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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쁨.
습 3 : 14 - 20. 2005.10.23
옛날 동양의 선조들은 도를 닦았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있고, 성공하고 승리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있다고 저들은 생각했고 그 길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동양인들이 도를 닦을 때 서양인들은 철학을 하였습니다.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은 진리였습니다. 진리란 삶의 식과 이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저들은 그 식과 이치를 찾으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길을 알면 아무리 먼 길도, 아무리 복잡한 길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식을 알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문제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길을 모르면 아무데도 갈 수 없습니다. 식을 모르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습니다.
잘 살려면, 행복하게 살려면, 성공하려면, 승리하려면 길을 알아야 합니다. 식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는 말씀 앞에는 ‘the'라고 하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길과 식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이 바로 동양인들이 찾던 바로 그 길이며, 서양인들이 찾던 바로 그 진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저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하나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단순한 말씀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잘 사는 길과 잘 사는 식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담과 하와에게는 두 가지 길과 식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길과 식이요,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길과 식이었습니다. 전자는 생명의 길과 식이요 후자는 사망의 길과 식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잘 사는 길과 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정확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분과 그 분의 말씀을 신뢰하여 그 분이 말씀 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껏 예수를 믿으며,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면서 터득한 가장 중요한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아주 큰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으면 살고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성공하고, 자기 뜻과 욕심대로 살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참으로 많이 탑니다. 그렇게 많이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한번도 제가 직접 비행기를 조정 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비행기는 조정사가 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비행기 기장에게 내가 자동차 운전을 20년도 넘게 했으니 비행기도 문제없을 것이라며 조정간을 넘겨 달라고 했다면 제가 미친 것이 분명합니다. 확률은 거의 없지만 기장이 같이 미쳐서 제 말을 듣고 옳다 생각하여 비행기 조정간을 저에게 넘겨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비행기는 조정사가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 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와 세상은 하나님이 조정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정사가 조정하는 비행기는 그래도 어쩌다가 라도 추락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조정하시는 인생과 세상이 추락하는 것은 본 일도 없고 볼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본 영화 중에 비행 중에 기장이 갑자기 죽게 되어 비행기에 탄 승객들이 극도의 공포에 쌓여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영화이기 때문에 관제탑과 통신을 하면서 관제탑이 지시대로 비행기를 조정하여 무사히 착륙하는 해피 앤딩으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그것은 영화일 뿐 실제 상황으로 그와 같이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틀림없이 비행기는 추락했을 것이고 그 비행기에 탑승했던 모든 승객들은 사망하였을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승객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로 위험하고 불행한 사고는 비행 중 기장이 죽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정사가 없는 비행기를 타고 비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얼마나 불안하고 무섭고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기장과 부기장이 조정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였다면 승객들은 대부분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며 천하태평으로 여행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비행기 여행과 같습니다. 비행기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자신이 비행중인 비행기의 조정간을 잡은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의에 의한 것입니다. 스스로 조정사를 부인하고 자기가 스스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비행기의 조정사가 되어 힘들어하며, 두려워하며, 불안해하며 죽음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이 불안과 초조와 걱정과 근심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되어 결국 생명이 아닌 사망으로, 성공이 아닌 실패로,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치닫는 가장 중요한 아니 유일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죄 된 욕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믿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가 아닌 자기의 뜻과 욕심대로 인생을 조정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고 평안하며, 안전하고 쾌적한 인생의 비행을 위하여 우리가 하여야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편 5절과 6절의 말씀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 시리로다.” 시편 55편 22절의 말씀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 16장 3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 전서 5장 7절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을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마태복음 11장 28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찬송가 363장의 가사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을 하는 우리들에게 너무 큰 은혜와 위로가 되는 찬송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넓으신 사 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내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지난 주 월요일 오후 첫 손녀를 보았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은 정말 극도로 피곤한 날이었습니다. 두 주간에 걸친 미국 집회. 특히 이번 집회는 시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였던 집회였습니다. 거의 10일 가까이 깊은 잠을 자기 못하였습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한 채 미국 세 개 도시를 비행기로 다니며 집회를 하였습니다. 집회가 끝나자마자 귀국을 하였고, 귀국을 하자마자 설교를 준비를 하고 주일 날 네 번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손녀가 태어는 월요일도 새벽부터 일어나 이곳저곳을 다녀야만 했습니다. 저녁에도 어느 모임에서 설교를 하다가 손녀가 태어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즉시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태우고 손녀가 태어난 대전으로 차를 몰고 달려갔습니다. 한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극도의 피곤함이 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면회 시간이 끝났다고 문을 닫아 버린 신생아실 문을 두드려 겨우겨우 사정을 하여 일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손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감격과 감동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들집에서 들 뜬 마음에 선 잠을 자고 부리나케 이른 아침 다시 병원으로 가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작은 움직임과 표정에 감탄하며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병원에서 찍어 준 비디오 테잎을 보았습니다. 뱃속 초음파 사진들로부터 시작하여 태어나서의 모습까지를 찍은 테잎이었습니다. 초음파 사진은 정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리 같은 아마츄어는 정말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장 소리 하나하나, 움직이는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경이와 경탄이었습니다. 태어나서도 내내 잠만 자는 아이이지만 아주 작은 움직임과 표정의 변화를 우리는 숨죽이며 보았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보았는지 몇 분 몇 초에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우리는 거의 다 외우다시피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일 손녀 때문에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정말 이길 수 없는,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기쁨과 행복에 겨워하면서 하나님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도 나를 보시고 이러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기 때문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의 존재자체가 제게는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아들아이가 수시로 문자를 보냅니다. “아버지 손녀가 방귀를 뀌었습니다.” “손녀 민희가 황금 똥을 쌓았습니다.” “민희 눈 뜬 사진입니다” 다른 문제 메시지는 받은 후 삭제합니다. 그러나 우리 손녀가 방귀를 뀌고 똥을 쌓았다는 메시지는 지우지 않고 보고 또 봅니다.
하나님께 내가 그런 존재 일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습니다. 손녀를 보며 그 생각을 하니 감당할 수 없는 은혜가 넘쳐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고 계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로다” (습 3:17) 아멘. 아멘.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별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 제 손녀는 김동호 목사 손녀입니다. 인간적으로만 이야기 한다면 김동호 목사 손녀로 태어난 것은 괜찮은 행운입니다. (?) 제 손녀는 별 큰 걱정 없이 제법 좋은 환경과 여건에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김동호 목사의 손녀로 태어 낳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해서 제 손녀는 팔자가 좋은 아이로 태어난 셈입니다. (물론 우리는 팔자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김동호 목사 손녀로만 태어나도 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세상에 그 보다 더 좋은 팔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세상에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투성이인 인생을 살고 있다면, 부족함 투성이인 인생을 살고 있다면, 힘들고 고달프고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우리가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품을 떠난 탕자는 돼지우리에서 쥐엄 열매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탕자는 그곳에서 죽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원을 얻었고 다시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였습니다. 그가 그와 같은 축복을 얻게 된 것은 단 하나 그가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특히 부하고 능력 있는 아버지를 얻은 사람은 더 말할 것 없습니다.
비행기에는 일등석이 있고, 이등석이 있고, 삼등석이 있습니다. 이등석과 삼등석은 정말 다릅니다. 저는 주로 비행기 마일리지를 모았다가 이등석을 탑니다. 갈 때는 삼등석을 타고 올 때는 가끔씩 이등석을 탑니다. 미국 서부에서 올 때는 아꼈다가 미국 동부에서 올 때에 주로 이등석을 탑니다.
두세 번 정도 일등석을 타 본 적이 있습니다. 일등석은 정말 편합니다. 일등석을 타고 다닌다면 비행기도 타고 다닐 만 합니다. 세상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제나 보면 일등석 자리는 자주 비어 있습니다. 요금이 만만치 않아 쉽게 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등석은 아주 큰 부자들이나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맡긴 인생은 마치 일등석을 타고 비행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부자이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인 우리들의 인생은 일등석 인생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훈련을 위하여 가끔씩 우리를 고생시키시는 경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들의 인생은 일등석 인생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너희에게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 한 마디로 다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능치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맡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이 땅에서도 천국의 평안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습 3 : 14 - 20. 2005.10.23
옛날 동양의 선조들은 도를 닦았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있고, 성공하고 승리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있다고 저들은 생각했고 그 길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동양인들이 도를 닦을 때 서양인들은 철학을 하였습니다.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은 진리였습니다. 진리란 삶의 식과 이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저들은 그 식과 이치를 찾으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길을 알면 아무리 먼 길도, 아무리 복잡한 길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식을 알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문제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길을 모르면 아무데도 갈 수 없습니다. 식을 모르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습니다.
잘 살려면, 행복하게 살려면, 성공하려면, 승리하려면 길을 알아야 합니다. 식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는 말씀 앞에는 ‘the'라고 하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길과 식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이 바로 동양인들이 찾던 바로 그 길이며, 서양인들이 찾던 바로 그 진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저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하나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단순한 말씀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잘 사는 길과 잘 사는 식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담과 하와에게는 두 가지 길과 식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길과 식이요,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길과 식이었습니다. 전자는 생명의 길과 식이요 후자는 사망의 길과 식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잘 사는 길과 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정확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분과 그 분의 말씀을 신뢰하여 그 분이 말씀 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껏 예수를 믿으며,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면서 터득한 가장 중요한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아주 큰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으면 살고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성공하고, 자기 뜻과 욕심대로 살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참으로 많이 탑니다. 그렇게 많이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한번도 제가 직접 비행기를 조정 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비행기는 조정사가 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비행기 기장에게 내가 자동차 운전을 20년도 넘게 했으니 비행기도 문제없을 것이라며 조정간을 넘겨 달라고 했다면 제가 미친 것이 분명합니다. 확률은 거의 없지만 기장이 같이 미쳐서 제 말을 듣고 옳다 생각하여 비행기 조정간을 저에게 넘겨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비행기는 조정사가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 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와 세상은 하나님이 조정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정사가 조정하는 비행기는 그래도 어쩌다가 라도 추락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조정하시는 인생과 세상이 추락하는 것은 본 일도 없고 볼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본 영화 중에 비행 중에 기장이 갑자기 죽게 되어 비행기에 탄 승객들이 극도의 공포에 쌓여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영화이기 때문에 관제탑과 통신을 하면서 관제탑이 지시대로 비행기를 조정하여 무사히 착륙하는 해피 앤딩으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그것은 영화일 뿐 실제 상황으로 그와 같이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틀림없이 비행기는 추락했을 것이고 그 비행기에 탑승했던 모든 승객들은 사망하였을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승객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로 위험하고 불행한 사고는 비행 중 기장이 죽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정사가 없는 비행기를 타고 비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얼마나 불안하고 무섭고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기장과 부기장이 조정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였다면 승객들은 대부분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며 천하태평으로 여행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비행기 여행과 같습니다. 비행기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자신이 비행중인 비행기의 조정간을 잡은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의에 의한 것입니다. 스스로 조정사를 부인하고 자기가 스스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비행기의 조정사가 되어 힘들어하며, 두려워하며, 불안해하며 죽음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이 불안과 초조와 걱정과 근심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되어 결국 생명이 아닌 사망으로, 성공이 아닌 실패로,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치닫는 가장 중요한 아니 유일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죄 된 욕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믿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가 아닌 자기의 뜻과 욕심대로 인생을 조정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고 평안하며, 안전하고 쾌적한 인생의 비행을 위하여 우리가 하여야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편 5절과 6절의 말씀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 시리로다.” 시편 55편 22절의 말씀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 16장 3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 전서 5장 7절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을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마태복음 11장 28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찬송가 363장의 가사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을 하는 우리들에게 너무 큰 은혜와 위로가 되는 찬송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넓으신 사 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내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지난 주 월요일 오후 첫 손녀를 보았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은 정말 극도로 피곤한 날이었습니다. 두 주간에 걸친 미국 집회. 특히 이번 집회는 시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였던 집회였습니다. 거의 10일 가까이 깊은 잠을 자기 못하였습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한 채 미국 세 개 도시를 비행기로 다니며 집회를 하였습니다. 집회가 끝나자마자 귀국을 하였고, 귀국을 하자마자 설교를 준비를 하고 주일 날 네 번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손녀가 태어는 월요일도 새벽부터 일어나 이곳저곳을 다녀야만 했습니다. 저녁에도 어느 모임에서 설교를 하다가 손녀가 태어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즉시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태우고 손녀가 태어난 대전으로 차를 몰고 달려갔습니다. 한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극도의 피곤함이 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면회 시간이 끝났다고 문을 닫아 버린 신생아실 문을 두드려 겨우겨우 사정을 하여 일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손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감격과 감동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들집에서 들 뜬 마음에 선 잠을 자고 부리나케 이른 아침 다시 병원으로 가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작은 움직임과 표정에 감탄하며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병원에서 찍어 준 비디오 테잎을 보았습니다. 뱃속 초음파 사진들로부터 시작하여 태어나서의 모습까지를 찍은 테잎이었습니다. 초음파 사진은 정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리 같은 아마츄어는 정말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장 소리 하나하나, 움직이는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경이와 경탄이었습니다. 태어나서도 내내 잠만 자는 아이이지만 아주 작은 움직임과 표정의 변화를 우리는 숨죽이며 보았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보았는지 몇 분 몇 초에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우리는 거의 다 외우다시피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일 손녀 때문에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정말 이길 수 없는,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기쁨과 행복에 겨워하면서 하나님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도 나를 보시고 이러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기 때문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의 존재자체가 제게는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아들아이가 수시로 문자를 보냅니다. “아버지 손녀가 방귀를 뀌었습니다.” “손녀 민희가 황금 똥을 쌓았습니다.” “민희 눈 뜬 사진입니다” 다른 문제 메시지는 받은 후 삭제합니다. 그러나 우리 손녀가 방귀를 뀌고 똥을 쌓았다는 메시지는 지우지 않고 보고 또 봅니다.
하나님께 내가 그런 존재 일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습니다. 손녀를 보며 그 생각을 하니 감당할 수 없는 은혜가 넘쳐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고 계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로다” (습 3:17) 아멘. 아멘.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별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 제 손녀는 김동호 목사 손녀입니다. 인간적으로만 이야기 한다면 김동호 목사 손녀로 태어난 것은 괜찮은 행운입니다. (?) 제 손녀는 별 큰 걱정 없이 제법 좋은 환경과 여건에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김동호 목사의 손녀로 태어 낳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해서 제 손녀는 팔자가 좋은 아이로 태어난 셈입니다. (물론 우리는 팔자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김동호 목사 손녀로만 태어나도 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세상에 그 보다 더 좋은 팔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세상에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투성이인 인생을 살고 있다면, 부족함 투성이인 인생을 살고 있다면, 힘들고 고달프고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우리가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품을 떠난 탕자는 돼지우리에서 쥐엄 열매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탕자는 그곳에서 죽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원을 얻었고 다시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였습니다. 그가 그와 같은 축복을 얻게 된 것은 단 하나 그가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특히 부하고 능력 있는 아버지를 얻은 사람은 더 말할 것 없습니다.
비행기에는 일등석이 있고, 이등석이 있고, 삼등석이 있습니다. 이등석과 삼등석은 정말 다릅니다. 저는 주로 비행기 마일리지를 모았다가 이등석을 탑니다. 갈 때는 삼등석을 타고 올 때는 가끔씩 이등석을 탑니다. 미국 서부에서 올 때는 아꼈다가 미국 동부에서 올 때에 주로 이등석을 탑니다.
두세 번 정도 일등석을 타 본 적이 있습니다. 일등석은 정말 편합니다. 일등석을 타고 다닌다면 비행기도 타고 다닐 만 합니다. 세상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제나 보면 일등석 자리는 자주 비어 있습니다. 요금이 만만치 않아 쉽게 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등석은 아주 큰 부자들이나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맡긴 인생은 마치 일등석을 타고 비행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부자이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인 우리들의 인생은 일등석 인생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훈련을 위하여 가끔씩 우리를 고생시키시는 경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들의 인생은 일등석 인생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너희에게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 한 마디로 다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능치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맡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이 땅에서도 천국의 평안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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