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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성탄절)

by 【고동엽】 2022.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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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성탄절에는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습니다. 20년 동안 남편을 위해 기도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늘 하는 말이 술 때문에 교회를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인지라 술 주(酒)자의 주(酒)님을 더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심방을 갔는데 그 날도 술을 드시고 집에 왔답니다.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간곡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예, 나가고 싶지만 저는 술 때문에 어렵습니다” 라고 하자 목사님은 “술 드셔도 괜찮습니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만드셨어요” 라며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분이 용기를 얻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성탄절이 되었답니다. 그 성도는 자신을 교회에 나오게 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해서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종 두 병을 포장하여 축 성탄이라는 글씨를 써 목사님에게 선물을 하였습니다. 술 좋아하시는 분이기에 가장 좋고 귀중한 선물은 술이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신 날입니다. 당신의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주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예수와 전혀 상관없는 성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속적으로 성탄절을 즐기고 있습니다. 마귀가 일 년 가운데서 가장 좋아하는 날이 12월 25일 성탄절이라고 합니다. 성탄절을 방종이나 방탕의 면허라도 받은 날처럼 육신의 향락을 도모하기 때문입니다. 뜻깊은 성탄 주일을 맞이해서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아기 예수로 탄생하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 말씀입니다.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로 시작합니다. 즉 성탄은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Incarnation- 성육신(成肉身)” 이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성탄의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어떤 어린이가 교회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동네 어른이 그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꼬마야! 어디 가니?”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예,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가요.” 그러자 그 어른은 빈정대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어? 너 하나님 봤어?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어?” 그러자 아이는 대답합니다. “아저씨,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셔서 온 우주에도 담을 수가 없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너무나 작으셔서 지금 내 마음속에도 계세요.” 온 우주조차도 담을 수 없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우리는 매 순간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다윗의 시편 고백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지라도 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시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사자 굴에 던지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풀무 불에 던지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아니합니다. 또한 우리가 종으로 팔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요셉처럼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 길을 지나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옵니다. 우리가 물에 빠졌다 할지라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거하신다” 는 말의 본 뜻은 “장막을 치신다” 는 뜻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를 지나갈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막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사실을 날마다 체험적으로 느끼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어떤 주부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분이었습니다. 얼마나 신앙이 좋았던지 설거지하는 시간도  낭비할 수 없다 하여 싱크대 앞에 성경구절을 붙여 놓고 암송하면서 설거지를 했습니다. 이 날도 설거지를 하면서 싱크대 앞에 붙인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성경 구절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이었습니다. 설거지를 하며 이 구절을 암송하다 갑자기 “내가 지금하고 있는 설거지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성경 구절을 외우고, 심방 다니는 것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무슨 일이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분명히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설거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되며, 그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부인은 너무 기뻤습니다. 집에서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밥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습니다. 그래서 방바닥을 닦으면서도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방을 닦았습니다.
구약에서는 특수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위에 임하시는 구름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독생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바람을 잠잠케 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나, 십자가의 죽으심에서는 영광을 보지 못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말구유에서 나신 아기 예수에게서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베들레헴의 여관집 주인이나, 헤롯 임금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삼 년 동안 따라다녔던 가룟유다처럼 되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았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은혜와 진리가운데 살게 합니다
스웨덴의 중증 장애인 복음송 가수 레나 마리아는 두 팔과 한쪽 다리의 절반이 없는 채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신체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영, 피아노, 운전을 능숙하게 할 뿐 아니라, 복음송 가수로 활동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작은 거인입니다. 특히 그녀는 시편 139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장애로 태어난 것까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이처럼 그녀가 고난을 극복하고 은혜와 진리가운데 사는 삶이 가능한 것은 일본의 크리스천 여성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영향이 컸습니다. 젊었을 때 결핵과 척추카리에스를 앓으며 결혼 후에 나이가 들어 파킨슨씨 병과 암으로 투병생활하면서도 인생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아야꼬의 모습이 레나 마리아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미우라 아야꼬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의 약한 부분이 오히려 레나 마리아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책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내 자신을 장애인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단지 다른 사람과 사는 방법이 약간 다를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레나 마리아는 자신의 약함을 통해 고난받는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아픔이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내게 주어진 성공이나 실패, 기쁨과 고난이 따르는 내 인생에 무언가 의미를 준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니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예수님의 충만하신 은혜를 통해 그 은혜가 넘쳐흘러 예수의 제자 된 우리들도 얼마든지 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의 두려움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원리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이고 은혜로 살아갑니다. 맡겨준 것도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실패도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봉사해도 비교의식이 아니라 은혜의식으로 봉사합니다. 자녀를 교육시키는데도 비교하고 직장에서 일하는데도 비교하고 심지어는 무엇을 입는데 먹는데도 늘 비교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비교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은혜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 주시고, 물질 주시고, 기회 주시고, 일할 수 있는 일터 주시고, 섬길 수 있는 교회 주시고,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직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여 은혜로 더욱 봉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약속하십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 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예수께 삶의 전폭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은혜로운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뜻깊은 성탄 주일을 맞이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12-25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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