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배로 축복하시는 하나님
룻기 4장 13-22절
<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 >
얼마 전에 개봉한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어느 날,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두 노인이 한 병실에 있게 됩니다. 한 노인은 백인 재벌 에드워드와 한 노인은 흑인 자동차 정비사 카터입니다. 처음 만남은 어색했지만 둘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에 대해 마음 문을 엽니다.
병실에서 카터는 심심풀이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에 적습니다. 그 메모에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구경하기, 스카이다이빙 하기, 멋지고 장엄한 광경보기,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 날 때까지 웃어보기’ 등의 버킷 리스트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메모를 재벌 에드워드가 발견하고 그 리스트대로 해보자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리스트가 하나씩 지워지면서 인생을 알고, 우정을 알고, 관계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카터는 재벌인 에드워드에게 친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카터가 그 딸과의 화해를 권하자 에드워드는 카터에게 자신의 삶에 개입하지 말라고 화를 내며 헤어집니다. 그러나 카터의 죽음을 대하고 그의 진실한 마음을 받아들여 에드워드는 딸을 찾아가고 딸과 극적인 화해의 키스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의 키스’라는 리스트도 지워집니다.
이 영화는 참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말해줍니다. 재벌 에드워드는 돈으로는 기쁨과 친구도 얻지 못했지만 이웃을 기쁘게 해주면서 참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참 기쁨은 내가 기쁘게 살면서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에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진짜 복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사람에게 가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고 가족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죽음을 앞두면 그것이 더욱 실감납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현재의 가정을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교회를 위해서도 그런 최선의 사랑을 펼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다니게 하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제 나름대로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를 적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일어났던 일에 대해 “그때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일입니다.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후회되는 일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제 의미 있는 일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의 빈틈을 채워주겠다는 큰 꿈을 꾸십시오.
세상적으로 잘 사는 것에 대한 지나친 미련도 버리십시오. 진짜 잘 살았는가 하는 것은 죽은 후에 평가될 것입니다. 그때 누군가 나를 좋게 기억해준다면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무한정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제 곧 우리는 이 땅을 떠나게 됩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좋은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는 ‘큰 축복’을 받고, 그 축복으로 이웃과 선교사를 섬기는 ‘진짜 축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본 후, 나름대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몇 가지 리스트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 66권 전체 설교파일 완성하기, 그 절반인 33개의 주제별 설교파일 완성하기, 그 설교파일들을 영문으로 번역해 출판하기, 사랑칼럼 시리즈 출판하기, 얼라이언스 선교사 훈련학교 만들기, 네트영어 사전 만들기, 전국 각지에 네트 영어 프랜차이즈 어학원 설립하기, 선교지에 갈 때마다 선교사님들에게 만 불을 조건 달지 않고 헌금하기 등등.”
현재까지는 설교파일을 25세트 완성해서 25%의 진척을 이뤘습니다. 그것만 해도 300페이지짜리 책 50권 분량입니다. 나머지 리스트도 착착 진행시켜가고 있습니다. 요새 선교언어 연구원에서 네트영어 강의를 하면서 네트 어학원의 필요성과 네트 영어사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 비전이 이뤄지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요새 투자처를 찾지 못해서 떠도는 자금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자금들과도 연결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사람이 좋은 새로운 꿈도 없이 현재 모습대로 사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 앞에는 과거의 가장 찬란했던 삶보다 더 좋은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다가 많은 좋은 열매와 영향력을 남기고 이 땅을 떠난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미국에 가면 어떤 학교의 운동장에는 한 복판에 개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 개집에는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개의 주인들이 죽으면서 변호사를 통해 개들에게 유산을 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가 살아 있는 한 공식적으로 그 유산은 개의 것입니다. 그러다가 개가 죽으면 그 유산이 학교 재단으로 귀속됩니다. 대신에 학교에서는 개가 제 명대로 죽을 때까지 정성스럽게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약정되어 있으니까 재단 이사들은 학교재정이 어려울 때마다 운동장에 있는 개집을 쳐다봅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저 개님들이 금년에는 3마리는 죽어주셔야 하는데...” 개 주인이 복잡하게 유산을 상속하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만 그래도 좋은 일입니다. 이미 개 주인은 자기의 전 재산을 좋은 일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헌납시기를 조금 유보해서 자기가 아끼던 개를 돌보도록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어차피 이 땅을 떠날 때 물질은 놓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에 연연하며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땀을 흘려 물질세계를 정복하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 물질로 영혼을 살리고, 좋은 일을 마음껏 하고, 이 땅을 떠날 때 기쁘게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도 살려주시고, 그의 가정과 자손도 천 대, 만 대까지 이르러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 >
본문 15절 말씀을 보면 모압 족속 출신 룻을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고 표현합니다. 룻은 이방인 출신 며느리였지만 베들레헴에 사는 많은 여인들로부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고 불렸습니다. 어떻게 룻이 그런 복된 명칭을 얻게 되었습니까?
1. 바른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구약 사사기 때, 약속된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잘 믿어도 삶에 흉년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흉년 때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 흉년의 때에 믿음을 버립니다. 룻기 1장 1절에 나오는 엘리멜렉도 흉년을 핑계 삼아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갑니다.
처음에 갈 때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유야 어떻든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를 떠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결국 그 가정은 모든 것을 다 잃습니다. 엘리멜렉은 죽고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도 다 죽습니다. 결국 그 가정에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 불행을 당하고 나오미는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두 며느리들에게 고향 집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때 오르바는 새 삶을 찾아 떠나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 시머어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면 꼼짝 없이 수십 년 과부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룻은 개인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고생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했기에 그녀는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되고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21-22절).
인생은 선택입니다. 복된 선택을 해야 복된 길이 펼쳐집니다. 특별한 축복을 받으려면 넓은 길보다는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넓은 길로 가면서 특별한 축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머리가 되는 축복을 받으려면 앞쪽 머리 편에 서야지 뒤쪽 꼬리 편에 서면 안 됩니다. 서기는 꼬리 편에 서면서 축복은 머리의 축복을 받겠다는 것은 잘못된 환상입니다.
선택할 때는 앞에 선 선택을 하십시오. 개척자의 길은 힘든 길이지만 가장 복된 길입니다.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하면 미래는 불편하게 될 것이고, 불편한 길도 가려고 할 때 미래는 편하게 될 것입니다.
2. 보아스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룻은 베드레헴에 돌아와 먹고살려고 매일 아침 밭에 나가서 추수 꾼의 뒤를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땅의 주인인 보아스가 자기 밭을 시찰하다가 룻을 보고 일꾼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소녀는 누구인가?” 일꾼들이 말했습니다. “모압에서 온 룻이라는 젊은 과부인데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입니다. 얼마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와서 우리 뒤를 좇아 다니면서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그날 룻이 보아스의 은혜를 입습니다. 그런 은혜의 때가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입니다. 은혜의 때가 되면 좋은 사람도 만나고, 분에 넘치는 은혜도 주어집니다. 그때는 왜 그런 은혜가 주어지는지 이유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은혜의 때는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날 점심 식사 후에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룻을 위해 많은 곡식 단을 떨어뜨려 주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룻은 자기 앞에 떨어진 곡식 단을 줍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인생을 사투하며 살 필요가 없게 되었고, 더 이상 서러움을 당할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때가 우리에게도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만간 우리에게 어떤 사람을 보내서 축복의 단을 떨어뜨려 놓으실 것입니다. 아마 지금 이미 그 축복이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때가 되면 커튼을 열고 예비하신 축복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날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 현재의 처지에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만 잃지 않으면 그 축복의 열매들이 언젠가 곧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다른 일꾼들은 일한 대가만 얻었지만 룻은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종종 그런 넘치는 은혜를 대하면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하나님! 제가 과연 이런 은혜를 받을만한 존재입니까?” 아무리 봐도 그런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죄송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혜 받고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은혜를 받으면 사람들은 우리의 축복을 보며 질투심을 가지고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비판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도에게 십자가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축복 받는 것도 동시에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경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축복받고 혼자만 누리는 기복주의가 아니라면 축복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축복 많이 받고 그 축복을 잘 쓰면 됩니다.
신명기 8장 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아이디어와 창조성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축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는 것을 죄송해하지 말고 더 많이 구하고 더 많이 좋은 일에 사용하십시오.
3. 보아스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보아스의 은혜로 룻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룻에게 주어진 은혜는 일꾼들을 좇아 다니면서 곡식 단을 줍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결국 본문 13절에서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밭에서 많은 곡식 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밭의 소유주가 되었고, 아들을 얻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란 칭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지금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더 행복한 가정을 구하시고, 더 나은 지위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꿈과 비전보다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기를 꿈꾸십시오.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뜻을 이해하고 더욱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물론 축복만 구하는 기복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룻이 보아스와 결혼을 한 것처럼 하나님을 먼저 품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품고, 범사에 하나님을 높이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은혜와 축복이 우리를 추적하고 우리를 품에 안을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꿈과 비전의 성취도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제 더 큰 비전을 가지십시오. “이제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면 때가 되어 한 아름의 새로운 축복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사람도 만나게 하시고, 지혜와 통찰력도 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미 마련해 놓은 놀라운 축복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1장 1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우리를 현재보다 천배나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천배의 축복은 어떤 축복일까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배의 기쁨과 지혜와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필요하다면 물질적인 축복도 주실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씨를 뿌리면 언젠가 반드시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열매를 얻지 못하면 우리 자녀가 열매를 얻을 것이고, 천국 보상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넘치는 축복을 받는 분들을 보면 그의 부모나 조부모가 하나님께 헌신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뿌린 기도와 헌신의 씨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 너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산을 받고 출발부터 한참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납니다. 그래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자신부터 좋은 가정과 좋은 가문을 만들어 가면 됩니다.
룻의 가문을 보십시오. 그녀는 이방신을 모시는 모압 집안 출신이었지만 하나님을 붙잡고 가장 복된 메시야 가문의 일원이 되었고, 신약 마태복음 1장에서 이방 여인으로서 찬란하게 그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런 축복이 우리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꾸준히 주일성수를 하며,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추구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시련 중에도 인내하면 누구나 복된 가문의 창시자가 될 수 있습니다.
<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
어느 주일날, 교회를 잘 다니던 한 부부가 교회 가기 전에 심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예배드릴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골프채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치는데 그날 갑자기 천둥 번개가 쳤습니다. 그때 골프를 그만두어야 하는데 한번만 더 치겠다고 하다가 골프채에 벼락을 맞아서 이 남편이 손에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잘 믿는 아내는 병원에 와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보! 많이 아팠지요.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해서 이렇게 된 것 같아 정말 미안해요.” 그러면 남편도 좋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무슨 잘못이오. 내가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데 그 아내는 병원에 와서 대뜸 말했습니다. “당신, 주일날 예배는 안 드리고 골프장에 가니까 벌 받은 거예요.” 언뜻 들으면 아주 신앙이 좋아서 하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그 찌르는 말을 듣고 정신 차리고 회개하는 남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태도는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방정입니다. 잘 믿는 것은 좋은데 방정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 방정 때문에 오히려 전도를 막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 방정맞은 말이 진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하면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그런 어려움은 사실상 필요한 것입니다. 잘못하고 있는데 인생이 잘 되는 것은 오히려 저주입니다. 그러면 회개할 기회도 없고, 정신 차릴 기회도 없고, 자신의 높아진 마음을 꺾을 기회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지 않고 축복만 바라는 기복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복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까지 축복의 밑거름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실패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그렇게 할 걸...” 하면서 과거의 일에 대해 계속 후회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과거의 그 사건보다 미래의 인생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의 미래는 얼마든지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유명한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이너마이트가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노벨의 동생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이 실수해서 자신이 죽은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노벨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자신이 그대로 죽으면 자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로만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는 제 2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출연해 노벨상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자신의 미래는 새롭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 어떻습니까? 그는 사람을 죽이는 다이너마이트 발명가보다는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최고의 노벨상 창시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처럼 언제나 제 2의 기회와 제 2의 삶은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부터 결단하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요새 이건희 회장이 과거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제 2의 기회를 찾고 제 2의 삶을 살면 그의 미래는 크게 바뀔 수 있고, 지금보다 훨씬 더 존경받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록펠러는 치명적인 병이 들기 53세 이전까지는 악덕기업주로 소문났지만 그가 인생 후반기에 참회하고 남을 위해 사는 제 2의 인생을 살았기에 악덕기업주라는 초창기 이미지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지금 록펠러 재단이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합니까? 그처럼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고, 과거의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미래와 인생은 지금 새롭게 결단함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시 꾸밀 수 있습니다.
이제 과거의 실패와 후회스런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그 실패가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할 때 사람들은 외면하고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욱 관심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그때 하나님을 진심으로 맞이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역사는 지금부터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그런 새로운 축복이 없어도 실패를 통해 조금 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졌다면 그 실패는 유익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조금 더 깊게 만나십시오. 그 만남의 깊이가 축복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천배의 축복을 받고, 그 축복을 이웃에게 넘쳐흐르게 하십시오. 지금보다 천배의 지혜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지금보다 천배의 평안으로 수많은 낙심한 사람들을 일으키십시오. 항상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의 축복을 받고 그 축복을 이웃과 나누는 진짜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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