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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창세기 1장1-5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by 【고동엽】 2022. 11. 15.
■2022년3월 7일(월)■
 
(창세기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묵상/창 1:1-5)


◆ 성경 해석 시 유의할 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은 서쪽으로 870km 떨어져 있다.  완전한 정서(正西)는 아니고, 아주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서쪽이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모두 예루살렘이 정남 쪽에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침략할 때, 북쪽 경로를 통해 들어왔으며, 포로로 끌어갈 때도 북쪽 경로를 통해 바벨론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은 고국을 그리워할 때는 남쪽을 쳐다보았다.


자, 이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을 향해 예언하라고 하실 때, 어느 쪽을 바라보라고 하실까?
남쪽일까, 서쪽일까?
만일 남쪽을 바라보고 예언하라고 하시면, 방향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예루살렘은 서쪽에 있다.
그러나 서쪽을 바라보고 예언하라고 하시면, 방향이야 맞지만, 유대인들과 소통이 안 될 것이다.
정확한 방향이냐, 소통을 위한 방향이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명령하신다.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겔 20:46)


이런 것이 오류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방향 때문에 토론하고 싶지 않으시다. 예언의 핵심은 방향이 아니라 그들의 죄로 인한 멸망이다. 만일 에스겔이 서쪽을 향해 예언했다면, 유대인들은 그가 엉터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방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메시지가 중요하다. 방향은 상징일 뿐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께서도 "해가 뜨면"(나 3:17)라는 표현을 쓰셨다.
엄밀히 말하자면, 해가 뜨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도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지구가 돌면"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해가 뜬다"고 말씀하셨을까? 이런 것이 오류인가? 아니다. 소통을 위한 것이다.


지금 회개해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에 대고 하나님께서 태양이 뜨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도는 것이라고 하면, 과학적으로야 정확할지 모르지만, 정작 회개는 관심 밖이 되고 지구가 도는 것인지 태양이 뜨는 것인지가 토론의 주제가 되어버릴 것이다.


한 때,  태양이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저 끝까지 운행한다(시 19:6)나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전 1:5)라는 말씀들을 근거로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성경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답시고, 끝까지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고집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유주의 신학자처럼 성경은 전설에 불과하며, 오류투성이의 책이라고 믿는 것은 더더욱 틀렸다.




나는 성경이 오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예수님도 그렇게 믿었고, 제자들도, 그리고 우리의 신앙 선배들도 모두 그렇게 믿었다. 성경을 여러 번 읽고 제법 심각하게 연구한 나도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 감탄한다. 성경과 같은 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심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은 틀림없지만, 해석할 때 기억해야 할 유의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성경이 과학 연구 서적이 아니라 인간들과 소통을 위해 기록된 책이라는 것이다.
즉 성경은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와 인간들이 쓰는 표현을 그대로 활용해서 기록되었다. 이 사실을 놓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작 하시고자하는 메시지는 놓치고 엉뚱한 과학 토론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 이것을 유념하고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 창조주 하나님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을 펼 때 맨 처음에 접하는 이 선언이 얼마나 위대한지!
창세기의 이 선언으로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님이 없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과 하나님이 계신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무신론자들은 유신론자들의 믿음을 비웃지만,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갑자기 유가 생겼다고 믿는 무신론자들의 믿음이야말로 정말 무모하고 허무맹랑하다. 마치 자기가 가진 핸드폰이 아무것도 없는 창고에서 저절로 생겼다고 믿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런 질문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자기 수준으로 생각하는 자다.


탈북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북한에 있을 때 임진강 건너편에 있는 우리 나라 집은 제법 번듯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전시용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면 마땅히 굴뚝에서 연기가 나야 하는데, 남쪽 집에는 연기 나는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남쪽에 와보니 석탄이나 나무를 때는 집이 하나도 없고 모두 가스로 밥을 해 먹기 때문에 연기가 안 나는 것이 당연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기 수준, 자기 경험을 뛰어넘기가 어렵다. 


인간은 유한하고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무한은 우리 주변에 없다. 우리 경험에도 없다. 오로지 수학에서만 존재하고 정의되는데, 실은 대다수의 수학 선생들도 잘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영역이다. 


우리가 인간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시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어리석은 질문에서 벗어나고 많이 겸손해질 것이다.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것이 빛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첫째 날의 창조는 1절부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하늘과 땅(천지)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빛을 창조하셨다. 1절이 전체 선언이고, 2절부터 상세설명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6일 중에 땅을 창조한 날이 없어서 당황할 것이다.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니라는 말씀을 지나치게 과학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혼돈는 히브리어로 '토후'라고 하는데, 성경에서 많이 사용된 단어다. '헛됨'(삼상 12:21), '빈 것'(사 40:17), '거친들, 광야'(욥 6:18) 등에 사용되었다.
공허는 히브리어로 '보후'라고 하는데 성경에서 오직 세 번 사용되었다. 흥미롭게도 '공허'는 성경에서 언제나 '혼돈'과 같이 사용되었다.


혼돈과 공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측할만한 좋은 구절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이 망할 것을 말씀하시면서에돔에 사람이 살지 않고 각종 동물과 부엉이와 까마귀가 살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서 혼돈과 공허라는 표현을 쓰셨다(사 34:11). 예레미야도 이 표현을 썼다(렘 4:23).


쉽게 말해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의미는 그 땅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제 기능을 못 하는 땅임을 의미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필요한 것을 채워 넣으실 것이다.


◆ 빛이 있으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땅에 빛을 비추게 하셨다.
빛은 단순히 태양에서 나온 빛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태양은 넷째 날에서야 제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빛은 지구 전체에 비치는 빛이었을 것이다.


(5)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아니 태양도 아직 만드시지 않은 상황에서 저녁과 아침이라니!
그러나 이런 것이 바로 소통을 위한 언어다.
당시 사람들에게 하루라는 개념을 설명하자면 이런 표현이 적당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수로 하루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물론 여기에서 하루가 지구가 자전하는 24시간이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진화론을 따라서 수억 년이라는 사상을 도입해도 안 된다. 창조의 고단함을 고려해서 수억 년이라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 있어서 창조에 걸리는 시간은 1초나 수억 년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은 시간조차도 창조하신 분이시니까!
따라서 우리는 창조 시의 하루를 시간적인 길이보다는 사건 하나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왜 창조를 한 번에 하지 않으시고 여섯 번으로 나누어서 하셨는가?
그거야 하나님 마음이다. 그것까지 참견하는 것은 지나친 오지랖이다.
물론 거기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아 하나님을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시 148:1-5)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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