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야긴의 복권 왕하25:1~21 10.03.07.(열왕기32회차)설교녹취
‘여호야긴의 복권’이란 내용의 설교를 처음 들어보기에, 녹취/스크랩해 둡니다.
◑본문 배경 : 예루살렘의 함락, 희망을 상실한 이스라엘 백성들
시드기야 제9년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 성이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포위되었다가, 마침내 함락된다. 왕하25:1~2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자기가 보는 앞에서 두 아들이 죽고,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묵인 가운데서 바벨론에 (3차)포로로 잡혀 간다.
그 직전 왕이었던 여호야긴도 (11년 전인, 주전597년경, 2차)포로로 잡혀갔다.
예루살렘 도성과, 거룩한 성전은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되었는지
성전 안에 있던 모든 기명들과 도구들
심지어 기둥들까지도 다 약탈되어 갔다.
귀인들과 지도자들은.. 당연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비천한 자들만 그 땅에 남겨졌다.
나머지 국민들은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왕하24~25장)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고, 포로가 된 것은
분명히 그들과 그들 조상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하나님과 언약백성 된 관계가/그 언약이 완전히 깨어진 것처럼 여겨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백성이 자기 백성이 될 것을 언약하셨다.
(신구약을 관통하는 중요 사상, 출6:7, 레25:38, 렘11:4, 30:22, 고후6:16, 히8:10 등)
그리하여 기꺼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셨고,
그 성전에서, 그들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으며,
다윗과 약속하기를, ‘다윗의 왕권이 영원하리라..’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런 약속과는 달리
성전은 다 훼파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다.
(물론 하나님 쪽에서 언약을 깨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 쪽에서 언약을 깬 것이었다.)
다윗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왕들은, 포로로 끌려가거나 죽는 등.. (언약과 달리) 처참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인정하는 자부심의 표현,
‘나는 너희가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출20:2, 신5:6
이런 말씀들이.. 포로생활이 10년, 20년 지나가면서..
거의 잊혀진 속담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차마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로 잡혀갈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애굽의 쇠풀무에서 건져진 민족이었다. 렘11:4
그들은 홍해를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에 정착한..
완전한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과 언약 아래에 살고 있던 백성들이었다.
이런 과거의 출애굽, 가나안 정복의 경험으로 볼 때,
또한 히스기야 때 앗수르를 기적적으로 물리친 경험으로 볼 때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실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도, 곧 유대로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 렘28:1~3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포로생활이 길어져만 같던 유다인들의 놀라움을 헤아려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왕권의 영원함은.. 사라져버리고 말았구나..’
성전도 다 훼파되었고,
다윗 왕손은 다 포로로 잡혀와 있고,
이제 거기서 1세대가 지나서, 애들을 놓고 포로생활에 정착해 가고 있었다.
어떤 ‘언약 백성에 대한 기대, 자부심’ 이런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철저한 절망이 오래도록 계속된.. 그런 상태였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회개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깼고, 그 은혜를 저버렸고,
여호와 신앙을 지키지 못했구나.’
어쨌든 혹독한 포로생활은 핑계 댈 수 없는 .. 자기들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에 신실하셨다.
▲포로생활 37년 만에 여호야긴이 복권 되다.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37년 (주전597잡혀가서 561년 복권)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12월 27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왕하25:27~30
잡혀간 맨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이지만,
시드기야의 최후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이 나와 있지 않다.
두 눈 뽑히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 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왕하25:6~7 주1)
여호야긴이 완전히 복권되어, 예루살렘에 왕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바벨론 궁에서, (유대)왕으로서의 명예와 대접을 받게 된다...
▲여호야긴의 복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묘한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성전이 불타고, 20년 이상 계속 되어온 포로생활 가운데서
삶의 모든 희망이 깡그리 다 무너졌을 것이다.
‘다윗 언약’ 이런 것도.. 다 잊어버린 절망적 상태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호야긴 왕이 복권되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다윗 언약은 아직 유효한 것인가?’
라는 묘한 생각을.. 슬슬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하7:14~16절,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상기해 보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7:14~16
‘다윗 왕권의 영원성’을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인데,
네 후손 중에서, 만일 불순종하는 왕이 생기더라도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왕권을 단절시키지는 아니하리라
이런 대단한 약속이다.
그런 약속을 분명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는..
백성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뜨렸으며..
‘이제 하나님의 언약이 다 폐하여졌다’고 생각하던 그 찰나에
기적과 같이
여호야긴이 복권된 것이다. 하나님이 불씨를 아직 남겨두셨던 것이다.
그들은 바벨론 땅에서, 흩어진 외국 땅에서 생각했을 것이다.
‘아, 아직 우리가 끝은 아니구나!’
▲다윗의 왕권은 그리스도에게로 계속 이어졌다.
물론 바벨론 포로에서 다시 돌아오고, 이스라엘이 자기 나라를 회복한 후에도
이스라엘의 다윗 왕권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약 당시 이스라엘은, 헤롯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약의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고 하면서
다윗의 왕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회복된 것을.. 밝히고 있다.
삼하7:14~16절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언약을 폐하시지 않는다.
여호야긴의 복권에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으며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에서.. 우리는 그것을 재확인한다.
◑적용
나 자신이, 아주 위기상황에 처할 때,
또는 내 자녀/배우자가.. 군대나 외국에 유학, 출장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어야 한다.
나 자신, 내 자녀, 내 배우자이기 이전에..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언약 백성이 망하는 이유(를 알아야, 안 망하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은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역사와.. 비슷한 역사를 경험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계속 불순종하다가, 호되게 심판을 받기도 한다.
이스라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요구대로) 제대로 섬기는 일에는 실패했다.
저들은, 성전 안에 우상을 끌어들였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를 빠짐없이 드렸지만, 헛되이 마당만 밟는 제사도 많았다.
그래서 말라기는 ‘누군가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까지 예언한다. 말1:10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원하시고, 목적하시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께 기대하고 원하는 것들이 다른 데서 오는 갈등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니고, 예배를 안 드리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자기가 택한 언약 백성들을.. 심한 경우 가증스럽게 여기기까지 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는.. 결코 남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일평생 신앙생활 하면서
적어도 한 두 번 정도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한다.
▲그렇지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위 ‘여호야긴의 복권’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 되는’
(출6:7, 레25:38, 렘11:4, 30:22, 고후6:16, 히8:10 등)
이 하나님의 언약이.. 절대 깨지지 않는 영원한 진리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마치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아무 희망도 없고, 아무 기대도 없이 오래 동안 살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 되는’
그 언약은 절대로 변치 않고, 지켜진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 각자의 신앙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이 되지 못하고,
아직 미숙해서, 뭔가 하나님께 자꾸 원하고, 달라는 신앙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내 소원과 기대를 채워주셔야 하는 대상이지, (소위 기복신앙)
내가 순종하고 무릎 꿇어야 하는 대상은.. 아직 아닌 분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신앙생활에 실패하면서도, 계속 돌이키지 않고 불순종해서,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바벨론 포로와 같은’ 하나님의 엄한 징계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런데 본문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듯이
주전 586년에, 나라도 망하고, 백성들도 다 흩어지고.. 그러면 완전 끝장난 줄 알았는데..
여호야긴의 복권을 보니..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니..
결코 끝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절대로 언약에 신실하셔서
나의 불순종과 나의 반역으로.. 그 언약이 깨어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그 언약을 놓지 않고, 계속 붙들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103:8
(같은 내용의 구절이, 대하30:9, 시145:8, 욜2:13 등 여러 곳에 나옴)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같이,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하신 분이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3:2
신약성경에,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속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구절은 이것이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딤후2:13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큰 흐름이다.
우리가 어떤 절망에 처했어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미쁘신(믿을 만한) 속성’에 기인한다.
본문의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내 인생의 역사도.. 이스라엘의 역사와 비슷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치지 말게 되시기 바란다...
▲그러나 이런 설교를 반복하다 보면,
균형을 잃어버리고, ‘은혜’ 쪽에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칠 수 있다.
우리는 균형을 잃어버리고 치우치면 안 된다. ('축복을 강조하던' 과거에 우리가 많이 치우쳤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그 놀라운/영원한 언약 아래 살면서도 실패한 것을 교훈 삼아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는 말씀도.. 꼭 기억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몰라서, 또는 알고도 무시해서
우리가 과거에 괜히 ‘포로생활’을 했던 적이, 다들 한두 번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 믿고,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이런 구절만 외우면서, 제 멋대로 신앙생활 하다가
한 번 호되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경험들.. 다들 있으실 것이다.
위 구절에서
‘두렵고 떨림’은.. 공포가 아니다. 공포적 분위기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무게’다. ‘심각성’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행복하고 평안하다는 약속을 받는다.
그러나 그 행복과 평안은.. 세상적인 것, 내가 원하는 소원성취 라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행복과 평안’이다. 참된 행복과 평안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 정상화’에서 오는 행복과 평화보다는
세상적인 행복과 평화만 추구하게 되는데..
이 우상을 계속적으로 추구하던 남유다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의심 없이 믿지만..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주1)
여호야긴만 복권되고, 시드기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시드기야는, 일찍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호야긴은 시드기야보다 11년 앞서 포로로 잡혀와 있었다.
여호야김은 여호야긴보다 아마 1년 정도 앞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왔다. 대하36:6
그의 최후도 성경에 기록이 없다. 아마 바벨론에서 일찍 죽었던 것 같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칼로 베어 불에 던지게 한 사람이었다.
유다의 마지막 세 왕은, 바벨론에 모두 포로로 잡혀 왔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세 왕중에, 여호야긴만 은총을 입었는데,
그는 재위기간이 3달이어서, 아마 바벨론의 심기를 가장 작게 건드린 왕이었다. 당시 유다는 친애굽 정책.
또한 여호와의 심기를 가장 작게 건드렸다고도 볼 수 있다. 우상숭배를 3달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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