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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비자 어린이 마음! (눅 18;15-17) |

by 【고동엽】 2021. 12. 13.
천국비자 어린이 마음(눅 18;15-17)
  미국 비자를 받지 못 하면 미국가는 비행기를 아예 태워주지도 않습니다. 어쩌다가 탔다 할 지라도 미국 공항에서 입국을 거절당하고 돌아 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6-17)
미국 워싱톤에 가면 스미스 소냐라는 곳에 달에 가져온 돌이 있습니다. 한번 만져 보는 데 2불 30센트입니다. 그 돌을 만져 보려고 뱀처럼 길게 늘어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돌을 만져 보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만져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못 오게 말렸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바쁘신 데 어린아이들을 만져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린아이같은 마음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택 과목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필수 과목입니다.
나는 이 성경 말씀을 새벽기도 시간에 읽다가 <결단코>라는 말씀에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린이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천국 가는 비자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가?


1. 순결
어린아이는 순결합니다. 죄를 모릅니다. 어린아이가 죄를 모른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성경에 법칙이 있습니다. <죄를 모르면 부끄러움을 모르고, 죄를 알면 부끄러움을 안다> <죄를 모르면 두려움을 모르고, 죄를 알면 두려움을 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발가벗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부끄러워서 무화과 나무 치마를 만들어 입고 숨어 버렸습니다.
죄의 결과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입니다. 나는 설교 할 때 어린 아이 하나가 발가벗고 강대상으로 뛰어 올라와 이리 저리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설교 시간에 아이가 오줌을 싸니까 바지를 벗긴 것입니다. 그는 강대상으로 뛰어 올라와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조금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1,000만원 준다면, 당장 준다고 하여도 벌거벗고 강대상에 올라와 단 1분 만이라도 서있을 어른은 없습니다. 어른은 순결하지 못 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순결합니다.
미국에서 조사하였습니다. 종교 심리학자 스펜서(Spencer) 박사가 조사한 것입니다. 입신하고 깊은 하나님을 체험한 나이 조사입니다.
1,000명을 조사하였더니 548명이 20 세 이전에 신비체험을 하였습니다. 337명이 20세에서 30세 사이에, 96명이 30대에, 그리고 40대에 종교체험을 한 이는 불과 15명, 50대에 신비체험을 한 사람은 4명이 불과하였습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순결입니다.
성서 주석가 매튜 헨리는 11살 때 신앙 체험을 깊게 하였습니다. 폴리라는 유명한 영계의 거성은 9살에 신비체험을 하였습니다. 스펄지온 목사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10,000명 교회를 이룬 분입니다. 그 분은 12 세에 신앙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모라비안 교단을 창설한 진젠돌프는 4살에 신비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는 순결합니다.
그래서 신앙체험을 빨리 할 수 있습니다. 백지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순결하게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 정직
어린아이의 두 번째 특징은 정직입니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남을 속이지 않습니다. 거짓말할 줄 모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정직하여야 합니다.
어느 날 우리 교회 부부 집사님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어린아이가 교회에 나왔습니다. 나는 영감이 있어서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 오늘 교회에 안 나왔다" 그랬더니 말했습니다. "싸웠어요" 어린아이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교회 옆에 살고 있는 집사님이 외출할 일이 생겼습니다. 사모님에게 아이를 잠시만 맡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모님은 집사님 아이 셋을 맡아 잠시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집사님이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저녁 밥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이 말했습니다. "애들아! 집에셔 밥차려 놓고 매일 하는 대로 해봐" 그런데 아이들은 눈만 껌벅이면서 잠잠하였습니다. "애들아! 밥차려놓고 엄마가 하는 대로 해봐" 사모님이 독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둘째 아이가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d, 새끼들아! 싸우지 말고 빨리빠리 쳐먹어!" 아이들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왕이 자부감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 절세 미인들을 불러 모으로 해바라기씨를 주면서 잘 길러서 누가 예쁜 꽃을 만들어 오는 지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약속한 날 수많은 처녀들이 아름다운 꽃을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한 처녀만이 빈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심어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울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를 자부로 삼았습니다. 정직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왕은 볶은 씨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처녀들은 아무리 심어도 싹이 나지 않으니까 다른 씨를 심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3. 꿈 어린아이의 세 번째 특징은 꿈입니다. 자라나면서 꿈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너 이 다음에 무엇이 될레?" "'대통령" 대통령이 아니라도 영롱한 꿈이 있습니다. 꿈을 말하지 않는 어린아이는 없습니다.
요셉은 17살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37;6-7) 이 꿈 이야기를 듣고 형들이 말했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그리고 동생 요셉을 미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그 꿈 이야기를 또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눈치도 못 채고 말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37;9) 이번에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창37;10)
요셉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이런 꿈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 뱃길, 죽이고 싶도록 독선적인 꿈이 요셉에게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이런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어른의 꿈에 어린아이의 꿈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국 다이어(Wayne Dyer) 박사 보고에 의하면 미국 어린이(8세에서 12세)의 자살률은 1967년에 비해 400%나 증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가장 큰 원인은 부모의 욕심과 과잉 기대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꿈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느 어린이가 외과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을 받겠습니다" 고집스럽게 말하기에 할 수 없이 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을 하여 주었습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참더라는 것입니다. 온 몸이 땀을 뒤범벅이 되어도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 손에는 무슨 종이 조각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쪽지를 빼앗아 보니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보이스카웃은 용감하다" 그렇게 무엇을 하든지 용감하게 살라고 가르치니까 그대로 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천국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꿈이 있어야 합니다.


4. 엉뚱
어린아이는 엉뚱합니다. 단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행동 표현은 바로 엉뚱입니다. 촛불이 타고 있습니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손이 데는 줄도 모르고 만져 봅니다. 손에 화상을 입습니다.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에배를 드렸습니다. 앞에 십자가가 걸려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말합니다. "엄마! 저기 더하기 표시가 있어" 십자가를 더하기로 봅니다. 나비가 날라갈 때 어른들은 꿈을 찾아 다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말합니다. 저 나비는 엄마를 찾아 가나봐" 어린아이는 엉뚱한 데가 있습니다. 한 가지만 행동합니다. 초지일관 한 가지로 전진합니다. 그래서 무디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도하고 돌아 오자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몇 명 전도하였습니까?" 무디가 대답하였습니다. "두 명 반" "두 명 반이라니요? 어른 두명, 어린이 한 명을 하였나요?" 이 말을 듣고 무디가 대답하였습니다. "아니요? 반대요. 어른 한 명, 어린아이 두 명을 하였습니다.
어른은 전도하여도 나올지 말지 하지만 어린아이는 나온다고 하면 나오거든요" 어린아이는 단순하고 엉뚱하고 하나만 압니다.
169기 성막 세미나에 일본선교사 김 병철 목사님이 참석하셨습니다. 그는 너무나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끈끈한 정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꼭 편지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이런 글을 주었습니다. 어떤 중소 기업 사장님의 고백을 썼습니다. 이 분은 열 살 때 한국 6,25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분이 큰아들이었습니다. 그 때 도망가다가 한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자기 동생들을 하나씩 가슴의 안고 들쳐 업고 중요한 물건은 머리에 이고 강을 건너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문제였습니다. 아버지가 방법을 하나 고안했습니다.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아들에게 말합니다. 데리고 나왔던 소를 보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 소의 꼬리를 어떤 일이 있어도 놓지 말아라. 이 꼬리만 붙들면 너는 살수 있을 것이다. 절대 소꼬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
소는 오토메틱식으로 수영하는 동물입니다. 이 사장님은 소꼬리를 붙들고 강을 건너갔습니다. 물을 좀 먹기는 먹었지만 이 소 때문에 자기는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이 사장님은 소만 보면 인사를 한답니다. 자기를 살려준 소이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릴 때 결심하였습니다. 소고기는 가급적이면 먹지 않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죽어도 꼬리 곰탕은 먹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위험하여도 예수님의 옷자락만 붙들면 살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단순합니다. 엉뚱합니다. 좀 기발한 생각을 하고 기발한 행동을 할 줄 압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 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 마음은 천국 비자입니다. 어린아이 마음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어린아이는 순결합니다. 2. 어린아이는 정직합니다. 3. 어린아이는 꿈이 있습니다. 4. 어린아이는 엉뚱합니다.
마지막으로 최 효섭 목사님이 쓴 글을 하나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얼마나 멋진 피조물인가? 그들은 말과 같은 식욕을 가졌고, 칼을 삼키는 마술사의 소화력을 가졌다. 소형 원자탄의 정력을 지녔고, 고양이와 같은 호기심의 소유자이다. 독재자의 허파를 가졌는가 하면, 시인의 공상력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 모두가 천사이며 예술가이다.
그들은 참새와 이야기하고 별나라에 왕래하며 꽃과 사귀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춘다. 어린이는 제비꽃의 부끄러움을 간직하는가 하면 사냥개의 담대함도 가졌고, 분화구의 정열도 가졌다. 단지 무엇을 만들 때 10 손가락이 모두 엄지손가락이 되지만 얼마나 얼마나 귀여운 실패인가? 그들은 놀라운 마술사이다. 당신이 아이들을 골방으로 내쫓을 수 있지만 당신의 심장으로부터 내 쫓을 수는 없다.
당신이 그들을 부엌과 서재에서 추방 할 수는 있으나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당신의 포수이며, 보스이며 주인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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