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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가정의달 설교

성도의 부부생활 (엡 5:22-33)

by 【고동엽】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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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부부생활 
(엡 5:22-33)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5월은 가정의 달이어서 에베소서 말씀 가운데 가정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에는 성도의 자녀교육에 대해서 말씀 드렸고, 지난 주일에는 성도의 부모공경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에는 성도의 부부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부는 가정의 기본적인 단위이며 가정의 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가정이 이루어지고, 위로는 부모 공경이 이루어지고 또 아래로 자녀교육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심되는 부부관계가 바로 되지 않고는 가정의 행복도, 바른 부모공경과 자녀교육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부부들의 관계를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보게 됩니다.
부부가 만나서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살아가면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결혼생활 20년 이상 된 부부에게,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는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4%만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질문을 서울 강남 사람들에게 물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물으니, 75% 정도는 싫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고, 20%는 좋다고 할 것이고, 5%는 글쎄요! 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부부생활은 다시 태어나더라도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와 다시 살기를 원합니까?

실제로 미국의 뉴 잉글랜드(New England)의 어느 비석에 그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비석 아래 나와 내 남편이 등에 등을 대고 누워 있습니다. 언젠가 마지막 나팔이 불 때 내 남편이 일어나면, 나는 계속 누워 있고 싶습니다."
물론 죽으면서 한 유머라고 생각됩니다만, 정말 그 말대로라면 남편과의 삶이 얼마나 지긋 지긋했으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이렇게 결혼생활이라는 것, 부부생활이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쉽지 않은 부부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까요?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부터 약 1,900년 전에 쓰여진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을 쓴 저자는 결혼도 해 보지 않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게 하신 것은, 오늘 우리들의 부부생활에 가장 유익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에 부부생활과 결혼생활에 대해 쓴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우리의 결혼 생활에 딱 맞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 읽은 이 성경의 말씀이 19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우리를 깨우쳐 왔으며 이 말씀을 따라 살아온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며, 이 말씀을 벗어나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 주례를 하면서도 이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인데,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부생활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오늘은 먼저 아내들에게 하신 말씀을 볼 것인데, 아내들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말은 아내들에게 별로 인기 없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또 그런 말..." 하면서 귀를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가르침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쾌쾌묵은 개념이고 여자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말을 한 바울을 가리켜 '여성 멸시자'라고까지 합니다.

옛날 다이아나 영국 황태자비가 촬스 황태자와 결혼할 때에 전통적인 영국 성공회의 결혼서약문에서 이 '복종'이라는 말을 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처음부터 남편에게 복종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물론 촬스 황태자도 처음부터 사랑으로 결혼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에서도 종종 결혼하는 사람들이 결혼서약에서 이 말을 빼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서 목사님들이 난처할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거부반응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하나님은 이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결혼서약문에서 이 말을 빼놓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하라고 한 복종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부정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복종이 아닌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긍정적인 성경적 복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성경이 말하는 복종이란 꼭 여자들에게만 요구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앞에 5:21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러니까 아내들에게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남편도 복종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들도 복종할 것이 있습니다. 부모들도 복종할 것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직원들도, 상사들도 복종할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 복종은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복종의 훈련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면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이 복종입니다.

두 번째로, 이 복종이란 굴종이나 맹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종이라고 하니, 노예가 주인에게 하듯이 하는 그런 행동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적인 것입니다. 또 자의적이고 자발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쓰인 '복종하라'는 헬라어 동사의 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복종하라'는 말은 능동태도 아니고 수동태도 아닌 중간태로 되어 있는데, 이 중간태는 자의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을 나타낼 때 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복종은 굴종이나 맹종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자발적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복종은 수동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든다면, 항상 침묵을 지켜야 한다든지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잠언 31장에 보면 이상적인 아내 상이 나오는데, 그는 기회 있을 때에 지혜로운 말로 덕을 끼치고.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자기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가정과 남편을 돕는 아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복종이란 수동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이 복종은 모든 남자에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 했습니다.
자기 남편에게, 즉, 가정 안에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가정 밖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 아닙니다. 가정 밖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위에 있을 수도 있고, 또 남자가 여자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남존여비의 사상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직장에도, 사회에도 여자들은 남자들 밑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3:28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 밖에서는 여자가 남자 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질서상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종이 의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아내 복종의 긍정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이 말은 남편에게는 언제나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남편이 잘 났으니까 복종하고 잘 나지 못했으면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잘 났든지 못 났든지, 그 남편의 수입이 많든지 적든지, 심지어는 남편의 사회적인 신분이 아내보다 높든지 낮든지, 아내는 가정에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한번은 그의 남편인 알버트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였다고 합니다.
알버트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의 거실로 자리를 떴습니다. 평소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남편을 측은히 생각한 여왕은 사과를 할 생각으로 남편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요?" 남편이 묻습니다. 그러자 빅토리아 여왕이 대답했습니다. "영국의 여왕입니다"
남편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어 주세요!" 여왕이 부탁했습니다.
"누구죠?" 역시 똑같은 말로 대답합니다.
"영국의 여왕입니다" 역시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여왕이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누구죠?"하는 말에 "당신의 아내예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아무리 밖에서는 여왕이어도 집에서는 아내라는 것을 깨우쳐 준 것입니다.

요즈음 아내들이 남편을 가려서 복종하는 경우 있습니다.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해서,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해서 가정에서도 머리노릇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다릅니다.
밖에서는 아무리 여 사장이고 여 수상이고 여왕이라고 하더라도 집에서는 한 남편의 아내로서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에 평안이 있고 질서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또 요즈음 아내들, 남편들이 젊고 건강해서 직장에 나가서 돈 잘 벌어 올 때는 복종하다가, 남편이 늙고 병들어서 경제능력도 없고 남자로서 구실도 잘 못할 때는 복종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어떤 남편에게나 언제나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

두 번째로, 이 말은 자의적이고 자발적인 말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지못해서 하는 굴종이나 맹종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진해서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이런 자의적인 행위가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그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세계적인 팝 가수 셀린 디온이 가수활동 중단을 선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맑은 음색을 지닌 '세계 최고의 여가수'로 불리웠습니다.
인기정상을 달리던 그녀가 돌연 '부'와 '명예'를 거절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인 셀린 디온이 가수가 된 것은 열두 살 때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들고 한 음반회사를 찾았습니다. 그때 지금의 남편인 안젤린을 만났는데 그는 셀린 디온을 위해 빚을 얻어 음반을 만들어 주었고, 셀린 디온의 매니저로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셀린 디온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남편이 지금 후두암에 걸려 투병중입니다. 지금은 남편에게 내가 가장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남편 곁에서 병간호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쇼 비즈니스가 결코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제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내가 갚을 차례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입니까?
셀린 디온에게 이런 사랑이 있기에 자신의 부와 명예가 달린 가수 활동을 접고, 스스로 남편을 간호하는 자리에 내려와서 남편을 복종하고 섬기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성경이 아내에게 말씀하신 복종은 이런 사랑을 가지고 굴종이나 맹종이 아닌 자의적이고 자발적인 복종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 이 말은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복종이란 해서는 안 할 일만 생각하기 보다 해야 할 것을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Youth Conflict로 유명한 빌 고싸드(Bill Gothard)는 복종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권위 아래에서 창조적이 될 수 있는 자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재능이나 자질, 모든 좋은 것을 남편의 권위 아래에서 창조적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내 여러분, 여러분의 자질을 마음껏 발휘하십시오. 마음껏 쓰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남편의 권위 아래서, 다시 말해서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범주 안에서 쓰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복종입니다. 남편을 위하는 방법입니다.

네 번째로, 이 말은 지속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헬라어에서 현재시상은 지속적인 반복을 가리킵니다.
여기 복종하라는 명령어가 현재시상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내들에게 한 번 두 번 복종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복종하며 살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내들이 결혼해서 얼마동안은 남편에게 복종해도 얼마를 지나면 사정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별 별 이야기들이 다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간 큰 남자' 시리즈 같은 것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오늘 날 우리 가정의 단면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성경은 아내들에게 지속적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 서약하는 말에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했을 때나 병들었을 때나 이 남자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위로하고 순복할 것을 서약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겠다고 서약을 하나 시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종은 지속적인 복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편을 가정의 머리라고 한다면 아내는 가정의 심장입니다.
머리는 머리의 역할이 있고 심장도 심장이 하는 역할입니다.
심장이 있음으로 머리가 머리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팔 다리가 잘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아내가 바른 역할을 할 때 남편도 힘을 얻고 자녀들도 제 구실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심장은 자기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심장이 아무리 중요하지만 머리의 위치에 가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아내들도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놓아두신 복종하는 위치를 잘 지키면서 가정의 심장의 역할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심장이 머리에 힘을 주듯 복종하는 아내를 둔 남편은 행복하고, 가장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복종의 역할을 하는 어머니를 본받은 아이들은 부모 공경을 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자녀들의 문제는 아버지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들이 가정의 심장 역할을 잘 감당해서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도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의 중요한 것을 깨닫고 가정을 지키는 홈키퍼(Home Keeper)로서의 주부의 역할, 아내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남서울교회 모든 어머니들이 복종하는 아내가 되어 남편으로 하여금 가장의 역할을 잘 하고, 자녀로 하여금 순종하는 자녀로 자라가게 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게 하사, 아내의 복종이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것만큼 자랑스럽고 강력한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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