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
이사야 41장 1-4절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
서울의 한 교회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 교회 재정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장로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목사님이 그 장로님이 당회에서 발언권이 있을 것 같아서 장로님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 내에서 발언권이 약합니다.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며 봉사합니다. 헌금을 많이 하든지, 말을 많이 하든지 둘 중의 하나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본이 됩니까? 교회에서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겸손한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높아지면 반드시 남들이 낮추든지, 고난이 생겨 낮아지든지,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그러나 스스로 낮아지면 반드시 남들이 높여주든지, 축복이 넘쳐 높아지든지,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많은 일을 통해서도 영광 받으시지만 은혜 많이 받고 감사하는 삶을 통해서 더욱 영광을 받으시고, 특히 시련 중에도 감사하며 맡은 일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크게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가끔 자녀가 입시에서 실패했다고 울고불고 하는 교인들을 봅니다. 그런 모습은 믿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진 것이 행복을 해치지 않고, 믿음을 약화시키지 않고, 기도의 열정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믿는 사람은 붙으면 붙은 대로 행복하게 살고,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사업에 망했다고 “이제 끝장났다.”고 생각합니다. 왜 끝장납니까? 우리는 죽기까지 사업만 해야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업하다 안 되면 다른 일을 하면 됩니다. 성도는 사업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살고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보다 주님께 가까이 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 >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할까요? 본문을 중심으로 4가지 삶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 앞에 잠잠한 삶
본문 1절 처음 부분은 말합니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신앙생활에서 가장 복된 모습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게 되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하나님 마음에 들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을 가장 잘 하는 비결도 배우자가 내 마음에 들게 되기보다 내가 그의 마음에 들게 되기를 바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섭리와 조치에 잠잠히 감사하며 따라야 합니다.
때로는 인생길이 막히는 것이 복이 될 때도 있습니다. 미국 9.11 테러 때, 어떤 교민은 무역센터로 출근하는데 길이 너무 막혀서 출근이 늦었다고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길이 막혔기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한다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길이 열리는 것도 은혜지만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길이 막히는 것도 은혜인 줄 알아야 합니다.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좋지 않은 일에도 우리를 좋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을 만나도 침착함을 잃지 말고, 그때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욱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 말씀을 잘 들으면 모든 문제를 넘어선 지극한 평강이 마음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작년 12월에 선교센터 공사를 시작하고, 지난 3월에 선교센터를 시작하면서 몸무게가 5킬로 정도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명치 부분에 혹 같은 것이 잡혔습니다. 그리고 3월쯤에 허리에 2센티 정도의 혹이 잡혔습니다. 신경이 쓰였습니다. 6월 말쯤 되니까 그 혹이 4센티 정도로 커졌습니다. 계속 바빠서 병원에 가지 못하다가 며칠 전에 그쪽 전문의인 친구에게 말하니까 친구가 빨리 와보라고 했습니다.
친구에게 가서 혹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혹을 만져보더니 말했습니다. “그것 지방종이야! 괜찮아! 원하면 바로 수술해서 없애줄게. 이제 너무 몸을 혹사하지 말고 조금 쉬면서 일해!” 그리고 명치끝이 나온 것도 살이 빠져서 일시적으로 튀어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전문가 친구 한 마디의 말을 듣자 순식간에 엄청난 평화가 마음에 밀려들어왔습니다. 사람의 말도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듣는다면 더욱 넘치는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어려운 일을 만날수록 잠잠하십시오. 그때 말하는 것은 많이 줄이고, 말씀은 많이 들으십시오. 그리고 컴퓨터와 TV도 멀리하십시오. 때로 금식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눈과 생각을 어지럽히는 모든 것을 멀리하는 영적인 금식도 필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과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삶
계속해서 본문 1절은 말합니다.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살다 보면 때로 어려운 일도 당하지만 그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성도의 시련은 저주의 증거가 아니라 축복의 증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용기를 잃지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도 다 시련이 있었고, 다 약점과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도 얼마나 열등감이 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 뒤에 있는 작고 가난한 동네인 아나돗 출신이었고, 말을 아이처럼 못했습니다(렘 1:6).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쓰셨습니다. 열등감이 있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열등감에 매여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의 놀라운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죄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적합한 것을 주셨구나!”하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사십시오. 복이 없는 사람은 은혜는 금방 잊어버리고 손해는 오래 기억하고 한을 품습니다. 반대로 복이 있는 사람은 손해는 금방 잊어버리고 은혜는 오래 기억하고 범사에 감사합니다. 그처럼 감사는 어떤 환경도 이기게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십니다.
우리는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만큼 주십니다. 만약 우리가 6백만 불의 사나이처럼 눈이 5.0쯤 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언젠가 TV에서 5.0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카메라로 아파트를 촬영했는데, 곳곳에 있는 세균과 벌레들이 다 보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보이면 못삽니다. 눈도 적당이 좋은 것이 좋습니다.
만약 우리 귀가 지금보다 몇 배 잘 듣는다면 좋을까요? 그러면 각종 소리들이 다 들려서 신경쇠약이나 노이로제에 걸릴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개처럼 냄새를 잘 맡으면, 각종 냄새 때문에 역겨워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적당한 분량만 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부족해도 안되지만 지나쳐도 안됩니다. 돈도 지나치게 많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잘 써야 합니다.
한자로 지나칠 ‘과’자가 붙은 말 중에 좋은 말이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과식, 과속, 과욕, 과민, 과격, 과대, 과로, 과장, 과음, 과용 등 좋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을 잃고 병이 나은 후에 감사하기보다 건강한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더욱 복된 삶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가정, 건강, 물질 등 수많은 축복이 더 따라오게 됩니다.
어떤 분은 참 어렵게 살았지만 항상 입에 붙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만큼 사는 것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형편은 어려워도 낙심도 없고, 좌절도 없고, 그 가정이 항상 평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지금 경남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원하면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구원만 생각해도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많은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잘못된 행동을 했는데 그래도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은혜를 주시니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습니까? 그 은혜를 생각하면 하나님이 죽여주셔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무장하면 어떤 환경도 흔들 수 없는 놀라운 평안과 삶의 용기가 생겨날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
본문 2-4절 말씀을 보면 “누가 했느냐?”는 반문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우리는 “할 수 있다. 나는 축복 받을 수 있다. 이 문제는 풀린다!”고 믿고 나가야 합니다.
88올림픽 때 육상 3관왕을 차지했던 그리피스 조이너는 어렸을 때 심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때 그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당시 흑인들의 복싱 영웅인 슈가레이 레너드가 와서 그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조이너!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너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어!” 그 말이 그녀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도 그처럼 힘이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도와주겠다! 너는 할 수 있다! 도전해 보라!” 그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어떤 문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땀이 우리를 배신하는 일이 없듯이 하나님 안에서 가진 우리의 비전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헌신과 우리의 믿음도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살아도 죽을 때 돌아보면 그저 긴 꿈에 불과하고, 반대로 아무리 불행하게 살아도 그저 긴 꿈에 불과합니다.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다 꿈처럼 지나갑니다. 그때 남은 것은 오직 믿음뿐이고, 예수님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 진짜 삶을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제 사람에게 너무 크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교회에도 너무 크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가정과 교회를 최선을 다해 섬기고, 주어진 여건에 따라 자기 인생을 최선을 다해 가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감동 주시는 일이라면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에게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유럽에 로스차일드란 유명한 기업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미국에 대규모 사업장을 열 계획을 세우고 처음에 부사장을 불러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언제쯤 떠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사장이 곰곰이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사장님! 한 보름쯤 여유를 주십시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두 번째로 평소에 생각해둔 한 지사장을 불러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지사장은 말했습니다. “사장님! 사흘만 여유를 주십시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세 번째로 평소에 밝은 표정으로 모든 일에 적극적인 한 사원을 불러 똑같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원이 말했습니다. “제가 이때를 기다려 왔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저를 보내 주십시오.”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흡족해서 로스차일드는 그 젊은이를 선택해서 보름간 준비시키고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 젊은이가 샌프란시스코의 최대 갑부가 된 윌리암 줄리어스라고 합니다.
사장은 직원을 볼 때 직원의 치밀한 계산보다 자신의 계획을 뒷받침할 직원의 의지를 먼저 봅니다. 회사에서 계산적인 사람은 회사가 먹여 살려야 하지만 사명적인 사람은 회사를 먹여 살립니다. 교회에서도 무엇을 얻기만 바라는 계산적인 사람은 교회의 힘을 소진시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일에 “예!”하고 온전히 순종하는 사명적인 사람은 교회를 힘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본인 자신에게도 더욱 놀라운 축복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삶
이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은 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생각으로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을 보다 구체적으로 진하게 표현하십시오. 어떻게 주님을 구체적으로 사랑합니까? 성경에서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해서 전보다 더욱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시편 84편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해와 방패가 되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그런 축복도 있지만 천국의 모형인 교회를 사랑하는 삶 자체가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의 교회에서 천국 삶을 연습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 성도들을 잘 야단치는 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 장로님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상처를 입었고, 때로는 자기는 교회를 개척한 장로이고 목사님은 부임한 목사님이라고 생각해서 목사님에게도 말을 쉽게 했습니다. 어느 날, 제직회 때 그 장로님은 목사님을 심하게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충격을 받고 귀가했습니다.
그날 밤, 장로님은 제직회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아 밤새 잠을 못 자고 새벽에 겨우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꿨는데 목사님이 충격으로 돌아가신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장로님은 사모님과 교인들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자기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니까 먼저 가신 목사님이 활짝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장로님! 어서 오세요. 이곳에서 장로님 얼굴을 뵈니 정말 기쁘네요.”
목사님의 환대를 받고 장로님은 꿈속에서 펑펑 울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그날 아침, 장로님은 목사님께 사과하려고 사택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꿈에서 본 대로 목사님이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사모님과 교인들에게 자신의 꿈 얘기를 하며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도 2주 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마 천국에서는 더 이상 싸움도 없이 서로 위해주며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교회를 천국으로 만들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을 기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항상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교회를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 주님과 가까워지면 행복해집니다 >
요새 산다는 것이 참 힘겹습니다. 사업하는 분들을 만나면 “죽을 맛입니다!”라는 소리를 자주 합니다. 그처럼 많은 분들이 고단하게 삽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힘들게 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우리 가족이 살아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 가지고도 하나님께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슬픔은 기쁨으로 변하고, 가장 두려운 순간은 가장 복된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사람은 무서움을 느낄 때 어느 정도 즐거움도 느낍니다. 그래서 돈을 내고 공포영화를 봅니다. 우리 아이들도 TV에서 공포스런 장면이 나오면 무섭다고 눈을 가리지만 곧 실눈을 뜨고 계속 봅니다. 왜냐하면 묘한 스릴과 재미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믿음의 눈과 믿음의 근육만 있으면 가장 두려운 순간이 가장 즐거운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일은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좋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절망적인 어려움을 당해 봐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처럼 꼭 길이 막혀야 하나님을 붙잡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막으셔야 된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길이 막힐 때만 하나님을 찾지 말고 길이 열리는 것 같을 때 더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처럼 일에 잘 될 때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조금 먹고살게 되었다고 간절한 신앙을 잃는 것은 자멸하는 길입니다.
옛날에 가짜 총을 가지고 총싸움을 할 때 우리는 입으로 총소리를 내며 “빵빵” 했습니다. 총소리를 내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을 텐데 왜 “빵빵”이라고 했을까요? 어떤 분은 그 이유가 너무 빵을 먹고 싶어서 총소리 흉내도 ‘빵빵’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사람들이 싸울 때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결국 근원적인 이유는 빵 때문인데, 그래서 총 싸움을 할 때 “빵빵!”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빵 문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빵은 총보다 강합니다. 소련이 그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도 무너진 것은 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빵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영적인 빵 문제입니다. 육신의 빵 문제가 해결되어 영적인 빵 문제가 생기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믿는 사람들의 믿음이 약화된 것이 문제입니다.
아모스 선지자 당시 상황에 대해 아모스 8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런데 지금은 아모스 때보다 더욱 심각합니다. 그때는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말씀을 듣지 않는 기갈’이 문제입니다. 그런 시대의 흐름을 역류해서 우리는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 결코 비켜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그때 빵 문제도 해결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빵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주시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감사의 통로로 삼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 선교의 통로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그때 그에게 주어진 축복은 진정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저는 가끔 선교사님들 만나는 것이 죄송합니다. 왜냐하면 선교사님들을 원하는 만큼 많이 돕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선교사님을 만날 때마다 먼저 말합니다. “선교사님! 필요한 것 있으면 꼭 말씀하세요.” 우리는 누군가 선교에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그 필요를 채워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필요를 구하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필요를 듣고 자신이 채워보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좋아해야 합니다.
이제 성공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돈을 벌 때도 선교를 위한 사명을 가지고 돈을 버십시오. 그처럼 “열심히 벌고, 열심히 선교한다.”는 선교 사명을 가지고 축복을 향해 땀을 흘린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복의 원리는 참으로 간단합니다. 주님과 멀어지면 저주를 받고, 주님과 가까워지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복의 가장 기초 원리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축복을 ‘아들’과 함께 선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주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축복의 원천이란 말입니다.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김으로 축복 받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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