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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자

by 【고동엽】 2021. 12. 13.

진짜 부자

누가복음 12장 13-21절

 

<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

 

어느 날, 링컨 대통령이 산책을 하다가 사이좋게 지내는 두 어린 형제를 보았습니다. 두 아이가 귀엽게 생겨서 자기가 가진 호두 세 개를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두 아이가 서로 호두 2개를 가지겠다고 다퉜습니다. 그 다투는 모습을 보고 링컨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괜히 호두를 주어서 싸움을 붙였네.” 그때 장관 한 사람이 다가와 “왜 저 애들이 싸웁니까?”라고 묻자 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저 애들은 지금 세계 문제로 싸우는 겁니다.”

 

오늘날 가장 큰 세계적인 문제는 탐심의 문제입니다. 내가 조금 더 먹자는 것에서 싸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상대적 빈곤이라는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절대적 빈곤에서는 육신의 고통이 있고, 상대적 빈곤에서는 마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결국 탐심을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는 그치지 않습니다. 또한 탐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믿음도 잘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질적 헌신생활도 꼭 필요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가 오면 물질도 꼭 따라옵니다. 그때 물질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이 광야에서 주님을 어떻게 유혹합니까? 물질로 유혹합니다. “천하영광, 모든 물질을 다 줄 테니 내게 절 한번만 하라.” 그때 주님은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자세히 보면 물질이 신앙을 말아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물질 많은 것을 축복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짜 축복은 물질을 잘 쓰는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후에 독일의 기독교는 가장 진실했습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으로 교회당은 장례식장과 결혼식장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기독교가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영국도 물질문명에 삼켜졌습니다. 그래서 참된 기독교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미국도 물질문명으로 기독교가 본래의 의미를 많이 잃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물질문명으로 기독교가 액세서리처럼 되고 있습니다.

 

물질을 잘 이용하지 못하면 물질에게 당합니다. 그러나 물질을 잘 쓰면 최고로 행복한 인생이 펼쳐집니다. 결국 물질이 많은 것이 복이 아니라 물질을 영혼을 위해서 쓰는 것이 복입니다. 이제 돈의 머슴살이를 하지 마십시오. 돈으로 영혼을 잃지 말고 돈으로 영혼을 얻어야 합니다. 이제 곧 인생은 끝납니다. 그때 영혼을 위해 한 것이 없으면 물질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추구하되 영혼의 때를 위해 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안 쓰고, 안 먹고, 하나도 안 베풀고, 50세에 8층짜리 빌딩을 짓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그 빌딩은 50년의 인생을 삼킨 것입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 빌딩보다 자기 목숨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빌딩과 자기 목숨을 바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좋은 일은 못하고 물질로 세월을 다 보낸 것입니다. 그처럼 물질에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을 잘 쓰지 못하면 물질이 많은 것이 결코 복이 아닙니다.

 

자녀를 성공시켜도 영혼을 위해서 한 것이 전혀 없으면 그것은 허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육신의 것을 가졌다고 거만을 떠는 인생도 불행한 인생이고, 반대로 그것을 부러워하는 인생도 불행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과 우리의 소유를 영혼의 때를 위해 알뜰하게 써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죽는 순간 비참해집니다. 반대로 영혼을 위해 산 사람은 오늘 간다고 해도 기쁘게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축복 많이 받았다고 간증하고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큰 아들은 장관, 둘째 아들은 판사, 셋째 아들은 검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세 아들이 너무 바쁘다고 신앙생활을 잘 못했습니다. 그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잡은 것 같으나 아무 것도 못 잡은 것입니다. 오히려 작은 소자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잔 떠 주는 것이 진짜 잡은 것입니다.

 

많이 가져도 죽으면 끝나는 복은 관광구경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복을 위해 아까운 인생을 다 허비하니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인생은 짧습니다. 어느새 청년이 장년이 되고, 장년은 곧 경로반이 되고, 경로반은 곧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널 때 비참하게 건너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돈을 벌되 그것을 가지고 영혼을 위해서 값지게 사용해야 합니다. 영혼에 유익이 없는 삶은 어떤 삶도 무의미한 삶입니다.

 

어떤 분이 영혼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죽으면서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첫째야, 너는 도곡동 아파트 가져라! 둘째야, 너는 용인 땅 가져라. 셋째야, 너는 송도 오피스텔 가져라.” 그러자 셋째가 죽는 아버지에게 대듭니다. “아버지! 이럴 수 있어요. 왜 저는 송도 오피스텔만 줘요.” 아버지나 자식이나 똑같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가치 있는 얘기를 한 마디도 해주지 못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 진짜 부자는 누구일까요? >

 

본문을 보십시오. 그런 어리석인 인생이 나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해서 재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재판관이 아니다.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 그와 동시에 본문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열매를 거두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곡간을 헐고 크게 지어서 곡식을 쌓아 두겠다고 하고(18절),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결심했습니다(19절).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주님은 이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진짜 부자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짜 부자는 누구일까요?

 

1. 자기 변화를 이룬 자

 

살면서 문제는 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만나면 본문에 나오는 동생처럼 해결하려고 합니다. 즉 문제를 놓고 주님 앞에 나와서 “내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지 않고 “저 사람을 움직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식으로 남만 바꾸려고 하면 문제해결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움직이지 않고 남만 움직이려고 합니다. 있는 자들은 없는 자들에게 “좀 열심히 살라!”고 하고, 없는 자들은 있는 자들에게 “좀 마음을 고치라!”고 합니다. 바로 그런 자기중심적 사고와 자세 때문에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무엇인가 변화되기를 원하면 내가 먼저 변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자기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남만 바꾸려고 하면 정신적으로 병들게 됩니다.

 

요새 정신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연극을 많이 활용합니다. 정신병자들 앞에서 배우가 연기하면서 넋이 빠진 사람처럼 얘기하고, 남편의 옷과 지갑을 뒤지고, 바쁜 사람에게 매일 자기에게 와달라고 하고, 한밤중에 남에게 툭툭 전화하고, 남의 말을 엉뚱하게 해석하는 등등의 연기를 보여주면 정신병자들도 같이 웃습니다. 그렇게 웃으면서 “내가 남에게 저렇게 피해를 입혔구나!”라고 깨달으면서 정신병이 상당히 호전된다고 합니다.

 

또한 요새는 남을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역할을 바꾼 연극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 역할을 하고, 엄마가 아이 역할을 합니다. 먼저 엄마 역할을 하는 아이가 말합니다. “너 왜 그러니? 공부해야지.” 그러면 아이 역할을 하는 엄마가 말합니다. “엄마는 왜 매일 그런 소리만 하세요.” 그렇게 역할을 바꿔 연극하면 서로의 심정을 더 이해하게 되고, 연극하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아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문제해결을 원하면 남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핵심 원리는 남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남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내가 먼저 변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진정한 회개는 내가 변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내가 죽고, 내가 변할 때 부활의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2. 영혼의 때를 준비한 자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자기 육신을 위해 큰 창고를 준비하고 즐겁게 살 계획을 했지만 자기 영혼을 위한 준비는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의 삶이 전부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물질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토록 노력하면서 영혼이 망하는 문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이 너무 관념적이고 추상적입니다.

 

어떤 분은 수양을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그래서 구원의 감격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이 자라질 않습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자녀가 잘 되고 사업이 잘 되는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나옵니다. 그러면 회사가 안 되고, 자식이 비뚤어지고, 건강을 잃으면 신앙도 잃습니다. 성도에게 실패와 시련은 더 큰 복을 위해 허락된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성도는 망하고 실패해도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를 잃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목사님께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 뜻대로 사업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그래서 목사님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못 되서 사업이 부도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자 면회 간 목사님께 청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했는데 왜 부도가 났죠?”

 

그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게 하나님 뜻이야. 네 뜻을 정해놓고 네 뜻이 하나님 뜻이 되기를 바라지 말아라. ‘사업이 잘 되고 하나님을 버리는 것’보다 ‘사업이 망하고 하나님을 더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요한 것을 잃지 말아라.” 그 얘기를 듣고 그 청년에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더 찾았고, 얼마 후 감옥에서 나와 멋지게 재기했다고 합니다.

 

내 뜻을 미리 정해놓고 내 뜻이 하나님이 뜻이 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을 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그것을 욕심으로 구하는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하는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영광이라는 삶의 목표에서 결코 후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보다 우리의 진실한 신앙을 더 원하십니다. 결국 진실하면 점점 진짜 성공도 따라옵니다.

 

서울에 600명 정도 나오는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축을 하면서 한 사람씩 빠져나가 나중에 6명만 남았습니다. 그 6명이 자기 집을 파는 헌신으로 교회를 완공했는데 나중에 그 6명은 한국 사람들이 다 알만한 엄청난 재벌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처럼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과감하게 쓰면 하나님은 더 주실 것입니다. 반면에 충성도 없고 헌신도 없는데 잘 되는 것은 이미 버림받고 저주받은 증거임을 알고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필요는 어떻게든 채우려고 합니다. 그처럼 교회의 필요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은 죽으면 바로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그 물질로 영혼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육신의 즐거움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혼의 즐거움입니다. 이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요새 부모들마다 자녀들 대학입시에 목숨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면 위대한 자녀가 되지 못할 자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이 공부 안 하는 것은 조금 덜 야단치더라도 교회 가지 않는 것은 호되게 야단쳐야 합니다. 그처럼 영혼의 때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3.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

 

어떻게 영혼의 때를 준비합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드리는 삶이 없으면 인성이 나빠지니까 줄 수가 없습니다. 왜 교회에 나옵니까? 자기를 드러내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드리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과 자존심을 꺾어야 합니다. 어떻게 꺾습니까? 말씀으로 꺾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난으로 꺾이게 됩니다.

 

주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항상 말씀에 “예!” 하고 순종을 잘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윗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생활에서도 “말씀만 하세요. 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헌신적인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릅니다.

 

가끔 하나님 일을 할 때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때를 위해 열심히 벌고 멋지게 헌신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감동을 주시면 과감히 나서야 합니다. “주님! 제 것을 사용하소서.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환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축복과 행복을 더욱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면 마음속에 사단이 와서 속삭입니다. “이제 어떻게 살려고 해!” 그런 마음이 우리의 진실과 헌신과 충성을 막고 주님의 일과 주님의 교회를 부도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부도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마음을 가진 영혼이 부도가 납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나를 모른다고 했으니 나도 너를 모른다.”

 

우리는 은혜를 아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 전 신세진 친구의 은혜도 잊지 않는데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은혜를 잊습니까? 다른 것은 다 잊어도 내가 구원받은 사건은 영원히 잊지 못할 사건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의 헌신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성경에는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죽지 않은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그릇이 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육신의 일에만 매달리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누가 제일 방해합니까? 바로 육신입니다. 왜 사람들이 육신을 떨쳐버리지 못합니까? 진짜 복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만 움켜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말만 ‘썩어질 육신, 썩어질 물질’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하고, 자기 양심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물론 땅에서는 기만하며 살 수 있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영혼의 복은 육신의 복보다 훨씬 소중한 것입니다. 사실 외모가 조금 부족하고 가난한 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믿음 있는 가난한 사람이 믿음 없는 부자보다 복 받은 사람입니다. 부자는 안 되고 안 되면 망할 도리밖에 없지만 가난한 사람은 안 되고 안 되면 부자가 될 도리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난한 자가 더 희망이 있고 앞길이 훤합니다. 그런 역설적인 사고를 가지고 물질을 멋지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 진짜 부자가 되십시오 >

 

서울에 수백억을 번 40대 간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최선을 다해 돈을 사모하며 많이 벌었지만 죽음의 침상에서 돈은 그가 죽으면 어디로 떠날까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처럼 사람은 돈 때문에 밤잠을 못 자며 의리를 지켜도 돈은 의리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처럼 돈은 죽음 앞에서 잔인하고 매정한 존재입니다.

 

어느 날, 그가 큰 교회를 담임하는 한 성격파 목사님께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가서 잠깐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려는데 바로 그때 그 환자가 거만을 떨었습니다. “목사님! 저만 살려주면 백억을 헌금하겠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목사님이 속에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병신 같은 것! 기왕에 준다고 할 바에야 다 드린다고 하지. 이것아, 백억이 뭐야! 그래도 몇 백 억의 돈은 남겼다가 살아서 재미 보려고 그래! 더러운 것! 넌 정말 돈벌레다.”

 

동시에 목사님은 기도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환자가 소리쳤습니다. “목사님! 왜 그냥 가십니까?” 목사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야! 너는 돈이나 움켜쥐고 죽어라! 하나님의 능력을 돈 백억 주고 살 줄 알았더냐?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했을지 모르는데.”

 

지금도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돈 백억을 주고도 살 수 없고, 지구를 다 줘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으로 거저 얻는 것입니다. 그것을 백억으로 흥정하려고 하니까 얼마나 건방집니까? 돈을 잘못 다루면 돈이 그처럼 사람을 죽을 때까지 건방지게 만들고, 마지막 순간까지 은혜를 막습니다.

 

그처럼 “돈 주께 기도해 달라!”는 물질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차라리 욕심 없는 순수한 믿음과 마음으로 “목사님! 내가 백억을 준비했습니다. 영혼 구하는 일에 써주세요.”라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하고 그 다음의 모든 일까지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낫게 하면 백억 준다.”는 그런 심보를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주님이 은혜를 주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말합니다. “목사님! 이번 기도만 들어주면 건축헌금 할게요.” 그런 조건적 신앙도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능력 없어서 교회를 못 짓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면 재벌 회장의 꿈속에 나타나 한번만 무서운 얘기를 해도 교회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교회를 짓는 기쁨을 누리고, 동시에 영혼의 때를 위해 저축하라고 교회건축에 동참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십계명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은 백억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흥정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작든 크든 돈을 조건으로 내세우면 은혜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이름이 돈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돈을 잘못 다루면 은혜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빼앗아 가버리고 영혼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돈을 벌려고 밤잠을 안자고, 몸부림을 치고, 먹는 것도 거르고, 40대의 젊은 나이에 간이 부풀어 죽을 때까지 돈 앞에 의리를 지켰는데 잘못 다뤄진 돈은 죽을 때까지 자기를 죽이는 일에만 협조하지 자기를 살리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의리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런 돈을 얻기 위해서 영혼을 판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제 우리는 물질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성도답게 매력 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처럼 목사님이 문을 닫고 나오니까 그 젊은 간암환자가 뒤에서 욕했습니다. “아니! 뭐 저런 목사가 다 있어!” 자기 보기에는 정말 황당한 목사입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돈을 앞세운 자기 앞에 다 고개를 숙였고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으로는 건강도 살 수 없고, 행복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살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이 삼성의 이건희 회장입니다. 그래도 며칠 전에 7년 구형을 받고 판사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돈이 못하는 것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이제 돈을 신처럼 숭배하지 말고 돈을 좋은 일에 과감하게 사용해 하나님을 감동시키십시오. 그런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길이 막히는 순간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왜 우리는 선교와 구제에 힘써야 합니까? 그것이 돈을 잘 관리하는 훈련도장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건축은 꼭 할 필요는 없지만 선교와 구제는 꼭 해야 합니다. 건축은 자기 교회를 위해 쓰는 것이지만 선교와 구제는 교회 밖의 좋은 일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에 관련된 헌신이 훨씬 큰 천국상급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용히 선교에 헌신할 때 그 헌신을 기억해주시고 환난 날에 피할 길을 내어주실 것입니다.

 

얼마 전, 홈페이지 관리해주는 분이 자꾸만 홈페이지가 뚫려서 게시판을 최신 게시판으로 교체하고 방화벽도 설치하고, 자료 백업도 매일 받아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꽤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한 선교사가 어려운 처지에 빠져서 “홈페이지 보완은 나중에 하자!”고 결심하고 돈을 홈페이지 개편에 쓰는 대신 선교사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만에 홈페이지가 망가져버린 것입니다.

 

이번 일을 당했을 때 처음에는 많이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더욱 좋은 곳으로 물질을 시집보내듯이 선교사에게 보낸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몇 분이 말씀에 은혜 받았다고 홈페이지 개편에 동참해주셔서 큰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가 홈페이지가 새롭게 되고, 숨겨진 기도 동참자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재물이 영혼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영혼이 재물을 위해 존재하면 그것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부요한 진짜 부자가 되십시오. 잘못하면 물질 때문에 주님을 배반하고 지옥으로 떨어지지만 물질을 잘 쓰면 천상의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열심히 벌고 열심히 헌신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짜 부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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