽은 자는 육신의 정욕으로 난자요, 산 자는 믿음으로 난 하늘의 후사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곧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잉태는 산 자의 신비를 깨우는 진리입니다. 롬5: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렇습니다. 아담이 타락하므로 죄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잘못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습니다.
  인류는 아담으로부터 육정으로 잉태된 자들의 죽음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산 자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후사가 된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늙었고, 사라도 경수가 끊어져 생리적 생산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덤과 같은 사라의 태 속에 성령으로 역사하여 언약의 자식인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이삭은 약속의 자녀요, 성령을 따라 낳은 자식입니다. /할/

 

  오늘 본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 안에서만 이 사건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만 가능'합니다. 마19:26절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아멘!/
  본문을 차례대로 상고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할/

 

  ①예수의 나심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나셨습니다(18).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기독교는 성령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잉태는 마리아에게 임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두에게 성령으로 잉태되는 사건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성령으로 잉태되는 사건이 없이는 모든 신앙의 죽은 신앙이요, 회칠한 무덤에 불과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하늘의 생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새로운 새 생명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은 영접하는 자에게 오는 은총입니다. /믿/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지금도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될 때 믿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서 끝나 버리면 안 됩니다. 오직 그 말씀을 마음 밭에 받아서 한 알의 밀 알로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심령 속에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와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의 말씀은 심령 속에 잉태시킬 수 있는 씨앗입니다. 벧전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 자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산 자의 신앙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온 신앙입니다. 이 신앙이 아니면 수십 년 믿어도 미지근합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모두 성령이 잉태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될 때 그 말씀을 레마의 말씀입니다.
  오늘 마리아의 신앙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할 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레마)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여기 '말씀'은 헬라어의 '레마'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 레마는 '성령으로 잉태된 말씀이요 이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반드시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짖는 것도 중요하고 간절히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잉태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할 때는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하며 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죠지 물러'는 '기도의 비결은 전부 성경에 있다'고 했습니다. 죠지 물러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들이 길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보자 저들에게 먹이고 입히고 신앙으로 길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편을 읽다가 말씀이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시68:5절에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이 말씀은 그의 가슴을 사랑으로 뜨겁게 하였고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오니 친히 고아원 원장이 되셔서 먹을 것, 입을 것, 책임져 주시고, 이 종은 청지기로 일하면 된다'고 하는 확신으로 고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 고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기도로 해결했습니다. 그의 후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요, 그의 재산은 오직 믿음이었으며 그의 사업의 방법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시81:10절에 말씀 중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씀을 읽다가 입이 넓게 열림을 체험하게 되었고, 말씀대로 크게 구하였고, 그래서 그의 일생동안 구하는 대로 하나님이 후히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2천 년 전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심령 속에 잉태하기를 원하십니다. /믿/ 지금 문을 두드리십시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열면 내가 그에게고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할/
  ▶성경에 보면 신앙의 위대한 인격자 요셉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정혼'이라는 말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결혼은 세 가지 절차가 있습니다.
  ⑴약혼: 약혼은 흔히 나이 어릴 때 합니다. 그것은 양친에 의해서가 아니면 직업적인 중매인에 의해서 성립됩니다. 그런데 흔히 당사자들이 맞선을 보는 일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혼은 너무도 신성한 것이기에 어린아이들보다는 인생과 세상을 잘 아는 부모들이 알아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입니다.
  ⑵정혼: 남녀가 성숙하여 약혼한 사람들의 사이가 원만치 않으면 파기하고 원만하면 계속 약혼자로써 인정하되 정혼을 하는 것입니다. 정혼하면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도 부부와 같이 서로 남편과 아내로 불립니다.
  정혼은 이미 맺은 약혼을 공식화하고 랍비 앞에 가서 서약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알도록 널리 공포를 합니다. 일단 정혼이 이루어지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집니다. 이것은 이혼이 아니고서는 파기할 수가 없습니다.
  정혼 기간은 1년으로서 이 기간 안에 남편이 죽으면 이 여자는 처녀 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서로 부부관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바로 정혼한 사이입니다.
  ⑶결혼: 일 년 간의 정혼 기간이 끝나게 되면 결혼이 성립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해야만 비로소 부부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 세상에 오실 때 인간의 몸을 구체적으로 입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진 아담의 유전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태만 빌려서 잉태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자연법에 의해 남자와 여자에 의해 잉태되어 탄생되었다면 인간의 원죄로 인한 타락성과 부패성을 그대로 받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의학자 'm.b. 디한'은 '어머니 태 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는 한 방울의 피도 어머니 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머니는 태 속에 있는 그 작은 몸을 기르기 위해 그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나 그 태아 속에 생기는 모든 피는 그 태아 자체 속에서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잉태로부터 갓난아기의 탄생까지 단 한 방울의 피도 어머니로부터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적인 결론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피는 성령의 피, 하나님의 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해주는 것과 동시에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신성, 인성, 양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한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가 아무런 육체적 관계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요셉에게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요, 분노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사회적 관습이나 율법에 의하면 처녀가 임신하였다는 것은 돌아 맞아 죽어야 할 중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으므로 저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생각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름의 뜻은 '승리자,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요셉의 인격은 한마디로 본문에서 밝힌 대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는 네 종류의 의인이 있습니다.
  ⑴자칭 의인인 독선적 의인이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은 다 완전하고 자기의 생활을 다 깨끗하고 다른 사람을 다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⑵위장 의인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 마음속에 이리와 같은 심보를 품고 얼굴은 양의 가죽을 쓴 사람을 말합니다. 달콤한 말로 남을 이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위장의인 가짜 의인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합니다.
  ⑶이웃에게 인정받는 의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믿을만해, 그 사람이라면 틀림없어! 그 권사님, 그 집사님, 참 좋더라. 그분을 보니 예수 믿어야겠구나!' 내가 선전을 안 해도 다른 사람이 감화를 받고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생기는 그런 인정을 받을 만한 의인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런 의인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⑷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귀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정말 귀합니다. '아브라함, 요셉, 에녹, 다윗' 같은 신앙의 위인들이 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의인들입니다. /할/ 

 

  ②요셉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의 인격을 배워야 합니다(19-20).
  ⑴분한 감정을 억제할 줄 아는 인격자입니다.
  신22:20-21절의 모세의 법에 의하면 약혼한 처녀가 정조를 잃으면 돌로 쳐죽이게 되어있습니다. 법대로 처리하면 마리아는 돌로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를 공적인 재판에 넘기지 않았고 그의 불의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불의한 일들이 많습니다. '친구의 부정, 이웃의 부정, 정치인의 부정, 심지어 남편의 부정, 아내의 부정' 우리는 이런 분노를 만날 때 먼저 돌로 치고자 하는 생각부터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감정으로만 처리한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요즘엔 자동차 사고가 빈번한데 차들이 충돌해서 정비공장에 맡기면 정비공장은 그 차를 일일이 분해하고 쭈그러진 곳을 폅니다. 울퉁불퉁한 곳은 산소 불로 빨갛게 달구어 함마로 치는데 만약 불로 달구지 않고 무조건 함마로 치면 오히려 더 망가진답니다.
  마찬가지로 인격이 쭈그러지고 신앙이 쭈그러진 사람도 비슷합니다. 잘못된 사람은 무조건 윽박지르고 억지로 고치게 하면 더욱 삐뚤어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마음에 뜨거운 사랑의 불을 쏟아 부으면 녹아져 버립니다.
  요셉의 의는 용서와 인정을 겸한 의입니다. 잘못된 자를 꾸짖을 때도 용서와 인정을 겸한 사랑이 절대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용서와 관용하는 삶을 사십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를 '복음에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빚은 무섭습니다. 자고 나면 이자가 막 늘어납니다. 그래서 빚은 빨리 갚아야 합니다. 복음의 빚도 빨리 갚아야 하늘에 상급이 쌓입니다, 이웃 사랑의 가장 큰사랑은 그 영혼을 구원하는 사랑입니다. /믿/
  ⑵요셉은 손해를 혼자 당하고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인격자였습니다.
  '가만히 끊고자 하여'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약혼한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도 '못들은 채' 손해배상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가만히 끊고자 했다'는 말은 '나 혼자 손해보고 끝내자'는 속셈이었습니다.
  사실 이 손해는 물질적인 손해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손해, 명예 적인 손해까지 미치는 치명적인 손해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 모든 손해를 혼자 다 당하기로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시 처녀나 과부가 임신했다면 두말없이 돌로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셉은 내가 물질적, 정신적, 명예 적으로 치명적인 손해를 봤다고 하더라도 남의 생명을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긴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인격을 배워야 합니다. /아멘!/ 
  ⑶요셉은 신중히 생각하며 하나님께 의논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사람들은 큰일, 감격스러운 일, 어떤 불행한 일을 만나면 생각 없이 덤비기가 쉽습니다. 더욱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좌충우돌 감정을 폭발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먼저 조용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 신앙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사람에게는 입을 봉하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그리고 또 깊이 생각해봅니다. 신앙은 자기를 뒤돌아보는 것이요,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묵상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최선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고 묵상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할/
  '이 일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우리도 조용히 묵상하며 주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할/
  만약 하나님께서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임신하기 전에 '요셉아, 이제 곧 네 아내가 임신할 텐데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미리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간단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도 양을 준비해 놓았다고 미리 말씀하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도 한두 번쯤 돌면 구름이 끼고 다섯 번쯤 돌면 우르르 천둥소리가 나고 그래야 신나게 예수님을 믿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여섯 바퀴를 돌 때까지도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으로 요단강을 일곱 번 들어가야 했을 때, 세 번째 쯤에 고름이 좀 터지고 다음에는 헌데가 벗겨지거나 무슨 몸의 흔적이 있어야 들어간 재미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드릴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당장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믿음의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가장 정확한 때에 일하십니다. /아멘!/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주님의 출생은 보통 방법이 아닌 특별한 방법으로 되어 진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성령으로, 성령에 의해서'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늘 외우며,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도 보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기독교의 신비가 있고, 독특성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모두가 다 교주들이 자기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석가모니가 그랬고, 공자나 맹자가 그랬고, 마호메트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만은 타종교와 전혀 다르게 예수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잉태되어'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사람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직접 지시해 주시고, 하나님이 직접 주도하셨고, 하나님이 직접 내려 주신 종교입니다. /믿/
  또 말씀드립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냥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평범하게 태여 나섰더라면 인류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났다면 그도 역시 아담의 후예요, 가인의 후손이므로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죄인된 몸이라면 죄인이 죄인인 인류를 구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 나셨기에,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태어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였지마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원래 하나님과 똑같은 능력과 하나님과 똑같은 본체와 하나님과 똑같은 전지성과 지혜와 영원성 등 모두를 함께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직접 마리아의 몸을 통해 나셔서 우리 인간의 형체를 입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성육신'(Incarnation) 또는 '도성인신'이라고 합니다. /할/

 

  ③예수! 그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21).
  사람의 이름에는 그의 업적과 인격이 나타납니다. 4복음서에만도 예수라는 이름이 무려 600번이나 나옵니다. 존경의 의미로든지 멸시와 천대의 의미로든지 비방의 의미로든지 예수님의 이름은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의 글과 입과 말과 마음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 이름입니다.
  ⑴예수님의 이름은 '친히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아주 간단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아주 멀리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⑵구세주란 뜻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의 히브리말은 여호수아인데 그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 자'입니다. '구원자, 구주'란 뜻이며 '도와주시는 주'란 의미입니다. 특별히 신약적 의미의 구원은 '죄에서 자유, 사망에서의 해방,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분입니다.
  무디와 함께 전도자로 활동했던 '헨리 워드 비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는 어떤 그림도 그린 적이 없다. 그러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품들은 거의가 예수에게서 받은 영감의 산물들이다. 예수는 단 한 줄의 시도 쓴 일이 없다. 그러나 단테, 밀턴 등 세계적인 시인들 역시 예수께 받은 영감으로 걸작을 남겼다. 예수는 단 한 곡의 음악도 작곡한 일이 없다. 그러나 하이든, 헨델, 베토벤, 바하, 멘델스존 같은 거장들의 작품 역시 예수를 찬송하는 작품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시인들과 음악가들과 미술가들과 조각가들과 소설가들은 예수를 알고 믿고 높였습니다. /할/

 

  ④예수에 오심은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22).

 

  ⑤예수의 오심은 '임마누엘'로 즉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오셨습니다(23).
  '임마누엘'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형통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것이요,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 동안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떠날 때에도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28:20). 어떻게 세상 끝 날까지 임마누엘 하십니까?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그의 제자들에게 오순절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임하셨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의 마음 속에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때까지 임마누엘 하십니다. /믿/

 

  ⑥요셉의 순종이 빛이 납니다(24-25).
  ⑴요셉은 즉시 순종하는 인격자였습니다.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신앙은 순종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할/
  ⑵요셉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이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온 다음에 해산하기까지 아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만큼 정욕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참 경건한 인격자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신앙의 인격입니다. /아멘!/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하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말썽꾸러기 아이가 있었는데, 성탄절에 싼타크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고 싶었습니다.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싼타크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요?'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된단다.'
  아들은 엄마 말을 듣고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착한 일을 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싼타크로스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싼타크로스 할아버지!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다시 썼습니다. '싼타크로스 할아버지. 사실은 착한 일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착한 일을 많이 할 테니 선물을 주세요'
  그리고 보니 착한 일을 많이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물은 받고 싶었습니다. 아들은 편지 쓰기를 그만 두고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 상을 훔쳐왔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다시 썼습니다. '싼타크로스. 네 엄마를 인질로 잡아 왔다. 선물과 교환하자' /믿거나 말거나/ 성탄절은 선물보다는 이 땅에 오신 생명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영접하는 절기입니다. 그래도 선물을 받으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오늘 오후 예배에는 특송과 선물 교환이 있습니다. 오후예배를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2011년 12월 25일 성탄절 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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